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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사람, 파격적인 등용

빛나는 인생 2025. 8. 3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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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사람들, 파격적인 등용 『출처 - 조선왕조실록』

    태그 (20개)

    #정조대왕, #조선역사, #정약용, #박지원, #유득공, #실학파, #인재등용, #개혁정치, #조선후기, #역사드라마, #시니어, #규장각, #화성건설, #수원화성, #조선실학, #개혁군주, #문예부흥, #조선르네상스, #왕조실록, #역사교육

     

    후킹 멘트 (200자)

    "조선 500년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인재 등용을 단행한 정조대왕! 신분을 뛰어넘어 진짜 실력자들을 발탁한 혁신적 리더십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정약용, 박지원, 유득공... 이들은 어떻게 왕의 눈에 띄었을까요? 당파싸움이 극심하던 시대에 오직 능력과 인품만으로 승부한 정조의 진짜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의 혁신적인 인재 등용 정책을 다룬 역사 드라마입니다. 당파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능력과 인품으로 사람을 발탁했던 정조의 리더십과, 그 아래서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실학파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정약용의 개혁 사상, 박지원의 실용주의, 유득공의 역사 연구 등 우리 역사상 가장 빛나는 지성들의 만남을 시니어 세대의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진정한 리더십과 인재 경영의 교훈을 현대에 전합니다."

    ※ 정조 즉위와 새로운 비전

    1776년 3월, 창덕궁 인정전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할아버지 영조대왕이 승하하시고, 24세의 젊은 세손이 조선 제22대 왕으로 즉위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어요.
    "과인은 이제 이 나라의 왕이 되었다."
    정조는 왕좌에 앉으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지켜본 그에게는 왕위가 무거운 짐이자 동시에 개혁의 기회였어요.
    "전하, 신료들이 알현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내시의 고함과 함께 조정의 대신들이 줄지어 들어왔습니다. 노론의 거두 김종수, 소론의 유력자 서명응, 남인의 채제공... 모두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물들이었어요.
    "신들은 전하의 성덕을 받들어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끌겠사옵니다."
    김종수가 대표로 인사올리자, 다른 신하들도 일제히 절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어요.
    "경들의 충정은 잘 알겠다. 하지만 과인이 원하는 것은 당파의 화합이 아니라, 진정한 인재의 등용이다."
    정조의 말에 신하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새 왕의 의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거든요.
    "전하, 인재 등용이라고 하시니... 혹시 어떤 뜻이신지요?"
    서명응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과인은 노론이냐 소론이냐, 남인이냐 서인이냐에 관심이 없다. 오직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인품을 가진 자를 원한다."
    정조의 단호한 목소리에 대신들은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인사는 당파의 힘의 균형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무시하겠다는 것이었거든요.
    "전하, 하지만 조정의 안정을 위해서는..."
    채제공이 말하려다 정조의 시선에 말을 멈췄어요.
    "경들은 모르시는가?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농민들은 굶주리고, 상인들은 온갖 세금에 시달리고, 백성들은 관리들의 수탈에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당파 싸움만 하고 있으니..."
    정조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어요.
    그날 밤, 정조는 홀로 서재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창밖으로는 한양 시내의 불빛들이 보였지만, 그 불빛 하나하나가 고단한 백성들의 삶처럼 느껴졌어요.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조는 돌아가신 사도세자를 그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당파 싸움의 희생이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때 내시가 들어와 아뢰었습니다.
    "전하, 규장각 설치에 관한 건의서들이 올라왔사옵니다."
    "규장각?"
    "네. 도서 수집과 학문 연구를 위한 기관을 새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정조의 눈이 빛났습니다. 바로 이것이었어요. 기존의 당파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지식인 집단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다. 규장각을 설치하되, 기존의 당파와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뽑겠다."
    "어떤 기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실력이다. 진짜 학문적 능력과 나라를 개혁할 의지를 가진 자들을 찾아라."
    정조는 일어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어요.
    "과인은 새로운 조선을 만들 것이다. 당파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백성을 위해 일하는 신하들과 함께 말이다."
    며칠 후, 정조는 직접 성균관과 한성부를 돌아다니며 젊은 학자들의 글과 인품을 살펴봤습니다. 이런 왕의 행동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어요.
    "전하,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신분이 낮은 자들까지..."
    경호를 맡은 금위영 대장이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정조는 개의치 않았어요.
    "진짜 인재는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과인이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조는 한 젊은 학자의 글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성리학적 사고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개혁안을 제시한 글이었어요.
    "이 글을 누가 썼는가?"
    "남양주에 사는 정약용이라는 자입니다, 전하."
    "정약용... 어떤 집안인가?"
    "남인 계열이지만 그리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은 아닙니다."
    정조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당장 불러들이거라. 과인이 직접 만나보겠다."

    ※ 정약용과의 운명적 만남

    1777년 가을, 창덕궁 규장각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남양주에서 올라온 스물여섯 살의 젊은 학자 정약용이 왕을 알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약용인가?"
    문이 열리며 정조가 직접 들어섰습니다. 보통은 왕이 먼저 앉아 있고 신하가 들어와 절을 올리는데, 정조는 일부러 나중에 들어왔어요.
    "소... 소신 정약용, 성상께 문안드립니다!"
    정약용이 깊숙이 절을 올리려 하자, 정조가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형식적인 예는 그만하고, 자네가 쓴 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정조의 파격적인 말에 정약용은 당황했어요. 왕이 이렇게 격의 없이 대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거든요.
    "전하... 소신의 부족한 글을..."
    "부족하다고? 과인이 본 글 중에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이었다. 특히 농업 개혁에 관한 부분은 정말 감탄했다."
    정조는 정약용이 쓴 글을 펼쳐 보이며 말했어요.
    "여기서 자네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새로운 농업 기술을 보급해야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정약용의 눈이 빛났습니다. 평생 고민해온 문제를 왕이 직접 묻고 있었거든요.
    "전하, 소신이 생각하기로는 현재의 농업 제도가 너무 구시대적입니다. 농민들은 여전히 조선 전기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것으로는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농기구를 개발하고, 품종을 개량하며, 관개 시설을 정비해야 합니다. 또한 농민들에게 직접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정조는 정약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어요. 기존의 성리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발상이었습니다.
    "흥미롭군. 그런데 그런 개혁을 하려면 기존의 양반 지주들이 반발할 텐데?"
    "그렇습니다, 전하. 하지만 이대로 두면 조선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서양에서도 놀라운 기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약용의 말에 정조는 더욱 관심을 보였어요.
    "자네는 서양 문물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가?"
    "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 서적들을 공부했습니다. 그들의 과학 기술과 정치 제도 중에는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정약용은 가방에서 작은 책을 꺼냈어요.
    "이것은 서양의 수학책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들의 계산법은 우리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릅니다."
    정조가 책을 펼쳐보니, 복잡한 수학 공식들과 도표들이 정리되어 있었어요.
    "놀랍군! 자네가 직접 정리한 것인가?"
    "네. 또한 서양의 과학 기술을 이용하면 더 효율적인 건축과 토목 공사가 가능할 것입니다."
    정조의 마음이 뛰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자네 같은 인재가 어떻게 지금까지 묻혀 있었단 말인가?"
    "소신은 남인 계열이고, 집안도 그리 높지 않아서..."
    "과인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정조는 일어서서 정약용에게 다가갔습니다.
    "정약용, 과인과 함께 조선을 바꿔보지 않겠는가?"
    "전하..."
    "과인은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한다.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능력 있는 자가 인정받으며, 학문과 기술이 발달하는 나라 말이다."
    정약용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맺혔어요. 평생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소신의 미천한 재주로 과연..."
    "과인이 보증한다. 자네는 분명 조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 것이다."
    그날 이후 정약용은 정조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었습니다. 규장각에서 각종 정책을 연구하고, 왕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는 핵심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다산아."
    정조는 정약용에게 '다산(茶山)'이라는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차밭이 있는 산처럼, 자네의 학문도 항상 푸르고 생명력이 넘치기를 바란다."
    "감사합니다, 전하. 소신은 평생을 바쳐 전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정약용은 그날의 감동을 평생 잊지 않았어요. 신분과 당파를 뛰어넘어 순수하게 능력만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경험이었거든요.
    며칠 후, 정조는 조정에서 파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과인은 정약용을 희릉참봉에 임명한다."
    "전하! 정약용은 아직 과거도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김종수가 반대했지만, 정조는 단호했어요.
    "과거 시험이 능력의 전부는 아니다. 과인이 직접 그의 실력을 확인했다."

    ※ 박지원의 실용주의와 유득공의 역사 의식

    1780년 여름, 한 권의 책이 한양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바로 박지원이 중국 여행을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였어요. 이 책은 기존의 고루한 중국관을 완전히 뒤바꾸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전하, 이 책을 꼭 읽어보셔야 합니다."
    정약용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정조에게 『열하일기』를 건넸어요.
    "박지원이 쓴 책인가? 어떤 내용이길래..."
    정조가 책을 펼치자, 첫 페이지부터 놀라운 내용이 펼쳐졌습니다.
    '중국의 벽돌집은 우리나라 기와집보다 따뜻하고 견고하다. 그들의 수레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우리는 왜 아직도 이런 기술을 배우지 않는가?'
    "이런... 박지원이 이렇게 솔직하게 썼단 말인가?"
    정조는 계속 읽어 내려갔어요. 박지원은 중국에서 본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실용적인 기술과 상업 발달에 대한 부분은 정조도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당장 박지원을 불러들이거라."
    며칠 후, 오십이 넘은 박지원이 궁궐에 나타났습니다. 노련한 지식인다운 풍모였지만, 눈빛만은 젊은이처럼 생기가 넘쳤어요.
    "박지원인가?"
    "소신 박지원, 전하께 문안드립니다."
    "자네의 『열하일기』를 읽었다. 정말 놀라운 책이더군."
    박지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어요. 자신의 책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문제가 될까봐 걱정했거든요.
    "전하, 혹시 소신이 너무 과격하게..."
    "과격하다고? 아니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것이다. 과인이 바로 이런 시각을 원했다."
    정조의 말에 박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자네는 중국에서 무엇을 보고 가장 충격을 받았는가?"
    "전하, 그들의 상업과 수공업 발달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농업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은 이미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박지원은 가방에서 작은 물건들을 꺼냈어요.
    "이것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이 시계, 이 나침반, 이 계산기... 모두 우리보다 훨씬 정교하고 실용적입니다."
    정조가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감탄했어요.
    "정말 놀랍군. 우리도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없을까?"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기존의 사농공상 질서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상업과 수공업을 천시하는 풍토를 바꿔야 해요."
    박지원의 말에 정조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맞다. 과인도 같은 생각이다. 백성들이 잘 살려면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야 한다."
    그때 정약용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했어요.
    "전하, 이분은 유득공입니다. 역사 연구에 뛰어난 분입니다."
    "유득공인가?"
    서른대 중반의 유득공이 앞으로 나와 절을 올렸습니다. 얼굴에는 깊은 사색의 흔적이 배어 있었어요.
    "전하께 문안드리옵니다."
    "자네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
    "소신은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득공은 두꺼운 원고 뭉치를 꺼냈어요.
    "이것은 『발해고』라는 책입니다. 발해가 우리 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서입니다."
    "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정조는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발해는 말갈족의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거든요.
    "네, 전하.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나라로, 엄연히 우리 역사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유득공의 설명에 정조는 점점 흥미를 보였어요.
    "그럼 우리 역사가 지금보다 훨씬 웅대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뿐만 아니라 발해까지 포함하면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는 훨씬 넓었습니다."
    "놀랍군! 이런 연구가 왜 지금까지 없었단 말인가?"
    박지원이 옆에서 대답했어요.
    "전하, 지금까지는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 너무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작게 생각한 거죠."
    정조는 깊이 생각에 잠겼어요. 그동안 조선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폐쇄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인은 결심했다. 자네들과 함께 새로운 조선을 만들겠다."
    정조는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어요.
    "정약용은 과학 기술과 농업 개혁을, 박지원은 상업과 산업 발전을, 유득공은 우리 역사의 정체성 확립을 담당해다오."
    "전하..."
    세 사람 모두 감격했어요. 왕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역할을 부여해 준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전하, 기존 세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박지원이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과인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반대한들 어쩌겠는가?"
    정조의 단호한 의지에 세 사람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를 만들 것이다!"

    ※ 화성 건설과 정약용의 활약

    1789년 봄, 정조는 조정에서 충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과인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으로 이장하고, 그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
    "전하! 그런 대역사를 왜 갑자기..."
    영의정 채제공이 당황하며 반대했지만, 정조의 의지는 확고했어요.
    "아버지를 모실 합당한 곳을 마련하는 것이 아들의 도리이다. 그리고 그곳을 조선 최고의 계획도시로 만들겠다."
    정조는 정약용을 불러들였습니다.
    "다산아, 자네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겠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전하."
    "화성, 즉 수원의 새 성곽을 설계해다오. 다만 기존의 성과는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성이어야 한다."
    정약용은 가슴이 뛰었습니다. 평생의 꿈이었던 과학 기술을 실제 건축에 적용할 기회가 온 것이었어요.
    "전하, 소신이 연구해온 서양의 건축술을 활용해보겠습니다."
    "좋다. 예산은 걱정하지 말고,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인력을 동원하라."
    정약용은 즉시 화성 설계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서양 서적에서 본 과학적 측량법과 기하학적 설계 원리를 도입했어요.
    "이렇게 보시오."
    정약용이 다른 기술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기존의 성곽은 지형에 맞춰 대충 쌓았지만, 우리는 정확한 측량을 통해 최적의 방어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할 것이오."
    그는 성곽의 각 구간마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각도와 높이를 적용했어요. 또한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치성과 포루의 위치도 과학적으로 배치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런 정교한 설계는 처음 봅니다."
    현장 감독관이 감탄했어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거운 석재를 어떻게 운반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화성 건설에는 수만 개의 거대한 돌이 필요했는데, 사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전하, 큰 돌을 나르는 일이 너무 어렵습니다. 수백 명이 매달려도 움직이지 않는 바위들이 많습니다."
    현장 책임자가 고민을 털어놓자, 정조는 정약용에게 물었어요.
    "다산아, 좋은 방법이 없을까?"
    "전하, 소신이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정약용은 며칠 동안 밤낮으로 고민한 끝에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거중기'였어요.
    "이것을 보시오!"
    정약용이 현장에 나타난 거중기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도르래의 원리를 응용한 이 기계는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체를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었어요.
    "세상에... 저 큰 바위가 저렇게 쉽게!"
    인부들이 감탄하며 지켜봤습니다. 평소 백 명이 달라붙어도 움직이지 않던 거대한 석재가 거중기 하나로 가볍게 들어 올려졌거든요.
    "다산, 정말 대단하다! 이 기계 하나로 공사 기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겠구나!"
    정조도 흥분해서 말했어요.
    정약용은 거중기 외에도 여러 가지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활차(滑車)로 무거운 자재를 수평 이동시키고, 정밀한 측량 도구로 성곽의 정확한 위치를 잡았어요.
    "이번 화성 건설은 단순한 성곽 공사가 아니다. 조선의 과학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시험대이다."
    정약용의 말처럼 화성 건설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의 총집합이었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인부들의 작업 효율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전하, 인부들에게 품삯을 제대로 주고, 좋은 음식도 제공해야 합니다."
    정약용이 건의하자, 기존 관리들이 반대했어요.
    "그런 돈이 어디 있습니까? 원래 이런 공사는 백성들이 무료로 동원되는 것인데..."
    하지만 정조는 정약용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백성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대로 품삯을 주고 일을 시키면 오히려 더 빨리, 더 잘 할 것이다."
    정조의 방침대로 화성 건설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임금이 지급되었어요. 덕분에 전국에서 최고의 기술자들과 숙련 인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직접 챙겨주시니 힘이 납니다!"
    인부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공사 품질도 크게 향상되었어요.
    1796년, 마침내 화성이 완성되었습니다. 총 둘레 5.7km의 거대한 성곽에는 48개의 시설이 과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어요.
    "다산아, 정말 고생 많았다."
    정조가 완성된 화성을 바라보며 감격스럽게 말했어요.
    "전하의 뜻을 받들어 일한 것뿐입니다."
    "이 성은 조선 건축사상 최고의 걸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네의 이름도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 당파의 반발과 정조의 의지

    화성이 완성되고 정조의 개혁 정책이 본격화되자, 기존 당파 세력들의 반발이 거세졌습니다. 특히 노론 벽파들은 정조의 파격적인 인재 등용 정책을 못마땅해 했어요.
    1797년 어느 날, 노론의 거두 심환지가 다른 대신들과 비밀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임금께서 너무 나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정약용 같은 남인 출신을 이렇게 중용하면 조정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박지원이나 유득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분도 변변치 않은 자들이 국정에 개입하고 있으니..."
    김종수가 분개하며 말했어요.
    "무엇보다 화성 건설에 든 엄청난 비용이 문제입니다. 국고가 바닥나고 있지 않습니까?"
    심환지의 말에 다른 대신들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임금께 직언을 올려야 합니다."
    며칠 후, 이들은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전하, 신들이 우려하는 바를 아뢰옵니다."
    정조가 상소문을 읽어보니, 자신의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정약용, 박지원, 유득공 등은 신분이 미천하고 학문도 정통하지 않으니, 중요한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소서.'
    '화성 건설에 과도한 비용을 들여 국고를 탕진하고 있으니, 공사를 중단하소서.'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고유의 성리학을 해치는 일이니, 금지하소서.'
    정조는 상소문을 읽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들이 무엇을 아는가!"
    정조는 즉시 대신들을 소집했어요.
    "경들이 올린 상소를 보았다. 하지만 과인은 경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심환지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전하, 신들은 오로지 조선의 안정을 생각해서..."
    "안정이라고? 썩어가는 것을 안정이라고 하는가!"
    정조의 호통에 대신들이 움츠러들었어요.
    "과인이 정약용을 중용하는 이유를 아는가? 그가 거중기를 발명해서 화성 건설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하..."
    "박지원은 어떤가? 그의 상업 정책 덕분에 한양의 시전 매출이 30% 증가했다. 유득공의 역사 연구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정조는 구체적인 성과를 들며 반박했어요.
    "그런데도 경들은 신분만 보고 그들을 배척하려 하는가?"
    김종수가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습니다.
    "전하, 하지만 조정의 질서와 예법을..."
    "질서? 예법? 그런 것들이 백성들을 굶주리게 하고, 나라를 뒤떨어지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정조의 목소리에는 깊은 실망이 담겨 있었어요.
    "과인은 결심했다. 앞으로 더욱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겠다. 반대하는 자는 물러나거라!"
    그날 밤, 정조는 정약용을 불러들였습니다.
    "다산아, 힘들지 않은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신들이 자네를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과인 때문에 곤경에 처한 것 같아 미안하다."
    정약용은 깊숙이 절을 올렸어요.
    "전하, 소신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네. 소신이 만든 거중기로 백성들이 힘든 일을 덜 하게 되었고, 소신이 설계한 화성으로 수원 백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조는 정약용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렇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옳다. 비록 지금은 반대가 심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박지원과 유득공도 비슷한 압박을 받았지만, 정조의 든든한 후원 아래 굴복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박지원이 동료들에게 말했어요.
    "지금 당장은 비난받을지 몰라도, 후세 사람들은 우리가 옳았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 조선 르네상스의 완성

    1800년 정조 24년, 정조의 치세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양 거리에는 새로운 활력이 넘쳤고, 백성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어요.
    "전하, 올해 농업 생산량이 작년보다 20% 증가했습니다!"
    정약용이 기쁜 얼굴로 보고했어요.
    "새로운 농기구와 품종 개량 덕분입니다. 백성들이 더 이상 굶지 않습니다."
    "잘했다, 다산아. 그럼 상업은 어떤가?"
    박지원이 앞으로 나와 답했습니다.
    "전하, 시전과 장시의 매출이 30% 늘었습니다. 수공업도 크게 발달해서 중국 상인들이 우리 물건을 사러 올 정도입니다."
    정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어요.
    "유득공은 어떤가? 역사 연구는 잘 되어가고 있는가?"
    "네, 전하. 『발해고』가 완성되어 중국 학자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유득공의 보고에 정조는 더욱 기뻐했어요.
    "좋다. 이제 정말 새로운 조선이 되었구나."
    그때 규장각에서 온 관리가 또 다른 소식을 전했습니다.
    "전하, 금년에 규장각에서 편찬한 서적이 모두 1,500권에 달합니다."
    "1,500권이라고?"
    "네. 『동문선』, 『동국문헌비고』, 『규장전운』 등 방대한 서적들이 완성되었습니다."
    정조는 감격했어요. 규장각을 설립한 지 20여 년 만에 조선이 동양 최고의 학문 국가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전국에서 젊은 학자들이 한양으로 몰려들고 있고, 새로운 학문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약용이 덧붙여 말했어요.
    "정말 자랑스럽다. 이 모든 것이 경들의 노고 덕분이다."
    정조는 자신을 둘러싼 개혁 동지들을 바라보며 뿌듯해했어요.
    "전하,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박지원이 말했어요.
    "서양의 과학 기술을 더 많이 도입해야 하고, 백성들의 생활도 더욱 향상시켜야 합니다."
    "맞다. 우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유득공도 동의했어요.
    "역사 연구도 더 깊이 있게 해야 하고, 우리 문화의 독창성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정조는 이들의 열정에 감동받았습니다.
    "경들의 의지가 있는 한, 조선의 미래는 밝다. 우리가 만든 이 새로운 조선이 후세에도 계속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날 저녁, 정조는 혼자서 창덕궁 후원을 거닐었습니다. 24년 전 왕이 되었을 때의 각오를 떠올리며, 지금까지의 성과를 되돌아봤어요.
    "아버지, 아드님이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었나요?"
    정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당파를 뛰어넘어 진짜 인재들을 등용했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했습니다. 조선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정조의 곤룡포를 흔들었어요. 마치 사도세자가 아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후, 정조는 신하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어요.
    "과인이 이룬 것들을 잘 지켜나가거라. 그리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거라."
    1800년 6월, 정조는 49세의 나이로 승하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정신은 조선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어요.
    정약용, 박지원, 유득공을 비롯한 실학파 지식인들은 정조 사후에도 그의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 문화 발전에 힘썼습니다.
    특히 정약용은 강진 유배에서도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불멸의 저작을 남기며 조선 실학의 완성을 이뤘어요.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어떠셨나요? 조선 22대 왕 정조와 그의 혁신적인 인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신분과 당파를 뛰어넘어 오직 능력과 인품으로 사람을 등용한 정조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큰 교훈을 줍니다.
    정약용의 과학기술, 박지원의 실용주의, 유득공의 역사의식... 이들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진정한 개혁가들이었습니다. 특히 화성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정약용의 거중기 발명은 우리 과학사의 빛나는 업적이죠.
    당파 정치의 벽을 뛰어넘어 실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정조의 인재 경영 철학은 현대의 리더들에게도 소중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묘를 옮기고 신도시를 건설하다! 수원 화성의 비밀" - 정조가 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화성을 건설했는지, 그 숨겨진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계속해서 우리 역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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