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선조와 인빈 김씨 - 임진왜란 중에 피어난 절절한 사랑 이야기
태그 (20개)
#조선시대, #야담, #역사로맨스, #선조, #인빈김씨, #임진왜란, #궁중로맨스, #조선왕조실록, #사랑이야기, #전쟁속사랑, #킹메이커, #질투, #연모, #왕의여자, #후궁, #조선비사, #역사이야기, #시니어
후킹멘트 (200자 내외)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가장 비겁한 왕, 선조." 우리가 아는 역사는 정말 그게 다일까요? 쏟아지는 비난과 죽음의 공포 속, 왕의 갑옷 속에 숨어 떨고 있던 한 남자를 유일하게 알아준 여인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한복판에서 피어난 가장 절절하고 농염한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임진왜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파천(播遷)에 나선 왕 선조. 백성의 원망과 신하들의 불신 속에서 그는 외로운 군주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왕을 지킨 여인, 인빈 김씨가 있었습니다. 흙먼지 묻은 용상, 허름한 행궁의 밤을 채웠던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 역사 교과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선조의 인간적인 고뇌와 인빈 김씨의 지혜로운 사랑을 19금 야사로 풀어냅니다.
※ 도망치는 용상, 비에 젖은 어깨
1592년 조선.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장대 같은 빗줄기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북상하는 왜군을 피해 한양 도성을 버리고 의주를 향해 떠나는 파천 행렬. 그 행렬의 중심에는 이 나라의 지존, 왕 선조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군주의 위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값비싼 용포는 흙탕물에 더럽혀진 지 오래고,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눈동자는 겁에 질린 사슴의 그것과 같았다. "지금 어디쯤이라 하더냐! 왜적이 벌써 개성을 넘었다는 말이 사실이냐! 이놈들! 제대로 아는 놈이 하나도 없느냐!" 선조의 신경질적인 고함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지만, 곁을 지키는 내관들과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왕의 권위는 쏟아지는 비에 씻겨나가 흙탕물 속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백성들은 임금을 버리고 도망친 왕이라며 손가락질했고, 일부는 행렬을 막아서서 울부짖으며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조는 질끈 눈을 감으며 옥좌의 손잡이를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과인은 버림받았다. 이 나라의 왕이, 이 땅의 백성들에게 버림받았단 말이다!' 자괴감과 공포가 독사처럼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바로 그때였다. 거친 노면 위에서 왕의 연이 크게 덜컹이며 휘청였다. "꺄악!" 안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고,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선조가 연의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곁에 있던 여인이 다급하게 선조를 부축했다. 선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빈 김씨였다. 그녀 역시 화려했던 궁중에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값비싼 비단 옷 대신 거친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뽀얗던 얼굴은 파천의 고단함에 푸석하게 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총기를 잃지 않고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빈... 괜찮소? 놀라지 않았소?" 선조는 제 머리의 통증도 잊은 채 인빈의 안위를 먼저 살폈다. 이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인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맷자락에서 고이 접어 간직했던 마른 수건을 꺼내 선조의 젖은 이마와 뺨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전하의 용안이 빗물에 상하실까 저어되옵니다. 신첩은 괜찮사오니,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그녀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선조의 들끓던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선조는 어린아이처럼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받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코끝으로 여인의 체향과 젖은 흙냄새가 뒤섞여 스며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이 도망길 위에서, 이 여인의 품만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인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이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 또한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애써 태연한 척, 강한 척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이 선조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빈... 내가, 내가 반드시 그대를 지킬 것이오. 이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왕의 맹세는 빗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지만, 인빈은 그저 말없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비에 젖은 어깨를 맞댄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하염없이 달리고 있었다.
※ 행궁의 하룻밤, 서로의 위안이 되다
며칠 밤낮을 달려 도착한 곳은 '행궁'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어느 지방 관아의 허름한 객사였다. 용상 대신 딱딱한 평상이 놓여 있었고, 창호지는 여기저기 찢어져 차가운 밤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선조는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좁은 방 안을 초조하게 서성였다. 밖에서는 금군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왜적의 칼날보다 그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고요함이었다. 한양의 궁궐이었다면 밤늦도록 정사를 논하고, 아첨하는 신하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을 시간.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왕의 무능을 탓하며 서로 수군거리는 신하들의 눈빛, 그리고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파천이 끝날까' 하는 원망이 가득한 얼굴들뿐이었다. '과인은 혼자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완벽하게 혼자다.' 선조가 절망감에 몸을 떨며 평상에 주저앉았을 때, 조용히 문이 열리고 인빈 김씨가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따끈한 죽 한 그릇과 소박한 나물 몇 가지가 전부였다. "전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기력이 쇠하시면 아니 되오니, 요기라도 하시옵소서." 인빈은 선조의 앞에 조심스럽게 상을 내려놓았다. 선조는 아무 말 없이 죽 그릇만 쳐다보았다. "...먹고 싶지 않소. 지금 이 상황에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갈 것 같소?" "드셔야 하옵니다. 내일 또 험한 길을 떠나시려면 기운을 차리셔야지요. 이 모든 것이, 이 나라가 전하의 어깨에 달려있지 않사옵니까." 나라가 어깨에 달려있다는 말에 선조는 실소를 터뜨렸다. "어깨? 하! 과인의 어깨에는 나라 대신, 도망친 왕이라는 오명과 백성의 저주만 매달려 있소! 그대도 보지 않았는가. 과인을 향해 돌을 던지던 그들의 눈빛을!" 자괴감에 북받친 선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인빈은 말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의 떨리는 손을 감싸 쥐었다. "전하. 백성들이 던진 것은 돌이 아니옵니다. 임을 향한 원망이자, 다시 돌아와 이 나라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옵니다. 그들은 전하를 버린 것이 아니옵니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과 나직한 음성이 얼어붙었던 선조의 마음을 녹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인빈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았다. 촛불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고단함 속에서도 기품과 총명함이 서려 있었다. 선조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여인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손등이 거칠어진 왕의 수염에 스쳤다. 위로였던 손길은 어느새 애틋한 연모가 되고, 연모는 이내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 번져나갔다. 선조는 인빈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았다. "빈... 오늘 밤만은... 오늘 밤만은 과인의 곁에 있어주시오. 왕이 아닌, 사내로서... 그대에게 잠시만이라도 기대고 싶소." 인빈은 대답 대신 조용히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스산한 밤바람이 울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뜨거운 열기만이 감돌았다. 선조의 거친 손이 인빈의 옷고름으로 향했다. 거추장스러운 의복이 하나씩 벗겨지고, 촛불 아래 드러난 여인의 새하얀 속살이 미약하게 떨렸다. 그것은 공포가 아닌, 걷잡을 수 없는 설렘의 떨림이었다. 왕과 후궁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한 사내와 한 지어미로 서로를 마주한 순간. 선조는 짐승처럼 여인의 몸을 탐했다. 그것은 단순한 정욕의 해소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절박한 의식이었다. 인빈 역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팔로 왕의 등을 감싸 안고, 그의 거친 입맞춤에 응하며 함께 헐떡였다.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과 교성이 허름한 행궁의 밤을 가득 채웠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거친 파도 속 작은 돛단배처럼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하며, 전쟁의 고통과 왕의 고뇌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 질투의 불씨, 여인의 지혜
의주 행궁에서의 생활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선조의 마음은 오롯이 인빈 김씨에게로 향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빈의 처소를 찾았고, 정사를 돌보는 중에도 틈틈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던 여인. 그녀는 이제 단순한 후궁이 아니라, 선조의 무너진 자존심을 지탱해주는 기둥이자 삶의 이유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왕의 총애가 한곳에 집중되자, 당연히 다른 이들의 시기와 질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한때 선조의 사랑을 받았으나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된 다른 후궁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어느 화창한 오후, 후궁들이 모여 차를 마시는 자리에 인빈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한 나인 입을 빌린 독설이 시작됐다. "요즘 인빈 마마의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지요? 전하께서 어찌나 찾으시는지, 밤마다 마마의 처소에서 흘러나오는 그... 교태 섞인 웃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지 뭡니까." 빈정거림이 가득한 말에 다른 후궁이 부채로 입을 가리며 거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듣자 하니, 아침 수라상에 올릴 반찬까지 시시콜콜 마마께서 정하신다 하더군. 이러다 용상에 올라 앉으실 기세야. 쯧쯧. 빈의 치맛바람이 의주 행궁을 다 뒤흔들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네." 그들의 대화는 교묘하게 부풀려져 내관의 귀로, 그리고 마침내 선조의 귀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선조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려 했지만, '치맛바람'과 '용상'이라는 단어가 독초처럼 마음에 박혔다. 본래 의심 많고 귀가 얇은 성격의 선조였다. '설마... 빈이 과인의 총애를 등에 업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한번 피어난 의심의 싹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 그날 밤, 선조는 여느 때처럼 인빈의 처소를 찾았지만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는 인빈이 내미는 따뜻한 차도 마다한 채, 대뜸 쏘아붙였다. "듣자 하니, 요즘 빈의 위세가 대단하다 하더군. 과인이 없는 곳에서는 빈이 곧 왕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날벼락 같은 말에 인빈은 순간 숨을 멈췄다.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대신, 차분한 눈빛으로 선조를 올려다보았다. "전하. 신첩에게는 오직 전하 한 분만이 하늘이시옵니다. 헌데 어찌 그런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시옵니까." "당치 않다? 그대의 치맛자락 아래서 조정의 인사까지 논해진다는 소문은 어찌 해명할 텐가!" 선조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인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왕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전하. 이 손을 기억하시옵니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신첩은 이 손을 잡고 두려움을 이겨냈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신첩에게 왕이시자, 사내이시며, 이 난세를 함께 건너는 동지이옵니다." 그녀는 말을 멈추고, 왕의 손등에 자신의 뺨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허나, 전하의 마음속에 신첩에 대한 의심이 싹텄다면, 그것은 신첩의 부덕한 소치이겠지요. 하오니... 오늘 밤, 신첩의 진심을 온전히 보여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과 함께, 인빈은 스스로 자신의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눈물로 호소하는 대신, 여인으로서의 가장 원초적인 무기로 왕의 의심을 잠재우려 한 것이다. 그녀의 대담하고도 농염한 행동에 선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서서히 드러나는 여인의 하얀 어깨와 붉은 입술, 그리고 '나를 가지되, 나를 온전히 믿어달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당당한 눈빛 앞에, 선조의 의심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인빈을 일으켜 품에 안았다. "과인이... 과인이 어리석었소. 그따위 간신배들의 말에 잠시 현혹되었던 게야." 질투와 의심으로 시작된 밤은, 이내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뜨거운 사랑으로 다시 타올랐다. 인빈은 그날 밤, 왕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자신은 그저 왕의 성은을 입는 수동적인 여인이 아니라, 때로는 지혜로, 때로는 관능으로 왕의 마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 전쟁의 아들, 새로운 희망
의주 행궁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었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듯, 인빈 김씨의 몸에도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었다. 그녀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왔고, 그 모습은 위태로운 파천 생활에 지쳐있던 선조에게 유일한 희망의 빛줄기였다. 선조는 정사를 돌보는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인빈의 처소에서 보냈다. 그는 더 이상 불안과 공포에 떠는 나약한 군주가 아니었다. 곧 아비가 될 한 사내의 설렘과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밤이 되면, 선조는 인빈을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는 부드럽게 그녀의 부푼 배를 어루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빈, 아기가 움직이는군. 과인의 손길을 알아보는 게야. 허허." 자신의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작은 태동에 선조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인빈의 배를 감싸고, 그 위로 자신의 뺨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여인의 살갗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한 온기와 뱃속 아이의 작은 움직임은, 그 어떤 옥새의 무게감보다 더 큰 삶의 의미를 느끼게 했다. "전하, 간지럽사옵니다." 인빈이 수줍게 웃으며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선조는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가만히 있거라. 이 아이는... 이 아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내리신 증표다. 이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나고, 우리의 사랑은 이리도 찬란한 결실을 맺었으니... 과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에게는 반드시 평화로운 강산을 물려줄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왕으로서의 비장함과 아버지로서의 뜨거운 사랑이 함께 녹아 있었다. 그날 밤, 선조는 인빈을 탐하지 않았다. 대신, 경건한 순례자처럼 그녀의 몸을 경배했다. 그는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그녀의 발등에서부터 시작해, 종아리와 허벅지를 지나, 생명의 신비가 담긴 둥근 언덕에 입술을 묻었다. 그것은 정욕이 아닌, 생명에 대한 경외이자 자신의 분신을 잉태한 여인을 향한 최대의 찬사였다. 인빈은 그의 경건한 애무에 몸을 떨며, 두 팔로 왕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산고 끝에 우렁찬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의주 행궁을 가득 채웠다. 훗날 신성군으로 불리게 될,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왕자였다. 핏덩이 아들을 품에 안은 선조는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어 탈진한 인빈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고맙소, 빈. 정말 고맙소. 그대가 과인을 살렸고, 이제 이 아이가 조선을 살릴 것이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작은 생명. 그 아이는 선조와 인빈의 사랑의 결실이자, 위태로운 조선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 킹메이커, 광해의 그늘
신성군의 탄생 이후, 선조의 사랑은 더욱 깊고 맹목적으로 변해갔다. 그의 눈에는 오직 인빈과 그녀가 낳은 옥동자 신성군밖에 보이지 않았다. 반면, 전쟁이 발발하자 분조(分朝)를 이끌며 남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둘째 아들 광해군의 존재는 점점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광해의 공이 커질수록, 백성들의 칭송이 높아질수록, 선조의 마음속에서는 불안과 질투가 싹텄다. '왕은 과인인데, 어찌하여 모두가 광해만을 칭송하는가. 저 아이가 과인의 자리를 넘보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선조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든 것은 바로 인빈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는 왕으로서의 냉철한 판단력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고 싶은 사사로운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침전은 더 이상 사랑을 나누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미래를 뒤흔들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정치의 장이 되었다. 어느 깊은 밤, 선조는 인빈의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속삭였다. "빈, 우리 신성이가 벌써 저리도 총명하니... 필시 세상을 호령할 군주의 상이야. 그에 비하면 광해는... 성정이 거칠고 음흉하여 왕의 재목이 아니지." 그의 말에는 광해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과 신성군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가 뚝뚝 묻어났다. 인빈은 선조의 품에 안겨 그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면서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어찌 왕의 속내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세자 책봉 문제는 왕의 총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신하들이 광해를 지지하고 있었고, 섣불리 신성군을 내세웠다가는 끔찍한 피바람이 불 수도 있었다. "전하... 신성군은 아직 너무 어리고, 광해군께서는 전란 속에서 큰 공을 세우셨사옵니다. 민심 또한 광해군을 따르고 있사오니..."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선조는 그녀의 입술을 거친 입맞춤으로 막아버렸다. "쉿! 과인은 그대의 입에서 다른 사내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소. 민심? 공? 그런 것은 중요치 않소. 과인의 마음,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를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 선조는 마치 자신의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 더욱 격렬하게 인빈을 탐했다. 그의 손길은 애무라기보다는 소유욕의 표출에 가까웠다. 그는 인빈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녀의 아들을 다음 보위의 주인으로 만들어, 이 위태로운 왕국을 온전히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싶어 했다. 인빈은 그의 격정적인 움직임에 몸을 맡기면서도,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 사내의 욕망에 편승하여 아들을 왕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불장난을 멈추고 현실을 택할 것인가.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선조의 귓가에, 꿀처럼 달콤하면서도 독처럼 위험한 말을 속삭였다. "전하의 뜻이 정녕 그러하시다면... 신첩 또한... 전하와 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사옵니다." 그녀는 결심했다. 이 사랑의 대가가 설령 파멸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왕의 여자가 아닌 '킹메이커'의 길을 걷기로. 그날 이후, 인빈은 선조와의 침전에서 밤마다 정치를 논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무기 삼아, 때로는 교태로, 때로는 지혜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광해를 깎아내리고 신성군의 입지를 단단히 굳혀나갔다. 조선의 운명은, 이제 두 사람의 가장 은밀한 잠자리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 사랑의 대가, 남겨진 약속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과 야망의 끝은 허무하고도 비참했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선조와 인빈의 모든 희망이었던 신성군이 급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아들의 손을 붙잡고, 선조는 왕의 체면도 잊은 채 통곡했다. "아니 된다, 이 애비보다 먼저 갈 수는 없다! 어의는 무얼 하느냐! 당장 내 아들을 살려내지 못할까!" 하지만 그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들을 잃은 인빈의 슬픔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다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한때 왕의 총애를 무기 삼아 조정을 호령하던 당찬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들의 죽음은 선조에게서 삶의 모든 빛을 앗아갔다. 그는 급격히 쇠약해졌고, 밤마다 지독한 기침과 악몽에 시달렸다. 인빈을 향한 그의 사랑 역시, 뜨거운 욕망과 야심 대신 깊은 슬픔과 연민으로 변해갔다. 이제 두 사람의 잠자리는 정사를 나누는 곳이 아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눈물 흘리는 슬픔의 공간이 되었다. 어느 비 내리는 밤, 선조는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 인빈의 손을 힘겹게 잡았다. "빈... 다 과인의 욕심 때문이오. 과인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 하늘이 우리 신성이를 데려간 게야..."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인빈의 손등을 적셨다. 인빈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마른 수건으로 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마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 비 내리던 파천 길에서처럼. "아니옵니다, 전하. 누구의 탓도 아니옵니다. 그저... 우리 아이의 명이 짧았을 뿐이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더 이상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과인이... 과인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소. 내가 없으면... 그대와 남은 아이들은 어찌한단 말이오. 광해가... 광해가 보위에 오르면, 결코 그대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왕의 눈에는 죽음의 공포보다, 사랑하는 여인과 남겨질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서려 있었다. 그는 인빈의 손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약조하시오, 빈.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겠다고. 아이들을 지켜내겠다고... 약조하시오!" 인빈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왕의 손 위로 눈물을 쏟아냈다. "전하... 제발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약조하라! 이것이... 과인이 그대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오. 사랑했소, 빈... 내 인생의 유일한 빛은... 오직 그대뿐이었소." 선조의 마지막 고백은 기침 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흩어졌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났던 절절하고도 뜨거웠던 사랑은, 그렇게 비극적인 약속만을 남긴 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인빈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왕의 손을 붙잡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약속을 되뇌었다. 살아남아, 아이들을 지켜내겠노라고.
유튜브 엔딩멘트
가장 비겁한 왕으로 기록된 선조. 하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기록 뒤편에는 이처럼 한 여인을 뜨겁게 사랑하고, 자식을 잃고 통곡했으며,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했던 한 남자의 인간적인 이야기가 숨어있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들려드린 이야기가 어떠셨나요? 여러분이 알고 계셨던 역사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오늘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다음 시간에는 더욱 강렬하고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숙종과 장희빈】 단 하루도 떨어질 수 없던 그들, 조선을 흔든 금지된 로맨스 편, 절대 놓치지 마세요! 지금까지 '조선야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