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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호패법 실시, 백성 관리 혁신 - 조선의 신분증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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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gctkFYqjEgg



후킹멘트 (300자 내외)
"당신이 누군지 증명하시오!" 태종 이방원이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백성들에게 '호패(號牌)'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금을 피하던 자, 군역을 피하던 자, 신분을 속인 자들이 이 작은 나무패 하나에 줄줄이 잡혀 나오기 시작합니다. 조선 팔도를 뒤흔든 최초의 신분증 제도. 이것은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감시하기 위함이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태종 시절, "호패를 차지 않은 자는 모두 간첩으로 간주한다"는 엄명이 떨어집니다. 가난한 농부 황 서방의 손에도 낯선 나무패 하나가 쥐어집니다. 이 작은 호패가, 그의 절친한 이웃을 하루아침에 도망 노비로 밝혀내고, 또 다른 이웃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립니다. 조선의 강력한 통치 시스템, 호패법. 그 서슬 퍼런 칼날이 백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 불안한 민심
때는 바야흐로 조선의 3대 임금, 태종(太宗) 이방원이 피의 숙청을 끝내고 강력한 왕권의 기틀을 다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비(이성계)와 형제들의 피를 밟고 용상에 오른 왕. 그 서슬 퍼런 위세 앞에 신하들은 숨을 죽였고, 백성들은 그저 묵묵히 땅을 갈 뿐이었습니다. 왕이 기침만 하여도 궁궐이 흔들리고, 왕이 눈을 부라리면 변방의 오랑캐까지 두려워한다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물 밑은 그리 잔잔하지 않았습니다. 끝없는 전쟁과 '왕자의 난'이라는 정변(政變)으로 나라는 피폐해졌고, 백성들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여보게 들었나? 또 군역(軍役)에 끌려간 아랫마을 삼식이 아배가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네 명나라 정벌인지 뭔지 나간다고 하더니만" "쯧쯧 그것뿐인가. 세금 못 낸다고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반 병신이 된 이들도 부지기수지 쌀 한 톨 구경하기 힘든 흉년에도 세금은 어찌나 독하게 걷어 가는지" 경기도 외곽의 작은 마을. 해가 저물기 무섭게 사내들이 모여드는 허름한 주막 안에도 근심 섞인 수군거림이 가득했습니다. 묽은 막걸리 사발 앞에서도 웃음소리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황 서방이라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상 대대로 이 땅을 지켜온 평범한 농부, 즉 양인(良人)이었습니다. "황 서방 자네는 걱정 없겠네. 나라에 낼 세금 꼬박꼬박 내고 군역 마칠 아들도 없으니 허허" 술 한 사발을 들이켜던 이웃이 부러운 듯 말했지만, 황 서방의 표정도 밝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린가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도망치는 백성들이 하도 많아서 그 세금이 모조리 우리 같은 붙박이들 몫으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에도 관아에서 사람이 나와 인구 조사를 한다며 솥뚜껑 개수까지 세어 가더군" 그렇습니다. 당시 조선은 인구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군역을 피해 정든 고향을 버리고 밤도망을 치기 일쑤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거나, 어떤 이들은 아예 신분을 속이고 다른 고을에 숨어 살았습니다. 양반집 노비(奴婢)들 또한 틈만 나면 도망쳐 양인 행세를 했습니다. 이러니 나라는 세금을 거둘 사람을 찾지 못해 재정이 바닥나고, 군역을 질 장정이 없어 국방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이 이놈들 괘씸하도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백성이 있는 법! 헌데 제 한 몸 편하자고 도망을 쳐?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저들을 모조리 색출해야 한다!" 용상에 앉은 태종 이방원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는 신하들에게 특명을 내렸습니다. "당장 이 나라 모든 백성들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신분을 파악할 방도를 강구하라! 단 한 명의 백성도 국가의 장부(帳簿)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라! 숨어있는 자들, 도망친 자들, 신분을 속인 자들 모조리 잡아들여 국가의 노비로 삼든 군역에 처넣든 하라!" 그 서슬 퍼런 명령이 있고 며칠 뒤. 황 서방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들었는가? 한양에서 이상한 법이 내려온다네" "뭔가? 또 세금을 더 걷는다는 겐가?" "아니 그게 아니라 사람 목에 거는 개 목걸이 같은 걸 만든다는 소문이 있네 그걸 안 차고 다니면 모조리 잡아 들인다나" "에이 설마 사람을 짐승 취급 하려고" "아니라네 아예 쇠붙이나 나무 쪼가리에 이름을 새겨서 꼼짝 못 하게 한다는 소문이야" 백성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그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태종이라는 왕이 어떤 왕입니까. 제 형제들에게도 칼을 겨눈 왕이었습니다. 그런 왕이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는 소문은, 그 자체로 공포였습니다.
※ 호패를 차라
며칠 뒤, 드디어 관아의 차사(差使)가 마을 광장에 당도했습니다. '둥 둥 둥' 징 소리가 아니라, 관아의 큰 북 소리가 아침부터 마을을 울렸습니다. 백성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삽과 호미를 든 채로 마을 광장에 모였습니다. 갓 스물을 넘긴 젊은 고을 사또가, 평소와는 달리 갑옷 차림의 포졸들을 대동하고 단상 위에 섰습니다. 분위기가 삼엄했습니다. 사또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누런 교지(敎旨)를 펼쳐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명(御命)이다! 오늘부로 이 땅의 16세 이상 모든 사내(男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호패(號牌)'를 차야 한다!" '호패?' 백성들은 처음 들어보는 말에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소문으로 돌던 그것이 진짜였구나' "조용히 하라! 호패란 곧 그대들의 이름과 신분을 증명하는 패(牌)이니, 외출할 때는 물론 집안에 있을 때에도 항시 허리춤에 차거나 목에 걸어 몸에 지녀야 한다! 이 호패에는 각자의 이름과 사는 곳(주소), 그리고 본관(本貫)과 신분이 명확히 새겨질 것이다!" 사또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2품 이상의 고관대작은 귀한 상아(象牙)로 만든 아패(牙牌)를, 3품 이하 잡과(雜科) 합격자는 단단한 사슴뿔로 만든 각패(角牌)를 찹니다. 그리고 황 서방과 같은 양인(良人)과 서얼(庶孽)은 누런 버드나무나 소나무로 만든 목패(木牌)를, 노비(奴婢)와 천민들은 쓸모없는 잡목(雜木)으로 만든 가장 거친 목패를 차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신분을 가르는 증표이자, 나라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또한!" 사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호패를 차지 않은 자, 혹은 타인의 호패를 빌려 차거나 감히 위조한 자는 모조리 군법(軍法)으로 다스릴 것이다! 호패 없는 자가 고발 없이 십 리 밖을 돌아다니다 발각되면, 간첩(間諜)에 준하여 엄히 처벌할 것이며, 그를 숨겨준 자 또한 같은 죄를 물을 것이다! 호패 없이 죽은 시신은 거두어 주는 이가 없을 것이야!" 마을 광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간첩에 준한다는 말은, 곧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열흘 뒤, 관아에서 호패를 발급할 터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본인의 신분을 증명할 호적 종이나, 그것이 없다면 보증을 설 이웃 둘을 데리고 와서 호패를 받아 가도록 하라! 만약 기한 내에 받지 않는 자는 도망자로 간주할 것이다!" 그날 밤, 황 서방의 집에도 근심이 드리웠습니다. "여보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오 이제 관아의 허락 없이는 꼼짝도 못 하게 생긴 게 아니오? 사람을 가축처럼 번호표를 매기겠다는 게 아니오" 아내의 걱정에 황 서방도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내 평생 내 이름 석 자 부끄럽게 산 적 없는데 이제 하다못해 관아에 가서 내가 '양인 황 아무개'요 하고 증명을 받아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구먼" 하지만 황 서방의 근심은 근심도 아니었습니다. 주막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이웃들 중 몇몇은 그날 밤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특히 몇 해 전, 타지에서 흘러 들어와 이 마을에 정착한 '돌쇠'라는 사내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평소 자신을 '몰락한 양인'이라 소개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습니다. "돌쇠 자네는 괜찮은가? 자네도 호패를 받으려면 본관을 증명해야 할 터인데" 황 서방의 물음에 돌쇠는 애써 웃어 보였습니다. "허허 그럼 괜찮고 말고 나 또한 엄연히 족보(族譜)가 있는 사람이네 다만 고향 집에 두고 와서 그게 걱정이구먼" 하지만 그의 눈빛은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선 팔도 모든 사내들의 목에 '호패'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 첫 번째 호패
열흘 뒤, 약속한 날이 되었습니다. 황 서방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 속에 이른 아침부터 옷깃을 여미고 관아로 향했습니다. 평소 장터 구경이나 하러 가던 관아 마당이 오늘따라 지옥 문턱처럼 스산하게 느껴졌습니다. 관아 마당은 이미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에 백성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줄을 서시오! 신분대로 줄을 서란 말이다! 양반 나리들은 이쪽, 상놈들은 저쪽 끝으로 가라!" 아전(衙前)들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황 서방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양인들 줄 꼬리에 섰습니다. 그는 품 속에 아버지가 물려주신 낡고 눅눅한 호적(戶籍) 종이 한 장을 아랫배에 소중히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내 신분은 증명할 수 있겠지 나는 도망친 놈도 아니고, 세금도 꼬박 냈으니 괜찮을 게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심장은 자꾸만 방망이질 쳤습니다. 저 앞쪽 양반들이 선 줄은 금방 줄어들었습니다. 고을 향리가 직접 나와 "아이고, 진사 어르신!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하며 굽신거리기 바빴습니다. 그들은 상아로 만든 번쩍이는 아패(牙牌)를 받아들고는 거만한 표정으로 황 서방 같은 상민들의 줄을 쳐다보며 혀를 찼습니다. "나라 기강이 바로 서는 모양이야 저 상놈 잡놈들 싹 다 족쳐야 해" 황 서방은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반나절을 꼬박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관아 사무실로 들어서자, 묵 냄새와 땀 냄새가 뒤엉킨 방 안에서 갓을 쓴 아전 하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습니다. "이름이 무엇인가?" "황 황 아무개라 하옵니다." "본관은?" "창원 황가(黃家)이옵니다." "아비의 이름은? 조부의 이름은?" 황 서방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습니다. 아전은 붓을 들어 거대한 장부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황 서방이 땀에 젖은 손으로 내민 호적 종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 양인(良人)이 맞군. 너는 군역(軍役)을 져야 할 정남(丁男)이다. 맞느냐?" "예 예 그렇사옵니다." "얼굴에 흉터나 점은 없는가?" "예? 아 예 없습니다." "키는 몇 척 몇 촌인가 수염은 어떠한가" 질문은 끝이 없었습니다. 마치 황 서방이라는 사람 자체를 종이 위에 그대로 옮겨 적으려는 듯했습니다. '내 아비의 아비 그 아비도 이 땅에서 뼈 묻고 살았는데 고작 이 종이 쪼가리 하나로 내 일생을 증명해야 하다니' 황 서방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마치 관아의 물건 취급을 받는 듯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내 몸 하나가 내 것이 아니었구나 이것 또한 나라님 것이었구나' 모든 기록이 끝나자, 아전은 옆에 쌓여있던 작은 나무패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누런 버드나무로 만든 길이 세 치, 넓이 한 치 정도의 작은 패였습니다. 아전은 그 나무패 위에 벌겋게 달군 인두로 무언가를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타닥 타닥'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자 받으라." 아전이 내민 나무패에는 '황 아무개(黃某)'라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양인(良人)'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너의 호패다. 잃어버리거나 훼손하면 큰 곤장을 맞을 것이니, 목숨처럼 지니도록 하라!" 황 서방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호패'를 받았습니다. 인두질로 인해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작은 나무패. 이것이 이제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물건이었습니다. 그가 관아를 나서려는데, 옆 줄에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나는 양인이오! 내 아비가 양인이었단 말이오!" "시끄럽다! 네놈의 호적에는 네 어미가 노비(奴婢)로 되어 있다! '일천즉천(一賤則賤)' 부모 중 하나라도 천하면 천한 법! 너는 양인이 아니라 노비다!" "아니오! 억울하오! 아비가 양인이면 자식도 양인이거늘!" "그것은 네놈 사정이고! 나라 법이 그렇다! 여봐라, 저놈에게는 잡목패를 내어주어라!" 아전은 그 사내에게 양인들이 받는 누런 버드나무패가 아닌, 거칠고 시커먼 잡목패를 흙바닥에 '툭' 던져 주었습니다. 사내는 그 목패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황 서방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서둘러 관아를 빠져나왔습니다. 손에 쥔 호패가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 신분 증명
호패법이 공포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흉흉하다 못해 살얼음판 같았습니다. 호패를 받지 못하고 야반도주한 이가 셋이었고, 신분이 노비로 밝혀져 양반집에 끌려간 이가 둘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서로를 믿지 못했습니다. 주막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예전처럼 나라 욕을 하거나 신세 한탄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고발하지 않을까, 혹시 저 사람이 신분을 속인 자가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호패를 잃어버렸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난 집도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자는 즉시 관아에 신고하고 곤장 스무 대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호패는 목숨줄이자 동시에 족쇄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검문이다! 모두 호패를 꺼내라!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서라!" 이른 아침, 밭으로 나가던 황 서방은 마을 어귀를 막아선 포졸(捕卒)들과 마주쳤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포졸들이 창을 들고 서슬 퍼렇게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길은 이미 통제되었고, 밭으로 나가던 농부 대여섯 명이 겁에 질려 늘어서 있었습니다. "허 허 이것 참" 황 서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내 품 속 깊이 넣어둔 꼬깃꼬깃한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목숨처럼 소중히 간직한 자신의 호패가 들어있었습니다. "여기 있소이다 나리" 포졸 하나가 황 서방의 호패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 햇빛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황 아무개 양인 창원 황가 흠 됐다. 지나가라!" "고 고맙습니다" 황 서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기 너! 낯짝이 허연 놈! 멈추지 못할까!" 황 서방이 돌아보니, 며칠 전 주막에서 만났던 이웃, '돌쇠'가 포졸들 앞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돌쇠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호 호패를 보자 하네" "왜 이리 땀을 흘리는 게냐? 설마 호패가 없는 것이냐? 아니면 무슨 죄라도 지었어?" 포졸의 추궁에 돌쇠는 부들부들 떨며 품 속에서 나무패 하나를 꺼냈습니다. "여 여기 있 있습니다 나리" 포졸이 그 호패를 받아 들었습니다. 그것은 황 서방의 것과 마찬가지로 누런 버드나무로 만든 패였습니다. "김 돌쇠 양인?" 포졸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헌데 이 패는 어찌 이리 조잡하냐?" 포졸은 호패를 손가락으로 튕겨 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습니다. "글씨가 삐뚤빼뚤하고 무엇보다 관인(官印)이 찍혀있지 않구나!" "그 그것은 제가 어제 밭에서 잃어버렸다가 오늘 아침에 급히 다시 받느라 미처 관인을" "거짓말!" 포졸이 돌쇠의 뺨을 무섭게 후려쳤습니다. '짝!' 소리가 맑은 아침 공기를 갈랐습니다. "네놈 수상하다! 관인을 찍지 않은 호패는 가짜다! 네놈 필시 도망친 노비거나 세금을 피한 놈이로구나! 당장 이놈을 관아로 끌고 가라!" "아 아닙니다! 나리! 억울합니다! 나는 양인이오! 제발 제발 믿어주시오!" 돌쇠는 발버둥 쳤지만, 건장한 포졸 둘에게 양팔이 붙들려 짐짝처럼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황 서방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돌쇠가 가짜 호패를? 설마 그럼 그 족보 있다는 말이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그 작은 나무패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칼날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 밝혀진 비밀
불안한 마음에 황 서방은 그 길로 밭 가는 것을 포기하고, 관아 마당으로 향했습니다. '설마 돌쇠가 정말' 그는 며칠 전 돌쇠가 "나도 족보 있다"며 쓴웃음을 짓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관아 마당은 아침부터 비명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이미 호패를 위조하거나 지니지 않은 자들이 십여 명 끌려와 붉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돌쇠도 피투성이가 된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덩치 좋은 옥졸 둘이 돌쇠의 양 다리를 굵은 몽둥이 사이에 끼우고 밧줄로 꽁꽁 묶고 있었습니다. 바로 '주리(周牢)'를 트는 형틀이었습니다. "네 이놈! 네 놈이 감히 나라를 속이고 가짜 호패를 만들어 양인 행세를 해? 네 놈의 진짜 신분이 무엇이냐! 바른 대로 고하라!" 아전이 매섭게 추궁했지만, 돌쇠는 입술을 깨물고 굳게 다물고 있었습니다. "여봐라, 저놈의 정강이를 비틀어라!" "예, 나리!" 옥졸들이 몽둥이를 비틀기 시작하자, "으 으 악! 으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끔찍한 비명 소리가 관아를 울렸습니다. 황 서방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습니다. "다 다시 묻는다! 네놈의 이름과 본래 신분이 무엇이냐!" 결국 돌쇠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실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나리 소 소인의 본래 이름은 돌쇠가 아니라 '게똥이'이옵니다 본래 한양 김 판서 댁의 사노(私奴) 였습니다 허나 3년 전 주인이 제 처자식을 다른 곳에 팔아 버리고 저를 죽도록 매질하기에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도망쳐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 사옵니다 양인으로 그저 사람답게 새 삶을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황 서방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3년 간 이웃사촌으로 지내며 함께 막걸리를 나누고, 밭일을 도왔던 그 순박한 돌쇠가 사실은 '게똥이'라는 도망 노비였다니 돌쇠는 울부짖었습니다. "나리! 하지만 이 호패법만 아니었다면 저는 그저 조용히 농사만 지으며 살 놈이었습니다 이 작은 나무패 하나가 제 목숨을 이리" "시끄럽다! 네 놈이 도망친 노비인 이상, 네 놈은 김 판서 댁의 '재산'이다!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주인을 배신한 죄! 그리고 감히 호패를 위조하여 조정을 기만한 죄! 그 죄가 실로 크도다! 여봐라, 저 놈의 가짜 호패를 가져오라!" 아전이 돌쇠가 만들었던 조잡한 나무패를 흙바닥에 내던졌습니다. 그리고는 군홧발로 그것을 '빠직!' 소리가 나게 짓밟아 부수었습니다. "안 돼 안 돼!" 돌쇠의 마지막 절규는 "저놈의 목에 칼을 씌워 당장 한양으로 압송하라!" 는 사또의 차가운 명령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황 서방은 차마 그 광경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도망치듯 관아를 빠져나왔습니다. 호패. 그것은 양인인 자신에게는 '증명'이었지만, 돌쇠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만든 이 정교한 시스템은, 그렇게 사회의 가장 밑바닥 백성들부터 숨통을 조이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백성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관심이 아니라 통제와 감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족쇄
그날 저녁, 황 서방은 밥 한 술 뜨지 못했습니다. 돌쇠 아니, 게똥이가 끌려가던 그 처참했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내 호패는 누런 버드나무 돌쇠 놈은 그 패 하나 없어서 그 꼴이 되었구나' 그는 자신의 호패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이것 하나가 양인과 노비를 가르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사람 목숨 값이 이 나무 쪼가리 하나로 정해지는 세상이라니' 그때,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아랫마을 억만(億萬)이 소식 들으셨소?" 억만이는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인 김 진사 댁에서 일하는 노비였습니다. 비록 노비였지만, 글눈을 뗄 줄 알고 영특하며 부지런하여 주인 김 진사의 신임이 유달리 두터웠습니다. "억만이가 왜?" "오늘 억만이도 관아에 가서 호패를 받아 왔다 하더이다 그런데 그 호패를 받고 돌아온 뒤로 행랑채에 틀어박혀 곡기(穀氣)를 끊고 망부석처럼 앉아 울기만 한다 하오" 황 서방은 의아했습니다. 어차피 노비인 억만이가 호패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돌쇠처럼 숨길 신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리 절망하는 것일까. 황 서방은 답답한 마음에 막걸리 한 병을 들고 김 진사 댁 행랑채로 억만이를 찾아갔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쌀쌀했습니다. 양반들의 기와집과 달리 노비들이 묵는 행랑채는 춥고 어두웠습니다. "억만아 억만아 나 황 서방일세" 한참 뒤에야 삐걱 문이 열리고, 퀭한 눈의 억만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황 서방님 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아닐세 자네가 식음을 전폐했다 하여 걱정이 되어 와봤네 자 이거 한 잔 받게나" 두 사람은 차가운 행랑채 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억만이는 술잔을 받아 들고도 마시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손에 쥔 시커먼 잡목(雜木)패 하나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억만의 '호패'였습니다. 황 서방의 것보다 더 작고 거칠었으며, 거기에는 억만의 이름 석 자 대신 '김 진사 댁 노(奴) 억만' 이라고 굵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황 서방님" 억만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 호패를 받기 전까지 꿈이 있었습니다." "꿈?" "예 저는 비록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글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주인 어른의 눈에 들어 언젠가 돈을 모아 주인의 은혜를 입어 속량(贖良), 즉 노비의 신분을 벗고 양인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이 안 되면 아주 먼 훗날 돈을 모아 도망이라도 쳐서 저 북쪽 땅에 가서 이름 바꾸고 사람답게 살아볼 꿈을 꾸었습니다!" 억만이는 손에 쥔 호패를 '탁' 소리가 나게 마루에 내던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호패가 아니라 '족쇄'입니다!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제 이마에 '노(奴)' 자를 찍어버린 것입니다! 이 나무 쪼가리 하나가 '너는 영원히 김 진사의 노비다' 라고 낙인을 찍어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이 고을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어느 관아를 가든, 어느 길목을 지나든 포졸들은 이 패를 보고 '너는 김 진사의 재산이구나' 하고 저를 다시 잡아 오겠지요. 도망칠 꿈 희망 그 모든 것을 이 작은 나무 쪼가리 하나가 앗아가 버렸습니다!" 억만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황 서방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호패법. 그것은 신분을 속인 도망 노비(돌쇠)를 잡아내는 '그물'인 동시에, 합법적인 노비(억만)에게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낙인'이자 '족쇄'였습니다. 신분제 질서를 확립한다는 나라의 법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잔인한 절망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 질서와 통제
시간이 흘렀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만든 호패법은 세종(世宗)과 세조(世祖)를 거치며 더욱 정교하고 강력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반발하던 백성들도, 이제는 호패를 차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16세가 되면 관아에 가 호패를 받는 것은, 남자가 되어 상투를 트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통과 의례가 되었습니다. 황 서방도 이제는 호패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호패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마을은 놀랍도록 '질서'가 잡혔습니다. 예전처럼 흉년이 들었다고 야반도주하는 이들이 사라졌습니다.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패가 없는 자는 한 고을에서 다른 고을로 넘어갈 수도, 장사를 할 수도, 심지어 주막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없었습니다. 낯선 이가 마을에 들어오면, 이장이 가장 먼저 그의 호패부터 확인했습니다. 호패가 없으면 즉시 관아에 고발되었습니다. 덕분에 마을에서 도둑질이나 잡범(雜犯)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라가 가장 원했던 것. 바로 세금 징수와 군역 동원이 놀랄 만큼 쉬워지고 체계화되었습니다. "황 서방! 자네 올해 세금 밀렸더군! 자네 호패 조회해 보니 윗 동네 밭 한 뙈기 더 있는 거 다 아네! 어서 내지 못할까!" 아전들은 이제 집집마다 뒤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호패와 연동된 토지 대장 하나면 그 집안의 모든 재산과 인구를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16세가 된 아들들은 꼼짝없이 호패를 발급받고 군역에 이름을 올려야 했습니다. 도망 노비였던 돌쇠는 다시 잡혀가 김 판서 댁에서 죽도록 맞고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뒤꿈치 힘줄이 끊겼다는 끔찍한 소문만 들려왔고, 노비 억만이는 그 날 이후 웃음을 잃고 그저 그림자처럼 묵묵히 일만 하다가 시름시름 앓다 이태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 서방은 가을 추수를 마치고 툇마루에 앉아, 자신의 손때 묻은 누런 호패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양인 황 아무개.' 이 작은 나무패 하나가 자신을 양인으로 지켜주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나라의 장부에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이웃을 잃게 만들었고, 또 다른 이웃의 꿈을 앗아갔습니다. "여보 오늘 관아에서 연락이 왔소. 우리 아들도 내년에 16세가 되니 호패 만들러 오라 하더이다" 아내의 목소리에 기쁨 대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호패를 받는다는 것은 곧 군역의 의무가 시작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황 서방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호패법이 가져온 이 '질서 정연한 세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왕에게는 '혁신'이었고, 양반에게는 '안정'이었으며, 황 서방 같은 양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의무'였고, 돌쇠와 억만이 같은 이들에게는 '영원한 절망'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선은 호패라는 이름 아래, 백성 한 명 한 명을 촘촘히 엮어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조선의 신분증 제도, '호패법'에 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태종 이방원의 강력한 의지로 시작된 호패법은, 혼란스러웠던 조선 초기의 질서를 잡고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는 혁신적인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황 서방처럼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 살아야 했던 평범한 백성들의 삶이 있었고, 돌쇠나 억만이처럼 신분이라는 굴레에 갇혀 절망해야 했던 이들의 눈물도 있었습니다.
백성을 관리한다는 것. 그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참으로 어렵고 무거운 일인 듯합니다.
'나'를 증명한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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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는 더욱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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