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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싸움, 2차 예송논쟁! 조선을 뒤덮은 8년간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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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00자)

    조선 최대 정치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왕의 어머니는 며느리를 위해 몇 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 겨우 상복 기간을 두고 8년간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송시열과 윤휴, 서인과 남인이 벌인 치열한 두뇌 싸움. 예법 뒤에 숨은 왕권과 신권의 진짜 대결이 지금 시작된다!

    디스크립션 (300자)

    1674년, 조선을 뒤흔든 2차 예송논쟁이 시작됩니다. 인선왕후의 상복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이 8년간 치열하게 맞선 이 논쟁은 단순한 예법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왕권 강화를 원하는 숙종과 신권 수호를 외치는 신하들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이었죠. 송시열과 윤휴의 날카로운 논리 대결,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정치적 야심을 생생하게 들려드립니다.

    ※ 인선왕후의 죽음과 상복논쟁의 시작

    숙종 원년, 1674년 가을. 창덕궁 대조전에는 깊은 슬픔이 가득했다. 숙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할머니인 인선왕후 장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60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마지막 숨결이 궁궐에 스며들면서, 조선 조정은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전하, 큰일입니다." 급히 달려온 예조판서가 숙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인선왕후 마마의 상복 기간을 두고 신하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있사옵니다."
    스물한 살의 젊은 임금 숙종은 고개를 들었다. 즉위한 지 이제 겨우 몇 달. 아직 정치의 깊은 물살을 헤쳐나가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상복 기간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예법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전하. 서인과 남인이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사옵니다." 예조판서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13년 전 1차 예송논쟁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창덕궁 한 켠에서는 이미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인선왕후 마마는 숙종 대왕의 어머니이시다. 그리고 현 왕비 마마의 시어머니이시기도 하다. 따라서 왕비 마마께서는 1년간 상복을 입으셔야 한다."
    송시열의 맞은편에서는 남인의 거두 윤휴가 반박했다. "송 대감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왕비 마마와 인선왕후 마마 사이에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시어머니라 하더라도 9개월이면 충분합니다."
    겉으로는 상복을 몇 달 입느냐의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정치적 함의가 숨어있었다. 1년설을 주장하는 서인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했고, 9개월설을 주장하는 남인은 지나친 왕권 강화를 견제하려 했다.
    송시열은 70세가 넘은 고령이었지만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의 제자들과 서인 세력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었다. "예는 나라의 근본입니다.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주자가례』와 『경국대전』을 보십시오. 분명히 1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윤휴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인물이었다. "송 대감께서는 원칙만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우리는 조선의 실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궁중 제도가 다른데, 어찌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한 젊은 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13년 전 1차 예송논쟁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1659년부터 1661년까지 이어진 1차 예송논쟁. 효종의 어머니 인조비 인열왕후가 며느리 인선왕후를 위해 몇 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벌어진 그 논쟁은 조선 정치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는 서인이 승리했지만, 남인들의 원한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송시열이 단호하게 말했다. "과거의 일을 들먹이며 흔들리면 안 됩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입니다. 예법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윤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송 대감께서는 13년 전과 똑같은 주장을 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인선왕후 마마와 현 왕비 마마의 관계를 정확히 따져봐야 합니다."
    조정 대신들은 둘로 갈라져 각각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서인들은 송시열의 뒤를 따랐고, 남인들은 윤휴를 지지했다. 갓 즉위한 어린 숙종은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숙종은 측근에게 조용히 물었다. "단순한 예법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의 말이 맞았다. 2차 예송논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는 앞으로 8년간 조선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정치적 태풍의 서막에 불과했다.

    ※ 1년설 vs 9개월설

    궁궐 안 경연청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숙종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좌우편에는 조선 최고의 학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한쪽에는 송시열을 필두로 한 서인들이, 다른 쪽에는 윤휴를 중심으로 한 남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는 학문적 토론의 장이다." 숙종이 엄숙하게 말했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예법과 도리에 따라 논하도록 하라."
    송시열이 먼저 일어나 깊게 절했다. "전하, 신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렁찼다. "인선왕후 마마는 숙종 대왕의 생모이십니다. 그리고 현 왕비 마마의 시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주자가례』에 따르면,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위해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는 잠시 멈추고 좌중을 둘러봤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선왕후 마마의 지위입니다. 그분은 단순한 시어머니가 아니라, 대왕대비의 어머니였습니다. 즉, 왕실의 최고 어른이셨던 것입니다. 이런 분을 위해서는 당연히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합니다."
    서인 측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남인들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이번에는 윤휴가 일어섰다. 그는 송시열보다 30살 가량 어렸지만, 학문적 깊이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송 대감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모든 것이 분명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신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윤휴는 차근차근 논리를 전개했다. "먼저 인선왕후 마마와 현 왕비 마마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혈연관계로 보면, 두 분 사이에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숙종 대왕을 통해 연결된 인척관계일 뿐입니다."
    "그럼 9개월이면 충분하다는 말씀이신가?" 송시열이 날카롭게 반박했다.
    "그렇습니다." 윤휴가 당당하게 답했다. "『경국대전』을 보면, 인척관계에서는 9개월이 원칙입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때 한 서인 관리가 벌떡 일어섰다. "그럼 윤 대감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법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습니다!"
    "잠깐!" 윤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저는 중국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왕실의 계보를 보십시오.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숙종 대왕은 인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원래 왕위를 이어받을 분이 아니었죠. 소현세자가 일찍 돌아가신 후에 왕위를 이어받으신 것입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일반적인 예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송시열의 눈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그건 왕실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발언입니다! 숙종 대왕은 정당하게 왕위를 이어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윤 대감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왕실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윤휴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저는 정통성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법을 적용할 때는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종이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정은 해야 한다. 더 자세한 근거를 제시해보도록 하라."
    송시열이 다시 일어섰다. "전하, 신이 『주자가례』의 원문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는 한문으로 된 원문을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은 놀라웠다. "여기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위해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윤휴도 지지 않았다. "그럼 저도 『경국대전』을 인용하겠습니다." 그 역시 정확한 조문을 외우며 반박했다. "우리나라 법전에는 이런 경우 9개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아니라 조선에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점점 격렬해졌다. 주변의 관리들도 각자 자신의 편을 들며 가세했다. 경연청 안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9개월이면 충분합니다!" 남인 관리가 외쳤다.
    "1년이어야 합니다!" 서인 관리가 맞받아쳤다.
    숙종은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단순한 예법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앞으로 8년간 이어질 긴 싸움의 첫 포성이 방금 울린 것이다.

    ※ 경연에서 벌어진 치열한 논리 대결

    1675년 봄, 논쟁이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완전히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기도 꺼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송시열이 결정적인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승님, 이번 경연에서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합니다." 송시열의 제자 김수항이 간절하게 말했다. "남인들이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윤휴가 젊은 관리들을 많이 끌어들이고 있어요."
    송시열은 서재에서 두꺼운 책들을 뒤적이며 답했다. "조급해하지 마라.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 우리에게는 500년 전통의 유학이 있고, 주자학이 있다. 그들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우리를 당해낼 수 없다."
    하지만 송시열의 마음 속에도 불안감이 있었다. 윤휴는 단순한 상대가 아니었다.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논리력을 갖춘 강적이었다. 더욱이 젊은 관리들 사이에서는 윤휴의 실용적인 접근법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경연 당일, 창덕궁 보문각에는 조선 최고의 학자들이 모였다. 숙종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이번에는 더욱 체계적인 논쟁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각자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문적 근거를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각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하도록 하겠다." 숙종이 엄숙하게 말했다. "감정적인 언사는 삼가고, 오직 학문적 근거로만 승부하라."
    송시열이 먼저 나섰다. 그는 이날을 위해 밤을 새워 준비했다. "전하, 신이 중국의 고전과 우리나라의 전례를 모두 조사해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먼저 『의례』를 보겠습니다." 송시열은 한문 원전을 펼쳐 보였다. "여기에 '부위고고일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위해 1년간 상복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3천 년 전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여러 고전을 인용했다. "『주자가례』, 『가례집람』, 『국조오례의』... 모든 문헌이 한결같이 1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겠습니까?"
    서인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시열의 해박한 지식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윤휴는 차분하게 반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송 대감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모든 것이 명확한 것처럼 들립니다." 윤휴가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신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윤휴는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펼쳐 보였다. "송 대감께서는 중국의 고전만 인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경국대전』을 보십시오. 분명히 '인척관계는 9개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건 일반적인 경우이고..." 송시열이 반박하려 했지만, 윤휴가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인선왕후 마마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라는 말씀이신가요?" 윤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렇다면 무엇이 특별한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송시열은 잠시 당황했다. 윤휴가 예상보다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인선왕후 마마는 대왕대비의 어머니십니다. 따라서 왕실의 최고 어른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송 대감의 논리에 따르면, 왕실의 지위에 따라 상복 기간이 달라진다는 말씀이군요?" 윤휴가 추격했다. "하지만 예법에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혈연관계와 친족관계에 따라 상복 기간이 정해집니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상복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윤휴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었다. 송시열은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윤 대감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송시열이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봐야 합니다. 예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도덕의 근본입니다. 인선왕후 마마 같은 분을 위해서는 최고의 예우를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도리를 말씀하시는군요." 윤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정한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과도한 예법으로 나라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도리입니까? 아니면 적절한 예법으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도리입니까?"
    이 말에 송시열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건 예법을 경시하는 발언입니다!"
    "아닙니다." 윤휴가 단호하게 답했다. "저는 예법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대에 맞는 적절한 예법을 추구할 뿐입니다. 맹목적으로 옛 것만 따르는 것이 진정한 유학자의 자세입니까?"
    숙종은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송시열은 전통과 권위를 중시했고, 윤휴는 현실과 실용을 강조했다. 둘 다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 왕실 계보학을 무기로 한 반박

    1676년 여름, 논쟁이 2년째 접어들면서 조정의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서인과 남인 사이의 갈등은 이제 개인적인 감정 대립까지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휴가 결정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윤휴가 남인 동료들에게 말했다. "송시열의 논리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허목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떤 허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왕실 계보입니다." 윤휴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돌았다. "송시열은 인선왕후를 왕실의 최고 어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왕실의 계보를 정확히 따져보면 다른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며칠 후, 다시 열린 경연에서 윤휴가 폭탄선언을 터뜨렸다. "전하, 신이 왕실의 족보를 자세히 연구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숙종이 긴장하며 물었다. "무슨 사실인가?"
    "인선왕후 마마의 지위에 대한 것입니다." 윤휴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송 대감께서는 인선왕후 마마를 왕실의 최고 어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송시열이 벌떡 일어섰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잠깐 들어보십시오." 윤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인선왕후 마마는 분명히 현종 대왕의 생모이십니다. 하지만 왕실의 서열에서는 다른 분들이 더 높은 위치에 계십니다."
    그는 자신이 준비한 족보를 펼쳐 보였다. "현재 살아계신 분들 중에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마마가 가장 높은 분이십니다. 그리고 효종의 비 인선왕후 마마도 계십니다. 인선왕후 장씨 마마는 이분들보다 서열이 낮습니다."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윤휴의 지적이 정확했다. 송시열은 당황했지만 곧 반박했다.
    "그건 형식적인 서열이고, 실제로는..."
    "아닙니다." 윤휴가 단호하게 끊었다. "예법에서는 형식적인 서열이 가장 중요합니다. 송 대감께서 그렇게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까? 예법은 정확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송 대감 아니십니까?"
    송시열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논리가 역이용당하고 있었다.
    윤휴는 계속 공격을 이어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 왕비 마마와 인선왕후 마마의 관계입니다. 두 분은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현종 대왕을 통해 연결된 인척관계일 뿐입니다."
    "그래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아닙니까?" 송시열이 반박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윤휴가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핵심입니다. 일반적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왕실의 특수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법전인 『경국대전』을 따라야 합니다."
    그는 『경국대전』을 펼쳐 보였다. "여기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인척관계에서는 9개월이라고 말입니다. 왕실이라고 해서 법전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이때 한 서인 관리가 반박했다. "그럼 왕실의 특수성은 무시하자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윤휴가 미소를 지었다. "왕실의 특수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실이 법전을 어긴다면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숙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윤 대감의 생각으로는 9개월이 적절하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윤휴가 확신에 차서 답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법과 전통에 맞는 것입니다. 중국의 제도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송시열이 마지막 반격을 시도했다. "그럼 윤 대감은 중국의 성인들이 만든 예법을 무시하자는 말씀입니까?"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휴가 차분하게 답했다. "존중하되,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추종과 지혜로운 수용은 다릅니다."
    그는 더욱 설득력 있게 말을 이었다. "공자님께서도 '때에 따라 달리 한다'고 하셨습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이 진정한 유학자의 자세입니다."
    이 말에 젊은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휴의 실용적인 접근법이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 왕권과 신권 사이에서의 선택

    1679년, 예송논쟁이 5년째 접어들면서 숙종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창덕궁 대조전 깊숙한 곳, 임금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는 홀로 고뇌하고 있었다. 26세가 된 젊은 임금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예법 논쟁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끌 줄은 몰랐다." 숙종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창밖으로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5년 전 할머니 인선왕후가 돌아가신 날도 이런 가을비가 내렸다.
    이때 내시 한 명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전하, 영의정께서 뵙기를 청하고 계십니다."
    "누구인가?"
    "허적 대감이옵니다."
    허적은 남인의 원로로, 윤휴를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숙종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라고 하여라."
    허적이 들어와 깊게 절했다. "전하, 신이 감히 사사로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해보아라."
    "전하께서는 아직 젊으시어 앞날이 창창하십니다." 허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 논쟁이 계속된다면 전하의 치세에 큰 짐이 될 것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결론을 내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숙종은 허적의 말을 들으며 복잡한 심정이었다. 사실 그도 이 논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허 영의정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예법의 근본에 관한 것이다.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다."
    "전하,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허적이 제안했다. "예를 들어 중간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든지..."
    숙종의 눈이 번뜩였다. "중간적인 해결책이라니?"
    "10개월이나 11개월 같은 절충안 말입니다. 서인의 1년설과 남인의 9개월설의 중간점을 찾는 것이지요."
    하지만 숙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양쪽 모두 불만을 가질 것이다.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허적이 물러간 후, 숙종은 다시 홀로 남았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논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예법 논쟁이지만, 실제로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었다.
    서인들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인선왕후를 위해 1년간 상복을 입는다는 것은 왕실을 더욱 숭고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반면 남인들은 지나친 왕권 강화를 견제하려 했다. 법전에 따라 9개월이면 충분하다는 것은 왕실도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며칠 후, 숙종은 신하들을 불러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짐이 이 문제로 5년간 고민하고 있다. 두 편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어 판단하기 어렵다."
    송시열이 먼저 나섰다. "전하, 신의 생각으로는 왕실의 위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년설을 택하시면 후세에 모범이 될 것입니다."
    윤휴가 반박했다. "전하,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왕실이라고 해서 법전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9개월이 옳습니다."
    숙종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예법이 아니라 정치였다. 그리고 정치적 결정은 임금이 내려야 했다.
    "두 대감의 말을 다 들었다." 숙종이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짐은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예법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에 관한 문제다."
    좌중이 숙종의 말에 주목했다. 젊은 임금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짐은 이 논쟁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숙종의 목소리에 결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성급하게 결정할 수도 없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
    사실 숙종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절한 순간에 결정을 내려 최대한의 정치적 효과를 거두려 했다.
    그날 밤, 숙종은 혼자서 역대 임금들의 기록을 뒤져보았다. 태조, 태종, 세종... 모든 성군들이 신하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연구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진정한 임금은 신하들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 승자와 패자, 그리고 남은 상처

    1681년 늦가을, 드디어 숙종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 8년간 조선을 뒤흔든 2차 예송논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창덕궁 인정전에는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모였다.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오늘 짐이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 숙종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28세가 된 그는 이제 진정한 왕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8년간의 논쟁을 끝낼 때가 되었다."
    송시열과 윤휴가 나란히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긴장한 기색이었다. 8년간의 치열한 논쟁 끝에 마침내 승부가 결정될 순간이었다.
    "짐은 남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숙종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9개월설이 옳다."
    순간 좌중이 술렁거렸다. 서인들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남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윤휴는 기쁨을 감추려 했지만, 눈에서는 승리의 빛이 났다.
    송시열이 벌떡 일어섰다. "전하, 그것은..." 하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임금의 결정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송 대감." 숙종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8년간 충분히 논의했다. 이제 결정은 내려졌다. 더 이상 이 문제로 논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윤휴가 앞으로 나와 깊게 절했다. "전하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조정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숙종의 진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며칠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숙종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짐이 다시 생각해보니, 9개월설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숙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윤휴가 너무 급진적인 해석을 했다."
    이번에는 남인들이 당황했다. 분명히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다시 바뀌고 있었다.
    며칠 더 지나자, 숙종의 진짜 의도가 드러났다. "짐은 서인과 남인 모두에게 실망했다." 숙종이 엄하게 말했다. "8년간 나라를 소란스럽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 원로들을 모두 파직시켰다. 동시에 윤휴를 비롯한 남인 핵심 인물들도 좌천시켰다. 양쪽 모두를 처벌한 것이다.
    "이것이 짐의 진짜 뜻이다." 숙종이 선언했다. "신하들이 당파를 만들어 서로 싸우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앞으로는 임금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겠다."
    조정은 충격에 빠졌다. 아무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숙종은 8년간의 논쟁을 이용해 신하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 것이었다.
    송시열은 파직된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77세의 늙은 몸으로 받은 충격은 컸다. "내가 평생 충성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다니..."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윤휴도 마찬가지였다.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좌천당했다. "임금의 마음을 읽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그는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몇 달 후,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숙종이 완전히 새로운 인물들을 등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서인도 남인도 아닌, 젊고 유능한 신진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오직 임금에게만 충성했다.
    "이제야 진정한 왕정이 시작된다." 숙종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신하들이 당파를 만들어 임금을 압박하는 시대는 끝났다."
    8년간의 예송논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겉으로는 상복 기간을 두고 벌인 예법 논쟁이었지만, 실제로는 왕권과 신권의 치열한 대결이었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숙종 자신이었다.
    조선의 정치 구조는 이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신하들의 권력은 약화되고, 임금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숙종은 이후 '환국 정치'라는 새로운 통치 방식을 도입하여 절대 왕권을 확립해 나갔다.
    "예법을 둘러싼 8년간의 싸움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 늙은 관리가 탄식했다. "임금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2차 예송논쟁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오랫동안 조선 사회에 남았다. 신하들은 더 이상 임금에게 당당하게 맞설 수 없게 되었고, 붕당정치의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유튜브 엔딩멘트

    8년간의 치열한 예송논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상복 기간을 두고 시작된 이 논쟁은 결국 조선의 정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송시열과 윤휴, 서인과 남인 모두 숙종의 계략에 놀아난 셈이었죠. 진짜 승자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은 숙종이었습니다.
    이제 숙종은 환국정치라는 새로운 카드로 조선을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신하들을 수시로 바꿔가며 견제와 균형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 전략이었죠. 과연 이 젊은 군주는 어떤 방식으로 조선을 변화시켜 나갈까요?
    다음 편에서는 '조선 정치판을 뒤흔든 절대 군주, 숙종의 환국정치'를 다뤄보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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