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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세자 책봉된 광해군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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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왕, 불타오르는 궁궐. 조선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였던 임진왜란의 벼랑 끝에서, 왕좌를 둘러싼 치열하고도 은밀한 암투가 벌어집니다.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등을 떠밀린 한 왕자. 선조의 지독한 견제 속에서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야만 했던 그날, 역사를 바꾼 숨 막히는 하루의 진실이 지금 밝혀집니다.
※ 1: 파죽지세의 왜군, 공포와 절망에 휩싸인 한양의 궐내
1592년, 임진년의 봄. 이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평화를 누려왔던 조선의 하늘 위로 매캐하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남쪽 바다를 건너온 십오만 명의 왜군은 조총이라는 낯설고 무시무시한 신무기를 앞세워 조선의 산천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었다. 부산진이 함락되고 동래성이 무너졌다는 급보가 봉화대를 타고 한양으로 전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화에 젖어 곯아떨어져 있던 조선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믿었던 방어선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고, 급기야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던 신립 장군마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참혹하게 전멸했다는 비보가 궐에 당도한 날, 한양의 밤하늘은 짙은 먹구름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덮여 있었다.
침통하고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는 편전. 용상에 앉은 조선의 십사 대 국왕 선조의 얼굴은 핏기가 가신 채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옥체를 감싼 붉은 곤룡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왕의 두려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신립마저 무너졌단 말이냐... 그 철기병들이, 조선 제일의 장수가 이끄는 정예병이 이토록 허망하게 몰살당했단 말이냐!"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하듯 내뱉는 선조의 음성에는 군왕으로서의 위엄보다는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짙게 배어 있었다. 편전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대신들의 등줄기에도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구 하나 뾰족한 묘안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무거운 침묵을 깨고 영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 적들의 기세가 파죽지세와 같아 며칠 내로 도성에 당도할 것이옵니다. 도성의 백성들은 이미 짐을 꾸려 피난길에 오르고 있으며, 수성해야 할 군사들마저 두려움에 탈영하는 자가 속출하고 있사옵니다. 종묘사직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옥체를 피하시어 훗날을 도모하셔야 하옵니다."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자는 이른바 '파천'을 주장하는 목소리였다. 백성의 어버이로서 도성을 지켜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간간이 흘러나왔으나, 턱밑까지 칼을 겨누고 달려오는 왜군의 공포 앞에서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선조의 머릿속은 이미 몽진을 떠나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살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이 끔찍한 사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 목숨이 끊어지면 조선도 끝나는 것이다. 어리석게 도성에 남아 개죽음을 당하느니, 명나라와 닿아있는 북방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도모해야만 한다. 그것이 종묘사직을 잇는 유일한 길이다.'
선조는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비겁한 도망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결국 선조는 떨리는 손을 들어 파천을 명했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수도를 버리는, 조선 왕조 이백 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비극적인 결단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궐내에는 환관과 궁녀들의 서글픈 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비를 맞으며 허겁지겁 피난 짐을 꾸리는 발걸음 소리로 사방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궐 밖에서는, 왕이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소식을 접한 백성들의 분노 섞인 통곡이 비바람을 타고 스며들고 있었다. 그 처절한 울음소리 이면에는, 이 미증유의 국난을 수습하고 왕실의 대통을 이을 새로운 중심점, 즉 '세자'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묵언의 압박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 2: 쏟아지는 폭우 속의 파천, 빗발치는 세자 책봉의 주청
1592년 음력 4월 30일 새벽.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어가가 돈화문을 나섰다. 평소라면 수백 명의 호위 군사와 화려한 깃발들로 장엄했을 국왕의 행차는, 쫓기듯 도망치는 패잔병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진흙탕에 발이 푹푹 빠지는 궁녀들은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피투성이가 된 맨발로 가마의 뒤를 따랐고, 대신들 역시 비에 젖은 관복을 질질 끌며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선조가 탄 가마가 도성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등 뒤에서 시뻘건 불길이 밤하늘을 찢을 듯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전, 전하! 궐에 불이 났사옵니다! 백성들이... 분노한 백성들이 경복궁과 창덕궁에 불을 지르고, 장례원(노비의 호적을 관리하던 관아)을 불태우고 있사옵니다!"
가마 곁을 호위하던 도승지의 다급하고도 떨리는 보고였다. 선조는 가마의 주렴을 살짝 들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백 년간 조선의 심장이었던 궁궐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주지 않고 홀로 도망치는 왕을 향한 백성들의 끔찍한 배신감과 원망이 불길이 되어 왕실의 권위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선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렴을 확 내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토록 무지몽매한 백성들 같으니라고! 과인이 살아야 나라가 살거늘, 어찌 이리도 군왕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단 말이냐!'
비통함과 자격지심이 뒤섞인 선조의 속마음과 달리, 비를 맞으며 어가를 따르던 대신들의 속내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뼈아픈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성을 버린 왕을 향한 민심은 이미 등을 돌렸다. 게다가 왜군의 추격은 턱밑까지 다가와 있었고, 험난한 피난길에서 왕의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피난길에서 선조에게 끔찍한 변고라도 생긴다면, 조선은 그 즉시 멸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 뻔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국가의 존립을 담보할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진흙탕 길 한가운데서, 좌의정 류성룡을 비롯한 주요 대신들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어가 앞을 가로막으며 무릎을 꿇었다. 거센 빗방울이 그들의 창백한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나라의 존망이 풍전등화와 같고, 옥체의 안위를 헤아리기 어려운 험난한 피난길이옵니다! 만에 하나라도 불의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종묘사직이 끊어질 위기이오니, 지체 없이 세자를 책봉하시어 국본을 튼튼히 하시고 흐트러진 민심을 하나로 모아 주시옵소서!"
'세자 책봉'. 이 네 글자는 선조에게 있어 역린이나 다름없는 금기어였다. 선조 자신은 정비의 자식이 아닌 후궁의 핏줄로 왕위에 올랐다는 깊은 콤플렉스를 평생 안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만큼은 반드시 정비가 낳은 적장자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의인왕후는 오랜 세월 후사를 보지 못했고, 후궁들에게서 낳은 왕자들만이 장성해 있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송강 정철이 세자 책봉을 건의(건저의 사태)했다가 선조의 크나큰 분노를 사서 파직당하고 유배를 떠난 일이 있었다. 자신이 시퍼렇게 살아있건만 대신들이 다음 왕을 세우라 압박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력을 뺏으려는 불충한 역심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평화로운 조정의 옥좌가 아니라, 당장 내일 살아서 아침을 맞을 수 있을지 모르는 끔찍한 전쟁터의 한가운데였다. 가마 안에서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던 선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무릎을 꿇은 대신들의 주청은 빗소리보다 더 거세고 완강했다.
"전하! 저 불타는 궁궐과 등을 돌린 백성들의 원망을 보시옵소서! 하루빨리 국본을 정하시어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셔야만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날 것이옵니다! 부디 어리석은 신들의 목을 치시더라도, 오늘 반드시 건저(建儲)의 결단을 내려주시옵소서!"
가마의 주렴 밖으로 선조의 깊고 무거운 한숨이 비바람에 섞여 흘러나왔다. 자신의 권력을 쪼개어 나누어주어야 하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선조의 냉철하고도 이기적인 이성은 지금 세자를 세우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조차 온전히 부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선조는 가마꾼들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 3: 벼랑 끝의 결단, 독배를 받아 든 광해군의 서늘한 침묵
비안개가 짙게 낀 피난길의 임시 거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어느 관아의 대청마루에 선조와 대신들, 그리고 왕자들이 무거운 얼굴로 모여 앉았다. 화려한 단청 아래 푹신한 보료도, 위엄 있는 일월오봉도도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선조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선조의 날카로운 시선이 대청 한구석에 무릎을 꿇고 있는 왕자들을 훑고 지나갔다.
당시 선조의 아들 중 장성한 왕자는 맏아들 임해군과 둘째 아들 광해군, 그리고 선조가 가장 총애하던 인빈 김씨의 소생 신성군이 있었다. 선조의 내심은 자신이 가장 끔찍이 아끼는 신성군을 세자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신성군은 이제 고작 열네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고, 당장 험난한 전장에서 군사를 지휘하고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너무도 유약했다. 그렇다고 장남인 임해군을 세자로 삼을 수도 없었다. 임해군은 평소 성정이 몹시 포악하고 방탕하여 툭하면 사람을 죽이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그 행실이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대신들조차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군왕의 자질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둘째 아들 광해군뿐이었다. 광해군은 평소 총명하고 학문이 깊었으며, 성품 또한 침착하고 과묵하여 대신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선조는 곁눈질로 조용히 엎드려 있는 광해군을 쳐다보았다. 선조는 이상하리만치 광해군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자신보다 신하들의 칭송을 받는 똑똑한 아들, 그래서 언제든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정적. 그것이 선조가 바라보는 광해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불바다가 된 한양을 뒤로하고 쫓기는 지금, 선조에게는 다른 패가 없었다.
'내 목숨을 구하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저 아이에게 방패막이 역할을 맡겨야만 한다. 난세의 화살을 막아낼 고기 방패가 필요한 것이다.'
선조는 지독하게 쓰디쓴 침을 삼키며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라의 존망이 아침저녁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묘사직을 잇고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과인은 오늘 둘째 아들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하겠노라."
천둥과도 같은 선언이 떨어졌다. 예법에 따른 성대한 책봉식도, 화려한 면복과 옥인도 없었다. 그저 빗방울이 들이치는 초라한 관아 대청마루에서, 겁에 질린 국왕의 입을 통해 쫓기듯 내뱉어진 참으로 초라하고 기형적인 세자 책봉이었다. 대신들은 일제히 엎드려 "천세, 천세, 천천세!"를 외쳤지만, 그 목소리에는 환희보다는 당장의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모두의 시선이 새로운 국본이 된 광해군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광해군의 표정은 기쁨이나 영광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흔들림 없는 깊은 눈동자 속에는, 뼈가 시릴 정도의 서늘한 체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나를 후계자로 인정하신 것이 아니다. 버려진 백성들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빗발치는 조총 탄환 앞에서 대신 피를 흘려줄 허수아비를 세우신 것이다. 이 자리는 왕세자의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지독한 독배나 다름없다.'
광해군은 자신의 앞날에 펼쳐질 피비린내 나는 가시밭길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전란을 수습해야 하는 무거운 짐, 시시각각 변하는 선조의 지독한 의심과 견제, 그리고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벼야 하는 끔찍한 운명.
"망극한 은혜에 성심을 다하여 보답하겠나이다. 신, 광해,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전하의 안위를 살피고 짓밟힌 조선의 강토를 되찾는 데 신명을 바치겠나이다."
광해군이 천천히 바닥에 이마를 조아리며 묵직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빗소리가 관아의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유난히 더 날카롭게 귓전을 맴돌았다. 가장 비극적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광의 왕관이 아닌 피 묻은 가시관을 스스로 머리에 쓴 어린 세자. 훗날 조선의 역사를 뼈아프게 관통할 비운의 제왕 광해군의 서막은, 이렇게 차갑고 축축한 빗속에서 처절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 4: 피난길에 세워진 분조(分朝), 둘로 쪼개진 조선의 조정
거센 비바람과 진흙탕을 뚫고 끝없이 북상하던 선조의 초라하고 비참한 피난 행렬은, 굶주림과 극도의 공포에 시달린 끝에 한 달여 만에 평양성마저 버리고 평안도 북단의 척박하고 스산한 땅, 영변에 당도했다. 턱밑까지 바짝 쫓아온 왜군의 시퍼런 칼바람에 쫓기듯 도망쳐 온 선조의 탁한 눈빛에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으로서의 위엄이나 백성을 향한 일말의 책임감 따위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하루빨리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의 넓은 품으로 망명하여 자신의 옥체 하나만을 안전하게 부지하겠다는 얄팍하고 이기적인 궁리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매일 밤낮으로 북쪽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며 압록강 너머로 도망칠 날짜만을 헤아리는 선조의 나약한 모습은, 목숨을 걸고 어가를 호위하며 따라온 충직한 신하들마저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며 남몰래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이러한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영변의 낡고 스산한 임시 행재소(왕이 머무는 임시 거처)에서는 조선의 운명을 또 한 번 송두리째 뒤흔들 충격적이고 비정한 어명이 선조의 입을 통해 떨어졌다.
"과인은 종묘사직의 명맥을 잇고 대국 명나라 황제에게 직접 구원병을 간청하기 위하여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들어갈 것이다. 허나, 국왕인 과인이 도성을 완전히 버리고 남의 나라 땅으로 넘어가 버리면, 저 불쌍한 조선의 백성들이 기댈 곳이 없어 전란의 참화 속에서 모두 절망하고 말 터. 이에, 오늘부로 조정을 두 개로 나누어, 세자 광해군에게 분조(分朝)를 맡기노라! 세자는 이 땅에 남아 과인을 대신하여 흩어진 백성들을 살피고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며, 왜적들의 진격을 막아내어 조선의 강토를 굳건히 수호하도록 하라!"
'조정을 둘로 나눈다'는 이른바 분조(分朝)의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겉으로 듣기에는 전란의 참화를 수습하고 백성의 안위를 보살피기 위한 군왕의 깊은 고뇌가 담긴 성은처럼 들렸으나, 그 서늘한 이면에는 뼛속까지 소름 끼치도록 이기적이고 냉혹한 선조의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선조 자신은 늙고 나약한 대신들을 이끌고 안전한 명나라의 품으로 도망쳐 안락한 망명 생활을 즐기고, 이제 갓 세자로 책봉되어 궐의 법도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어린 광해군에게는 일부 소수의 신하와 굶주린 군사만을 떼어주어 끔찍한 사지(死地)인 조선 땅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두겠다는 뜻이었다. 즉, 광해군을 왜군의 총알받이이자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잔혹한 속내였다. 만약 광해군이 전장에서 왜군의 칼에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잡힌다면 그것은 그저 불운한 왕자의 전사로 치부하면 그만일 뿐이고, 선조 자신은 명나라에서 목숨을 부지하다 훗날 전쟁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왕위를 이어가겠다는, 참으로 아비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정하고 잔혹한 결단이었다.
분조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대청마루에 엎드려 있던 대신들 사이에서 참담한 탄식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빗발치듯 터져 나왔으나, 서슬 퍼런 옥좌의 권위와 당장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에 급급한 선조의 광기 어린 명을 감히 정면으로 거역할 수 있는 충신은 아무도 없었다. 광해군은 차가운 마루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굳게 닫힌 입술을 짓이기며 붉은 피가 배어 나올 때까지 깨물었다. 그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이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의 굴레를 묵묵히, 그러나 뼛속 깊이 새기며 조용히 받아들였다.
'결국... 결국 아바마마께서는 나를 이 피비린내 나는 사지에 홀로 남겨두고 미련 없이 떠나시겠다는 뜻이구나. 아바마마께 나는 피를 나눈 혈육이나 든든한 후계자가 아니라, 그저 옥체를 보위하기 위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훌륭한 장기말이자 처참한 희생양일 뿐이었다. 허나, 내 이 비참한 운명을 피하지 않으리라. 아바마마께서 버리신 이 땅과 백성들을, 나 광해가 기필코 피 땀 흘려 지켜낼 것이다.'
며칠 뒤, 두 갈래로 나뉘는 기구하고 비통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선조의 어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살기 위해 황급히 의주를 향해 쫓기듯 북쪽으로 출발했고, 광해군이 이끄는 초라하고 남루한 분조 행렬은 적들이 득실거리는 험난하고 위험한 남쪽으로, 강원도 이천을 향해 무거운 말머리를 돌렸다. 분조에 억지로 합류하게 된 늙은 신하들과 굶주린 군사들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왕을 대신하여 성난 민심의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정예 왜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막막하고 끔찍한 임무. 군량미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어 풀뿌리를 캐 먹어야 할 지경이었고, 군사들의 사기는 꺾일 대로 꺾여 탈영병이 속출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행렬의 선두에 선 광해군의 눈빛만큼은 피난길에서 보았던 서늘한 체념과 슬픔을 넘어, 이제는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이할 정도로 맹렬하고 단단한 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지로 향하는 그의 굳건한 뒷모습은,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진정한 군왕의 길을 향한 무겁고도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 5: 전장을 누비는 세자 광해군, 백성의 민심을 수습하다
영변을 떠나 험준한 산세를 뚫고 힘겹게 강원도 이천에 당도한 광해군의 분조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처참한 벼랑 끝의 생존 투쟁이자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적의 눈을 피해 임시로 꾸린 행재소는 제대로 된 궁궐의 형태는커녕, 매서운 비바람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몇 채가 전부인 산골짜기 척박한 마을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군량미 탓에 세자와 신하들조차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찧어 먹거나 들풀로 허기를 달래야 했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면 산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굶주린 산짐승의 울음소리와 언제 사방에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왜군의 기습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으로 인해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끔찍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광해군은 결코 주저앉거나 나약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비단으로 지은 화려하고 무거운 세자의 곤룡포를 미련 없이 훌렁 벗어 던지고, 병사들이 입는 피와 흙먼지로 얼룩진 낡고 뻣뻣한 융복(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직접 말을 타고 칼을 찬 채 험준한 산악 지대와 진흙탕 전선을 밤낮없이 쉼 없이 누비며, 쓰러져가는 병사들의 손을 맞잡고 위무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용맹한 백성들이여, 그리고 나의 형제들이여! 고개를 들라! 전하께서 우리를 영영 버리신 것이 결코 아니다! 대국 명나라로 가시어 거대한 원군을 이끌고 반드시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흘리는 이 뜨거운 피와 땀으로 이 땅을, 우리의 불쌍한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굳건히 지켜내야만 한다! 내가 너희의 맨 앞장서서 적의 총탄을 막아낼 것이니, 두려워 말고 내 뒤를 따르라!"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광해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굶주리고 지쳐 쓰러져 가던 병사들의 귓가를 묵직하게 강타했다. 백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제 목숨 하나 살겠다고 도망친 비겁한 국왕 선조와는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위대한 모습이었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온갖 호의호식만 누리던 고귀한 왕세자가 험하고 위험한 전장을 몸소 누비며 병사들과 똑같이 거친 보리밥과 나무껍질을 나누어 먹고, 적의 칼에 베여 신음하는 병사의 끔찍한 상처를 직접 자신의 찢어진 치맛자락으로 정성껏 싸매주자, 왕실을 향해 차갑게 식어있고 흉흉하게 들끓던 백성들의 민심이 서서히 거대한 감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광해군은 단지 병사들을 위로하는 자애로운 세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장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탁월하고 냉철한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는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의 정규군만으로는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가진 조총으로 무장한 정예 왜군을 정면에서 결코 상대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 이에 광해군은 전란을 피해 산속 깊은 곳으로 흩어지고 숨어버린 백성들을 향해, 조선 팔도 방방곡곡으로 절박한 피눈물이 담긴 격문을 띄웠다.
'조선의 백성들이여! 나라의 운명이 벼랑 끝에 섰다! 지금은 신분의 고하를 따질 때가 아니다! 양반이건 상민이건, 낫을 들든 뾰족한 죽창을 들든 모두 분연히 일어나 우리가 나고 자란 고을을 지키고 저 잔혹한 왜놈 오랑캐의 목을 쳐라! 의병을 일으켜 단 한 명의 적이라도 베어 공을 세우는 자는 신분과 출신을 막론하고 나라에서 가장 큰 벼슬을 내릴 것이며, 천민이라 할지라도 즉시 그 신분을 면천하여 당당한 양인으로 삼을 것이다!'
조선의 굳건했던 반상(양반과 상민) 신분의 벽을 산산조각 내는 이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격문은, 절망의 늪에 빠져 산속 깊은 곳에 숨죽이고 있던 수많은 백성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애국심과 희망의 불을 걷잡을 수 없이 지폈다. 도망친 선조를 향해 저주를 퍼붓던 그들의 분노는, 자신들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며 피 흘리는 앳된 젊은 세자에 대한 깊은 충성심과 절대적인 믿음으로 맹렬하게 변모했다. 곽재우, 고경명, 조헌 등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무수한 의병이 거세게 일어났고, 그 중심에는 항상 광해군이 이끄는 분조가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군사적 버팀목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분조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의병들에게 부족한 무기와 군량미를 필사적으로 조달하여 지원하고, 흩어진 부대들을 하나로 모아 치밀한 유격 전술을 지휘하며 궤멸 직전이었던 조선군 반격의 거대한 구심점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내 온몸의 피와 땀을 쥐어짜 내서라도 이 나라를 지켜낼 것이다. 아바마마가 무참히 버리고 도망친 조선을, 내가 온전히 거두어 다시 위대하게 세우겠다.'
언제 적의 칼날이 목을 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 참혹한 전장에서, 광해군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세워진 나약한 꼭두각시 세자가 아니었다. 그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 맹렬한 빛을 발하며, 진정한 조선의 국본이자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는 절대적인 영웅으로 무섭고도 찬란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 6: 피어오르는 선조의 질투, 전란이 낳은 비극적 부자의 운명
명나라의 거대한 원군이 마침내 압록강을 넘어 합류하고, 남쪽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적의 보급로가 끊기며 전세가 기적처럼 역전되기 시작했다. 왜군이 쫓기듯 남쪽으로 후퇴하자, 선조는 이듬해인 1593년 늦은 가을 무렵 환도하여 마침내 잿더미로 변해버린 한양의 흙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파천이라는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치욕을 안고 돌아온 선조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명나라 국경 지대에서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던 일 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세자 광해군이 온몸을 바쳐 이루어낸 실로 놀랍고도 눈부신 구국의 성과들이었다.
"전하! 세자 저하의 훌륭하고 깊은 덕망과 뛰어난 지휘력 덕분에 팔도 방방곡곡에서 수만 명의 의병이 들고일어나 적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사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세자 저하를 향한 칭송과 흠모가 하늘을 찌르고 있사옵니다! 저하의 은덕으로 조선이 다시 숨을 쉬게 되었나이다!"
조정에 복귀한 대신들이 매일같이 쏟아내며 올리는 상소문마다 오직 광해군의 거룩한 공을 찬양하고 그의 지혜를 칭송하는 글귀들로만 빼곡하게 가득 차 있었다. 백성들 역시 길거리에 광해군이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 엎드려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분이 진정으로 우리를 살리신 어버이시다! 진정한 우리의 임금이시다!"라며 환호하고 춤을 추었다. 하지만 궐 밖의 그 환호성이 거대해지면 커질수록, 불타버린 편전의 임시 처소 깊은 어둠 속에 좌정하여 그 소리를 듣는 선조의 심기는 마치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차갑고 서늘하게 굳어져 갔다. 선조의 옹졸한 가슴속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백성을 버리고 도망쳤던 비겁한 늙은 군왕이라는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자격지심과, 자신의 피를 나눈 아들에게 옥좌의 권력과 백성들의 마음을 모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병적이고 끔찍한 질투심이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맹독을 품고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건방지고 괘씸한 놈. 내 험난한 피난길에 잠시 목숨을 부지하고자 방패막이로 내세워 두었거늘, 감히 네놈이 과인을 능멸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훔쳐? 신하들의 굳건한 신망을 네놈이 독차지해? 네놈이 벌써 이 아비의 옥좌를 찬탈할 더러운 역심을 품고 노리는 것이냐!'
전쟁이 낳은 비극은 외세의 잔혹한 침략과 도성의 파괴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무섭고 잔인하며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은밀한 암투가, 다름 아닌 지엄한 부자(父子) 사이에서 흉측하게 싹트고 있었다. 선조는 겉으로는 광해군의 노고를 치하하는 척하면서도, 백성들의 압도적인 칭송을 받는 그를 끔찍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견제하기 시작했다. 선조는 시도 때도 없이 대신들을 불러 모아놓고 "과인은 이제 늙고 병들어 지쳤으니, 이 무거운 왕위를 그토록 공이 큰 세자에게 즉시 물려주겠노라"며 이른바 '선위(禪位) 파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진심으로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자애로운 뜻이 절대 아니었다. 오직 광해군과 신하들의 충성심을 악랄하게 시험하고, 조금이라도 기어오르려는 세자의 기를 완벽하게 꺾어 길들이기 위해 파놓은 잔혹하고 교묘한 정치적 덫이었다.
"아바마마! 제발 신의 어리석음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자는 단 한 번도 불경하게 옥좌를 탐한 적이 없사옵니다! 소자가 지은 죄가 있다면 그저 전하의 명을 받들어 목숨을 바친 것뿐이오니, 부디 끔찍한 선위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선조가 기만적인 선위를 선언할 때마다 광해군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거나 살을 에는 한파 속에서도 얇은 소복만을 입은 채 차가운 댓돌 위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그는 이마가 찢어져 붉은 피가 돌바닥을 적실 정도로 머리를 찧으며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처절하게 석고대죄를 해야만 했다. 행여나 조금이라도 왕위를 탐내는 듯한 기색을 보이거나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그날로 가차 없이 불충한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폐세자되어 형장의 이슬로 목이 달아날 것이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는 왜군의 빗발치는 조총 탄환과 번뜩이는 칼날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를 호령하던 천하의 용맹한 젊은 세자가, 권력에 눈이 먼 아비의 변덕스러운 질투와 광기 앞에서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벌벌 떠는 가여운 죄인으로 비참하게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후 무려 십오 년이라는 기나긴 피 말리는 세월 동안, 광해군은 단 하루도 편히 두 다리를 뻗고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아비의 병적이고 집요한 질투와 끝없는 의심, 훗날 정비인 인목왕후의 품에서 태어난 적장자 영창대군의 탄생으로 인해 불거진 새롭고 끔찍한 권력 다툼까지.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조선을 온몸으로 구했던 눈부시고 빛나던 구국의 영웅은, 궐내의 지독한 정치 공작과 생존을 위한 극도의 스트레스에 매일같이 시달리며, 서서히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어둡고 냉혹하며 잔인한 권력자로 슬프게 변모해 갔다.
임진년의 그 폭우가 쏟아지던 절망적인 피난길, 목숨을 걸고 조선을 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애국심으로 그 지독한 독배를 기꺼이 받아 들었던 청년 광해군. 하지만 권력이라는 이름의 흉측한 괴물은 아비와 아들이라는 천륜마저 무참하고 잔인하게 끊어놓았고, 결국 조선 왕조 이백 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씁쓸한 폐주의 길을 암울하게 예고하고 있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날의 벼랑 끝 선택은, 광해군에게 있어 평생을 옭아맨 끔찍한 저주였을까, 아니면 난세에 태어난 왕이 짊어져야만 했던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숙명이었을까. 그 무겁고 슬픈 진실은 오직 기록된 낡은 실록의 행간 속에 묵묵하고 서늘하게 묻혀 있을 뿐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백성을 버린 아비와 벼랑 끝에서 조선을 구한 아들. 임진왜란의 참혹한 위기 속에서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야만 했던 그날의 숨 막히는 하루, 어떠셨나요? 전쟁 영웅에서 비운의 제왕으로 변모해 가는 광해군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지금 바로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다음 <역사 엑스파일>에서는 역사책의 한 줄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기막힌 궁중 비사로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