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제9편 조선의 킹메이커들
태그 (20개)
#조선시대이야기, #정도전, #하륜, #한명회, #조선의킹메이커, #역사이야기, #조선왕조실록, #권력투쟁, #정치이야기, #조선시대야담, #태종이방원, #세종대왕, #세조, #역사다큐, #시니어유튜브, #중장년층, #교양콘텐츠, #한국사, #조선왕조, #잠오는이야기
조선시대이야기, 정도전, 하륜, 한명회, 조선의킹메이커, 역사이야기, 조선왕조실록, 권력투쟁, 정치이야기, 조선시대야담, 태종이방원, 세종대왕, 세조, 역사다큐, 시니어유튜브, 중장년층, 교양콘텐츠, 한국사, 조선왕조, 잠오는이야기


후킹멘트 (300자)
조선 600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책사, 정도전, 하륜, 한명회. 이들은 왕을 만들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했지만 이방원의 칼에 쓰러졌고, 하륜은 그 이방원을 왕으로 만들어 태종 시대를 열었습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세조로 만들며 조선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누가 승리했을까요? 세 천재 책사의 지략과 운명을 비교하며, 권력의 본질을 들여다봅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세 명의 위대한 책사 이야기입니다. 정도전은 조선의 설계자이자 개혁가였지만, 왕자의 난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았습니다. 하륜은 냉철한 전략가로 태종을 왕위에 올렸고,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주도해 세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들의 지략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운명을 생각해봅니다. 역사를 사랑하는 시니어 여러분께 바치는 깊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 조선을 설계한 남자
고려 말, 나라는 썩어가고 있었다. 권문세족들은 백성의 땅을 빼앗고, 왜구는 해안을 유린했으며, 명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한 선비가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바로 삼봉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1342년에 태어나 과거에 급제했지만, 권문세족의 횡포를 비판하다가 유배를 당했다. 전라도 나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다. 양반들에게 땅을 빼앗긴 농민들,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 그는 깨달았다. 이 나라는 고칠 수 없다. 아예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유배에서 풀려난 정도전은 1383년, 운명의 인물을 만났다. 바로 이성계였다.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한 무장 이성계. 둘의 만남은 역사를 바꾸었다.
"장군, 이 나라는 이미 썩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정도전의 말에 이성계는 망설였다. 역성혁명, 그것은 곧 반역이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하늘의 뜻은 백성에게 있고, 백성의 뜻은 장군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반역이 아니라 천명입니다."
정도전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먼저 과전법을 시행해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들의 땅을 몰수해 신진 사대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새로운 지배층을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반대파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정몽주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여론을 조성했다. 유학자들을 모아 "고려는 이미 천명을 잃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리고 이성계야말로 새 시대를 열 성군이라고 선전했다. 백성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성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1392년 7월 17일, 드디어 조선이 건국되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고, 정도전은 그 옆에서 나라의 모든 것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양을 새 도읍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지었다. 육조거리를 만들고, 관료 제도를 정비했다. "조선경국전"을 저술해 나라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정도전의 이상은 명확했다. 재상 중심의 나라. 왕은 상징적인 존재이고, 실제 정치는 유능한 신하들이 하는 나라. 그는 이성계에게도 말했다.
"전하, 왕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현명한 신하들의 조언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아들 방원은 달랐다. 방원은 정도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위험하다. 왕권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정도전은 또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렸다. 바로 요동 정벌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새로운 나라가 위세를 떨치려면 큰 승리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사병을 혁파하고 국가 중심의 군대를 만들었다.
"우리는 요동을 정벌해야 합니다. 그래야 명나라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정도전은 사병 혁파를 명분으로 왕자들의 군대까지 해체하려 했다. 특히 이방원의 사병을 없애려 했다. 방원은 분노했다.
"아버님, 정도전은 우리 왕자들을 무력하게 만들려 합니다. 그는 왕실을 약화시키려는 것입니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믿었다. 하지만 방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왕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 고민이 결국 비극을 불렀다.
정도전은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권력의 핵심은 이론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냉혹함을.
※ 왕자의 칼날
1398년 8월, 한양은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집에서 내일 있을 요동 정벌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진군 경로를 확인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군사는 충분했고, 보급도 준비되었다. 이제 왕의 최종 승인만 받으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도성 한편에서는 다른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방원의 집, 그곳에는 무장한 사병들이 모여 있었다. 방원은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다.
"형님, 정말 하시겠습니까?"
동생 방간이 물었다. 방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이다. 정도전이 우리의 군사를 모두 빼앗기 전에 먼저 손을 써야 한다."
방원의 옆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하륜이었다. 하륜은 정도전과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한 선비였지만, 그는 일찍이 방원의 편에 섰다.
"대군, 오늘 밤 정도전은 방심하고 있을 것입니다. 요동 정벌 준비로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하륜의 말에 방원은 냉소를 지었다.
"요동 정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정도전의 진짜 목적은 우리 왕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사병을 빼앗고, 왕권을 약화시켜, 자신이 실권자가 되려는 것이다."
하륜이 조용히 말했다.
"대군께서 결단을 내리신다면, 소인이 모든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밤 10시, 방원의 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용히 정도전의 집으로 향했다. 정도전은 여전히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대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도전이 놀라 일어섰다. 무장한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누구냐! 감히!"
정도전이 소리쳤다. 그때 방원이 나타났다.
"정승, 오래간만입니다."
정도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대군, 이것은... 역모입니다."
"역모는 당신이 하고 있었소. 왕자들의 군사를 빼앗고, 왕권을 무력화시키려 했지 않소?"
"대군,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다만 국가를 위해..."
"그만하시오. 당신의 말은 이제 듣기 싫소."
방원이 손을 들자 군사들이 정도전을 잡았다. 정도전은 끌려가면서도 소리쳤다.
"대군! 이렇게 하면 조선의 기틀이 무너집니다! 재상이 정치를 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일 뿐이오. 나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 것이오."
그날 밤, 정도전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도 모두 제거되었다. 남은, 심효생, 정도전과 함께 조선 건국을 이끌었던 개국공신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태조 이성계는 충격에 빠졌다. 자신의 가장 신임하던 신하가 아들의 손에 죽었다. 그는 방원을 불렀다.
"네가... 정말 그랬느냐?"
"예, 아버님. 정도전은 왕실을 위협했습니다. 제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조선을 만든 사람이었다."
"아버님, 조선을 만든 것은 아버님입니다. 정도전은 다만 도운 것뿐입니다."
이성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왕위를 둘째 아들 방과에게 물려주고 궁을 떠났다. 하지만 실권은 이미 방원에게 있었다.
2년 후, 1400년, 방원은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태종 이방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하륜이 있었다. 정도전을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륜. 이제 그가 새로운 킹메이커가 될 차례였다.
※ 냉철한 전략가
하륜은 정도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책사였다. 정도전이 이상주의자였다면, 하륜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정도전이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다면, 하륜은 왕권 강화를 추구했다.
하륜은 1347년생으로 정도전보다 5년 아래였다. 그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지만, 일찍이 이방원의 능력을 알아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성계가 왕이 되었지만, 진짜 왕재는 방원이라고.
"대군, 정도전은 위험합니다. 그는 왕자들의 힘을 빼앗으려 합니다."
하륜은 일찍부터 방원에게 조언했다. 방원도 하륜의 냉철한 판단력을 신뢰했다.
"하륜, 그대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선수를 쳐야 합니다. 정도전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결국 1차 왕자의 난은 하륜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정도전이 제거되었고, 방원이 실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아직 왕위는 방원의 것이 아니었다.
1400년, 방원의 동생 방간이 반란을 일으켰다. 2차 왕자의 난이었다. 방간은 생각했다. 형님이 정도전을 제거했으니, 나도 형님을 제거하면 왕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하륜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주상, 방간이 움직일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십시오."
태종은 하륜의 말을 믿었다. 과연 방간이 군사를 일으켰고, 태종의 군대가 이를 진압했다. 방간은 유배되었고, 태종의 권력은 확고해졌다.
이제 하륜은 태종의 가장 신임하는 신하가 되었다. 태종이 물었다.
"하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상, 왕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먼저 외척을 제거하십시오."
태종의 장인인 민제는 권력을 남용하고 있었다. 하륜은 이를 문제 삼았다.
"주상, 민제가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태종은 고민했다. 민제는 자신의 장인이었다. 하지만 하륜은 냉정했다.
"주상, 사사로운 정 때문에 나라를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결국 태종은 장인 민제와 처남들을 제거했다. 왕비 민씨마저 폐비시켰다. 이 결정에 태종은 평생 괴로워했지만, 하륜은 흔들리지 않았다.
"주상께서 옳은 결정을 하셨습니다."
하륜의 전략은 계속되었다. 그는 태종에게 조언했다.
"주상, 의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십시오. 그래야 왕권이 강화됩니다."
육조 직계제는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이 직접 육조를 관할하는 제도였다. 이것은 정도전의 재상 중심 정치와 정반대였다.
"또한 사병을 완전히 혁파하고, 국가 군대만 남겨야 합니다. 집현전을 설치해 왕의 정책을 뒷받침할 학자들을 양성하십시오."
태종은 하륜의 조언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조선은 강력한 왕권 국가가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세종대왕의 치세를 가능하게 만든 기반이 되었다.
하륜은 또한 대외 관계에도 능했다. 명나라와의 외교를 안정시키고, 왜구 문제를 해결했다. 여진족과의 관계도 정리했다.
"주상,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실리입니다. 명나라에게는 예를 갖추되, 우리의 이익은 챙겨야 합니다."
태종은 하륜을 믿었다. 하륜 덕분에 태종의 치세는 안정되었고, 조선은 탄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1416년, 하륜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태종이 직접 그의 병상을 찾았다.
"하륜, 그대는 나의 가장 큰 공신이었소."
"주상, 신은... 다만 주상을 도왔을 뿐입니다. 부디... 강한 조선을 만드십시오."
하륜은 눈을 감았다. 태종은 그를 위해 3일간 조회를 중지하고 애도했다. 하륜은 비록 정도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책사였다.
※ 수양의 그림자
시간이 흘러 1453년, 조선은 새로운 권력 투쟁의 시기를 맞이했다. 세종대왕이 승하한 지 2년, 젊은 문종이 즉위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12살의 어린 임금,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고명대신들. 하지만 진짜 실력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야심이 컸다. 그는 형 문종을 보며 생각했다. 왕위는 능력 있는 자가 차지해야 한다고.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그 자격이 있다고.
하지만 수양대군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명분이 없었다. 조카 단종은 정통 왕위 계승자였고, 세종의 신임을 받던 고명대신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김종서, 황보인, 이런 중신들은 수양대군을 견제했다.
그때 한 사람이 수양대군을 찾아왔다. 바로 한명회였다.
한명회는 1415년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했고, 겨우 급제한 후에도 중요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는 불만이 많았다.
"이 나라는 능력이 아니라 배경으로 사람을 쓴다. 나 같은 인재가 묻혀 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교묘하게 야심을 자극했다.
"대군, 이 나라는 지금 위기입니다. 어린 임금, 무능한 대신들. 누군가 나서야 합니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인은... 능력을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한명회는 정직했다. 수양대군은 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좋다. 그대가 나를 돕는다면, 내가 그대의 능력을 인정하겠다."
이렇게 해서 조선 역사상 가장 위험한 조합이 탄생했다. 권력욕이 강한 왕자와, 야심 찬 책사의 만남.
한명회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먼저 수양대군 주변에 사람들을 모았다. 권람, 홍윤성, 한확, 이런 인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현 체제에 불만이 있거나, 출세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대군, 김종서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김종서는 세종 때부터 중용된 명장이었다. 6진을 개척하고 여진족을 몰아낸 영웅. 그는 단종을 충성스럽게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종서는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명분이 필요합니다."
한명회는 교묘한 계책을 꺼냈다.
"대군, 안평대군을 이용하십시오."
안평대군은 수양의 동생으로, 예술가 기질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일부 신하들은 그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안평대군이 역모를 꾸민다는 소문을 퍼뜨리십시오. 그러면 김종서도 연루시킬 수 있습니다."
수양대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보라."
"먼저 궁궐 안팎에 우리 사람들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김종서의 집을 습격해 제거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다른 대신들도 제거합니다."
"단종은?"
"임금께서는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섭정을 하신다는 명분으로 실권을 장악하시는 것입니다."
한명회의 계획은 완벽했다. 수양대군은 감탄했다.
"그대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로다."
"소인은 다만 대군을 위할 뿐입니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수양대군의 군사들이 김종서의 집을 습격했다. 76세의 노장 김종서는 칼을 들 틈도 없이 살해당했다. 같은 시각, 황보인을 비롯한 고명대신들도 제거되었다.
다음 날 아침, 수양대군은 궁궐로 들어가 어린 단종을 만났다.
"전하, 역적들을 제거했습니다."
12살의 단종은 무서워 떨고 있었다.
"숙부... 김 대감은... 역적이 아닙니다..."
"전하, 이것은 모두 전하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소신이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단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양대군의 칼이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까.
계유정난은 성공했다. 수양대군이 실권을 장악했고, 한명회는 그 옆에서 모든 것을 조종했다. 2년 후인 1455년, 수양대군은 마침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세조의 탄생이었다.
※ 세 책사의 묘수들
이제 세 명의 천재 책사들이 사용했던 놀라운 전략들을 비교해보자. 각자의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이었다.
먼저 정도전의 가장 큰 무기는 '대의명분'이었다. 그는 단순히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이상 국가를 꿈꿨다.
정도전의 명언 중 하나가 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 그는 진심으로 백성을 생각했다. 과전법을 만들어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주려 했고, 불교의 폐해를 없애려 했다.
정도전은 또한 훌륭한 글쟁이였다. 그가 쓴 "조선경국전"은 조선의 헌법과도 같은 책이었다. 그는 글로써 사람들을 설득했다. "불씨잡변"을 통해 불교를 비판했고, 무수한 상소와 글로 여론을 주도했다.
하지만 정도전의 약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융통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상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간과했다. 이방원이라는 위험한 인물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성계가 나를 믿으니, 아들들도 감히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다음으로 하륜을 보자. 하륜의 가장 큰 무기는 '현실 감각'이었다. 그는 이상보다는 실리를 추구했다. 하륜은 말했다. "정치는 가능한 것의 예술이다.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하다가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하륜은 정도전과 달리 화려한 글재주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상황을 정확히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일찍이 이방원이 왕이 될 것을 예견했고, 그의 편에 섰다.
하륜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태종이 한번은 물었다. "하륜, 그대는 어찌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가?" 하륜이 대답했다. "주상, 소신은 항상 이기는 쪽에 서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실 정치입니다."
하륜은 또한 '타이밍'을 아는 사람이었다. 정도전을 제거할 때도, 민제를 제거할 때도, 그는 정확한 타이밍을 잡았다. 너무 일찍 움직이면 명분이 없고, 너무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하륜은 이 균형을 완벽하게 맞췄다.
하지만 하륜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비전의 부재'였다. 그는 뛰어난 실무자였지만, 정도전처럼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킹메이커로는 성공했지만,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기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명회를 보자. 한명회의 가장 큰 무기는 '냉혹함'이었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한명회는 말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리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계획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김종서는 충신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충신도 때로는 제거해야 합니다." 이 말에는 그의 냉혹한 본성이 드러난다.
한명회는 또한 '조직력'이 뛰어났다. 그는 수양대군 주변에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계유정난 당일, 각자의 역할이 완벽하게 분담되어 있었다. 누구는 김종서를 제거하고, 누구는 황보인을 제거하고, 누구는 궁궐을 장악하고. 마치 군대 작전처럼 정확했다.
한명회는 또 '생존 본능'이 강했다. 그는 세조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았고, 예종 때도, 성종 때도 권력을 유지했다. 그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위험할 때는 몸을 낮추고, 기회가 오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한명회의 약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존경하지는 않았다. 신하들도 그를 따랐지만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는 권력은 있었지만 사랑은 받지 못했다.
세 사람을 비교하면 이렇다. 정도전은 '선비 책사', 하륜은 '실무 책사', 한명회는 '음모 책사'였다. 정도전은 이상이 있었고, 하륜은 현실을 알았으며, 한명회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만약 이 세 사람이 같은 시대에 맞붙었다면 누가 이겼을까? 짧은 승부에서는 한명회가 이겼을 것이다. 그의 냉혹함과 결단력은 다른 두 사람을 압도한다. 중기전에서는 하륜이 이겼을 것이다. 그의 현실 감각과 타이밍은 완벽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도전이 이겼을 것이다. 역사는 결국 이상을 기억하니까.
※ 권력의 끝에서
이제 세 사람의 최후를 살펴보자.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각자의 인생을 상징한다.
정도전은 1398년 8월, 이방원의 칼에 맞아 죽었다. 56세였다. 그날 밤, 정도전은 자신의 집에서 끌려나왔다. 그는 끝까지 소리쳤다.
"대군! 이것은 잘못된 것이오! 조선의 기틀이 무너질 것이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칼이 그의 목을 쳤다. 조선의 설계자는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정도전이 죽은 후, 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저술들은 금서가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종대왕 때 정도전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은 정도전의 개혁 정신을 높이 샀다.
"정도전은 비록 방법은 틀렸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실했다."
세종은 정도전의 저술을 다시 꺼내 읽었고, 그의 정책 중 좋은 것들은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정도전의 정신은 세종 시대에 꽃을 피웠다. 집현전, 측우기, 훈민정음,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정도전의 개혁 정신이 있었다.
다음으로 하륜의 최후를 보자. 하륜은 1416년, 70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죽었다. 그는 임종 직전까지 태종을 걱정했다.
"주상, 부디 왕권을 강하게 유지하십시오. 그래야 세자가 편히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태종은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하륜, 그대가 없었다면 나는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오."
"주상, 그것은... 주상의 능력입니다. 소신은... 다만..."
하륜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태종은 그를 위해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었다. 하륜의 후손들도 대대로 번창했다.
하륜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하륜이 죽은 후, 태종은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륜의 집은 매우 소박했다. 큰 재산도 없었다.
"하륜은 평생 높은 벼슬을 했는데, 어찌 이리 가난한가?"
측근이 대답했다. "하륜 대감께서는 녹봉의 대부분을 가난한 선비들을 돕는 데 쓰셨습니다."
태종은 감동했다. 하륜은 권력을 탐했지만, 돈에는 욕심이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명회의 최후다. 한명회는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많은 것을 누렸다. 그는 1487년, 73세까지 살면서 엄청난 권력과 부를 축적했다.
한명회는 세조, 예종, 성종, 세 왕을 섬기며 권력을 유지했다. 그의 딸은 예종의 비가 되었고, 손녀는 성종의 비가 되었다. 그는 왕실의 외척이 되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한명회의 말년은 외로웠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모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한명회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말년에 어느 선비가 그를 찾아와 물었다.
"대감, 평생 권력을 누리셨는데, 후회되는 것은 없으십니까?"
한명회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너무 많은 사람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김종서 대감의 마지막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말을 듣고 선비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시겠습니까?"
한명회는 쓸쓸히 웃었다.
"아니. 아마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니까."
한명회는 148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성대했지만, 진심으로 그를 애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죽자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다. "드디어 괴물이 죽었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명회 사후에 그의 공로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한명회가 없었다면 세조의 개혁도, 성종의 태평성대도 없었을 것이라고.
세 사람의 최후를 비교하면 흥미롭다. 정도전은 일찍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남았다. 하륜은 평안하게 죽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명회는 오래 살았고 많은 것을 누렸지만, 외로웠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정도전은 시대를 앞서갔고, 하륜은 시대를 읽었으며, 한명회는 시대를 이용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세 사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했으나, 자신의 이상에 취해 현실을 보지 못했다. 하륜은 왕권을 강화하여 조선의 기틀을 다졌으나, 큰 뜻은 없었다. 한명회는 냉혹한 수단으로 권력을 잡았으나, 그 덕분에 나라가 안정되었다. 세 사람 모두 공과 과가 있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사람의 후손들 이야기다. 정도전의 후손들은 오랫동안 핍박받았지만, 나중에 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하륜의 후손들은 대대로 관직에 올라 평안하게 살았다. 한명회의 후손들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연산군 때 화를 입어 몰락했다.
유튜브 엔딩멘트
조선 600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책사, 정도전, 하륜, 한명회.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움직였습니다.
정도전은 이상을 꿈꿨지만 현실의 칼날에 쓰러졌고, 하륜은 현실을 읽고 평안한 최후를 맞았으며, 한명회는 냉혹한 수단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외로운 말년을 보냈습니다.
세 사람 중 누가 가장 성공한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자신의 시대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달콤하지만 외롭고, 이상은 아름답지만 위험하며, 현실은 냉혹하지만 안전합니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