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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의 짧은 재위, 조선 왕조의 잃어버린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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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4개월의 짧은 재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8대 왕 예종. 세조의 뒤를 이어 개혁을 꿈꾸었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라진 그의 통치는 조선 역사의 큰 물음표로 남았다. 숙부 세조의 왕위 찬탈과 사육신의 비극 사이에서 고뇌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예종, 그가 꿈꾸었던 조선의 미래와 그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후킹멘트
역사는 '만약'이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감히 질문해봅니다. 만약 예종이 단 14개월이 아닌 14년을 다스렸다면, 조선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사육신의 원한과 단종의 한을 풀고자 했던 젊은 왕, 세조의 아들이자 성종의 형으로서 그가 품었던 비밀스러운 꿈과 좌절.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궁중의 은밀한 이야기와 예종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그가 남긴 미스터리를 함께 풀어보는 시간. 귀를 기울이면 500년 전 역사의 숨결이 들립니다.
※ 세조의 임종과 예종의 즉위, 아버지의 유언과 왕이 된 슬픔
조선 세조 14년,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의 끝자락. 창덕궁 대조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병석에 누운 세조의 숨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 그 어떤 신하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창밖으로는 여름비가 후드득 떨어지고, 세조의 눈가에는 말할 수 없는 회한이 맺혀 있었습니다.
"해와... 해와..." 세조가 희미한 목소리로 부르자, 그의 곁을 지키던 해와대군이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아바마마, 신이 여기 있사옵니다." 해와대군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그는 세조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아버지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 죽음이 자신에게 가져올 무거운 왕관의 무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세조는 흐릿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습니다. "단종의 일... 그리고 사육신... 그들이 네 꿈에 나타나더냐?" 뜻밖의 질문에 해와대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찌 아버지가 자신의 비밀스러운 악몽을 알고 있을까요.
"아버님... 어찌..."
"왕이 되면...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 말거라. 내가... 내가 이미 그 모든 죄를 짊어졌으니..." 세조의 말은 기침으로 잠시 끊겼습니다. "너는... 너는 단지 그 결과를 다스릴 뿐이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습니다. 마치 하늘도 이 순간을 애도하는 듯했습니다. 세조는 마지막 힘을 다해 해와대군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왕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과거의 유령들과 싸우는 일이다. 하지만 네가... 네가 그들과 화해할 수 있다면..."
말을 마치지 못한 채, 세조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해와대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그는 예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가슴에 새기며, 그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삼일 뒤, 비가 그친 맑은 하늘 아래 예종의 즉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새 임금의 얼굴에는 기쁨보다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왕관이 단종의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왕관을 아버지가 빼앗았다는 사실을.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이미 죽은 사촌형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예종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도승지 서거정이 다가와 아뢰었습니다. "전하, 이제 첫 번째 조정을 여실 차례입니다." 예종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많은 계획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개혁을 완성하고, 동시에 단종과 사육신의 넋을 위로할 방법을. 그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왕좌에 올랐습니다. 이것이 예종의 짧은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 예종과 정희왕후의 갈등,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정치적 긴장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궁궐의 담장을 타고 흘렀습니다. 예종은 홀로 경복궁 향원정에 앉아 연못에 비친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즉위한 지 두 달, 그는 점점 더 고독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어머니 정희왕후와의 관계가 그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전하, 대비마마께서 어진을 보러 가실 것을 청하셨습니다." 내관의 목소리에 예종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습니다. 아버지 세조의 어진이 모셔진 곳으로 함께 가자는 어머니의 청이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또다시 과거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예종이 대비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 정희왕후는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자신의 아들이 임금이 된 지금도 그녀의 위엄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아들아, 오늘은 네 아버지의 어진 앞에서 함께 기도하자꾸나. 선왕께서 남기신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희왕후의 말에는 늘 숨겨진 의미가 있었습니다. '선왕의 뜻'이란, 세조가 일으킨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라는 은근한 압력이었습니다.
예종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 어머니. 소자가 어찌 선왕의 뜻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동안, 가을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습니다. 예종은 어머니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님, 소자가 사육신의 가족들에게 약간의 위로금을 내리고자 합니다. 이미 십 년이 넘는 세월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정희왕후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습니다. "네 아버지께서 그들을 역적으로 다스리셨는데, 이제 와서 그들을 동정한단 말이냐? 네가 세조대왕의 정통성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네 자신의 정통성도 의심하는 것이다!"
예종은 침묵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함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한 회의가 공존했습니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차지한 것, 이에 반대한 사육신을 처형한 것.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즉위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그것은 무거운 죄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님, 소자는 단지 과거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우리 왕실의 안정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희왕후는 차갑게 웃었습니다. "안정? 네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순간, 사람들은 네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너는 불효자가 될 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아직도 꿈에서 그들을 보고 있느냐?"
예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도 자신의 악몽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밤 그를 찾아오는 단종의 슬픈 눈빛과 사육신들의 원망 어린 표정들. 그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그는 땀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곤 했습니다.
"걱정 마시오, 어머님. 소자는... 아버님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희왕후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그 무게는 무거웠습니다. "네가 왕이 되었다고 해서, 내가 너를 지켜보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세조대왕의 피가 네 안에 흐르고 있음을 잊지 마라."
두 사람은 나란히 세조의 어진이 모셔진 전각에 도착했습니다. 예종은 아버지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조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그 눈빛 속에서 예종은 수많은 질문과 요구를 읽어냈습니다.
그날 밤, 예종은 자신의 침소에서 혼자 붓을 들었습니다. 그가 쓰고 있던 것은 사육신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교서의 초안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리고 어머니 정희왕후의 강력한 반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사육신의 한, 단종의 복위를 꿈꾸었던 충신들에 대한 예종의 은밀한 생각
깊은 밤, 예종은 창덕궁 후원을 홀로 거닐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흩어지며 그의 발걸음을 비추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음 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 헤매는 듯했습니다.
"전하, 이 밤중에 어찌 홀로 나오셨습니까?"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한 노인의 목소리에 예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세조 시대부터 궁에서 일해 온 서거정이었습니다.
"서 학사... 잠이 오지 않아 걷고 있었네." 예종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대는 어찌 이 시각에?"
서거정은 조심스레 대답했습니다. "늙은이라 잠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매일 밤 이렇게 거니신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갑자기 예종이 물었습니다. "서 학사는 사육신을 기억하는가?"
서거정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성삼문, 박팽년 등 여섯 신하에 관한 이야기는 조정에서 꺼내기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을 처형한 이는 바로 예종의 아버지 세조였기 때문입니다.
"전하... 그 일은 이미 오래전 일이라..." 서거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시오?" 예종의 목소리는 차분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미 왕위에 오른 세조에 맞서... 그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을 알았을 텐데."
서거정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충(忠)이라는 한 글자였겠지요. 그들에게 단종은 유일한 임금이었을 테니까요."
달빛 아래, 예종의 눈에 슬픔이 깃들었습니다. "한 임금을 섬기는 충성...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었구려. 나는 가끔 생각하오.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서거정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위대한 왕이었소. 많은 업적을 이루셨지. 하지만..." 예종은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흘린 피가 있었소. 사육신의 피, 그리고 단종의 눈물..."
바람이 불어 예종의 옷자락을 흔들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들의 혼령이 아직도 이 궁궐을 떠돌고 있을까? 매일 밤 꿈에서 그들을 만나오. 성삼문이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 원망도, 분노도 없이 그저 슬픔만 담겨 있소."
서거정은 놀란 눈으로 예종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니,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전하, 선왕의 결정을 의심하시는 것은..."
"의심이 아니오, 서 학사." 예종이 말을 끊었습니다. "나는 그저 화해를 원하는 것이오. 이 나라가 더 이상 상처 위에 세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서거정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사육신의 가족들에게 비밀리에 녹을 내리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계획이 적힌 초안이었습니다.
"이것은..." 서거정의 손이 떨렸습니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때가 오면, 내가 직접 할 것이오." 예종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역사는 승자가 쓰지만, 진실까지 바꿀 수는 없소. 나는 아버지의 치적을 이어가되, 그 상처도 함께 치유하고 싶소."
그날 밤, 달은 구름에 가려 어두워졌습니다. 예종은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치 단종과 사육신의 영혼에게 약속하는 듯한 그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 개혁의 시작,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꿈꾸던 새로운 조선
이른 아침, 예종은 경복궁 사정전에서 신하들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즉위 후 첫 개혁안을 발표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예종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강렬했고, 그의 자세는 더욱 당당했습니다.
"여러 대신들께 묻겠소. 백성을 위한 정치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예종의 첫 질문에 조정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영의정 한명회가 먼저 나서서 대답했습니다.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신이 생각하는 정치의 근본입니다."
예종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백성들은 편안한가? 농민들의 세금은 적정한가? 양반들의 권력 남용은 없는가?"
신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습니다. 이런 직접적인 질문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예종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 아버지 세조대왕께서 많은 개혁을 이루셨소.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소. 오늘부터 새로운 개혁을 시작하고자 하오."
그가 내민 문서에는 여섯 가지 개혁안이 적혀 있었습니다. 첫째, 과도한 공납의 시정. 둘째, 노비 제도의 개선. 셋째, 향약의 확대 실시. 넷째, 지방관의 권한 제한. 다섯째, 교육 기관의 확충. 여섯째, 군사 제도의 개혁.
"이 모든 것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이오. 특히 공납의 시정은 시급하오. 백성들이 내는 공물이 중간에서 착취되는 일이 너무 많소."
한명회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습니다. "전하, 이러한 개혁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시간이 없소, 영의정." 예종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백성들은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소. 그들의 고통은 내일로 미룰 수 없는 것이오."
그때, 좌의정 신숙주가 나섰습니다. "전하의 뜻은 매우 높으십니다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특히 노비 제도의 개선은 양반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예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반발이 있을 것을 알고 있소. 하지만 정의로운 일에 대한 반발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겠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습니다. 창밖으로는 궁궐 담장 너머 한양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멀리 백성들의 초가집과 시장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현전 출신의 학자들을 다시 모아 학문을 진흥시키고 싶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가고 싶소."
이 말에 집현전 출신 학자였던 서거정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전하, 집현전이 다시 문을 연다면, 많은 선비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학문과 정치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예종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소. 나는 학문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나라를 꿈꾸오. 현명한 학자들이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소."
침묵이 흐른 후, 예상치 못하게 정희왕후가 입장했습니다. 모두가 놀라 일어나 절을 올렸습니다. 정희왕후는 예종을 날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아, 이리 급하게 개혁을 서두르다니. 세조대왕께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셨는데, 너무 조급해 보이는구나."
예종은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업적은 위대합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정희왕후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변화는 좋지만,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노비 제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예종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가 왕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희왕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종은 남은 신하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이 나라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소. 백성을 위한 정치, 그것이 내가 꿈꾸는 조선의 모습이오."
해가 높이 떠오르며 사정전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예종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조선에 대한 꿈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 갑작스러운 병환, 점점 심해지는 병세와 의문의 증상들
한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궁궐을 감싸던 예종 원년 11월의 어느 날, 내의원 의관들이 급히 대내로 불려들었습니다. 예종이 갑작스러운 병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로 여겨졌으나, 날이 갈수록 병세는 깊어만 갔습니다.
"전하의 맥이 심히 약하옵니다. 열이 지속되고 기운이 많이 떨어지셨습니다." 내의원 도제조 양성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예종의 상태를 전했습니다.
침소 안에는 정희왕후와 안순왕후, 그리고 예종의 어린 아들 제안대군이 함께 있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는 깊은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안순왕후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리 갑자기... 전하는 항상 건강하셨는데..." 안순왕후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그때 예종이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걱정 마시오, 왕비... 곧 나아질 것이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는 것을. 예종의 병에 대해 의관들은 끊임없이 논의했지만,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는 과로 때문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독특한 증상을 보고 중독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예종은 고열에 시달리며 잠꼬대처럼 말했습니다. "사육신... 그들을 용서해야 해... 단종의 넋을 위로해야 해..."
침소 밖에서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의 얼굴은 굳어졌습니다. 특히 한명회와 신숙주는 서로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사육신과 단종은 결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이름들이었습니다.
"전하께서 평소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던가?" 한명회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도승지 홍응이 조심스레 대답했습니다.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만... 최근 예종께서 사육신의 가족들에게 은밀히 위로금을 내리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명회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왕의 병이 깊어지니 근심스럽구나. 어서 쾌차하시길..."
며칠이 지나도 예종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약해져 갔습니다. 그는 때때로 맑은 정신을 되찾아 국정을 논하기도 했지만, 금세 다시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저녁, 예종은 신하들을 침소로 불러들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의지만큼은 강했습니다. "내가 계획했던 개혁안을 서둘러 실행해야 하오. 시간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소."
신하들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왕을 위로했습니다. "전하, 곧 회복하실 것입니다. 천천히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예종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오... 내 꿈이...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렵소."
그날 밤, 예종은 홀로 남아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정희왕후가 들어왔습니다.
"어머니..." 예종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정희왕후는 아들 곁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습니다. "아들아,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예종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어머니... 제가 과연 좋은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정희왕후의 눈에 순간 물기가 감돌았습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넌 이미 훌륭한 왕이다. 너무 조급해 하지만... 그것도 네가 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렸습니다. 예종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어렸습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 예종의 죽음과 유산, 14개월의 짧은 재위가 남긴 역사적 물음표
예종 원년 12월 초, 한양에는 첫눈이 내렸습니다. 하얀 눈이 궁궐의 처마와 담장을 덮었지만, 그 순백의 아름다움조차 궁중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줄 수 없었습니다. 예종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이제 그의 회복을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침소 안에는 신하들과 가족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 슬픔에 잠긴 얼굴로 예종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종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그의 호흡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전하, 마지막 유언을 남기실 것이 있으시면..." 영의정 한명회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예종은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그의 시선은 어린 아들 제안대군에게 향했습니다. 겨우 열 살의 나이였지만, 제안대군의 눈에는 이미 어른스러운 슬픔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내 아들... 그리고 동생 자을대군..." 예종의 목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을... 잘 부탁하오..."
정희왕후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들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내가 모든 것을 돌볼 것이다."
예종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듯한 미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천천히 서거정에게 향했습니다.
"서 학사... 내가 말했던 그 일... 기억하시오..."
서거정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종이 말한 것이 사육신의 명예 회복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신이... 신이 기억하겠습니다, 전하..." 서거정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잠시 후, 예종은 마지막 힘을 모아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왕이 되고 싶었소... 백성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소..."
그리고 천천히 그의 눈이 감겼습니다. 방 안이 숨죽인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내의원 의관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예종의 맥을 짚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아..." 탄식이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조선의 제8대 왕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 밤, 궁궐 전체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의 그림자 속에서, 권력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희왕후를 중심으로 한 원로대신들은 빠르게 다음 왕위 계승자를 논의했습니다.
"제안대군은 아직 어리니, 자을대군이 즉위해야 합니다." 한명회의 의견에 많은 신하들이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열두 살의 어린 자을대군이 성종으로 즉위했습니다. 예종의 짧은 통치는 마치 한 편의 꿈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예종이 떠난 지 몇 달 후, 서거정은 홀로 창덕궁 후원을 거닐었습니다. 그곳은 예종이 생전에 자주 걷던 길이었습니다. 봄이 오고 있었고, 나무들은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전하... 전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서거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전하의 마음만은 우리가 기억하겠습니다."
역사는 종종 '만약'이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했습니다. 만약 예종이 오래 살았더라면, 만약 그가 꿈꾸던 개혁이 이루어졌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단 14개월의 짧은 재위, 그것은 조선 왕조의 잃어버린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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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예종의 짧은 재위, 조선 왕조의 잃어버린 기회'를 들어주셨습니다. 단 14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조선의 왕위에 있었던 예종, 그는 아버지 세조의 그림자와 단종의 원한 사이에서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도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예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병은 정말 자연적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의 개혁 정책이 불러온 정치적 암투의 결과였을까요? 어느 쪽이든, 예종의 짧은 재위는 조선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물음표를 남깁니다.
예종의 죽음 이후, 조선의 왕위는 그의 어린 동생 자을대군에게 넘어갔습니다.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자을대군은 후에 성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왕을 둘러싼 권력의 게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성종 즉위의 비밀: 어린 왕을 둘러싼 정치적 계산'에서는 예종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어린 성종을 중심으로 펼쳐진 정치적 암투와 그 이면에 숨겨진 권력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은 더 많은 역사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듣고 싶은 조선의 비사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이 역사를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