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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과 장녹수가 벌인 놀이

빛나는 인생 2025. 8. 11. 20:58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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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과 장녹수가 벌인 놀이

    태그 (20개)

    #연산군, #장녹수, #조선왕조실록, #역사, #로맨스, #폭군, #요부, #사랑, #집착, #권력, #비극, #흥청망청, #궁중비사, #역사드라마, #오디오드라마, #라디오드라마, #조선, #왕, #기생

    후킹멘트 (200자)

    왕을 갓난아기처럼 다룬 희대의 요부, 장녹수.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행복했던 폭군, 연산군. 역사가 기록한 가장 위험하고도 관능적인 사랑, 그 충격적인 놀이의 막이 오릅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연산군일기' 속, 가장 강렬한 스캔들. 어머니를 잃은 상처로 미쳐가던 왕, 연산군. 그의 광기를 유일하게 잠재운 것은 서른이 넘은 유부녀 기생, 장녹수였습니다. 왕을 제멋대로 주무르며 권력을 탐했던 그녀와, 모든 걸 알면서도 기꺼이 그녀의 노리개가 되어주었던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

    ※ 텅 빈 용상, 채워지지 않는 갈증

    조선의 열 번째 군주, 연산의 시대. 궁궐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하고 소란스러웠습니다. 경회루의 연못에는 매일 밤, 전국 각지에서 뽑아 올린 흥청(興淸)이라 불리는 수백의 기생들이 비단 배를 띄우고, 그들의 웃음소리와 가야금 소리는 새벽까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연회의 중앙,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왕, 연산은 붉은 용포를 입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기름진 산해진미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그의 잔에는 값비싼 술이 마를 틈 없이 채워졌습니다. 어리고 아리따운 기생들은 왕의 시선을 받기 위해, 교태를 부리며 그의 옷자락에 매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넘쳐났습니다. 부와 권력, 여자와 쾌락. 하지만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그 어떤 것을 채워 넣어도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공허와 갈증만이 담겨 있었지요. 그는 신하들의 목을 베고, 그들의 아내를 겁탈했으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이 화려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자극도, 그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와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그 상처의 이름은 ‘어머니’였습니다. 폐비 윤씨. 사약을 받고 죽은 생모의 그림자는, 평생 그를 악몽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간 세상 모든 것을 증오했습니다. 그래서 부쉈고, 빼앗았고,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 공허는 더욱 커져만 갔지요. 그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신하들의 눈빛에 신물이 났고, 자신에게 아첨하는 계집들의 가식적인 미소에 구역질이 났습니다. 그는 진짜를 원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꾸밈없는 무언가를 갈망했습니다. 그날 밤도, 연회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왕이 갑자기 잔을 집어 던지자, 시끄럽던 풍악 소리와 웃음소리가 일순간에 멎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왕의 다음 행동을 두려움에 찬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지겹구나. 똑같은 춤사위, 똑같은 아첨. 이것이 정녕, 이 나라 최고의 기쁨이란 말이냐!” 그의 고함에, 기생 하나가 겁에 질려 앞으로 나섰습니다. “전… 전하, 소인이 새로운 춤을 올리겠나이다.” 그녀는 떨리는 몸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연산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춤을 추는 어린 기생의 얼굴 위로, 억울하게 죽어간 제 어미의 얼굴을 보고 있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네년의 춤사위가, 과인의 심기를 어지럽히는구나! 저년을 당장 끌어내 곤장을 쳐라!” 왕의 잔혹한 명령에, 연회장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연산은 피를 갈망하는 이리처럼,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만족시킬 것은 이 세상에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의 텅 빈 용상은, 새로운 종류의, 가장 위험한 자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요부의 등장, 길들여지지 않은 매력

    왕의 광기와 향락에 대한 소문이 도성에 파다할 무렵, 한 신하가 연산에게 새로운 여인을 추천했습니다. “전하, 제안대군의 노비 출신으로, 지금은 기생으로 있는 ‘장녹수’라는 계집이 있사온데, 그 노래와 춤솜씨가 일품일 뿐만 아니라, 그 재치와 담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옵니다.” 연산은 시큰둥했습니다. 어차피 또 다른 아첨꾼이거나, 두려움에 떠는 계집이겠지. 하지만 그는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한번 들여보라 명했습니다. 잠시 후, 대전의 문이 열리고 장녹수가 들어왔습니다. 연산은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그녀는 왕이 이제껏 보아왔던 어리고 아리따운 소녀가 아니었습니다. 나이는 이미 서른 줄에 들어서 있었고, 얼굴은 빼어나게 아름답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천한 기색이 남아있었으며, 몸집 또한 풍만하기보다는 마른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이까지 딸린 유부녀라는 소문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기생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당함’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왕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호기심과 도발이 뒤섞인 눈빛으로 왕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네가 장녹수더냐.” 왕의 물음에, 그녀는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 전하. 허나 기왕이면, 녹수라 불러주시지요.” 그녀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그 안에는 왕을 자신과 동등한 사내로 대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발칙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연산은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생겼습니다. “네년의 노래가 그리 대단하다 하더냐. 어디 한번 들어보자.” 장녹수는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맑고 고왔지만, 그 가사는 왕의 심중을 꿰뚫는 듯 날카로웠습니다. ‘높고 높은 용상에, 외로운 내 님아. 천하를 다 가져도, 마음 둘 곳 없구나.’ 왕은 저도 모르게 노래에 빠져들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물었습니다. “네년이, 과인의 마음이라도 읽는다는 것이냐?” 그러자 장녹수는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어찌 족집게처럼 아셨나이까? 천하를 다스리시는 전하께서도, 결국엔 어미 정이 그리운 사내 아이가 아니시옵니까?” 그 순간, 대전의 모든 신하들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왕의 가장 아픈 상처를, 금기 중의 금기를, 천한 기생 따위가 감히 입에 담은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장녹수의 목이 당장 달아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연산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노하기는커녕, 박장대소를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기가 막히는구나! 네년의 담력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는 평생 자신에게 복종하고 두려워하는 자들만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장녹수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그를 왕이 아닌, 한 사내로 보고 있었고, 그의 권위가 아닌 그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연산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날것의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녹수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습니다. “오늘 밤, 과인의 침소로 들라. 네년의 그 발칙한 혀가, 어디까지 움직이는지 똑똑히 확인해야겠다.” 그의 말은 명령이었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매료되었다는 노골적인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장녹수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더욱 요염한 미소로 그의 눈을 마주 볼 뿐이었습니다.

    ※ 왕과 아기, 금지된 위로

    그날 밤, 왕의 침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연산은 일부러 장녹수를 세워둔 채, 그녀의 앞에서 술을 마시고 신하들을 꾸짖으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다른 계집들이라면 벌써 겁에 질려 오줌을 지렸을 상황. 하지만 장녹수는 마치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그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신하들이 모두 물러가고, 침소에 단둘이 남게 되자, 연산은 술잔을 던지며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네년, 아직도 겁이 나지 않느냐? 당장이라도 과인이 네년의 목을 벨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이냐?”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장녹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습니다. “어이구, 우리 전하, 또 심통이 나셨네. 이리 온, 이 누이가 다 받아줄 터이니.” 그녀는 왕을 ‘전하’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미가 아들을 대하듯, 혹은 누이가 철없는 동생을 대하듯, 그를 ‘아기’처럼 취급했습니다. 연산은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평생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왕의 광기마저 제압하는, 이상하고도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연산의 용포를 벗겨내고, 그를 침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뉘게 했지요. “말해보거라, 오늘은 또 무엇이 너를 이리 화나게 만들었느냐. 어미를 닮은 계집이라도 보았느냐, 아니면 너를 능멸하는 신하라도 있었더냐.” 그녀는 그의 광기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모든 투정과 분노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주고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연산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그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세상에 대한 분노, 왕으로서의 지독한 고독. 장녹수는 그저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그의 얼굴을 들어 자신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가여운 것. 그러니 네가 그리도 포악해질 수밖에. 괜찮다. 이제부터는 이 녹수가, 너의 어미도 되어주고, 누이도 되어주고, 계집도 되어줄 터이니.” 그녀는 그의 눈물을 핥아주고, 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습니다.

    그날 밤의 잠자리는, 단순한 정사(情事)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길들임과 복종, 위로와 지배가 뒤섞인, 가장 원초적이고도 기묘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몸을 탐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영혼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안기면서도, 동시에 그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습니다. 연산은 그녀의 품 안에서, 난생처음으로 완벽한 안식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왕의 체통을 지킬 필요도, 폭군으로 군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어미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처럼,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긴 채 그녀가 주는 쾌락과 위로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은 죽은 어미의 품처럼 따스했고, 그녀의 간드러지는 신음 소리는 자신을 위로하는 자장가처럼 달콤했습니다. 그날 이후, 연산은 장녹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그의 광기를 부추기는 주인이었고, 그가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놀이 상대였습니다.

    ※ 피의 놀이, 권력의 파트너

    장녹수의 치마폭에 길들여진 연산은, 이제 그녀 없이는 단 하루도 국정을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정식 후궁인 ‘숙용(淑容)’의 첩지를 받았고, 그녀의 말 한마디는 영의정의 호통보다 더 큰 무게를 지녔습니다. 이제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침소 안에서의 비밀스러운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대전과 연회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가장 위험하고 잔혹한 권력 놀이의 시작이었습니다. 장녹수는 자신을 천한 노비 출신이라 무시했던 사대부 아내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발치에 엎드려 술을 따르게 하는 것으로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경부인이, 이제는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어야 했습니다. 장녹수는 그들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연산의 옆에서 요염하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연산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욱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녀의 복수는 곧 자신의 복수였고, 그녀의 쾌락은 곧 자신의 쾌락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완벽한 공범이자, 파멸의 연극을 함께 이끄는 공동 연출가였습니다.

    그들의 기이한 놀이는 날이 갈수록 더욱 대담하고 잔혹해졌습니다. 어느 날, 연산은 당대의 명망 높은 학자들과 고관대작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연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연회에는 풍악도, 음식도 없었습니다. 대신, 짐승의 가죽과 탈이 준비되어 있었지요. 연산은 신하들에게 소, 말, 돼지, 개 등의 탈을 씌우고,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짐승 소리를 내게 했습니다. “과인이 곧 하늘이니, 너희는 과인의 가축에 불과하다! 어디, 가장 구슬프게 우는 놈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왕의 광기 어린 명령에, 한때는 나라의 녹을 먹으며 백성을 논하던 존귀한 사대부들이, 살기 위해 기꺼이 짐승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엉덩이를 물어뜯고, 더 실감 나게 울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끔찍하고도 기괴한 광경을, 연산은 장녹수를 품에 안은 채 옥좌에 앉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장녹수는 그의 귓가에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전하, 저기 저 이조판서는 돼지 소리를 참으로 잘 내옵니다. 상으로 고기 한 점을 던져주시지요.”, “어이구, 저기 저 영의정 대감은 늙은 개처럼 구는 꼴이 참으로 볼만하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벌레 보듯 하던 자들이, 이제 자신의 발아래에서 짐승이 되어 뒹구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연산의 광기에 기름을 부었고, 연산의 폭력은 그녀의 권력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들의 놀이는 단순한 향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질서와 권위를 파괴하고, 오직 연산과 장녹수 두 사람만이 정점에 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의식이었습니다. 연회가 끝나고, 모두가 물러간 텅 빈 대전. 연산은 문득 현기증과 함께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녹수야… 이렇게 해도, 어미의 한은 풀리지 않는구나…” 그의 눈에 잠시, 어린아이 같은 나약함이 스쳤습니다. 장녹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가여운 내 아기. 아직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저들의 피로 강을 만들고, 뼈로 산을 쌓을 때, 비로소 전하의 상처도, 이 녹수의 한도 풀리는 것입니다.” 그녀의 위로는, 더 큰 피를 부르는 저주와도 같았습니다. 연산은 다시 그녀의 품에 안겨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와 욕망을 공유하고, 서로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는 완벽한 파트너였습니다. 사랑과 증오, 쾌락과 잔혹함이 뒤섞인 그들의 관계는, 조선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춤은, 점점 더 많은 피를 제물로 요구하며 파국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 흥청망청, 파멸의 연회

    연산과 장녹수의 시대,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온 나라에 울려 퍼졌습니다. ‘흥청’을 가까이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뜻의 이 말은, 곧 연산과 장녹수가 만들어낸 시대의 상징이었습니다. 왕은 이제 국정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장녹수와의 새로운 놀이를 구상하고, 더 큰 쾌락을 찾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조선 최고의 학문의 전당이었던 성균관은, 기생들의 숙소와 연회장으로 바뀌어 유생들은 모두 쫓겨났습니다. 공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던 대성전은, 왕과 기생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음행을 저지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유생들이 흘린 눈물 위로, 기생들의 교태 섞인 웃음소리가 덧씌워졌습니다. 전국의 사찰들은 문을 닫고, 그곳의 재산은 모두 장녹수의 개인 창고로 들어갔으며, 불상들을 녹여 기생들의 장신구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들의 사치와 향락은 끝을 몰랐습니다. 연산은 장녹수를 위해 궁궐 안에 작은 시장을 만들고, 그녀가 상점의 주인이 되어 물건을 팔면, 신하들이 억지로 비싼 값에 물건을 사게 하는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는 장녹수의 치마폭 아래에서, 세상을 자신의 거대한 놀이터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광기는 마침내, 피의 연회로 절정을 맞았습니다. 바로 연산의 생모,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에 관련된 모든 이들을 심판하는 ‘갑자사화’의 밤이었습니다. 연산은 그날 밤, 관련된 모든 신하와 그 가족들을 연회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자들은, 무덤이 파헤쳐져 그 시신이 연회장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연회장 중앙에는 거대한 가마솥이 걸려있었고, 그 안에서는 시뻘건 기름이 끓고 있었습니다. 연산은 장녹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 과인의 어미를 죽인 자들을 위한 마지막 잔치를 열고자 한다.” 그는 한 명씩 이름을 호명하며, 그들의 죄목을 읊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어머니의 피눈물’이라 이름 붙인, 소금물을 큰 사발로 마시게 했습니다. 사약을 마시듯 소금물을 마시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며, 연산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습니다. “어머니, 보고 계십니까… 당신의 아들이, 이리 당신의 원한을 갚고 있습니다…” 그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한 늙은 신하를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네놈이 바로, 내 어미에게 사약을 가져다준 그놈이렷다! 네놈의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장녹수는 그런 연산의 곁에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분노를 부추겼습니다. “전하, 저런 놈은 곱게 죽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저놈의 며느리가 그리 곱다 하던데, 전하의 노리개로 삼으시고, 저놈은 저 가마솥에 던져 넣어 그 비명 소리를 술안주 삼으시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지만, 그 내용은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습니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신하들의 비명과, 왕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 그리고 장녹수의 요염한 교태가 뒤섞여, 지옥도(地獄圖)를 그려냈습니다. 그 순간, 연산과 장녹수는 완벽하게 하나였습니다. 한 사람은 복수라는 이름으로 광기를 분출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광기를 이용해 권력을 탐했습니다. 그들의 지독한 사랑은, 마침내 수많은 사람의 피를 제물로 삼키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조선의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파멸의 그림자는, 이제 그들 자신의 턱밑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 짧은 사랑, 비참한 최후

    역사는 스스로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법. 연산과 장녹수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던 그 순간, 궁궐 밖에서는 새로운 역사를 위한 칼날이 소리 없이 벼려지고 있었습니다.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 왕의 폭정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신하들이 비밀리에 군사를 모아,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마침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밤을 거사일로 잡았습니다. 그날 밤에도, 궁궐 안에서는 어김없이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연산은 장녹수의 품에 안겨 술에 취해 있었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궁궐 밖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함성 소리와 함께,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반정(反正)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연산은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슨 소리냐! 어떤 놈이 감히 과인의 잔치를 방해하는 것이냐!” 하지만 그의 호령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를 지켜야 할 내금위의 군사들은 이미 반정군에 합류하거나 도망친 뒤였고, 연회장의 기생들과 신하들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화려했던 연회장에는 연산과 장녹수, 단둘만이 남았습니다. 밖에서는 궁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폐주(廢主) 연산을 끌어내라!”는 군사들의 외침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평생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왔던 절대 권력자, 연산의 얼굴에 처음으로 공포의 빛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허망하게, 장녹수를 바라보았습니다. 늘 자신만만하던 장녹수의 얼굴에도, 핏기가 가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녀는 연산에게 다가가, 그의 흐트러진 용포를 마지막으로 정돈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지요. “꼴 좀 보시지요, 전하. 천하를 호령하시던 왕의 마지막이 이리 초라해서야 쓰겠습니까.” 연산은 그런 그녀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녹수야…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구나.” 장녹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습니다. “꿈은 언젠가는 깨는 법이지요, 나의 어리고 어리석은 왕이시여. 허나, 그 꿈속에서나마, 마음껏 날아보셨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곧이어 반정군이 들이닥쳤고, 연산은 옥좌에서 끌어내려져 강화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녹수. 그녀는 반정의 가장 큰 원흉으로 지목되어, 군중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며, ‘나라를 망친 요물!’, ‘왕을 홀린 마귀할멈!’이라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비굴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군중을 경멸의 눈빛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그녀의 죄목은 ‘왕의 마음을 어지럽힌 죄’였습니다. 그녀는 망나니의 칼날 아래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치마폭 아래에서만큼은 행복했던, 그 어리고 어리석었던 왕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연산은 유배지에서 병사했고, 장녹수는 요부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비록 그것이 광기와 파멸을 불러왔을지언정, 역사상 가장 지독하고 뜨거웠던 사랑으로, 그렇게 비극적인 막을 내렸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왕의 상처를 파고든 요부와, 그녀에게서 유일한 위안을 찾았던 폭군. 연산군과 장녹수의 관계는 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서로의 광기를 부추긴 위험한 공생 관계였을까요? 역사는 그들을 폭군과 요부로 기록했지만, 그들의 지독한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연산의 사랑이 광기 어린 집착이었다면, 그의 증손자뻘인 숙종의 사랑은 조선의 조정을 뒤흔든 가장 치명적인 스캔들이었습니다. 다음 역사 로맨스 시간에는, ‘숙종과 장희빈의 밀회록... 궁중 최대 스캔들’ 편을 숙종실록의 기록과 함께 들려드리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다음 이야기를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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