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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역사를 바꾼 선택

빛나는 인생 2025. 10. 10.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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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도 회군, 역사를 바꾼 선택 【조선왕조실록 (01)】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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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hmO5j029qT0

     

    후킹멘트 (300자 내외)

    "한 장군의 선택이 500년 왕조를 무너뜨렸다!" 1388년 5월, 압록강 위화도. 10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 장군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회군하라!" 그의 외침 한마디에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최영 장군은 개경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왕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과연 이성계는 왜 회군을 결심했을까요? 그리고 이 선택이 고려 500년 역사를 어떻게 끝냈을까요? 한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위화도 회군의 모든 것을 지금 만나보시겠습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위화도 회군의 전말을 생생하게 재구성했습니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 이북을 요구하자 고려는 무리한 요동 정벌을 결정합니다. 이에 반대했던 이성계는 결국 출정하지만, 위화도에서 역사적 회군을 단행합니다. 최영과 이성계의 권력 대결, 우왕의 운명, 그리고 새로운 왕조 조선의 탄생까지. 한 장군의 결단이 어떻게 500년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역사를 열었는지,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드립니다.

    ※ 요동 정벌의 서막

    1388년 정월, 개경의 궁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명나라에서 보낸 국서가 도착한 것입니다. 우왕과 신하들이 모인 가운데, 사신이 국서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명나라 황제의 조서를 받들라. 철령 이북의 땅은 원래 원나라의 영토였으므로, 이제 명나라에 귀속시켜 철령위를 설치하노라."
    조정은 순식간에 술렁였습니다. 철령은 지금의 함경도 지역으로, 고려가 북진 정책으로 수십 년에 걸쳐 개척한 땅이었습니다. 이 땅을 명나라에 넘기라는 것은 고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고려에 대한 모욕이다!" "철령은 우리 선조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땅이 아니냐!"
    최영 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고려의 최고 실력자였습니다. 수십 년간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친 명장이었고,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했습니다. "전하, 명나라의 무례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요동을 쳐서 명나라의 기세를 꺾어야 합니다!"
    최영의 제안에 조정은 다시 한번 술렁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걱정 섞인 소리들이었습니다. "요동 정벌이라니, 그것은 너무 무모한 일입니다." "명나라는 대국입니다. 우리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신하들 대부분은 명나라를 두려워했습니다. 명나라는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 세운 강대국이었으니까요.
    우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아직 젊었고, 왕권도 약했습니다. 사실 우왕은 공민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최영 같은 강력한 신하의 도움 없이는 왕위를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최영 장군의 말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명나라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오..."
    그때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바로 이성계였습니다. 이성계는 동북면 출신의 무장으로, 왜구 토벌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활 솜씨가 뛰어나 '신궁'이라 불렸습니다. "전하, 신은 요동 정벌을 반대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습니다.
    "이성계,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가?" 최영이 눈을 부라렸습니다. 이성계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요동 정벌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합니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농사철을 해치는 일입니다."
    이성계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셋째, 온 나라 군사가 출동하면 왜구가 그 틈을 노릴 것입니다. 넷째, 지금은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풀리고 군사들이 질병에 걸릴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이유로 신은 요동 정벌을 반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기록된 '사불가론(四不可論)'입니다.
    최영은 분노했습니다. "이성계! 그대는 겁쟁이인가? 명나라가 무서워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성계는 침착했습니다. "신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다만 무모한 전쟁으로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고자 할 뿐입니다." 두 사람의 대립은 조정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최영은 우왕을 설득했습니다. "전하, 이성계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약한 모습을 보이면 명나라는 더욱 우리를 무시할 것입니다. 요동을 쳐서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왕은 결국 최영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좋소. 요동 정벌을 단행하시오. 이성계, 그대가 우군도통사가 되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시오."
    이성계는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왕명이니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불길한 예감이 가득했습니다. '이 전쟁은 재앙이 될 것이다...' 1388년 4월,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10만 대군을 이끌고 개경을 출발했습니다. 백성들은 길가에 나와 군사들을 배웅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 이성계의 반대와 출정

    출정길에 오른 이성계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10만 대군이 압록강을 향해 북쪽으로 행군했습니다. 군사들은 무겁게 갑옷으로 무장했고, 각자 보름치 식량을 짊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 전쟁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행군 중에 이성계는 믿을 만한 장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조영규, 이지란, 조준 등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성계를 따르는 신하들이었습니다. "장군님, 정말로 요동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조영규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성계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고 싶소. 하지만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 않소?" 이지란이 말했습니다. "장군님, 이 전쟁은 승산이 없습니다. 명나라 군사는 수십만입니다. 우리 10만으로 어찌 당하겠습니까?"
    "나도 잘 알고 있소." 이성계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소. 일단 압록강까지 가보고 상황을 봅시다." 군사들은 계속 북으로 향했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고, 군사들은 땀을 흘리며 행군했습니다.
    한편 개경에서는 최영이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성계를 믿지 못했습니다. '이성계가 정말 요동을 칠까? 아니면 중간에 배신할까?' 최영은 이성계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들을 군대에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위상이 워낙 높아서 함부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왕도 불안했습니다. "경들, 이성계가 정말 명나라를 칠 것이오?" 신하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전하, 이성계는 충신입니다. 왕명을 따를 것입니다." "아닙니다, 전하. 이성계는 야심이 큰 사람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5월이 되었습니다. 이성계의 군대는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 도착했습니다. 위화도는 압록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강을 건너면 요동이었습니다. 이성계는 군사들에게 섬에 주둔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랑비였지만, 점점 세차게 쏟아졌습니다. 장마철이 시작된 것입니다. 비는 며칠 동안 그치지 않았습니다. 군사들은 젖은 땅에 천막을 치고 비를 피했지만, 모두가 흠뻑 젖었습니다.
    "장군님, 군사들이 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조영규가 보고했습니다. "식량도 떨어지고 있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가 없습니다." 이성계는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압록강은 불어나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건너편 요동 땅은 아득히 멀어 보였습니다.
    이성계는 천막 안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승산이 없고, 뒤로 물러서자니 왕명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사들의 신음 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왔습니다. "물을 주십시오..." "배가 고픕니다..." 군사들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왔습니다. 정도전은 학자 출신으로, 이성계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군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정도전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이 전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계속 여기 있으면 군사들만 죽을 뿐입니다."
    "자네 말이 맞소." 이성계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회군하면 최영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소." 정도전은 이성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장군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회군하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정도전은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아십니다. 최영의 정책은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우왕은 무능하고, 조정은 부패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고려는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회군하여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 백성을 위한 일입니다."
    이성계는 긴 침묵 끝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알겠소. 회군하겠소." 정도전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장군님." 그날 밤, 이성계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일이면 역사가 바뀔 것이었습니다.

    ※ 위화도의 고민

    위화도의 밤은 길고 어두웠습니다. 빗소리가 천막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고요를 깼습니다. 이성계는 촛불 아래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회군을 결심했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면 두려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왕명을 거역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역성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새벽녘, 이성계는 핵심 장수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조영규, 이지란, 조준, 정도전, 남은 등이 조용히 천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두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오늘 중대한 결정을 내렸소." 이성계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습니다.
    "회군하겠소. 이 무모한 전쟁을 멈추고 개경으로 돌아가겠소." 장수들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조영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장군님, 회군하면 최영이 우리를 역적으로 몰 것입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이성계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최영을 제거해야 하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영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하오. 고려는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소. 무리한 요동 정벌, 과중한 세금, 부패한 권문세족... 이대로는 나라가 망하오."
    정도전이 말했습니다. "장군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권력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장군님께서 그럴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성계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나는 권력이 탐나지 않소. 하지만 백성을 위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면 하겠소."
    이지란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장군님, 저희는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 장군님께서 가시는 길이 어디든,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른 장수들도 모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희도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 이성계는 감동하여 그들을 일으켰습니다.
    "고맙소. 하지만 이 길은 험난할 것이오. 우리는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소. 그래도 따르겠소?" 장수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장군님!" 이성계는 비로소 결심을 굳혔습니다. "좋소. 그럼 내일 새벽, 회군을 선포하겠소."
    그날 밤, 이성계는 편지를 한 통 썼습니다. 우왕에게 보내는 상소문이었습니다. "신 이성계는 삼가 아뢰옵니다. 요동 정벌은 불가합니다. 장마로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고, 군사들은 병들어 가고 있으며, 식량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강행하면 전군이 몰살당할 것입니다. 신은 부득이 회군하여 다시 계책을 세우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 상소문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최영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결국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칼을 갈았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애검이었습니다. "이 칼로 고려의 잘못된 것들을 베어낼 것이다."
    새벽이 밝았습니다. 비는 여전히 내렸지만, 조금 약해졌습니다. 이성계는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전군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전군은 즉시 회군 준비를 하라! 우리는 개경으로 돌아간다!" 군사들은 놀랐지만, 곧 환호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장수들은 반대했습니다. 최영이 보낸 심복들이었습니다. "장군님, 이것은 왕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이성계는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왕명도 중요하지만, 군사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오. 반대하는 자는 여기 남으시오. 나는 가겠소."
    결국 모든 군사가 이성계를 따랐습니다. 10만 대군이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압록강을 등지고 남쪽으로, 개경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기록된 '위화도 회군'입니다. 1388년 5월 22일, 조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역사를 바꾼 회군

    위화도를 떠난 10만 대군은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군사들의 사기는 높았습니다. 무모한 전쟁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와 핵심 장수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습니다.
    개경에서는 위화도 회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조정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최영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이성계가 감히! 감히 왕명을 거역하다니!" 그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습니다. "당장 역적으로 규정하고 토벌군을 보내야 합니다!"
    우왕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경, 이성계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소. 우리가 어찌 막겠소?" 최영은 자신만만했습니다. "전하, 걱정 마십시오. 신에게는 개경을 지키는 정예군이 있습니다. 이성계가 아무리 군사가 많아도 성벽을 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영의 자신감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는 이성계의 인망과 군사들의 충성심을 과소평가했습니다. 개경의 군사들조차 이성계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백성들은 무리한 요동 정벌을 반대하고 있었으니, 이성계의 회군을 지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성계의 군대는 빠르게 남하했습니다. 며칠 만에 평양을 지나고, 황주를 거쳐 개경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6월 초, 이성계는 개경 성 밖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10만 대군이 성을 에워싸자, 개경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성계는 먼저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사신을 보내 우왕에게 전했습니다. "신은 역적이 아닙니다. 다만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자 할 뿐입니다. 최영을 물러나게 하고, 요동 정벌을 중단한다면 신은 군사를 거두겠습니다." 하지만 최영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 이성계를 잡아들여야 한다!"
    최영은 개경의 군사를 동원하여 성문을 굳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성 안의 군사들은 싸울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가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토벌했던 동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성계 장군님과 싸워야 하나?" "장군님이 옳은 것 같은데..." 군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습니다.
    이성계는 정면 공격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성 안의 신하들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취한 것입니다. "최영의 잘못된 정책이 나라를 망치고 있소. 나와 함께 새로운 길을 열읍시다." 많은 신하들이 이성계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특히 신진사대부들은 적극적으로 이성계를 지지했습니다.
    며칠간의 대치 끝에,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성 안의 이성계 지지 세력들이 내부에서 움직인 것입니다. 6월 3일 밤, 성문이 안쪽에서 열렸습니다. 조민수가 이끄는 이성계의 정예군이 재빠르게 성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최영은 급히 군사를 모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성 안은 혼란에 빠졌고,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불필요한 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최영만 잡으면 된다! 다른 이들은 해치지 마라!" 그의 명령에 따라 군사들은 최영의 저택으로 향했습니다.
    최영은 마지막까지 항전했습니다. 70이 넘은 노장이었지만, 칼을 들고 맞서 싸웠습니다. "이놈들! 역적들! 내가 평생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지만 수십 명의 군사에게 둘러싸여 결국 사로잡혔습니다. "장군님, 칼을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 싸워봐야 소용없습니다."
    최영은 칼을 떨어뜨렸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고려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이제 고려도 끝이로구나..." 그는 포박되어 이성계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이성계는 복잡한 심정으로 최영을 바라보았습니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라를 위한 길입니다."
    최영은 이성계를 노려보았습니다. "이성계, 네가 지금은 이겼지만, 역사가 너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고 봐라. 네가 역적인지 영웅인지..." 이성계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개를 숙였을 뿐입니다. 최영은 결국 유배되었다가 얼마 후 사형당했습니다.
    우왕은 궁궐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군사들이 궁궐을 에워싸자, 그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계를 불러들이시오..." 이성계가 우왕 앞에 나아가 절했습니다. "전하, 신은 역적이 아닙니다. 다만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을 뿐입니다."
    우왕은 목소리를 떨며 물었습니다. "경은... 경은 나를 어찌하려는가?" 이성계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왕위에서 물러나셔야 합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으니, 그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우왕은 절망했습니다. "내가... 폐위되는구나..."
    며칠 후, 우왕은 공식적으로 폐위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창왕이 잠시 왕위에 올랐지만, 이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권력은 이미 이성계의 손에 있었습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시작된 정변은 성공한 것입니다. 고려 500년 역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권력의 재편

    우왕을 폐위시킨 후, 이성계는 신중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아직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역적으로 낙인찍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려 왕족 중에서 새 왕을 옹립하기로 했습니다.
    1389년, 공양왕이 즉위했습니다. 공양왕은 온순한 성품의 왕족이었고, 이성계는 그를 꼭두각시로 삼았습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모두 이성계가 장악했습니다. 그는 도통사가 되어 군사권을 쥐었고,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을 요직에 앉혔습니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오른팔이 되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장군님, 이제 고려는 끝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정도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여전히 망설였습니다. "역성혁명이란 쉬운 일이 아니오. 명분이 필요하오."
    정도전은 그 명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토지 제도를 개혁했습니다. 고려 말기의 권문세족들은 막대한 토지를 사유화하여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정도전은 '과전법'을 실시하여 토지를 재분배했습니다. "토지는 왕의 것이다. 공신과 관리에게 녹봉으로 나눠줄 뿐이다." 이 개혁으로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둘째, 불교 세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고, 사찰들은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우며 불교를 공격했습니다. "불교는 나라를 좀먹는다. 백성들이 절에 재산을 바치느라 가난해진다." 많은 사찰의 토지가 몰수되었습니다.
    셋째, 명나라와의 관계를 안정시켰습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요동 정벌이 중단되자, 명나라는 고려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성계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리는 명나라를 섬기겠습니다"라고 표명했습니다. 명나라 황제는 만족하며 고려의 새 정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성계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려 왕조에 충성하는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정몽주였습니다. 정몽주는 고려의 대학자이자 충신이었습니다. 그는 이성계의 정권을 인정했지만, 역성혁명에는 반대했습니다.
    "이 장군, 그대의 공은 크오. 하지만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은 옳지 않소." 정몽주가 이성계를 찾아와 간곡히 말했습니다. "고려를 개혁하면 되지 않소? 왜 새 왕조를 세우려 하시오?" 이성계는 난처했습니다. 정몽주는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그의 반대는 명분에 큰 타격이었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392년 어느 날 밤, 이방원은 정몽주를 선죽교로 유인했습니다. "정 선생님, 저희와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방원이 마지막으로 권유했습니다.
    정몽주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것이 바로 유명한 '단심가'입니다. 그는 고려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이방원은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정몽주가 다리를 건너는 순간, 철퇴가 그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정몽주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고려여... 영원하라..."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선죽교의 돌다리에는 정몽주의 피가 스며들어 얼룩이 되었습니다. 그 얼룩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정몽주가 제거되자, 이제 역성혁명을 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연일 이성계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청했습니다. "이 장군님, 이제 새 나라를 세우십시오!" "장군님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계속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였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의 간청으로 어쩔 수 없이 왕이 되는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1392년 7월, 신하들이 마지막으로 이성계에게 간청했습니다. "장군님, 더 이상 미루실 수 없습니다. 나라에 주인이 필요합니다!" 이성계는 마침내 승낙했습니다. "그렇다면... 부득이 신하들의 뜻을 받들겠소." 공양왕은 강제로 폐위되었고, 이성계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나이 58세였습니다. 신하들이 절하며 외쳤습니다. "폐하 만세! 만만세!" 고려 500년 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 조선이 탄생했습니다.

    ※ 고려의 종말과 조선의 탄생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국호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하들 사이에서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새 나라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정도전은 '조선'을 제안했습니다. "조선은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였습니다. 단군조선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 조선을 세웁시다."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소. 조선으로 하시오." 하지만 명나라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사신을 보내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과 '화령' 두 이름을 제시하고 선택을 요청했습니다. 명나라 황제는 '조선'을 선택했습니다. "조선은 좋은 이름이다. 옛 조선의 땅에 새 조선이 서는구나."
    국호가 정해지자, 다음은 도읍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개경은 고려의 수도였기에 새로운 곳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후보지가 검토되었습니다. 계룡산, 무악(현재의 서울 서쪽), 그리고 한양(현재의 서울) 등이었습니다. 정도전은 한양을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한양은 풍수지리상 명당입니다. 사대문이 들어설 자리가 완벽하고, 한강이 있어 수운이 편리합니다. 또한 나라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을 통제하기 좋습니다." 정도전의 설명에 이성계는 동의했습니다. 1394년, 한양으로 천도가 결정되었습니다.
    한양에는 궁궐이 세워졌습니다. 경복궁이었습니다. '경복'은 시경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큰 복을 누리다'는 뜻이었습니다.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궁궐 건설에는 수만 명의 백성들이 동원되었습니다. 3년에 걸친 대역사였습니다. 거대한 궁궐이 북악산을 배경으로 우뚝 섰습니다.
    이성계는 경복궁 근정전에 앉아 조선의 미래를 구상했습니다. "정도전, 우리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소. 이제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소?" 정도전은 준비해온 계획을 펼쳤습니다. "폐하, 신은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였습니다. 이것이 새 나라의 기본 법전이 될 것입니다."
    조선경국전은 조선의 통치 이념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왕도정치를 실현하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백성이 곧 하늘입니다.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안정됩니다." 정도전의 철학이었습니다.
    이성계는 만족했습니다. "좋소. 우리는 고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소. 권문세족이 백성을 괴롭히고, 토지를 독점하고, 부패가 만연했던 고려의 전철을 밟지 않겠소." 그는 신하들에게 엄명했습니다. "청렴하게 살아라. 백성을 위해 일하라. 그것이 우리가 새 나라를 세운 이유다."
    하지만 조선 초기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고려 왕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성계의 아들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이방원과 정도전 사이의 갈등은 심각했습니다. 정도전은 왕권을 제한하고 신하들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지만,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원했습니다.
    1398년, 이방원은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을 제거했습니다.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입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운 공신이었지만, 이방원의 칼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성계는 아들이 스승을 죽인 것에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물려주고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방원의 권력은 계속 커졌고, 결국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태종 이방원입니다.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나 여생을 보냈습니다.
    이성계는 1408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평생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운 개국 군주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옛 왕조를 무너뜨린 역신이라는 죄책감도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고 합니다. "내가 한 일이 옳았는지는 후세가 판단할 것이다."
    조선은 이성계가 세운 후 518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27대의 왕이 이어졌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고, 장영실은 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이순신은 나라를 구했습니다. 조선은 동아시아의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위화도 회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388년 5월, 압록강 위화도에서 이성계가 내린 결단. 그 선택이 한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만약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았다면? 요동 정벌을 강행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위화도 회군을 두고 여전히 논쟁합니다. 어떤 이는 이성계를 영웅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역적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선택이 한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고려 500년이 끝나고 조선 500년이 시작된 그 순간, 그것은 한 개인의 야심만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이성계는 왕이 되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시대가 그를 왕으로 만든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린 그 순간, 한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장은 500년 동안 이어져, 우리에게 한글과 문화, 그리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남겨주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위화도 회군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1388년, 한 장군의 결단이 500년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500년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성계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는 아직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결단이 우리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입니다.
    어르신들께서도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 있으셨을 겁니다. 때로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 결과를 평생 안고 사셨겠지요. 역사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결단을 내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또 다른 극적인 순간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고요, 늘 건강하시고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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