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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최영 vs 반역자 이성계 , 위화도 회군 운명의 선택 【조선왕조실록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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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한 장군의 말머리가 500년 역사를 무너뜨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빗줄기가 창이 되어 쏟아지던 압록강의 외로운 섬 위화도. 그곳에서 한 남자가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립니다. 충신인가, 역적인가. 고려의 마지막 명장 최영과 조선의 첫 번째 군주 이성계, 두 거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대결이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1388년, 고려의 운명을 건 요동 정벌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무리한 출정은 압록강 위화도에서 멈춰 섭니다. 총사령관 이성계는 불가능한 전쟁을 멈추기 위해 회군을 결심하고, 이는 곧 500년 사직을 지키려는 충신 최영과의 정면 대결을 의미했습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화도 회군의 전말을 따라가 봅니다.
※ 거역할 수 없는 명령, 요동으로 향하는 칼날
역사를 사랑하시는 우리 구독자 어르신들, 안녕하셨습니까. 낡은 집은 언젠가 무너지는 법이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그 집을 떠받치던 기둥을 빼내야만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은 고려라는 500년 된 고택(古宅)이 무너지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궁궐의 주춧돌이 놓이게 된 결정적 사건, 바로 '위화도 회군' 이야기를 더욱 깊이 들여다볼까 합니다.
때는 1388년, 고려의 32대 왕인 우왕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상황은, 비유하자면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노인과도 같았습니다. 밖으로는 왜구의 노략질이 그치질 않아 남쪽 바다가 마를 날이 없었고, 안으로는 권문세족이라 불리는 썩은 관리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민심은 흉흉했지요. 바로 그때, 대륙에서 원나라를 북쪽 초원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주인이 된 명나라가, 고려에게 기름을 부은 격의 통보를 해옵니다. "철령 이북의 땅은 원래 우리 땅이었으니, 이제 마땅히 우리 명나라에 돌려달라!" 이는 고려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요구였습니다.
이 소식이 개경에 전해지자, 고려 조정은 그야말로 들끓었습니다. 이때, 평생을 전장에서 뼈가 굵고, 왜구와 홍건적을 무찌르며 고려를 지켜온 마지막 기둥, 팔순을 바라보는 노장 최영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효합니다. 그는 늙었지만, 그 기백만은 젊은 장수들을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어찌 저 오랑캐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피가 묻은 땅을 단 한 뼘이라도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이야말로 우리 고려의 매운맛을 보여줄 때다! 군사를 일으켜 저 교만한 명나라의 본거지, 요동을 정벌하여 우리의 기상을 만천하에 보여주어야 하오!"
젊고 혈기 왕성했던 우왕은, 아버지처럼 따르던 최영의 이 강경한 주장에 크게 감화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왕권을 되찾고, 나라의 위상을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순식간에 요동 정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때, 모두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예'라고 외칠 때, 홀로 굳건히 '아니오'를 외친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바로 훗날 조선을 세우는, 당시 고려 최고의 전략가이자 명장이었던 이성계였습니다.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 앞에 부복하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요동 정벌이 불가능한 이유를 조목조목 아뢰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4불가론(四不可論)'입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하늘의 순리가 아니옵니다. 힘의 차이가 명백한 싸움은 무모할 뿐입니다.
둘째, 지금은 모내기가 한창인 여름이옵니다. 이때 군사를 동원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니, 굶주린 백성의 원망이 하늘을 찌를 것이옵니다.
셋째, 우리 정예군이 모두 북쪽 국경으로 향하면, 그 틈을 노려 남쪽의 왜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옵니다. 이는 앞문을 막으려다 뒷문으로 도둑을 맞는 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지금은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와서 활의 아교가 녹아 무용지물이 되고, 덥고 습한 날씨에 군사들은 역병에 시달릴 것이니, 이는 싸워보기도 전에 지는 싸움이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나라의 현실과 백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뼈를 깎는 충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최영과 우왕의 귀에는 이성계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 싸움을 피하려는 비겁한 변명처럼 들렸을 뿐입니다. 최영은 이성계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이 경의 어깨에 달려있소. 경은 이 나라 최고의 장수이니, 능히 요동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오. 만약 딴마음을 품는다면 내 손에 죽게 될 것이오." 이것은 당부이자, 돌이킬 수 없는 협박이었습니다.
결국, 이성계는 거역할 수 없는 출정 명령을 받듭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5만 대군과 함께, 패배가 빤히 보이는 죽음의 전쟁터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개경을 떠나는 그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그의 눈에는 요동의 성벽이 아니라, 이 무모한 전쟁으로 인해 피 흘리고 죽어갈 젊은 병사들과, 쑥대밭이 될 고려의 앞날이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그는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고려의 영광이 아닌, 500년 사직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 죽음의 강, 압록강에 고립되다
1388년 늦봄, 마침내 이성계가 이끄는 5만 고려군은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하늘도 이 어리석은 전쟁을 원치 않았던 걸까요. 군사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잠시 머무른 강 가운데의 큰 섬, 위화도(威化島)에 이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커먼 비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는 이내 동아줄처럼 굵어지더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며칠 밤낮으로 쏟아지는 기록적인 폭우에 압록강은 성난 용처럼 몸부림치며 불어났습니다. 맑았던 강물은 순식간에 붉은 흙탕물로 변하여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고, 위화도는 순식간에 망망대해의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군사들이 지푸라기로 엮어 만든 허술한 막사는 비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고, 간신히 지고 온 군량미는 썩어 문드러져 역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덥고 습한 날씨에 이질과 같은 전염병까지 돌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물 설고 밥 설은 타향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맥없이 죽어 나갔습니다. 밤이 되면 병사들은 비에 젖은 채 추위에 떨며 고향에 있는 부모 처자를 그리워하며 흐느꼈고, 낮이 되면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동료의 시신을 건져내야 했습니다. 군사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눈빛에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매일 밤, 불어나는 강물을 보며 잠 못 이루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저 거센 물결이 마치 고려의 비참한 현실처럼 보였습니다. 개경의 안락한 궁궐에 앉아 탁상공론만 일삼는 왕과 늙은 재상들은, 이곳 위화도에서 병사들이 겪는 생지옥을 과연 알고나 있을까. 이대로 강을 건너 요동으로 진격한다 한들, 굶주리고 병든 군사들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강을 건너다 수많은 병사들이 물귀신이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성계의 마음속에서는 충성과 현실, 명령과 백성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이 휘몰아쳤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개경을 향해 장계를 올렸습니다. "전하, 장마가 너무나도 심하여 단 한 명의 병사도 강을 건널 수가 없사옵니다. 부디 회군을 명하시어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주시옵소서!"
하지만 개경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냉혹했습니다. 최영은 "장마는 곧 그칠 것이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말고 진격 준비를 하라!"는 불호령을 내렸고, 우왕은 "어서 빨리 진격하여 승전보를 울리라!"는 철없는 독촉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5만 군사의 목숨은, 그들의 헛된 자존심과 정치적 야망을 채우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탈영병은 속출했습니다. 어떤 병사들은 밤을 틈타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죽어갔고, 어떤 이들은 강 건너 명나라 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5만 대군은 적과 싸워보지도 못한 채, 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조정의 무능함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더 이상 이 비극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결심해야 했습니다. 이대로 모두가 죽음의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역적이라는 오명을 평생 뒤집어쓰더라도 이들을 살릴 것인가. 위화도의 거센 비바람 속에서, 이성계는 운명의 칼자루를 고쳐 잡기 시작했습니다.
※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위대한 반역
마침내 운명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군막을 세차게 두드리고, 번개가 칠 때마다 섬의 참혹한 풍경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이성계는 자신의 군막으로 좌군도통사 조민수를 비롯한 주요 장수들을 조용히 불러 모았습니다. 촛불 아래 모인 장수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불안, 그리고 무언의 기대감이 뒤섞인 복잡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이성계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자의 강철 같은 결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모두 보았을 것이오. 우리 아들 같은 병사들은 굶주림과 병마에 쓰러져가고, 저 미친 듯이 날뛰는 압록강은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소. 이런 군사를 이끌고 요동을 친다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을 억지로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이 아니오."
장수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였습니다. 모두가 이성계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조민수 장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장군, 이대로는 모두 죽습니다. 차라리..." 그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그 눈빛을 외면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회군을 청했으나, 조정은 우리의 애원을 묵살했소.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소. 나는 결심했소." 그의 말에 모든 장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이성계의 입에서 역사를 뒤흔드는 한 마디가 터져 나왔습니다. "말머리를... 돌릴 것이오. 개경으로 돌아갈 것이오!"
그 순간, 군막 안의 공기는 얼어붙었습니다. 회군(回軍). 그것은 단순히 군대를 돌린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반역이자, 개경에 있는 최영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성공하면 나라를 구하는 혁명이지만, 실패하면 자신을 포함한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었습니다.
몇몇 장수들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지만, 대부분의 장수들은 이성계의 결단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성계를 단순한 상관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과 운명을 함께하는 진정한 지도자로 믿고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성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막 밖으로 나섰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빗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북쪽, 요동 땅을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명나라 군대가 아니라, 무모한 명령으로 자신과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몬 낡은 체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몸을 돌려 남쪽, 개경 하늘을 노려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갈등하는 장수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자신의 손으로 열고자 하는 혁명가의 눈빛이었습니다.
"전군에 명한다! 지금 즉시 말머리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한다! 썩어빠진 조정을 바로잡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할 것이다!"
이성계의 우렁찬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위화도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명령은 절망에 빠져있던 5만 군사들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그날 밤, 고려의 군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혁명의 군대가 태어났습니다. 1388년 5월 22일, 500년 고려의 운명을 바꾼 말발굽 소리가 위화도에서 시작되어,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 파죽지세, 개경으로 향하는 분노의 칼날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린 이성계의 군대는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 썩은 대나무를 쪼개는 듯한 무서운 기세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왕명을 어긴 역적'이 아니라, '썩은 조정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하는 의로운 군대'라는 명분은, 굶주리고 지쳐있던 군사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북으로 향할 때의 무기력함과 절망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의 눈빛에는 개경을 향한 분노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감이 불꽃처럼 타올랐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길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군량미를 나누어주었고, 탐관오리들이 지키는 관아의 창고를 열어 억압받던 민심을 다독였습니다. 백성들은 처음에는 반란군이라며 두려워했지만, 곧 그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원하러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문은 군대의 행렬보다 더 빨리 퍼져나갔습니다. "이성계 장군이 돌아오신다! 우리를 구하러 오신다!" 백성들은 오히려 회군하는 이성계의 군대를 환영하며 길을 열어주었고, 어떤 이들은 자진해서 군량과 물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민심이 이미 고려 조정을 떠나, 이성계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개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우왕과 최영은 자신들이 보낸 5만 대군이, 자신들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정 대신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고, 어떤 이들은 몰래 짐을 싸서 도망갈 채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500년 사직을 지켜야 할 조정은, 위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최영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분노로 온몸을 떨며 소리쳤습니다. "이성계 그 역적 놈이 감히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단 말이냐! 여봐라, 당장 성문을 굳게 닫고, 남아있는 군사들을 모두 소집하라! 내 손으로 직접 저 역도의 목을 베어 군율의 무서움을 보여줄 것이다!"
최영에게 회군은 용납할 수 없는 반역 그 자체였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충신의 도리가 아니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녹슨 갑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평생을 오직 고려만을 위해 살아온 늙은 장수에게, 나라는 곧 자기 자신이었고, 왕명은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그는 급히 수도 방위군과 각지에서 긁어모은 병력으로 이성계의 군대를 막을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력 정예부대는 모두 이성계가 데리고 간 상황. 수적으로나 사기로나, 훈련도로 보나, 최영의 군대는 이성계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최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습니다. 그는 개경의 성벽 위에 올라, 먼지를 일으키며 무섭게 진격해오는 이성계의 군대를 노려보았습니다. 한때는 생사를 함께하며 등을 맞대고 싸웠던 전우였지만, 이제는 서로의 심장을 겨누는 적이 되어버린 두 거인. 500년 사직을 지키려는 늙은 용과,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젊은 호랑이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이제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그 비극적인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 마지막 충신, 최후의 결전
마침내 이성계의 회군이 개경의 턱밑까지 다다랐습니다. 이성계는 마지막으로 사자를 보내 최영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대감, 저희는 결코 반역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좀먹는 간신들을 몰아내고 정치를 바로잡으려는 것뿐입니다. 부디 무익한 피를 흘리지 마시고 길을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최영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역적과 타협은 없다! 네놈들이야말로 왕명을 거역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역도들이다! 어서 창칼을 거두고 죄를 청하지 못할까!"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피를 부르는 싸움뿐이었습니다. 이성계의 군대는 사대문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최영은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군사들을 독려하며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그의 좌우명처럼, 그의 싸움은 우직하고 굳건했습니다. 그는 늙은 나이도 잊은 채 성벽 위를 오가며 활을 쏘고, 성문이 뚫릴 위기에 처하자 직접 창을 들고 달려 나가 적을 베었습니다. 그의 용맹한 모습에 고려군도 잠시 힘을 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이성계의 군대는 고려 최고의 정예부대였고, 오랜 전란으로 단련된 백전노장들이었습니다. 반면 최영의 군대는 급히 긁어모은 오합지졸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숭인문이 뚫리고, 이성계의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개경 시내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개경 시내는 순식간에 처절한 시가전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최영은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왕이 있는 궁궐을 지키기 위해 후퇴하며 싸웠습니다. 그의 갑옷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그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과 분노가 서려 있었습니다. 한때 백성들의 영웅이었던 두 장수가, 바로 그 백성들이 공포에 질려 지켜보는 앞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이성계의 군대는 궁궐까지 장악했습니다. 홀로 남아 분전하던 최영 역시, 믿었던 부하들의 배신으로 사방이 포위되어 힘없이 무기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밧줄에 묶여 이성계의 앞에 끌려온 최영의 눈빛은, 여전히 꺾이지 않은 불굴의 기상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성계를 향해 피를 토하듯 외쳤습니다. "이 역적 놈아! 네놈이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나는 평생에 단 한 번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은 적이 없다. 하늘이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네놈은 결국 이 반역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500년 고려를 지키려 했던 마지막 충신의 외침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함성 속에 허무하게 묻히고 말았습니다.
※ 한 시대의 종언,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
개경을 완전히 장악한 이성계는 우왕을 폐위시켜 강화도로 유배 보내고, 그의 아들인 어린 창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워 모든 권력을 손에 쥡니다. 고려라는 나라는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 숨은 멎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제 이성계에게 남은 마지막 걸림돌은 단 하나, 비록 패배했지만 여전히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장군 최영이었습니다.
이성계 역시 최영을 진심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때는 존경했던 상관이자, 나라를 위해 함께 피 흘렸던 전우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성계의 곁에 있던 정도전과 같은 신진사대부들은 단호했습니다. "최영을 살려두면, 그는 구시대의 상징이 되어 언젠가 반드시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구시대의 가장 큰 기둥을 먼저 무너뜨려야 합니다."
결국 이성계는 눈물을 머금고 최영에게 사약을 내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머나먼 유배지에서, 최영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만약 내 일생에 단 한 점의 탐욕이라도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만약 내 삶이 하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결백했다면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그다운, 강직한 마지막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의 무덤에는 정말로 풀이 자라지 않아, 후세 사람들은 그의 무덤을 '적분(赤墳)', 즉 붉은 무덤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더 이상 이성계를 막을 자는 없었습니다. 그는 정도전과 같은 새로운 인재들과 손을 잡고, 고려의 낡은 제도, 특히 토지 제도를 개혁하여 권문세족의 배를 불리던 땅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민심은 완전히 이성계에게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4년 뒤인 1392년, 마지막 왕인 공양왕으로부터 옥새를 물려받아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위화도에서의 회군은, 단순히 군대를 돌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낡고 썩은 시대를 무너뜨리고, 왕 한 사람을 위한 나라가 아닌, 백성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위대한 결단이었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충신 최영의 피를 묻혀야 했고, 반역자라는 오명을 써야 했지만, 이성계의 선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조선의 500년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때로는 이처럼 한 사람의 고독하고도 위대한 결단을 통해 그 방향을 바꾸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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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최영과 혁명가 이성계. 어르신들께서는 두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으신가요? 500년 사직을 지키려 했던 최영의 우직한 충심도, 백성을 위해 역적의 길을 선택해야 했던 이성계의 고뇌도 모두 우리가 품고 가야 할 소중한 역사일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드디어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어르신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면, 구독과 좋아요 한번씩 꼭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로도 많은 의견 남겨주시구요.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