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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궁일을 받아주는 사주쟁이의 은밀한 영업 비밀 『청구야담』
한양 종로거리에서 양반가 부부들의 합궁일을 기가 막히게 잡아주어 아들 낳는 명당으로 소문난 맹인 사주쟁이가, 사실은 눈을 뜬 건장한 사내였으며 부부 관계가 소원한 여인들에게 은밀한 심리 상담과 더불어 화끈한 밤의 기술(?)을 전수해주어 부부 금슬을 극적으로 회복시키고 떼돈을 벌어 고향으로 내려가 떵떵거리며 살았다는 요절복통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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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용한 맹인 점쟁이에게 합궁일만 받으면 백발백중 옥동자를 낳는다?" 한양 도성을 발칵 뒤집어놓은 전설의 사주쟁이! 하지만 그의 시커먼 안경 너머에는 두 눈 시퍼렇게 뜬 건장한 사내가 숨어 있었으니... 낮에는 용한 점쟁이로, 밤에는 양반가 마님들의 은밀한 부부 생활 일타 강사(?)로 활약한 기상천외한 사기극! 교과서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조선시대 종로거리의 발칙하고 요절복통할 영업 비밀이 지금 밝혀집니다.
※ 1: 한양 종로거리, 문전성시를 이루는 맹인 점쟁이의 비밀당집
조선 후기, 팔도의 온갖 물화가 모여들고 사람들의 활기찬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한양 도성의 중심, 종로거리.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육의전의 큰길을 살짝 벗어나 미로처럼 얽힌 후미진 골목길로 접어들면, 바깥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기이하고도 은밀한 광경이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굴을 깊숙이 가린 쓰개치마 차림의 여인들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어느 허름하고 간판조차 없는 낡은 기와집 대문 앞을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의 옷차림을 가만히 살펴보면 낡은 무명옷을 입은 평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언뜻언뜻 비치는 최고급 명주 치맛자락과 은은하게 풍겨오는 비싼 분 냄새는, 이들이 하나같이 한양 도성에서 내로라하는 권문세가의 마님들이거나 돈이 썩어나가는 거상, 역관들의 정실부인이라는 사실을 짐작게 했다.
양반가 여인들이 바깥출입을 극도로 꺼리던 그 엄격한 시대에, 이들이 양반의 체면마저 붉히며 이 허름한 골목길에 번호표라도 뽑은 듯 길게 줄을 서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이 낡은 기와집 안방에 깊숙이 틀어박혀 있는 전설적인 맹인 사주쟁이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아이고, 마님! 이제 들어가실 차례입니다요. 복채는 섭섭지 않게 두둑이 준비해 오셨겠지요? 우리 어르신께서 워낙 기력이 쇠하시어 하루에 딱 열 분만 모시는 터라, 마님은 참으로 운이 좋으신 겝니다."
대문 앞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며 돈을 쓸어 담는 꾀죄죄하고 눈치 빠른 사내의 재촉에, 화려한 옥색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이 흠칫 놀라며 품속에서 묵직한 엽전 꾸러미를 꺼내 사내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대낮임에도 두꺼운 암막이 쳐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고, 코를 찌르는 짙고 묵직한 향 냄새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사방의 벽에는 붉은 주사로 그려진 기괴하고도 위협적인 부적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어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듯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낡고 해진 왕골 돗자리 위에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시커먼 안경을 쓴 사내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한양 도성의 수많은 양반가 여인들을 쥐락펴락하며, 합궁일만 받아주면 백발백중 옥동자를 낳게 해준다는 그 용한 맹인 점쟁이 최씨였다.
여인이 치맛자락을 여미며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방바닥에 앉자, 점쟁이 최씨는 시커먼 안경 너머로 보이지 않는 눈을 끔벅이는 척하며, 속에서부터 긁어내는 듯한 낮고 탁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방문이 열리고 방바닥에 내려앉는 기척을 보아하니, 서쪽에서 물을 건너온 귀한 신분이구먼. 치맛자락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무겁고도 거칠며, 코끝을 스치는 숨소리에 한숨이 깊게 배어 있는 것을 보니... 필시 슬하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고 사는 가엾은 형국이야."
"아... 아이고! 참으로 용하십니다, 어르신! 어찌 제 얼굴 한번 보지 않으시고, 생년월일조차 묻지 않으셨는데 단박에 제 곪아 터진 근심을 알아채시는지요! 댁의 영감께서 매일 밤 천한 기생집만 전전하시며 제 안방에는 발길을 끊은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사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칠거지악으로 시댁에서 쫓겨나 목을 매달아야 할 판이옵니다. 제발, 제발 옥동자를 낳을 수 있는 찰떡같은 합궁일 하나만 점지해 주시옵소서!"
여인은 최씨의 신통방통한 능력을 마주하고는 그동안 시댁에서 받았던 서러움과 남편에 대한 원망을 떠올리며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최씨는 가엾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며, 품에서 수십 개의 대나무 산가지가 들어 있는 낡은 산통을 꺼내 들었다.
촤르륵, 촤르륵. 대나무 산가지들이 통 안에서 섬뜩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의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최씨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탁! 하고 산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결연하고도 엄숙한 목소리로 처방을 내렸다.
"참으로 딱한 일이로다. 남편의 사주에 불의 기운이 활활 타오르는데, 네 몸의 기운은 꽁꽁 언 얼음과 같으니 남편이 안방에 들어오면 숨이 막혀 도망을 치는 형국이로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삼신할미의 자비는 끝이 없는 법. 내달 보름, 달빛이 가장 밝게 빛나는 자시(子時)에 남편을 안방으로 들이거라. 그날이 바로 음과 양의 기운이 완벽하게 교차하여 하늘이 아들을 점지해 주는 대길일(大吉日)이니라. 허나, 반드시 명심하고 지켜야 할 금기 사항이 하나 있다."
"무, 무엇이옵니까? 어르신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숯불에라도 뛰어들겠사옵니다! 제발 그 비방을 알려주시옵소서!"
"합궁일 자시에 남편을 맞이할 때, 부인들이 평소 정숙함을 뽐내기 위해 입는 목까지 꽉 여민 희고 빳빳한 속적삼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이 남편의 양기를 튕겨내는 가장 흉한 물건이니라. 그날 밤만큼은 반드시 속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붉은빛의 얇은 명주 치마를 지어 입고, 머리끝과 귀 뒤에는 짙은 사향을 살짝 발라 방 안에 기이한 향기가 감돌게 해야 하느니라. 남편의 걷잡을 수 없는 불기운을 부드럽고 끈적하게 다스리려면 붉은색의 시각적인 기운과 사향의 후각적인 기운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지. 내 말을 단 한 치라도 어기면 합궁일의 운수는 모조리 날아가 버릴 것이니, 명심, 또 명심하거라!"
"명심,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이 은혜는 평생토록 잊지 않겠사옵니다!"
여인은 연신 고개를 바닥에 찧을 듯 조아리며, 최씨가 건네주는 작은 부적과 합궁일이 적힌 누런 종이를 품에 소중히 안고 떨리는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방에 들어올 때의 그 짙은 수심과 암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장이라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곧바로 옥동자를 품에 안을 듯한 희망찬 미소가 가득 피어올라 있었다.
이처럼 점쟁이 최씨에게 은밀한 비방과 합궁일을 받아 간 여인들은 십중팔구 남편과의 금슬이 불같이 좋아져 곧바로 회임을 한다는 소문이 도성 안팎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섭게 퍼져나갔다. 아들을 낳지 못해 가문의 죄인 취급을 받으며 독수공방의 피눈물을 흘리던 여인들에게, 그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이자 살아있는 부처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 짙은 향 냄새가 풍기는 신성하고도 영험해 보이는 점집의 이면에는, 양반들의 체면과 조선의 엄격한 유교 사회를 완전히 뒤롱롱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하고도 요절복통할 사기극이 도사리고 있었다.
※ 2: 시커먼 안경 너머의 진실, 두 눈 시퍼렇게 뜬 사기꾼 최씨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번잡했던 종로거리에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점집 앞을 서성이며 애를 태우던 기나긴 대기 줄도 거짓말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밖에서 온종일 망을 보며 돈을 걷던 문지기가 삐걱거리는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굵은 빗장을 질렀다.
"형님! 오늘 하루도 참으로 고생 많으셨수다. 아주 엽전 꾸러미가 방구석의 나무 궤짝을 뚫고 나올 지경이오! 내일은 대감댁 마님들이 또 얼마나 금가락지를 싸 들고 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요!"
문지기의 쾌활하고도 속물적인 외침이 방문 너머로 들려오자, 방 한가운데 낡은 돗자리 위에 미동도 없이 꼿꼿하게 앉아 있던 맹인 점쟁이 최씨가 갑자기 어깨를 아주 크게 움츠리며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기지개를 쭈욱 켰다.
"아이고, 삭신이야. 내 원 참,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온종일 눈먼 장님 행세를 하려니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눈알이 다 빠질 지경이구나."
최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던 그 답답하고 시커먼 안경을 훌렁 벗어 던졌다. 안경 너머로 마침내 드러난 그의 두 눈은 초점이 없고 탁한 맹인의 눈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 그 누구보다 맑고 매섭게 빛나며, 사람의 속내를 단박에 꿰뚫어 볼 듯한 시퍼렇게 뜬 건장한 정상인의 눈동자였다. 그렇다. 한양 도성의 내로라하는 마님들을 쥐락펴락하며 삼신할미의 현신으로 칭송받는 이 용한 맹인 사주쟁이는, 사실 시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머리 회전이 기가 막히게 빠른, 건장하고 뺀질거리는 삼십 대의 천재적인 사기꾼 최씨였던 것이다.
'쯧쯧, 멍청하고 답답한 양반댁 마님들 같으니라고. 태어난 사주팔자나 달력에 적힌 합궁일 따위가 부부 생활에 무슨 대수란 말인가. 부부 금슬이 안 좋고 사내가 안방에 발길을 끊는 데에는 다 그만한 아주 현실적이고 육명적인 이유가 있는 법이지.'
최씨는 본래 평범한 시골 선비 출신으로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비상하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과 뒤를 봐줄 든든한 연줄이 없는 탓에 과거 급제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한양으로 흘러들어온 인물이었다. 저잣거리를 전전하며 굶주림에 허덕이던 그는, 관상과 사주를 어깨너머로 주워듣다 우연한 기회에 한양 양반 사회의 숨겨진 고질적인 병폐이자 거대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돈 많고 권력 있는 양반집 대감들은 밤마다 기생집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젊고 요염한 여인들의 화려한 치마폭에 싸여 온갖 음풍농월을 즐기는 반면, 본처인 정실부인들은 유교적 예법과 '정숙한 사대부가 여인'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침소에서조차 목석처럼 뻣뻣하게 안방만 지키고 앉아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부인이 남편을 가르치려 들고 잔소리만 늘어놓으니 남편의 발길이 안방에서 뜸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자연스레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되니 벼랑 끝에 몰린 부인들은 엉뚱하게도 미신에 의존해 용하다는 점쟁이만 찾아다니며 아까운 돈을 물 쓰듯 허투루 쏟아붓고 있었다.
최씨는 바로 이 어리석은 지점에 자신의 비상한 머리를 굴려 기막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냈다. 만약 점쟁이가 건장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양반가 여인들이 경계심을 품고 내밀한 부부 생활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겠지만,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눈먼 장님이라면 여인들이 체면을 덜 차리고 가장 은밀하고 부끄러운 부부의 속사정까지 눈물과 함께 술술 불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자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척 시커먼 안경을 끼고 앉아 있지만, 사실 안경 너머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상대 여인의 옷차림, 안색, 체형, 풍기는 분위기, 심지어 손톱의 굳은살까지 샅샅이 관찰하면 그 부부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하늘이 점지해 준 합궁일이라는 것은 그저 핑계요, 달콤한 미끼일 뿐. 진정으로 중요한 건 바람난 남편의 발길을 다시 안방으로 돌리게 만드는 기막힌 심리전과 화끈한 밤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지.'
오늘 낮에 다녀간 옥색 치마의 여인만 해도 그랬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듣는 척 연기했지만, 안경 너머로 뚫어지게 관찰한 여인의 모습은 사내의 숨이 막힐 정도로 지나치게 단정하고 융통성이 없었다. 땀방울 하나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목 끝까지 단단하게 여민 희고 뻣뻣한 동정, 향기 하나 없이 푸석푸석하게 틀어 올린 머릿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꼿꼿하기 그지없는 방어적인 자세. 매일 밤 기생집에서 온갖 교태를 부리는 여인들의 화려한 색채와 짙은 향기에 길든 남편의 눈에, 부인의 그 답답하고 목석같은 모습이 한 점의 매력으로 다가갈 리 만무했다. 남편 입장에선 안방이 곧 감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최씨는 합궁일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붉은 명주 치마를 속이 비치게 입고 사향을 바르라는 은밀하고도 파격적인 처방을 내린 것이었다. 평생 유교적 체면에 갇혀 단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을 요염한 붉은 속옷을 입고, 치명적인 향기를 풍기며 다소곳이 기다리는 부인의 낯설고도 관능적인 자태를 본다면, 아무리 무심하고 냉랭한 남편이라도 그날 밤만큼은 젊은 시절의 욕정이 불끈 달아올라 짐승처럼 부인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으리라.
최씨가 짚어주는 합궁일은 귀신이 점지해 준 신성한 대길일이 아니라, 아내의 극적인 변신을 통해 남편의 잃어버린 욕정을 폭발시키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날짜와 무대 연출에 불과했다. 최씨는 방구석에 산처럼 수북이 쌓인 은자와 엽전 꾸러미를 쓰다듬으며, 이 한심하고도 재미있는 한양 도성의 부부들을 비웃듯 호탕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3: 독수공방 양반댁 마님의 눈물과 기상천외한 은밀한 처방
다음 날 아침, 짙은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 점집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또 다른 손님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은은하면서도 꽤나 값비싼 매화분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여인은, 도성에서 뼈대 깊기로 내로라하는 판서댁의 정실부인 윤 마님이었다. 평소라면 하인들을 호령하며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다녔을 그녀지만, 지금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양반의 체면도 모두 잊은 채 바닥에 엎드려 엉엉 소리 내어 처절하게 울기부터 시작했다.
"아이고, 용하신 어르신! 제발 이 불쌍한 년 좀 살려주시옵소서. 이대로 가다가는 제가 옥동자를 낳아 대를 잇기는커녕, 울화통이 터져 피를 토하고 제 명에 못 살아 죽게 생겼사옵니다!"
다시 시커먼 안경을 고쳐 쓰고 완벽한 맹인 모드에 돌입한 최씨는, 짐짓 근엄하고 무거운 헛기침을 내뱉으며 안경 너머로 윤 마님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재빠르게 스캔했다. 나이는 대략 서른 즈음,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하고 기품 있는 미인이었으나 눈 밑이 숯을 칠한 듯 퀭하게 들어가 있었고, 광대뼈가 날카롭게 튀어나와 몹시 예민해 보였다. 무엇보다 신경질적으로 비단 치맛자락을 구겨 쥐고 있는 손가락 관절이 피가 안 통할 정도로 하얗게 마디져 있었다. 최씨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딱 보아하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기가 몹시 세어, 사사건건 남편을 들볶고 이겨 먹으려 들어 숨 막히게 하는 표독스러운 상이로구나. 저런 여편네가 안방에 버티고 있으니 사내가 도망을 칠 수밖에.'
"쯧쯧... 우는 소리에 날카로운 칼날이 서 있고 내뱉는 숨이 가쁘고 뜨거운 것을 보니, 댁의 대감마님께서 아예 사랑채와 안방에서 발길을 완전히 끊고 어린 첩실의 방에서만 기거하며 지내시는구먼. 부인의 속이 숯검정처럼 까맣게 타들어 가 한이 맺힌 것이 내 보이지 않는 눈에도 이리 훤히 비치오."
"어... 어찌, 어찌 그리 무서울 정도로 잘 아십니까! 맞사옵니다. 영감이 갓 스물 넘은 요망하고 천박한 기생년 하나를 첩으로 들이더니, 넋이 나가 석 달이 넘도록 제 안방에는 그림자조차 비추지 않고 있사옵니다. 제가 명색이 정실부인으로서 대감의 식사와 의복을 철저히 챙기고, 집안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그 첩실의 잘못을 따끔하게 꾸짖어 기강을 잡으려 하였건만, 영감은 도리어 저보고 피도 눈물도 없는 독사 같은 여편네라며 역정을 내시고 상을 엎으시니 환장할 노릇이옵니다. 제발 그 요망한 년을 떼어내고 영감을 제 안방으로 다시 꿇어앉힐 신통한 비방을 내려주옵소서!"
윤 마님은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듯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최씨는 점잖게 가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부인. 합궁일을 받아 천지신명께 아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대감마님의 그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내야 하늘이 감복하여 씨를 내려주는 법이오. 부인이 매일같이 첩실을 잡고 대감을 윽박지른다 하여 나간 마음이 돌아오겠소? 내가 지금부터 하늘의 뜻을 받아 아주 특별하고도 기이한 비방을 내릴 터이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지시를 따라야 할 것이오.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할 수 있겠소?"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숯불에 맨몸으로 뛰어들라 하셔도 기꺼이 뛰어들겠사옵니다!"
"좋소. 하늘이 점지한 합궁일은 열흘 뒤, 별빛이 쏟아지는 자시(子時)요. 허나 그날 밤, 내가 일러준 날짜에 맞추어 대감께서 마지못해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거든, 평소처럼 무서운 얼굴로 정좌하고 앉아 어미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첩실의 흉을 보아서는 절대 아니 되오. 무조건, 대감께서 방에 발을 들이는 기척이 나는 그 즉시 부인은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대감에게 등을 보인 채, 어깨를 가늘고 애처롭게 떨며 소리 없이 흐느끼시오."
"예? 흐... 흐느끼라니요? 당당하고 지엄한 판서댁 정실부인이 어찌 아랫사람들 보기에 부끄럽게 그런 청승맞고 천박한 짓을 한단 말씀이십니까..."
윤 마님이 당황하여 반문하자, 최씨는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높여 불호령을 내렸다.
"허허! 하늘의 지엄한 뜻을 거역하시려오? 부인이 평생 그 잘난 사대부의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느라 남편을 빼앗긴 것을 어찌 아직도 모른단 말이오! 사내란 본디 자신의 위에 서서 쥐어짜고 가르치려 드는 기센 여인에게는 정나미가 뚝 떨어져 도망가려 하지만, 자신 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고 가련하게 눈물을 짓는 여인 앞에서는 숨겨둔 보호본능과 사내다운 짐승의 정복욕이 불끈 치솟는 법이오. 평소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고 매섭던 부인이, 다 무너져 등을 보이며 한 마리 가엾은 새처럼 서럽게 울고 있다면, 아무리 독하고 무심한 사내라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부인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보듬게 될 것이오."
최씨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윤 마님에게만 들릴 듯 더욱 은밀하고도 낯부끄러운 행동 지시를 덧붙였다.
"그리고 명심하시오. 대감께서 놀라 다가와 부인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쥐거든, 절대 먼저 고개를 돌려 대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마시오. 그저 대감의 손길에 속절없이, 힘없이 허물어지듯 몸을 완전히 맡기며 쓰러지시오. 입술은 붉게 꽉 깨물고, 숨소리는 평소보다 반 박자 빠르게, 가늘고 헐떡이듯 몰아쉬어야 하오. 그것이 대감의 사주에 턱없이 부족한 '물'의 기운을 보충해 주고 흥분을 끌어올리는 완벽한 음양의 조화란 말이오. 명심하시오. 그날 밤 합궁일만큼은 지엄한 마님이 아니라, 사내의 손길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길 잃고 가련한 여인이 되어야 아들을 잉태할 수 있소!"
윤 마님은 사주쟁이의 입에서 나오는 적나라하고도 도발적인 지시에 얼굴을 목끝까지 붉히면서도, 결국 살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최씨의 비방을 마음속 깊이 새겨넣었다. 맹인 점쟁이의 신통한 처방 속에 완벽하게 숨겨진, 조선시대판 '기가 센 나쁜 아내에서 사내가 미치도록 지켜주고 싶은 여인으로 변신하기' 프로젝트가 이 낡은 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 4: 처방전의 효과, 기생집을 끊고 안방으로 돌아온 대감마님
점쟁이 최씨가 일러준 운명의 합궁일 밤이 드디어 찾아왔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고 교교한 달빛만이 창호지를 은은하게 비추는 시간, 한양 도성에서 콧대 높고 기가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판서댁의 정실부인 윤 마님은 안방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깊은 심호흡을 연거푸 내쉬고 있었다. 십 년이 훌쩍 넘는 긴 혼인 생활 동안, 그녀는 언제나 뼈대 깊은 사대부가의 지엄한 안주인이라는 무거운 책임감과 유교적인 체면에 짓눌려 살아왔다. 남편인 판서 대감이 밤늦게 술에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날이면, 그녀는 늘 바늘로 찌를 듯 꼿꼿하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매서운 눈초리를 쏘아보며 "대감, 제발 사대부의 지엄한 체통을 지키시지요."라며 차가운 잔소리를 퍼붓기 일쑤였다. 어쩌다 남편이 무언가에 이끌려 손을 뻗어 안아오려 할 때조차, 그녀는 남녀 칠세 부동석의 낡은 법도를 침소에까지 끌어들여 마치 숨이 끊어진 목석처럼 뻣뻣하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 그러니 피 끓는 사내인 남편이 그 숨 막히는 안방의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솜사탕처럼 보들보들하고 애교가 넘쳐흐르는 젊고 요염한 첩실의 방으로 영영 도망쳐 숨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불을 보듯 뻔한,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달라야 했다. 윤 마님은 점쟁이 최씨가 핏대를 세우며 경고했던 기상천외하고도 낯부끄러운 처방대로, 평소 자신의 몸을 겹겹이 감싸고 있던 두껍고 무거운 비단옷과 가체를 미련 없이 모두 벗어 던졌다. 대신 뽀얀 속살과 가슴선이 아스라이 비칠 듯 말 듯 한, 아주 얇고 보드라운 분홍빛 명주 속적삼과 붉은 치마만을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었다. 비녀로 단단하게 틀어 올려 빈틈을 허락하지 않던 검은 머리칼은, 마치 방금 목욕을 마친 여인처럼 자연스럽고 흐트러지게 어깨 아래로 반쯤 풀어 헤쳤다. 그리고 귀 뒤와 하얀 목덜미에는 최씨가 은밀히 찔러준, 사내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짙고 관능적인 사향을 아주 살짝 발라두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낯설고도 요염하기 짝이 없는 자태를 마주하자 수치심에 얼굴이 불타는 듯 화끈거렸지만, 첩실 년에게 비참하게 빼앗긴 남편의 사랑과 안방마님으로서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활활 타오르는 숯불 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야 할 절박한 심정이었다.
이윽고, 하늘의 별빛이 무수히 쏟아지는 자시(子時)의 종소리가 멀리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사랑채에서 기생들과 술을 마시다 습관처럼 젊은 첩실의 방으로 향하려던 판서 대감이, 오늘은 웬일인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본처가 있는 안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낮에 윤 마님이 신뢰하는 하인을 통해 '오늘이 삼신할미가 점지해주신 천재일우의 합궁일이니 부디 잊지 말고 들러주시옵소서'라는 눈물 어린 서찰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감은 안방 문고리를 잡으면서도 내심 오늘 밤에도 부인의 그 지긋지긋하고 서슬 퍼런 잔소리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차가운 눈빛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 있었다.
"부인, 내 왔소이다. 합궁일이라 하여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어 이리 발걸음을 하긴 했으나, 내 오늘 국사로 몸이 심히 고단하고 피로하여 그저 잠이나 청할까 하니 잔소리는 부디 거두어..."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대감의 무심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방문을 열어젖힌 대감은 방 안의 기이한 풍경을 마주하고는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뻣뻣하게 돌처럼 굳어버렸다. 평소 같으면 등받이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자신을 매섭고 차갑게 노려보고 있어야 할 지엄한 부인이, 방 한가운데 깔린 비단 요 위에 납작 엎드린 채 자신에게 완벽히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은은하게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로, 흘러내린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 위로 얇은 분홍빛 속적삼이 가늘게, 아주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적막한 방 안의 고요를 깨며, 차마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해 억눌린 아주 작고 처절한 여인의 흐느낌 소리가 애간장을 끊을 듯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부... 부인?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어디 몸이 편치 않은 게요? 아니, 천하의 부인이 도대체 왜 그리 청승맞게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이오!"
당황하여 놀란 대감이 술기운이 단숨에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다가가 윤 마님의 곁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십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부인의 이런 나약하고, 무너져 내린 가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호랑이처럼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짓누르던 아내가, 얇은 속옷 하나만 걸친 채 가냘픈 어깨를 떨며 서럽게 우는 모습은 사내의 가슴 깊은 곳에 꽁꽁 잠들어 있던 묘한 죄책감과, 지켜주고 싶다는 강렬한 보호본능을 단숨에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거기에 더해 부인의 몸에서 훅 끼쳐오는 짙고 매혹적인 사향 냄새가 그의 이성을 몽롱하게 흔들고 있었다.
윤 마님은 속으로 '아뿔싸, 세상에! 그 시커먼 맹인 점쟁이 영감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구나! 영감의 목소리가 이리 다정하게 떨리다니!' 라며 환희의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점쟁이의 지시를 떠올리며 더욱 서럽고 처절하게 어깨를 떨며 고개를 이불에 깊이 파묻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대감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애틋하게 손을 뻗어 윤 마님의 가녀린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바로 그 순간, 윤 마님은 최씨의 두 번째이자 가장 은밀했던 지시를 떠올렸다. '절대 먼저 돌아보지 말고, 대감의 손길에 뼈가 없는 여인처럼 속절없이 몸을 맡기시오.'
그녀는 한 치의 반항도 없이 대감의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아주 천천히, 마치 바람에 쓰러지는 한 송이 꽃처럼 대감의 넓은 가슴팍으로 스르르 힘없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리고 눈물로 붉게 달아오른 뜨거운 얼굴을 대감의 품에 깊숙이 묻은 채, 최씨가 일러준 대로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평소보다 반 박자 빠르게 가쁘고 가는 숨소리를 요염하게 내뱉었다.
"하아... 아아, 대감... 첩이 이리도 모자라고 박복하여 가문에 아들을 안겨드리지 못하니... 이 죄스러운 소녀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원통하옵니다. 부디 저를 미워하여 버리지 마시옵소서... 홀로 늙어가는 밤이 너무도 두렵고 춥사옵니다..."
그 애달프고도 도발적인 귓속말과 품 안에서 파르르 떠는 부드러운 여인의 체온에, 대감은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며 짐승의 본능이 눈을 뜨는 것을 느꼈다. 평생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뻣뻣한 목석인 줄만 알았던 조강지처의 몸에서 이토록 매혹적이고 끈적한 체향과 교태가 뿜어져 나오다니. 여우 같던 첩실 따위는 단숨에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아, 아니오 부인! 내가 미친놈이오, 내 참으로 미안하오. 내 부인의 그 깊고 가련한 속도 모르고, 어리석게도 바깥으로만 겉돌며 부인을 이리 외롭게 방치했구려. 내 오늘 밤, 부인의 그 서러운 눈물을 모두 닦아주리다."
그날 밤, 판서댁 안방의 호롱불은 밤이 새도록 꺼질 줄을 몰랐다. 대감은 굶주린 짐승처럼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부인을 품에 안았고, 윤 마님 역시 이전에 단 한 번도 알지 못했던 부부 사이의 아찔하고도 맹렬한 희열을 맛보며 남편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독차지했다. 점쟁이 최씨의 치밀한 심리전과 은밀하고도 파격적인 연기 지도가 빚어낸, 실로 기적과도 같은 부부 금슬 회복의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대감은 요망한 첩실의 방에는 발길을 뚝 끊어버리고 매일 밤 해가 지기가 무섭게 본처의 안방으로 득달같이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 마님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귀한 옥동자를 기적처럼 잉태하게 되었다.
※ 5: 꼬리가 길면 밟힌다? 의심 많은 깐깐한 포도대장의 잠입 수사
윤 마님의 기적 같은 회임 소식이 도성 안팎으로 쫙 퍼져나가자, 종로 구석진 골목에 위치한 맹인 점쟁이 최씨의 당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되었다. 한양의 권문세가 양반가 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봇짐 가득 금은보화와 명주를 싸 들고 와서 점쟁이 최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합궁일과 비방을 구걸했다. 최씨는 여전히 시커먼 안경 뒤에 숨어 여인들을 매의 눈으로 집요하게 관찰하며, 각자의 성향에 맞는 기상천외한 1:1 맞춤형 19금 솔루션을 쏟아냈다. 어떤 이에게는 '화려하고 무거운 가체를 당장 내다 버리고 수수한 비녀 하나만 꽂아 목선을 훤히 드러내 백합 같은 청초함을 연출하라'고 명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남편이 돌아오면 아랫사람을 시키지 말고 직접 따뜻한 물을 대령하여 발을 씻어주며, 은근슬쩍 남편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라'는 등 양반가에서는 상상도 못 할 파격적인 행동 강령을 내려주었다.
놀랍게도 체면을 버리고 그의 비방을 철저히 따르며 합궁일을 지킨 부부들은 열이면 열, 죽어있던 부부 금슬이 용암처럼 불타올라 잇따라 회임을 하였으니, 도성 내 여인들 사이에서는 그를 '삼신할미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내려오신 산신령'이라 부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반드시 밟히고 마는 법. 도성 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관아를 중심으로 해괴하고도 불길한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다. 점쟁이에게 다녀온 양반댁 마님들의 옷차림이 하나같이 묘하게 야해지고, 뻣뻣했던 규방의 엄격한 유교적 예법이 무너지며, 양반가 안방에서 밤마다 남부끄러운 교성과 신음 소리가 담장을 넘어 흘러나온다는 소문이었다. 이 해괴망측한 소문은 도성의 치안과 풍속을 유지하며 유교적 기강을 수호해야 하는 관아의 깐깐한 포도대장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뭐라? 눈먼 점쟁이 사기꾼 놈 하나가 감히 지엄한 사대부가 여인들을 홀려 점을 핑계로 음탕하고 망측한 짓거리를 가르치고 다닌다고? 사대부가의 안방이 기생집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내 당장 그 요망한 놈의 당집을 덮쳐, 무슨 사특한 요술을 부려 여인들의 정신을 빼놓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그놈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내걸겠다!"
의심이 하늘을 찌르고 성격이 대나무처럼 대쪽 같기로 소문난 포도대장은 당장 군사들을 푸는 대신,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평범한 양반의 사복 차림으로 위장한 채 자신의 아내를 대동하고 최씨의 점집에 몰래 잠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포도대장의 아내 역시 십수 년의 혼인 생활 동안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남편의 깐깐함 탓에 최근 들어 부부 사이가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소원해져 깊은 속앓이를 하던 터라, 속는 셈 치고 남편의 수사에 흔쾌히 동참한 것이었다.
굳게 닫힌 방 안에 들어선 포도대장의 아내가 낡은 돗자리 위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자, 점쟁이 최씨는 언제나처럼 낡은 산통을 달그락달그락 흔들며 완벽한 맹인 연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얇은 창호지 문밖에서 숨을 죽이고 엿듣고 있던 포도대장은 속으로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 이 눈먼 사기꾼 놈이 내 아내에게 무슨 해괴한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두고 보자. 한 마디라도 망측한 소리를 내뱉으면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요절을 낼 것이다.'
최씨는 안경 너머로 힐끗 포도대장의 아내를 살폈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인 깐깐하고 엄격한 성품의 여인. 화장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옷차림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숨 막히게 단정했다. 최씨는 찰나의 순간에 그녀의 억눌린 고통을 간파하고는 산통을 탁 내려놓으며 아주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가엾기도 하지. 부인은 겉으로는 바위처럼 강하고 무심해 보이나, 속은 텅 비어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들판처럼 지독하게 외롭구려. 남편 되시는 분이 필시 무관의 사주라 성격이 불같고 융통성이라곤 꽉 막힌 깐깐한 성정이라, 평생 부인을 숨 막히게 옥죄고 감옥에 가두듯 살고 있소이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해야 할 안방 침소에서조차 마치 죄인을 취조하듯 부인을 딱딱하게 대하며 예를 강요하니, 어찌 삭막한 부부 사이에 따뜻한 정이 싹트고 귀한 자식이 생기겠소?"
문밖에서 잔뜩 독이 올라 듣고 있던 포도대장은, 마치 시퍼런 비수에 심장 정곡을 찔린 듯 뜨끔하여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부부의 천년묵은 얼음장 같은 금슬을 깨부수려면, 합궁일에 아주 특별하고도 파격적인 비방이 필요하오. 합궁일 자시(子時), 댁의 영감께서 굳은 얼굴로 방에 들어오시면 부인은 평소의 그 숨 막히는 꼿꼿함과 안주인의 체면을 당장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시오. 그리고 미리 은밀히 준비해 둔 독한 방문주(소주)를 영감에게 석 잔 연거푸 강권하여 따라 올리시오. 독한 술기운이 올라 평생 영감을 짓누르던 그 딱딱한 긴장이 스르르 풀리고 무장해제 되었을 때, 부인이 먼저 다가가 영감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영감의 허벅지 위로 무릎을 베고 누우시오. 그리하면 평생 호랑이 같던 영감도 순한 양이 되어 부인의 그 부드러운 살결을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릴 것이오."
포도대장은 문밖에서 경악을 금치 못해 입을 떡 벌렸다. 안방에서 사대부의 부인이 남편에게 다짜고짜 독주를 들이먹이고, 교태를 부리며 먼저 무릎을 베고 눕다니! 이는 조선의 엄격한 유교 사회의 법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짐승들이나 할 법한 발칙하고 음탕한 행위였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포도대장은 당장이라도 방문을 거칠게 박차고 들어가 저 요망한 사기꾼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려 칼자루를 꽉 쥐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방 안에서 들려온 아내의 억눌린 한마디가 그의 발목을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강하게 붙잡았다.
"어르신... 영감이 과연 제 이 못나고 거친 손길을 받아주기나 할까요? 매일 밤 저를 아내가 아니라 사무를 보듯 딱딱하고 차갑게 대하는 영감의 무심한 뒷모습을 보며, 소녀는 밤마다 찬 이불깃을 쥐어뜯으며 베갯잇을 적시고 소리 없이 피눈물을 흘렸사옵니다. 저도... 사대부가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저 남편에게 다정하게 안기고 사랑받는 평범한 여인이고 싶습니다..."
아내의 억눌린 울음이 짙게 섞인, 뼈에 사무치는 목소리. 십수 년을 평생 한 이불을 덮고 곁에 있으면서도, 포도대장 자신이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던 아내의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이었다. 포도대장은 칼자루를 쥔 손을 덜덜 떨며, 자신이 그동안 유교의 지엄한 법도와 사대부의 체면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자신만을 바라보고 시집온 가여운 아내를 얼마나 잔인하고 외롭게 방치했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말았다. 그는 차마 방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 채, 분노로 쥐었던 칼자루를 조용히 아래로 떨구며 소리 없이 뜨거운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
※ 6: 떼돈을 챙겨 고향으로 튀어라! 전설로 남은 종로의 야바위꾼
그날 밤, 한양 치안의 수장인 포도대장의 삼엄한 안방에서는 개국 이래 전례 없는, 실로 파격적인 진풍경이 벌어졌다. 점쟁이의 비방대로 아내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건넨 독한 소주 세 잔을 묵묵히 받아넘긴 포도대장은, 평생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며 옭아매고 있던 그 숨 막히는 체면과 권위의 무거운 갑옷을 바닥에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내가 용기를 내어 다가오자, 그는 오히려 먼저 아내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겨 자신의 허벅지 위로 아내를 뉘이며 무릎을 내어주었다. 평생 거친 살림에 치여 거칠어지고 야윈 아내의 뺨을 투박한 손으로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내 그동안 참으로 미안했소. 당신이 이리 고운 줄 미처 몰랐구려."라는 진심 어린 속삭임을 건넨 순간, 두 사람의 십수 년 길었던 혹독한 냉전은 봄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잊혀졌던 젊은 날의 뜨거운 밤이 기적처럼 다시 시작되었다.
며칠 뒤, 당장이라도 관군을 이끌고 와 점쟁이 최씨를 요사스러운 죄목으로 관아로 압송해 갈 줄 알았던 포도대장은, 체포 대신 자신의 심복을 조용히 당집으로 보냈다. 심복의 손에는 최고급 비단 한 필과 성인 남자가 혼자 들기 버거울 정도로 두둑하게 꽉 찬 은자 꾸러미가 들려 있었고, 그것은 최씨를 향한 포도대장의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였다. 비록 사기를 치는 맹인 행세를 했으나, 자신과 아내의 꽉 막힌 부부 관계의 혈을 뚫어주고 가정을 구원해 준 그를 벌할 명분도, 인간적인 이유도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도 눈물도 없다던 호랑이 같은 관아의 포도대장마저 종로의 맹인 점쟁이 최씨의 비방에 넘어가 쉰이 다 된 나이에 늦둥이를 보게 생겼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비밀리에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최씨의 명성과 권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구름 위로 치솟았다.
최씨는 그 후로도 몇 년간 한양 도성의 수많은 양반가 부부들의 은밀한 문제들을 화끈하고도 기상천외하게 해결해 주는 전설의 '부부 생활 일타 강사'로 화려하게 활약했다. 그는 양반가 마님들이 울며 겨자 먹기, 아니 감읍하며 갖다 바친 수많은 엽전과 묵직한 은자, 금은보화로 방 안의 거대한 궤짝을 십수 개나 꽉꽉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은퇴를 결심했다. '박수 칠 때 떠나야 목숨을 부지하는 법이다.' 사기꾼다운 비상한 직감을 발휘한 그는, 어느 달 밝은 밤 홀연히 종로거리의 당집에서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방문을 열어본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그가 평소 쓰고 다니던 시커먼 안경과 낡아빠진 산통뿐이었다.
그는 한양에서 긁어모은 떼돈을 수십 대의 수레에 은밀히 싣고 자신의 고향으로 유유히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기와집을 짓고, 천 평이 넘는 끝없는 문전옥답을 사들여 수십 명의 하인을 거느리며 떵떵거리며 남부럽지 않은 호통을 치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고향에 내려가서는 답답한 맹인 행세를 완벽하게 벗어던지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뜬 탐욕스러운 지주 행세를 하였으니, 고향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건장한 양반이 한양 도성의 치맛바람을 쥐락펴락했던 그 희대의 사기꾼 맹인 점쟁이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훗날 종로 저잣거리에서는 눈먼 점쟁이 최씨에 대한 전설이 마치 신화처럼 야담으로 구전되어 내려왔다. 겉으로는 조상신이 합궁일을 점지해 옥동자를 낳게 해주는 신통방통한 도사였지만, 그 실체는 유교적 억압과 체면에 갇혀 숨죽여 죽어가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본능을 일깨우고, 꽉 막힌 사대부 남편들의 마음을 훔치는 방법을 전수해 준 천재적인 연애 조작단이자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그의 통쾌하고도 발칙한 야바위극은, 체면과 겉치레만 중시하며 속으로는 곪아가던 조선 양반 사회의 허상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오늘날까지도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묘하게 통쾌하고 유쾌한 사이다 야담으로 남게 되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유교적 억압 속에서 밤마다 숨죽여 눈물짓던 조선시대 양반가 마님들! 그들의 꽉 막힌 속을 화끈하게 뚫어준 전설의 맹인 사주쟁이 최씨의 기상천외한 사기극, 어떻게 들으셨나요? 비록 시작은 돈을 노린 발칙한 사기였지만, 그가 전수해 준 '은밀한 밤의 기술'은 꽉 막힌 부부 관계를 회복시키는 최고의 명약이 아니었을까요? 교과서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의 꿀잼 야사! 오늘 이야기가 통쾌하고 즐거우셨다면 잊지 말고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세요. 다음 시간에도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