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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마라!" 영조, 탕평책으로 당쟁을 잠재우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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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피로 물든 왕좌에 오른 군주, 영조. 그의 앞에는 서로를 죽고 죽이는 붕당의 칼날만이 번뜩였다. "싸우지 마라!" 그의 절규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까? 왕의 고독과 금지된 사랑, 그리고 탕평이라는 위태로운 꿈.
디스크립션 (300자)
경종 독살설의 그림자 속에서 왕이 된 영조. 노론과 소론의 극단적인 대립은 조정을 마비시키고, 민생은 파탄에 이른다. 이 비극을 끊기 위해 영조는 '탕평책'이라는 칼을 빼 든다.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려는 그의 노력은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싹트는 위험한 감정. 왕의 고뇌와 정치적 야망, 그리고 역사의 격랑 속 개인의 운명을 그린다.
※ 영조는 선왕 경종의 독살설이라는 정통성 시비
먹물을 풀어놓은 듯 칠흑 같은 어둠이 경복궁을 집어삼켰다. 인기척 하나 없는 경현당, 임금의 침소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용상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군주, 이금. 훗날 영조라 불릴 그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마치 형, 경종의 원혼처럼 일렁이는 듯하여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수라를 올리는 나인의 손길에서도, 잠자리를 보살피는 상궁의 그림자 뒤에서도 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궁궐 전체가 거대한 감옥이었고, 모두가 교활한 간수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홀로 남겨진 시간, 그는 잠시 눈을 붙였지만 이내 끔찍한 악몽에 몸부림쳤다. 꿈속에서 그는 차가운 편전에 홀로 서 있었다. 저 멀리서 형 경종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손에는 그날의 게장과 생감이 들려 있었다. "금아… 연잉군… 어찌하여 내게 이런 것을 주었느냐…." 경종의 목소리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입가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것을 먹고 내 창자가 다 녹아내리는 듯하구나. 왕좌가… 그리도 탐이 났더냐…." 경종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사방의 벽이 무너지며 노론과 소론의 신료들이 삿대질을 하며 달려들었다. ‘선왕을 시해한 역적을 왕으로 섬길 수 없다!’ ‘아우가 형을 죽인 패륜의 현장이다!’ 그들의 고함 소리가 그의 귓전을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아니다… 내가 아니야…!”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선왕 독살설. 그것은 그가 왕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짊어져야 할 끔찍한 주홍글씨이자, 평생 그를 괴롭힐 족쇄였다. 그를 왕으로 추대한 노론 세력은 이 일을 빌미로 소론을 완전히 제거하려 했고,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몰린 소론은 복수의 칼날을 갈며 그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조정을 장악한 노론의 영수 민진원은 웃는 얼굴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영조는 그의 눈빛 뒤에서 ‘우리가 만들어준 왕’이라는 오만함을 읽었다. 그들은 언제든 자신들의 뜻을 거스르면 자신을 폐위시킬 수도 있는 굶주린 이리 떼였다. 그는 옥좌라는 화려한 감옥에 갇힌, 가장 힘없는 죄수였다. “전하, 소론의 잔당들이 아직도 국문을 거부하며 전하를 능멸하고 있사옵니다. 이들을 모조리 참하여 종묘사직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전하! 이는 노론이 조정을 장악하려는 간계이옵니다! 부디 옥석을 가려 무고한 희생을 막아주시옵소서!” 낮에 있었던 조정 회의의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짐승들처럼,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편전은 거대한 투전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는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었다. 이 참극을, 이 지긋지긋한 당쟁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그리고 자신은, 결국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멸하고 말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굳게 닫힌 궁궐의 문들이, 마치 자신의 암담한 미래처럼 느껴졌다. “싸우지 마라… 제발….”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한 나라의 군주가 내뱉는 명령이 아니었다. 피로 얼룩진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한 인간의 처절한 절규였다. 그는 이 밤, 굳게 결심했다. 더 이상 노론의 칼도, 소론의 방패도 되지 않겠다고. 신하들의 왕이 아니라, 백성의 왕이 되겠다고. ‘탕평(蕩平)’. 그의 뇌리에 흐릿했던 두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물처럼 평평하게 세상을 다스린다. 그것은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자, 동시에 자신을 더욱 깊은 고독의 나락으로 밀어 넣을 위험한 도박의 시작이었다. 그는 옥새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차가운 감촉이 그의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 영조가 탕평의 의지를 처음으로 천명한다.
다음 날 아침, 편전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날카로웠다. 밤새 잠 못 이룬 영조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밤사이 내린 서리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용상에 앉은 그는 묵직한 침묵으로 조정을 압도했다. 신하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왕의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지 긴장하고 있었다. 용상 아래, 노론과 소론의 신료들은 보이지 않는 선을 경계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영조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편전 전체를 울릴 만큼 힘이 있었다. “과인은 어젯밤, 꿈속에서 선대왕을 뵈었소.” 그의 말에 조정이 술렁였다. 특히 소론 신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또다시 경종 독살설을 빌미로 자신들을 압박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선대왕께서는 과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어찌하여 나의 신하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상을 내버려 두느냐’ 한탄하셨소. 붕당의 폐해가 이 나라의 근간을 좀먹고 있음을 통탄하셨단 말이오.” 영조는 신하들을 하나하나 꿰뚫어 볼 듯한 시선으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이에 과인은, 오늘 이 자리에서 과인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오. 지금부터 이 조정에는 노론도, 소론도 없을 것이오! 오직 왕의 신하와 백성의 신하만이 있을 뿐이다!” 그 선언은 마치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과도 같았다. 편전은 순간 정지한 듯 고요해졌고, 이내 벌집을 쑤신 듯한 소란에 휩싸였다. 노론의 영수, 영의정 민진원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겉으로는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성군의 자질을 타고나셨나이다! 탕평의 대의를 밝히시니, 이 늙은 신은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전하의 뜻을 받들어, 당색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데 앞장서겠나이다.” 그의 말은 교활한 능구렁이의 혓바닥처럼 매끄러웠다. 그는 탕평을 명분으로, 아직 조정에 남아있는 소론의 잔당들을 합법적으로 제거하고, 온건파 소론을 흡수하여 노론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으리라 계산했다. 반면, 소론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젊은 관료, 이조좌랑 윤수호는 굳은 얼굴로 반박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탕평의 대의는 지당하오나, 시기가 심히 우려스럽사옵니다. 지금의 조정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저울과 같사옵니다. 이런 상태에서의 탕평은 기울어진 저울에 무게를 더하는 격일 뿐, 결코 수평을 이룰 수 없사옵니다! 옥석을 가려 역도들을 먼저 처단하신 후에, 탕평을 논하여도 늦지 않사옵니다!” 그의 말은 곧, 정권을 장악한 노론을 먼저 쳐내지 않는 한 진정한 탕평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의 말에 소론 신료들이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노론 신료들은 역심을 품은 발언이라며 그를 탄핵해야 한다고 맞섰다. 조정은 순식간에 두 패로 갈려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고,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날 듯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영조는 그 모습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저 늙은 여우 민진원은 탕평을 이용해 제 배를 채우려 하고, 저 젊은 늑대 윤수호는 탕평을 명분 삼아 복수를 꿈꾸는구나. 모두가 제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있구나.’ “조용히 하라!” 그의 불호령에 편전이 다시 조용해졌다. “과인의 뜻은 변함이 없소. 탕평의 길에 동참하지 않는 자는, 노론이든 소론이든 가리지 않고 과인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오. 또한, 과인은 당파를 가리지 않고 오직 능력만으로 인재를 등용할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오.” 그는 윤수호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소론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그의 당돌함과 기개를 높이 사는 듯했다. 영조의 탕평 선언은 그렇게, 거대한 폭풍의 서막을 열었다. 그의 이상은 높았으나, 현실의 벽은 견고했다. 그의 앞에는 이제, 웃는 얼굴로 칼을 들이미는 적들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자들만이 남게 될 터였다.
※ 젊은 소론 관료 '윤수호'는 정보 수집을 위해 기방을 찾는다.
서라벌의 밤을 수놓는 화려한 등불 사이에서도, 유독 은밀한 빛을 발하는 곳이 있었다. 최고위 관료들과 거상들만이 드나든다는 일급 기방, 월향루. 그곳은 단순한 유흥의 공간이 아니었다. 비단 발 너머에서는 권력의 향방이 논의되었고, 여인의 치마폭 아래에서는 은밀한 정보가 거래되었다. 이곳은 정치의 축소판이자, 욕망의 용광로였다. 탕평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젊은 소론 관료 윤수호는 오늘 밤, 복잡한 심경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의 목적은 유흥이 아니었다. 탕평책을 지지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소론을 와해시키려는 노론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탕평이 소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한 덫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왕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그 의지를 실행할 손발은 모두 노론의 사람들뿐이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정보가 필요했다. 적의 심장부에서 흘러나오는 가장 내밀한 정보가. 월향루의 가장 깊숙한 방, 그는 그곳에서 노론의 숨겨진 실세이자 책사로 알려진 김상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김상로가 아니라, 눈처럼 하얀 소복 차림의 기생, 월하였다. 그녀는 월향루의 일패기생이자, 김상로가 지극히 아끼는 애첩으로 알려져 있었다. “윤 대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옥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 맑았지만, 그 눈빛은 웬만한 사내들을 압도할 만큼 깊고 서늘했다. 그녀는 단순한 기생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윤수호의 속내를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김 대감께서는 급한 관무로 조금 늦으실 듯합니다. 제가 먼저 술이라도 한 잔 올리게 해 주십시오.” 윤수호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그녀가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월하는 그런 그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대감께서는 어찌하여 탕평이라는 허울 좋은 칼날 위에 스스로 목을 내놓으셨습니까. 전하의 탕평은, 결국 노론의 배를 불리고 소론의 숨통을 끊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윤수호의 가슴에 박혔다. “기생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하구나. 나라의 대사를 어찌 그리 쉽게 입에 담는 것이냐.” “기생이기에 더 잘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사내들의 권력 다툼이 얼마나 허망하고,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저는 이 자리에서 매일 밤 보고 듣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덧붙였다. “오늘 아침, 영의정 대감께서 대감의 집안을 뒷조사하라 명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대감의 부친께서 과거 신임사화에 연루되었던 일까지 다시 들추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윤수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소수의 핵심 관료들만 아는 정보였다. 이 여인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자신의 잔을 채워 단숨에 비웠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녀의 하얀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 순간, 윤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치적 적의 여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한 사내로서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의 서늘한 눈빛 뒤에 숨겨진 깊은 슬픔, 그리고 세상을 향한 냉소. 그것은 마치 자신을 보는 듯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 짧은 순간, 그들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동질감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이 만남이 훗날 서로의 목을 겨누는 비수가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그들은 이미 위험한 불꽃에 휩싸이고 있었다. 윤수호는 깨달았다. 이 여인이 단순히 김상로의 애첩이 아니라, 그의 눈과 귀,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그 칼날에 매혹되어 버렸다는 것을.
※ 탕평책에 대한 반발과 끊임없는 암살 위협
밤이 깊었으나 영조는 여전히 서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글자를 좇을 뿐, 그 뜻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 신경이 문밖의 작은 소리 하나, 바람에 창호지가 떠는 소리 하나에도 곤두서 있었다. 탕평책을 선언한 이후, 노론과 소론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낮에는 충신을 자처하며 머리를 조아리던 자들이, 밤이 되면 자객을 보내거나 저주의 상소를 올렸다. 얼마 전에는 수라상에 오를 은수저가 검게 변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이제 음식 한 술, 물 한 모금도 마음 놓고 넘길 수 없었다. 지독한 불면과 스트레스에 그의 신경은 닳아빠진 활시위처럼 위태로웠다. 그때, 조심스럽게 침전의 문이 열리고 은은한 난향과 함께 한 여인이 들어섰다. 그의 유일한 후궁, 정빈 이씨였다. 그녀는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전하, 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계시옵니까. 용안이 상하실까 심히 걱정되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유일하게 그의 긴장을 풀어주는 약이었다. 영조는 들고 있던 서책을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빈은 왕가의 혈통이 아닌, 평범한 양가의 여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서는 정치적인 야심이나 계산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전하’이기 이전에, ‘지아비’로, 고독한 한 사내로 대했다. “잠이 오지 않는구나. 눈을 감으면, 나를 향해 칼을 가는 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어.” 영조는 처음으로 자신의 나약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빈은 그의 지친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전하께서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계십니다. 잠시만이라도 그 짐을 내려놓으시지요.” 그녀는 영조를 침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그의 관복을 벗기고, 지친 몸을 눕혔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뉘이고, 부드러운 손길로 관자놀이를 지압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과 부드러운 손길에, 팽팽했던 영조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는 아이처럼 그녀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정치, 암투, 배신, 그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이 순간의 평온함에 기대고 싶었다. 정빈은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자장가였다. 그 노래를 들으며 영조는 자신을 옥죄던 불안감에서 벗어나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정빈은 잠든 영조의 얼굴을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만인지상의 군주. 그러나 그 실체는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이 홀로 모든 풍파를 감내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내였다. 그녀는 그의 곁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 생각했다.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 그녀는 잠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포갰다. 그것은 정욕의 입맞춤이 아니었다. 연민과 사랑, 그리고 지켜주겠다는 굳은 맹세가 담긴, 성스럽고도 슬픈 입맞춤이었다. 이 위험한 세상 속에서, 이 짧은 밤의 평온함이 두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행복이었다.
※ 윤수호와 월하는 서로의 신분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감정
달빛만이 교교히 내리는 깊은 밤, 월향루의 가장 깊숙한 방에서는 두 남녀가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탕평의 선봉에 선 소론 관료 윤수호와, 노론의 책사 김상로의 여인 월하. 두 사람은 결코 만나서는 안 될 사이였다. 그러나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겉잡을 수 없이 번져, 이제는 서로를 태워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만남은 처음에는 정보를 위한 거래였다. 월하는 김상로에게서 얻은 노론의 내밀한 정보를 윤수호에게 넘겼고, 윤수호는 그 정보를 이용해 노론의 공격을 막아내고 왕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거래가 반복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정보원을 넘어섰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자신과 같은 종류의 고독과 세상을 향한 냉소를 발견했고, 동질감은 이내 거부할 수 없는 연모의 감정으로 변해갔다. “오늘 밤, 김 대감이 영의정 대감을 만났습니다.” 격정적인 정사가 끝난 후, 월하는 윤수호의 품에 안겨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 가쁜 숨결로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윤수호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물었다. “전하께서 새로 중용하려는 남인들을 막을 방도를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대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월하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저들이 대감을 역모로 엮으려 하고 있습니다. 부친께서 신임사화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빌미 삼아, 대감 또한 역심을 품고 있다는 상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윤수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미 예상했던 바였지만, 월하의 입을 통해 확인하니 심장이 차갑게 식는 듯했다. 그는 월하의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 여인은 지금,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이 발각된다면, 그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위험합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더 이상 나를 만나러 오지 마시오.” 윤수호는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월하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대감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차피 저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김 대감의 노리개로 살다가, 늙고 병들면 버려지겠지요. 차라리… 대감을 위한 칼이 되어 부러지는 것이 낫습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윤수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위험한 관계는 독배와도 같았다. 마시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오직 서로의 체온과 숨결에만 의지한 채, 두 사람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방 안의 촛불이 두 사람의 위태로운 그림자를 비추며 세차게 흔들렸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탐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구원이자 안식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두 사람의 밀회를,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눈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이미 거대한 음모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 영조는 자신의 탕평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운다
며칠 후, 영조는 자신의 탕평 의지를 만천하에 공포하기 위해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우도록 명했다. 비석에는 ‘두루 원만하고 치우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마음이고, 치우치고 원만하지 못한 것이 소인의 마음이다(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 寔小人之私意)’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탕평비 제막식이 열리는 날, 영조는 친히 성균관을 찾았다. 수많은 유생들과 신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탕평의 대의를 다시 한번 역설했다. “이 비석은 과인의 굳은 의지이니, 경들은 당파를 떠나 오직 학문과 백성을 위해 정진하라! 앞으로 이 비석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과인의 신하가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 영조의 목소리는 위엄으로 가득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백성들은 환호했다. 윤수호는 그 모습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왕의 의지는 하늘을 찌를 듯했으나,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더러운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젯밤 월하에게서 전해 들은 노론의 역모 계획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론은 영조가 아끼는 남인 출신 관료를 역적으로 몰아 제거하고, 그 배후에 소론이 있는 것처럼 꾸며 탕평책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윤수호는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증좌가 없었다. 섣불리 고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저편에서 영의정 민진원과 김상로가 자신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오만하고 잔인한 미소였다. 윤수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왕을 지키고, 탕평을 지키고, 그리고… 월하를 지켜야 했다. 제막식이 끝나고, 영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환궁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자리, 탕평비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서 새로운 비극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탕평이라는 위태로운 꿈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한가운데에, 자신들의 운명도 모른 채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 두 남녀가 있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이제 막, 피의 길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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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마라!” 영조의 절규로 시작된 탕평책. 그러나 그의 원대한 꿈은 뿌리 깊은 붕당의 현실 앞에서 위태롭기만 합니다. 왕의 고독과 금지된 사랑, 그리고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 과연 영조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탕평의 시대를 열 수 있을까요? 구독과 좋아요는 다음 역사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다음 시간에는 영조의 가장 깊은 상처이자 평생의 콤플렉스였던 출생의 비밀을 다룹니다. "나는 무수리의 아들이다" 영조의 출생 콤플렉스와 정통성 편도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