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지 처녀의 숨겨진 비밀

거지 처녀의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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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250자)

조선 한양, 거지 생활을 하는 아름다운 처녀와 양반집 도령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린 이야기.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을 담았습니다. 실은 몰락한 양반가의 딸이었던 처녀의 숨겨진 과거, 그리고 그녀의 효심과 고결한 인품이 사랑을 통해 드러나는 감동적인 전설입니다.

후킹 (300자)

"한양 장안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 새벽 종로 거리에서 쌀을 구걸하는 처녀가 있는데, 하얀 살결에 까만 눈동자가 마치 옥구슬 같다고. 더러운 옷자락 사이로 비치는 그 고운 자태에 모두가 수군거렸지. 대체 저런 처녀가 어찌 거지가 되었을까? 그리고 어느 날, 도성 제일가는 양반집 도령이 그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데..."

종로거리 새벽풍경과 거지처녀의 등장

조선 한양, 동이 트기 전 종로 거리.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새벽녘, 고요한 거리에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삼각산 너머로 희미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자, 종로 거리의 새벽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시장을 준비하는 상인들의 발걸음과 수레 끄는 소리만이 들리는 거리. 아직 노점들이 자리를 잡기 전, 그 고요한 새벽길을 한 처녀가 걸어갑니다. 남루한 치마저고리를 걸친 모습이지만, 그 걸음걸이에는 이상한 품위가 깃들어 있었지요.

"쌀 한 줌만 나눠주세요..."

낮은 목소리로 구걸하는 처녀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맑고 청아했습니다. 때 묻은 치마 사이로 보이는 하얀 살결과 까만 눈동자는 마치 앉은 자리를 비추는 달빛 같았지요.

새벽장사를 나온 난전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쌀장수 할머니는 처녀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아이고, 또 왔구나. 어서 오너라."

할머니는 늘 그렇듯 처녀에게 쌀 한 됫박을 퍼주었습니다. 처녀는 깊이 절을 하고 쌀을 받았지요. 그 모습이 마치 대궐의 상궁이 임금님께 예를 올리는 것처럼 우아했습니다.

"아가씨, 오늘도 새벽부터 나왔구나."
쌀장수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네, 할머니. 어머님 약값을 마련해야 해서요..."

처녀의 대답에는 슬픔이 묻어있었지만, 그 목소리만은 달빛처럼 맑았습니다.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쌀을 조금 더 덜어주었지요.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하자 거리가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처녀는 받은 쌀을 조심스레 보자기에 싸 안고, 종로 육거리를 지나 도성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초롱불을 든 순라꾼들이 철갑을 끌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처녀의 뒷모습이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았습니다.

거지임에도 그 누구보다 고귀해 보이는 처녀의 모습에, 장안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대체 저 처녀는 누구이며, 어째서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수수께끼 같은 처녀의 운명은, 곧 크게 바뀌려 하고 있었습니다.

처녀의 과거회상 - 몰락한 양반가의 비극

서쪽 거지촌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
처녀는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대어 섭니다. 보자기 속 쌀을 만지작거리며, 5년 전 그날을 떠올립니다.

"아버님, 제발 그만 드세요..."
달빛이 비치는 사랑채, 술에 취한 아버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 팔자가 이리 험할 줄이야... 정승 자리까지 바라보던 내가..."

원래 한양 제일가는 양반가문이었던 집안은 정적들의 모함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습니다. 아버지는 귀양을 가셨고,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지요.

"아가씨,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늙은 유모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유모님, 저희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아요."

가문이 몰락하자 줄지어 찾아오는 채권자들. 대대로 이어온 집과 땅을 모두 빼앗기고, 결국 거리로 나와야 했습니다.

"어머님, 이제 곧 약을 구해드릴 수 있어요."
병든 어머니를 업고 거지촌으로 향하던 날, 처녀는 다짐했습니다. 비록 거지가 되어도 어머니의 병을 고치고 아버지를 귀양지에서 모셔오리라고.

현재로 돌아와 처녀는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멀리서 거지촌의 소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아침 햇살이 점점 밝아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처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아침 햇살에 반짝입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여전히 고귀한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비록 거지가 되었어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양반가의 품위와 자존심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만남 - 도령과 처녀의 첫 눈맞춤

다음 날 새벽, 종로 거리.
여느 때처럼 처녀가 쌀을 구하러 나왔을 때입니다. 그날따라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요. 처녀는 처마 밑으로 몸을 숨기며 비를 피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양반들이 지나가고 있었지요. 앞서가는 이들은 춘당대에서 열리는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이었습니다.

"도령님, 비가 오니 말을 조심히 모셔야 하겠습니다."
하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한 젊은 도령이 말 위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처마 밑에서 몸을 숨기던 처녀는 그만 발을 헛디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소리에 도령이 고개를 돌렸고,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도령은 처녀의 맑은 눈동자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이었지만 그 품위와 기품은 감출 수 없었지요. 도령은 말에서 내려 처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도령이 손을 내밀었지만, 처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일어났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령님..."
처녀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도령은 우산을 처녀 쪽으로 기울였습니다.

"이 비를 그대 혼자 맞기에는 너무 쓸쓸해 보이는구려."
도령의 다정한 목소리에 처녀는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도령은 처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습니다.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 물방울이 처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요.

"도령님, 과거 시간이 늦으실 것입니다."
멀리서 하인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령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도포를 벗어 처녀의 어깨에 둘러주었습니다.
"이것으로나마 비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처녀가 놀라 말을 하기도 전에 도령은 말에 올라 멀어져갔습니다. 다만 멀어지는 발걸음 속에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도령의 모습이 보였지요.

처녀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도포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났고, 어딘가 모르게 따스함이 전해져 왔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지요.

"도령님의 도포를... 어찌하면 좋을까..."
처녀는 도포를 소중히 품에 안았습니다. 이제 비는 그쳤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도령의 몰래 찾아가기 - 거지촌 풍경

며칠 후, 해 질 무렵의 거지촌.
도령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거지촌을 찾아왔습니다. 도성 서쪽 성벽 아래에 자리 잡은 거지촌은 도령이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곳이 거지촌이라 하옵니까?"
도령은 거지촌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습니다. 허름하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는 곳이었지요. 아이들은 뛰어놀고, 노인들은 처마 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누구시길래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거지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이 도령 앞을 막아섰습니다.

"제가 찾는 처녀가 있습니다. 며칠 전 종로에서 본..."
도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 그 아이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양반님이 이런 곳에 오시면 곤란합니다."

그때였습니다. 멀리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할아버지, 약재를 구해왔어요."

도령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쪽에서 걸어오는 처녀의 모습이 보였지요. 노을빛에 물든 처녀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처녀는 도령을 보자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녀의 품에는 도령의 도포가 소중히 접혀있었지요.

"도포를 돌려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처녀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도령은 그제야 처녀가 왜 거지가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약재를 구하고 있다는 말에서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처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해는 점점 더 저물어갔고, 거지촌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도령은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달빛아래 둘만의 대화 -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그날 밤, 거지촌 뒤편 언덕.
달빛이 구름 사이로 비치는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도령과 처녀는 거지촌 우두머리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도령님, 이런 곳까지 찾아오시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처녀가 조심스레 도포를 건넸습니다.

"그대가 거지라 해서 달빛이 덜 비치는 것도 아니고, 꽃이 덜 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도령의 말에 처녀는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지입니다."
"아니요. 그대의 눈빛에서 범상치 않은 기품이 느껴집니다. 분명 사연이 있으시겠지요?"

달빛이 구름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처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반짝였습니다. 처녀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지금 진도에 유배 가 계시고... 어머님은 중병을 앓고 계십니다.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살고 있지요."

도령은 말없이 처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달빛 아래 흐르는 처녀의 이야기는 마치 오래된 시조처럼 슬프고도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님의 병환은 어떠하신지요?"
"창자가 썩어들어 간다고 합니다. 값비싼 약재가 필요하지만..."

처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령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이것은 제가 과거 준비를 하며 모아둔 약값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아니됩니다. 도령님의 호의는 감사하나..."
처녀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과거에 급제하면 그때 은혜를 갚으시지요. 지금 이 약값은 잠시 빌리는 것이라 생각해주십시오."

달빛이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처녀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도령은 자신의 소매로 그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이렇게 맑은 달빛 아래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 마음이 진실됨을 믿어주십시오."
도령의 진심 어린 말에 처녀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멀리서 밤 종소리가 울리자, 두 사람은 아쉬움을 안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도령 부모님의 반대와 갈등

며칠 후, 도령의 집 사랑채.
"거지와 혼인을 하겠다고? 제정신이더냐!"
도령의 아버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습니다.

"아버님, 그 처녀는 보통 거지가 아닙니다. 분명 몰락한 양반가의 따님이..."
"망하여 거지가 된 양반이 어찌 양반이더냐! 당장 이런 허튼 생각은 멈추거라."

대문 밖에서는 도령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서 있었습니다. 종들도 멀찍이 물러나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지요.

"이미 혼처도 정해놓았다. 이번 달 말에 예조판서 댁의 따님과 맞선을 보기로 했느니라."
아버지의 말에 도령은 창백해졌습니다.

"아버님, 그저 처녀의 사정을 들어보시기만이라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내일부터 과거 공부에만 전념하거라."

도령은 마당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다가와 도령의 어깨를 감쌌습니다.

"그 아이가 그리 특별하더냐?"
"어머님... 그 아이의 눈빛만 보셔도 아실 겁니다. 범상치 않은 품격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말없이 도령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듯했지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는 그 아이를 못 만나는 것뿐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고,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려 하고 있었지요.

처녀의 숨겨진 정체 밝히기 - 옛 가문의 이야기

그날 밤, 거지촌 뒤편의 작은 움막.
처녀는 병든 어머니의 옷깃을 여며드리고 있었습니다. 도령이 준 약값으로 구한 약재 덕분에 어머니의 안색이 조금은 나아진 듯했지요.

"어머님, 이제 곧 좋아지실 거예요."
처녀의 말에 어머니가 힘없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얘야... 이제는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어머니가 무언가를 꺼내시려는 그때, 밖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가씨! 큰일 났습니다!"
거지촌 우두머리 할아버지가 허둥지둥 들어왔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진도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나리께서... 나리께서..."

처녀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습니다. 아버지의 유배가 풀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유였지요.

"이런... 아버님의 누명이 벗겨지셨다고요?"
처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바로 그때, 움막 밖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영아가 여기 있는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처녀가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리, 이쪽입니다."
거지촌 사람들이 안내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움막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중에는 도령의 아버지도 있었지요.

"아니... 그대가 정말 영이란 말이더냐?"
도령의 아버지는 처녀를 보자마자 크게 놀랐습니다.

"대감마마..."
처녀는 급히 예를 갖추려 했지만, 도령의 아버지가 말렸습니다.

"어쩐지... 아들놈이 그토록 네 눈빛이 범상치 않다 했더니. 너는 바로 홍판서의 따님이 아니더냐!"

그제야 모든 것이 밝혀졌습니다. 처녀의 아버지는 바로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유배 간 홍판서였고, 이제 그 누명이 벗겨진 것이었습니다.

"영아...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자."
도령의 아버지가 다정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처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대감마마, 저는 아직... 어머님의 병환이 나으시기 전까지는..."

그 말을 들은 도령의 아버지는 깊은 감동을 받은 듯했습니다. 거지가 되어서도 어머니를 버리지 않은 처녀의 효심이 진정으로 전해진 것이지요.

"어머님도 모시고 가자꾸나. 이제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지낼 필요가 없다."

달빛이 움막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처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달빛에 반짝였고, 그 눈물은 이제 기쁨의 눈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도령의 결단 - 가출을 각오한 청혼

이틀 후, 홍판서 댁 후원.
처녀는 이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있었습니다. 깨끗한 저고리에 곱게 빗은 머리, 하지만 그 눈빛만은 여전히 거지촌에서의 겸손함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영아가 거기 있는가?"
담장 너머에서 도령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령님, 어찌 여기까지..."
"이제는 거지도, 양반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령은 후원 담장 아래 꿇어앉았습니다. 달빛은 마치 옥구슬을 뿌린 듯 고요히 내리고 있었지요.

"아버님께서는 예조판서 댁과의 혼사를 강력히 원하시지만,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처음 그날, 비 오는 새벽에 그대를 보았을 때부터..."

처녀는 가슴이 떨렸습니다. 도령의 진심 어린 고백에 눈시울이 붉어졌지요.

"하지만 도령님, 저는 이제 겨우 거지 신세를 벗어난 몸입니다. 게다가 아직 어머님의 병환도..."

"그것이 바로 제가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이 아닌, 그대의 효심과 고결한 마음에 반한 것입니다."

도령이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었지요.

"제가 과거에 급제하면, 그때 정식으로 아버님께 청혼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이 마음 잊지 말아주시겠습니까?"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갔지요.

거지들의 도움 - 혼례 준비

한 달 후, 거지촌 입구.
과거에 급제한 도령이 드디어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소식이 거지촌에도 전해졌습니다. 거지촌 사람들은 자신들과 함께 지냈던 처녀의 혼례라며 모두들 기뻐했지요.

"우리도 뭔가 해드려야 하지 않겠소?"
거지촌 우두머리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맞습니다. 아가씨가 여기 계실 때 얼마나 우리를 잘 돌봐주셨습니까."
"그려, 병든 사람 약도 구해주고, 글도 가르쳐주시고..."

거지들은 하나둘 모여 의논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만은 가득했지요.

"나는 십 년 동안 모아둔 엽전이 있소."
"난 중국 상인에게 받은 비단 조각이 있지."
"저는 멀리 금강산에서 가져온 산삼이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보태어 혼례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밤새 꽃신을 만들었고, 또 어떤 이는 비단 조각을 모아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지요.

특히 놀라운 것은 거지촌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새벽 들에 나가 이슬 맺힌 들꽃을 모아왔지요. 그 꽃으로 신부의 가마를 장식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가 타고 갈 가마는 우리가 꾸며드려야지."
"그래, 비록 값비싼 꽃은 아니어도 우리의 진심이 담긴 꽃으로..."

거지촌 노인들은 밤마다 모여 앉아 처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 이상하지... 거지 생활을 하면서도 그 품위를 잃지 않으셨지."
"그려, 늘 고운 말씨에 바른 행실이시더니, 알고 보니 판서 댁 따님이셨으니..."

혼례 전날 밤, 처녀는 몰래 거지촌을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곱게 차린 옷차림이었지만, 그 겸손한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지요.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평생 잊지 못할 은혜입니다."
처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거지촌 사람들은 처녀에게 정성껏 준비한 선물들을 전했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것들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만은 그 어떤 값진 예물보다 소중했지요.

"아가씨, 부디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달빛 아래, 거지촌 사람들의 축복이 처녀의 앞날에 은은한 빛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감동적인 혼례식 장면

혼례식 당일, 홍판서 댁 안마당.
아침부터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붉은 비단으로 치장한 혼례청에는 양가의 친지들이 모여들었고, 멀리서 거지촌 사람들도 담장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지요.

"신부의 가마가 들어옵니다!"
의아하게도 신부의 가마는 화려한 장식 대신 들꽃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거지촌 아이들이 정성스레 모아온 꽃들이었지요.

"이렇게 소박한 가마는 처음 보는구려."
"하지만 저 들꽃의 향기가 어찌 이리 그윽한지..."

기러기를 드리는 순간, 멀리서 학 한 마리가 날아와 혼례청 위를 맴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상서로운 징조라며 기뻐했지요.

신랑인 도령이 먼저 혼례청에 들어섰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 처음 입은 관복이 그에게 잘 어울렸지요. 이어 신부가 들어섰는데, 그 모습이 마치 월궁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습니다.

"저 신부의 눈빛이 범상치 않구려."
"그래서 도령께서 한눈에 반하셨다지..."

전안례와 교배례가 이어졌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마주 보며 절을 할 때, 담장 너머 거지촌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들은 처녀가 거지촌에서 보여준 고결한 마음을 떠올렸지요.

특히 감동적인 순간은 합근례 때였습니다. 신부가 따르는 술잔에는 거지촌 노인이 건넨 오래된 약주가 담겨있었고, 신랑이 마시는 잔에는 거지촌에서 정성스레 빚은 막걸리가 들어있었지요.

"이제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구나."
혼례를 지켜보던 도령의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그도, 이제는 며느리의 됨됨이를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시댁에서의 시련과 극복

혼례 후 한 달, 도령의 집 안채.
새 며느리의 소문이 양반가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판서 댁 규수가 거지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지요.

"들었소? 새 며느리가 거지촌에 살았다지 않소?"
"아니, 그런 며느리를 어찌 들였단 말이오?"

시댁의 친척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던 날이었습니다. 손님들은 은근히 새 며느리를 시험해보려 했지요.

"며늘아가, 들리는 말로는 네가 거지촌에서 살았다던데... 그곳의 비법으로 담근 김치 맛이 어떤지 한번 보여주려무나."
시고모의 날카로운 말에 좌중이 숙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처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네, 고모님. 거지촌에서 배운 정성과 감사한 마음으로 김치를 담가보았습니다."

처녀가 내온 김치는 놀랍게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거지촌에서 만난 노인에게 배운 토종 배추 삭히는 법과, 궁중 비법을 접목한 것이었지요.

"이런 맛은 처음이구나..."
"과연 판서 댁 규수의 솜씨요."

또 어느 날은 멀리 시외가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더러운 옷을 입고 온 거지들을 데리고 왔지요.

"아가, 저들이 너를 찾아왔다는구나. 옛 친구들이니 잘 대접해야 하지 않겠느냐?"
시어머니의 말씀에 숨은 뜻이 있었지만, 처녀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님.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처녀는 거지들을 사랑채로 모셨습니다. 깨끗한 물로 손발을 씻게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귀한 음식을 대접했지요.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수놓은 방석을 내어 편히 앉게 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거지촌에서 배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처녀의 말에 시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며느리의 지혜로움과 너그러운 마음씨가 온전히 전해진 것이지요.

"이제 알겠다... 우리 아들이 왜 너를 선택했는지."
그 날 이후, 시댁 식구들의 마음이 완전히 열렸고, 더 이상 처녀의 과거를 문제 삼는 이가 없었답니다.

행복한 결말과 후일담

몇 해가 지난 후, 한양 도성 안.
도령은 어진 정승이 되었고, 처녀는 현명한 정승 부인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매달 보름날이면 거지촌을 찾아가 그곳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정승 마님께서 또 오셨다!"
아이들이 반갑게 달려와 처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 오늘은 어머님께서 직접 담그신 김치를 가져왔단다."
이제는 시어머님도 며느리를 따라 거지촌을 찾았고, 거지촌 사람들을 친자식처럼 대하게 되었답니다.

처녀의 어머님은 건강을 완전히 되찾으셨고, 귀양에서 돌아오신 아버님은 다시 조정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가문의 명예도 회복되었지요.

"여보, 우리도 이제 자식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달 밝은 밤, 후원에서 처녀가 도령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신분이 높고 낮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귀하다는 것을..."
도령이 처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이야기는 한양 장안에 전설이 되어 전해졌습니다. 거지촌 아이들은 밤마다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키웠고, 양반가의 자제들은 이를 통해 겸손과 인간애를 배웠지요.

지금도 달 밝은 밤이면, 거지촌 뒷산에 올라 도성을 바라보는 젊은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합니다. 혹시 그들이 도령과 처녀의 영혼이 아닐까요?

사랑과 인연은 신분을 초월하여 맺어지고, 진정한 마음만이 영원히 빛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답니다.

엔딩 (400자)

"그렇게 혼례를 올린 두 사람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처녀는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을 맞아준 남편의 믿음에 보답하고자 더욱 현숙한 아내가 되었고, 남편은 아내의 고결한 성품에 더욱 깊이 매료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그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종로 거리를 지나다 보면, 새벽녘에 흰 옷자락을 날리며 쌀을 구하러 다니는 아름다운 거지처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네요. 사랑하는 이를 찾아 헤매는 순수한 영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