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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과 단경왕후 - 7일간의 신혼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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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200자):

    폭군 연산군의 시대, 피바람 속에서 싹튼 가장 순수한 사랑. 왕좌를 향한 거대한 운명 앞에 놓인 어린 부부. 단 7일, 허락된 시간은 그뿐이었다. 역사상 가장 짧고 비극적인 신혼, 그들의 마지막 밤을 엿보다.

    디스크립션 (300자):

    연산군의 폭정에 신음하던 조선, 왕의 동생 진성대군(훗날 중종)은 거창군 신씨(훗날 단경왕후)와 혼인한다. 정략결혼이었지만, 첫날밤부터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반정의 칼날이 장인 신수근을 겨누면서, 7일간의 달콤한 신혼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 어색하지만 설렘 가득한 첫날밤, 어린 부부는 서로에게 운명처럼 이끌린다.

    온 나라가 폭군의 그림자 아래 신음하던 밤, 진성대군 이역의 사가에서는 조촐하지만 엄숙한 혼례가 치러졌다. 상대는 좌의정 신수근의 딸, 훗날 단경왕후라 불릴 여인 신씨였다.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과 왕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의 만남. 누구도 섣불리 축복을 말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정략결혼이었다. 화려한 예복과 복잡한 절차가 끝나고, 마침내 두 사람만이 신방에 남겨졌다. 거대한 용과 봉황이 수놓아진 붉은 비단 이불 위, 앳된 얼굴의 신부와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신랑은 그저 어색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진성대군이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인, 많이 고단했을 터인데….”

    그의 목소리는 앳되면서도 듣기 좋게 울렸다. 신씨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고개를 저었다. 붉은 연지곤지 아래로 긴장감에 상기된 하얀 뺨이 언뜻 비쳤다. 진성대군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에 꽂힌 무거운 족두리를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족두리가 벗겨지자, 칠흑같이 검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은은한 난향이 그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내가… 도와주겠소.”

    진성대군은 그녀의 옷고름으로 손을 가져갔다. 겹겹이 껴입은 활옷의 옷고름은 생각보다 풀기 어려웠다. 그의 손이 자꾸만 헛돌자, 신씨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들어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덮었다. 화들짝 놀란 진성대군이 그녀를 바라보자, 신씨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대군.”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등불 아래에서 별처럼 반짝였다. 그 순간, 진성대군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정략결혼, 왕의 감시, 위태로운 자신의 처지.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신씨가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두꺼운 활옷을 벗자, 얇은 속적삼 아래로 가녀린 어깨선과 봉긋한 가슴의 윤곽이 드러났다. 진성대군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방 안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신씨의 어깨가 작게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낯설지만 싫지 않은 사내의 체향과 거친 숨결이 그녀의 모든 감각을 깨우고 있었다. 진성대군은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부인… 오늘부터 그대는 나의 사람이오.”

    그의 목소리는 욕망과 설렘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속적삼을 벗겨내렸다. 달빛처럼 희고 고운 살결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자, 진성대군은 낮은 신음을 터뜨렸다. 그는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그녀의 어깨와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신씨는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끼며 작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하얀 몸 위로 그의 뜨거운 손길이 천천히, 그리고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남자의 손길에 부끄러워 몸을 뒤틀면서도, 그녀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길을 따라 자신의 몸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하나의 몸처럼 붉은 비단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태초의 본능과 서로를 향한 뜨거운 열망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앳된 부부의 첫날밤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든 깊고 은밀한 시간 속에서 서툴지만 격정적으로 깊어가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면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하나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 7일간의 짧은 신혼,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은 채 사랑을 키워나간다.

    첫날밤의 어색함과 격정은 이튿날 아침, 풋풋한 설렘과 수줍음으로 바뀌었다. 나란히 겸상에 앉아 아침 수라를 받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진성대군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맞은편에 앉은 아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밤새 자신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모습, 아침 햇살에 비친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발그레한 뺨.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신씨 역시 힐끔힐끔 남편을 훔쳐보며 숟가락만 깨작거렸다. 어젯밤,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탐하던 그의 대담한 손길과 뜨거운 숨결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인, 왜 그리 깨작거리시오? 반찬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이오?”

    진성대군이 짐짓 걱정스러운 투로 묻자, 신씨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 혹시 내가 어젯밤 너무 무례했다면….”

    그의 말에 신씨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녀는 다급하게 그의 말을 막았다.

    “아니,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더듬거리는 아내의 모습이 귀여워, 진성대군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웃음소리에 신씨도 따라 웃었다. 딱딱한 궁중 법도와 감시의 눈길을 벗어나,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는 이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이 가득했다. 그날 이후, 7일간의 시간은 꿈처럼 흘러갔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단둘만 남은 것처럼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낮에는 함께 서책을 읽거나 정원을 거닐었고, 밤이 되면 언제나 그랬듯 서로의 몸을 탐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하루는 진성대군이 신씨를 데리고 사가 뒤편의 작은 연못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그곳은 두 사람만의 비밀 장소였다. 진성대군은 신씨의 손을 잡고 연못가에 앉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물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부인, 나는 부인을 만나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감옥 같았소. 형님의 서슬 퍼런 눈초리 아래,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았지.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소. 그대가 내 곁에 있으니.”

    그의 진심 어린 고백에 신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군. 정략결혼이라 들었을 때, 제 삶도 끝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군을 만나고, 대군의 아내가 된 지금이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연민,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었다. 진성대군은 그녀의 붉어진 눈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날이 덥소. 우리, 함께 목욕이라도 하겠소?”

    그의 짓궂은 제안에 신씨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두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연못 옆에 마련된 작은 목욕탕으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탕 안에 나란히 몸을 담그자, 세상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했다. 진성대군은 젖은 수건으로 신씨의 등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녀의 하얀 살결 위로 붉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신씨는 그의 넓은 어깨에 기댄 채, 그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물속에서 서로의 다리가 얽히고, 맨살이 부드럽게 스칠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부인….”

    진성대군이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는 신씨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물방울이 맺힌 그녀의 입술은 탐스럽게 붉었고,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목선은 매혹적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물속에서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신씨도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뜨겁게 응했다. 좁은 탕 안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물소리로 가득 찼다.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듯, 격렬하게 서로를 원하고 또 원했다. 7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평생 나눌 사랑을 모두 쏟아붓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처럼 달콤한 행복 뒤에 얼마나 잔인한 비극이 칼날을 숨긴 채 기다리고 있는지를.

    ※ 반정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진성대군은 사랑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다.

    꿈결 같던 신혼의 단꿈은 며칠 지나지 않아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성대군의 사가 주변으로 낯선 그림자들이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든 공신들이 은밀하게 진성대군에게 접촉해왔다. 그들은 피로 물든 조정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진성대군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려는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군,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폭군의 칼날이 언제 대군의 목을 겨눌지 모릅니다. 부디 용단을 내리시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박원종이 비장한 표정으로 진성대군 앞에 엎드려 간청했다. 진성대군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왕이 되어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왕이 된다는 것은, 곧 아내의 집안을 멸문시킨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장인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자, 끝까지 왕에게 충성을 다할 인물이었다. 반정이 성공한다면, 신수근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아내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어야 하는가. 사랑과 대의. 잔인한 갈림길 앞에서 그는 밤새 잠 못 이루고 고뇌했다.

    그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씨는 여전히 해맑았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눈치채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서방님, 요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지요?”

    진성대군은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니오, 아무 일도. 그저… 부인이 너무 고와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그렇소.”

    그는 거짓말을 하며 아내의 입술을 막았다. 평소보다 더욱 거칠고 다급한 입맞춤이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그는 아내의 품을 절박하게 파고들었다. 신씨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지만, 묵묵히 그를 받아주었다.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의 정사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달콤하고 풋풋했던 사랑의 행위는, 이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불안을 잠재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진성대군은 신씨의 하얀 몸을 샅샅이 훑으며, 그녀의 모든 것을 자신의 안에 담으려는 듯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안에서 자신의 불안과 죄책감을 씻어내고 싶었다. 신씨는 고통과 쾌감이 뒤섞인 묘한 감각 속에서, 남편의 등을 힘껏 끌어안고 가늘게 신음했다.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잔근육의 떨림과 거친 숨소리가, 그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의 슬픔을 나누고 싶었다.

    “서방님… 괜찮습니다. 제가 곁에 있습니다.”

    그녀의 위로에, 진성대군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린아이처럼 흐느꼈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는 곧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될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녀를 역적의 딸로 만들어야만 했다. 이것이 왕이 되려는 자가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무게란 말인가.

    “미안하오… 부인. 정말 미안하오….”

    그의 울음 섞인 사죄에, 신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그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반정의 칼바람은 이미 그들의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7일간의 짧고 달콤했던 신혼은, 이제 피로 물든 비극의 서막을 향해 속절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면, 두 사람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 거사일 밤, 진성대군은 아내를 속이고 반정에 나선다. 신씨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운명의 날 밤, 바깥은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려 있었다. 진성대군은 평소보다 일찍 침소에 들었다. 그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 밤, 그의 인생과 조선의 운명을 뒤바꿀 거사가 시작될 터였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아내, 신씨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이 밤이 지나면, 이토록 어여쁜 아내를 자신은 ‘역적의 딸’이라 불러야만 했다.

    “서방님, 어디 편찮으신 것입니까? 손이 이리도 차갑습니다.”

    신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자, 진성대군은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지로 짓눌렀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침상으로 이끌었다.

    “괜찮소. 그저… 부인이 보고 싶어 급히 왔을 뿐이오.”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밤을, 온전히 그녀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는 신씨의 옷고름을 풀며, 그녀의 목덜미와 어깨에 깊게 입을 맞췄다. 평소와 다른 그의 조급하고 거친 애무에 신씨는 당황했지만, 그의 불안을 잠재워주려는 듯 조용히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몸 곳곳에 절박한 흔적을 남겼다. 마치 이 순간의 감촉과 향기를 영원히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부인… 나를 용서하시오.”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잠겨 있었다. 신씨는 영문을 몰랐지만, 그의 떨리는 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저는 언제나 서방님의 사람입니다. 용서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녀의 위로는 오히려 그의 심장을 더욱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진성대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거칠게 탐했다. 쾌감보다는 슬픔과 절망이 더 큰 정사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몸의 모든 굴곡을 필사적으로 더듬었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는 만질 수 없을지도 모를 그녀의 몸이었다. 신씨는 그의 격렬한 움직임 아래에서 고통과 알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몸은 분명 자신과 함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의 몸이 뜨겁게 얽힐수록, 방 안의 공기는 역설적으로 차갑게 식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력이 다한 진성대군이 그녀의 곁에 쓰러지듯 누웠다. 밖에서는 약속된 신호인 듯, 빗소리에 섞여 희미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부인, 잠시… 만나고 올 사람이 있소. 금방 다녀올 터이니, 기다리고 있으시오.”

    신씨는 불길한 예감에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 깊은 밤에 어디를 가시려는 것입니까? 제발… 가지 마십시오.”

    그녀의 눈에는 애원이 가득했다. 진성대군은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돌아섰다. 지금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사내의 일이오. 그저 나를 믿고 기다리시오.”

    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텅 빈 방에 홀로 남은 신씨는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밤새 그의 옷가지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7일간의 신혼은,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서막과 함께 끝나가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마침내 거대한 함성과 칼 부딪치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 왕이 된 진성대군, 하지만 반정공신들은 역적의 딸을 폐위하라 압박한다.

    반정은 성공했다. 하룻밤 사이에 진성대군은 조선의 새로운 왕, 중종이 되었다. 연산군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피로 얼룩졌던 광기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백성들은 새로운 왕의 등극에 환호했다. 하지만 용상에 앉은 중종의 얼굴에는 기쁨 대신 깊은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신씨의 ‘서방님’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군주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반정의 과정에서 역적으로 몰려 처참하게 죽은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였다.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박원종을 비롯한 반정공신들이 조회를 열어 핏대를 세웠다.

    “전하! 역적 신수근의 딸을 국모의 자리에 둘 수는 없사옵니다! 이는 종묘사직을 능멸하는 일이자, 반정의 공의를 무너뜨리는 일이옵니다! 속히 폐위하시어 종사의 기틀을 바로 세우소서!”

    수십 명의 공신들이 대전 바닥에 엎드려 곡을 하며 왕을 압박했다. 그들의 손에는 아직 반정의 피가 마르지 않은 칼이 들려있는 듯했다. 중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왕이었지만, 공신들이 등에 업고 세운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아내를 폐위시킬 힘이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아내를 지킬 힘이 없었다.

    “과인은… 부덕하여 경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소. 국혼은 천륜이 정하는 법. 어찌 사람의 뜻대로 아내를 내칠 수 있단 말이오.”

    그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하지만 공신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전하!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대의를 그르치려 하시옵니까! 역적의 딸이 품은 한이, 언제 전하의 용상에 비수가 되어 꽂힐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협박 섞인 외침이 텅 빈 대전을 울렸다. 중종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7일 동안 매일 밤 자신의 품에 안겨 수줍게 웃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 달콤한 향기, 쾌감에 젖어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선명했다.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녀마저 내쳐야 한단 말인가. 그는 차라리 이 용상을 버리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날 밤, 중종은 텅 빈 교태전(왕비의 침전)을 찾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던 곳. 하지만 이제 그곳에는 싸늘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친정으로 내쫓기듯 돌아가,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다. 중종은 그녀가 쓰던 경대 앞에 앉아, 그녀의 체취가 남은 빗을 집어 들었다. 빗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난향이 풍겨왔다. 그는 빗을 가슴에 품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

    “부인… 내가… 내가 대체 어찌해야 하오….”

    왕의 침실은 넓고 화려했지만, 그에게는 차가운 감옥과도 같았다. 그는 붉은 용포를 벗어 던졌다. 왕의 옷은 그에게 너무나도 무겁고 버거웠다.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차가운 바닥에 웅크렸다. 그녀와 함께일 때는 그토록 뜨거웠던 자신의 몸이, 지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 없는 밤은 이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무력함에 치를 떨며,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듯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사랑하는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왕.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공신들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중종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눈물 속의 마지막 밤, 평생을 그리워하게 될 7일간의 사랑이 막을 내린다.

    결국, 중종은 공신들의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 단경왕후 신씨의 폐위가 결정되었다. 그녀가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단 7일 만의 일이었다. 사약을 내리라는 공신들의 서슬 퍼런 요구를, 중종은 눈물로 거두어 사가로 내치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 지었다. 폐위 교지가 내려지기 전날 밤, 중종은 신하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말을 타고 그녀가 머무는 사가로 향했다. 그것이 그가 왕으로서가 아닌, 한 사내로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깊은 밤, 초라한 사가의 방문이 열리고 중종이 들어섰다. 며칠 만에 마주한 신씨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왕의 곤룡포를 입은 그를 보자마자, 예를 갖춰 큰절을 올리려 했다. 중종은 달려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이러지 마시오… 제발….”

    그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더 이상 왕도, 폐비도 아니었다. 그저 이별을 앞둔 한 쌍의 부부일 뿐이었다.

    “미안하오. 내가… 내가 힘이 없어서… 그대를 지켜주지 못했소.”

    중종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신씨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아닙니다, 전하. 부디 자책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무사하시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녀의 담담한 위로가 그의 심장을 더욱 아프게 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이 될 이 밤을,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중종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소복 옷고름을 풀었다. 7일 전, 설렘과 욕망으로 풀었던 그 옷고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슬픔과 체념의 무게만이 손끝에 가득했다. 뽀얀 속살이 드러나자,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차가운 살결 위로 뚝뚝 떨어졌다.

    “부디… 나를 잊지 마시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더라도….”

    “어찌 전하를 잊겠습니까. 제 서방님은… 이 세상에 오직 전하 한 분뿐입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몸을 섞었다. 그것은 정사라기보다는, 서로의 영혼에 마지막 흔적을 새기는 슬픈 의식과도 같았다. 격렬하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숨결을 확인하며, 다가올 이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듯, 느리고도 애틋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중종은 그녀의 안에서,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녀의 작은 신음 소리, 가쁜 숨결, 자신을 끌어안는 가녀린 팔의 힘까지도. 신씨 역시 그의 얼굴과 몸을 눈에, 그리고 가슴에 새겼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단 한 사람이었다.

    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지친 몸을 이끌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중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허리띠에 매달려 있던 붉은 비단 주머니를 풀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 내가 이 붉은 비단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오. 그때가 되면, 부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단 주머니를 가슴에 품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마지막 약조였다. 중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나섰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홀로 남은 신씨는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역사상 가장 짧았던 7일간의 신혼은, 그렇게 비극적인 사랑의 전설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권력 앞에 무너져야 했던 7일간의 비극적인 사랑, 중종과 단경왕후의 이야기였습니다. 평생을 서로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던 두 사람. 만약 여러분이 중종이었다면, 사랑과 왕좌 중 어떤 것을 선택하셨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한 임금의 유일한 사랑을 받았던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 정조와 의빈 성씨의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더 좋은 야담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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