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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문, 절개를 지킨 선비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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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단종 때 일어난 계유정난(1453)과 그 후 단종복위를 꾀했다가 처형된 사육신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성삼문은 세조 앞에서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죽음을 택한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문종의 측근으로 활약하던 성삼문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을 목격하고, 어린 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비극적 충절의 역사. 역사에 기록된 그의 마지막 순간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선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 문종의 죽음과 어린 단종의 즉위 (1452년, 경복궁)

    비가 내리는 1452년 봄, 경복궁의 하늘은 마치 울고 있는 듯했습니다. 문종은 병석에 누워 있었고, 그의 곁에는 일곱 살 어린 아들 단종과 충직한 신하 성삼문이 있었습니다.

    "성삼문, 이리 오게..."

    문종의 가녹은 목소리가 침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세자시절부터 문종을 모셔온 성삼문은 고개를 숙이며 임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문종은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가면... 어린 임금을 잘 보필하게. 특히... 수양에게 조심하게..."

    성삼문은 눈물을 참으며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그는 문종의 걱정을 이해했습니다. 수양대군은 문종의 동생이자 어린 단종의 숙부였지만, 그의 야심은 궁 안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신이 목숨을 다해 어린 임금을 모시겠나이다."

    그날 밤, 문종은 결국 승하하고 말았습니다. 궁궐은 통곡 소리로 가득 찼고, 한양 전체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어린 단종은 아버지의 죽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조선의 제6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성삼문은 그날부터 집현전 학사로서 어린 임금을 보필하며 밤낮없이 국정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궁 안팎으로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수양대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그의 측근들이 요직에 하나둘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성삼문은 밤늦게 김종서 정승을 찾아갔습니다. 김종서는 문종이 가장 신임했던 원로 대신으로, 단종을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대감, 수양대군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측근들이 병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김종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경솔하게 움직였다가는 도리어 화를 부를 수 있어. 지금은 어린 임금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단결해야 할 때라네."

    두 사람의 대화는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대화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줄은.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성삼문은 단종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린 임금은 총명했고, 글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옛 성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선생님, 충신이란 무엇인가요?"

    단종의 순진한 질문에 성삼문은 잠시 말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충신이란 임금과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목숨까지도요."

    단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을 리 없었습니다. 성삼문은 어린 임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보호하리라. 문종 전하의 유지를 받들어, 이 어린 임금을 끝까지...'

    ※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정권 장악 (1453년, 한양 거리와 경복궁)

    계유년(1453년) 10월, 한양은 가을의 정취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궁궐 안팎으로는 불안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성삼문은 그날도 평소와 같이 집현전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멀리서 혼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칼을 찬 군사들이 궁궐 안으로 들이닥치는 소리였습니다.

    "무슨 일이냐!"

    성삼문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순간,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수양대군의 측근 한명회, 권람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김종서와 황보인 등 단종의 보호세력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성삼문은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김종서는 칼에 맞아 쓰러져 있었습니다.

    "대감!"

    성삼문이 김종서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군사들이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그 순간, 수양대군이 나타났습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이 반역을 꾀했다. 어린 임금을 해치려 했으니, 내가 나서서 이들을 처단했노라."

    수양대군의 선언에 성삼문은 분노로 몸을 떨었습니다. 명백한 거짓이었습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은 문종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을 보호하던 충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삼문은 자신의 분노를 삼켜야 했습니다. 지금 저항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뿐만 아니라, 어린 임금에게도 해가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궁궐은 수양대군의 세력이 장악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단종이 여전히 임금이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모두 수양대군에게 넘어갔습니다. 수양대군은 자신을 '영의정부사'로 임명하게 하고, 측근들을 요직에 앉혔습니다.

    성삼문은 매일 밤 고뇌했습니다. 문종의 유지를 받들지 못한 자책감, 눈앞에서 벌어진 불의를 막지 못한 무력감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은밀히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성삼문의 집에 모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은 모두 문종을 모시던 집현전 학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종을 보호하고 수양대군의 불의를 바로잡을 방법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급히 움직였다가는 모두 죽을 뿐입니다."

    박팽년의 말에 모두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한편, 경복궁에서는 단종이 혼자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어린 임금은 김종서의 죽음 이후,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워졌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단종은 창문을 통해 달을 보며 아버지 문종을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순간, 성삼문이 밀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단종에게 깊이 절하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전하, 신이 항상 곁에 있겠습니다. 결코 전하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단종은 성삼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성선생님, 숙부가 무서워요..."

    성삼문은 목이 메었지만, 단종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종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전하, 용기를 내십시오. 언젠가는 반드시... 정의가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삼문의 마음속에는 이미 불길한 예감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수양대군의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그리고 그것이 어린 단종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올지 너무나 뻔했기 때문입니다.

    ※ 단종 폐위와 세조 등극 (1455년, 창덕궁)

    계유정난으로부터 2년, 단종의 나이 열네 살이 되던 1455년 6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창덕궁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수양대군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모아 놓고 선언했습니다.

    "어린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내가 직접 왕위에 올라 혼란한 나라를 바로잡겠노라."

    신하들 대부분은 이미 수양대군의 세력이었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한명회는 앞장서서 수양대군의 즉위를 주장했습니다.

    "대군께서는 문종의 동생이시니, 왕통을 이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린 임금은 아직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없으니, 물러나 노산군으로 봉해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삼문은 이 말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습니다. 지금 반대한다면 목숨을 잃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단종을 도울 기회조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단종은 창덕궁 후원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성삼문이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전하..."

    단종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린 눈에는 이미 세상의 모든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선생님, 내일이면 저는 더 이상 임금이 아니게 됩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성삼문은 무릎을 꿇고 단종의 손을 잡았습니다.

    "전하는 영원히 저희의 임금이십니다. 비록 지금은 숙부께 왕위를 넘기시지만, 언젠가는..."

    성삼문은 말을 멈추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의 말이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단종은 슬픈 미소를 지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다음 날, 단종은 정식으로 왕위에서 물러나 노산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조선의 제7대 왕 세조로 즉위했습니다. 세조는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단종에게 겉으로는 예우를 갖추었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감시했습니다.

    단종은 창덕궁의 한 별당으로 옮겨졌고, 그에게 충성하던 신하들은 대부분 멀리 떠나거나 벼슬에서 물러났습니다. 성삼문도 표면적으로는 세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집현전 학사직을 유지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세조 즉위 후 첫 조회에서, 성삼문은 세조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조가 물었습니다.

    "성삼문, 너는 문종의 측근이었다. 내게 충성할 수 있겠느냐?"

    성삼문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습니다.

    "신이 어찌 전하를 충성으로 모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내 충성은 오직 단종 전하에게만 있노라...'

    세조는 성삼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기에 그를 계속 기용했습니다. 그러나 성삼문의 눈빛 속에 숨겨진 결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곧 폭풍우로 변할 침묵이었습니다.

    ※ 사육신의 모의와 발각 (1456년, 성삼문의 집과 비밀 모임 장소)

    세조 즉위 후 약 1년, 1456년 초봄의 어느 밤이었습니다. 성삼문의 집 깊숙한 방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성삼문, 그리고 금성대군까지. 그들은 단종의 복위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세조가 점점 노산군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성삼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금성대군은 문종의 형제로, 단종의 복위를 위해 거사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세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단종 전하에 대한 민심은 여전히 강합니다. 우리가 먼저 거사하면 많은 이들이 호응할 것입니다."

    박팽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세조가 창덕궁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을 노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경비가 소홀해질 때 단종 전하를 모시고 민심을 호소하면..."

    그들은 밤새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각자 맡을 임무를 정하고, 거사 날짜를 정했습니다. 성삼문은 단종에게 계획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 성삼문은 단종이 머무는 별당을 찾았습니다. 겉으로는 문안인사를 드리러 온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거사 계획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전하, 신들이 곧 전하를 다시 모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단종은 놀란 표정으로 성삼문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 그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선생님과 여러 충신들이 위험해질 것입니다."

    성삼문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신들은 이미 각오하였습니다. 문종 전하의 유지를 받들어 전하를 다시 옥좌에 모시는 것이 신들의 사명입니다."

    단종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그였지만, 지금 그의 앞에 놓인 선택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선생님...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성삼문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신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들에게 가혹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이미 누설되어 있었습니다. 세조의 측근 한명회는 금성대군의 측근 중 한 명을 매수하여 거사 계획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사 하루 전날 밤, 세조의 군사들이 갑자기 성삼문의 집을 포위했습니다. 성삼문은 그때 박팽년, 하위지와 함께 마지막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웬일이냐!"

    문이 부서지고 군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성삼문은 저항할 생각도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들은 체포되어 세조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세조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습니다.

    "성삼문, 네가 나를 배신하였구나. 내가 너를 그토록 신임했건만..."

    성삼문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세조를 바라보았습니다.

    "배신한 것은 전하입니다. 어린 임금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누구입니까? 신은 단지 문종 전하의 유지를 받들고 있을 뿐입니다."

    세조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는 성삼문의 충성심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더욱 가슴에 박혔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사형에 처할 것이다. 반역죄로!"

    성삼문은 미소지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신의 충성은 오직 하나뿐이니, 그 길을 끝까지 가겠습니다."

    그날 밤, 성삼문과 그의 동료들은 의금부 옥사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지막 밤을 보내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내일이면 모두 처형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에는 후회가 없었습니다. 오직 단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만이 남아있었습니다.

    ※ 성삼문의 신문과 절개 (1456년, 의금부 옥사)

    1456년 6월, 의금부 옥사에는 끔찍한 고문의 비명이 울려 퍼졌습니다. 성삼문과 그의 동료들은 세조의 명령으로 가혹한 신문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세조는 이들로부터 더 많은 공모자의 이름을 캐내려 했습니다.

    의금부 대청마루에 성삼문이 끌려왔습니다. 그의 몸은 이미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당당했습니다. 세조가 직접 대청마루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성삼문,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누가 또 이 반역에 가담했는지 모두 말하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마."

    성삼문은 피를 흘리며 웃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전하, 제가 아는 이들은 이미 모두 잡혔습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습니다."

    세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습니다.

    "네가 문필에 능했으니, 내 앞에서 글을 지어보라. 네 마음을 진실로 표현해보거라."

    성삼문은 고개를 들어 세조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붓을 들어 단숨에 시를 지었습니다.

    "푸른 하늘 한 조각을 베어 내어, 옥같이 깨끗한 마음을 만들고자 하네. 비록 몸은 형틀에서 부서질지라도, 이 마음만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세조는 그 시를 읽고 얼굴을 굳혔습니다. 성삼문의 절개가 시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네 충성이 단종에게 있다면, 어찌 내게 절을 했느냐? 그것이 선비의 도리냐?"

    성삼문은 고통 속에서도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신이 전하께 절을 한 것은 겉으로만 그리한 것입니다. 신의 마음속에는 단종 전하만이 계십니다. 몸은 비록 전하를 섬기나, 마음은 노산군(단종)을 섬기고 있습니다."

    세조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성삼문의 솔직한 대답은 세조의 심장을 찌르는 칼과도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네 손가락을 잘라 붓을 쥐어보아라. 그래도 같은 글을 쓸 수 있겠느냐?"

    고문관들이 성삼문의 손가락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성삼문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잘린 손가락으로 피를 묻혀 다시 글을 썼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세조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성삼문의 절개는 고문으로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동료들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끝까지 단종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옥사로 돌아온 성삼문은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이면 우리는 모두 처형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의 충성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박팽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록 우리는 죽지만, 우리의 정신은 살아남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밤을 서로를 위로하며 보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들의 절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 사육신의 처형과 역사적 의미 (1456년, 서대문 밖 형장과 현재)

    1456년 6월 8일, 맑은 하늘 아래 서대문 밖 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세조는 반역자들의 처형을 백성들에게 공개하여 본보기로 삼고자 했습니다. 성삼문과 그의 동료들이 형장으로 끌려왔습니다.

    성삼문은 동료들을 돌아보며 미소지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게. 우리는 옳은 일을 했네."

    군중들 속에서는 탄식과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들의 충절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그들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세조의 권력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입니다.

    사형 집행관이 다가와 성삼문에게 마지막 말을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성삼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나의 충성은 죽어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오늘 내가 죽으나, 의로움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단종을 향해 마지막 절을 올렸습니다. 칼이 내려치는 순간, 성삼문의 얼굴에는 오히려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도 차례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는 순간까지 단종에 대한 충성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후에 '사육신(死六臣)'이라 불리며, 조선 선비의 절개와 충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육신의 처형 후, 세조는 단종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결국 그 이듬해인 1457년,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겨우 17세의 나이였습니다.

    세조는 왕위에 올라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사육신과 단종의 비극은 그의 통치 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의 아들 예종이 즉위했을 때, 세조의 죄책감은 왕실에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성삼문과 사육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들은 단순한 충신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진정한 선비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서울 사직단 근처에는 사육신을 기리는 사당이 있습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의 충절을 기억합니다. 또한 단종이 유배되었던 강원도 영월에는 장릉이 있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어린 임금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성삼문과 사육신을 '충신'으로 기록했습니다. 세조의 정통성 문제는 조선 내내 논쟁거리였으며, 사육신의 충절은 결국 역사의 정의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조선의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 당당히 기록되었고, 후대의 선비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성삼문의 마지막 시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줍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그의 절개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신념의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 성삼문과 사육신의 충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진정한 선비의 표상이었습니다.

    성삼문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권력과 명예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그들의 정신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삼문과 사육신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단종은 결국 영월로 유배된 후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예종 역시 단 14개월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는데요.

    다음 편에서는 '예종의 단명한 왕권, 누가 그를 죽였나'라는 주제로 세조 이후 조선 왕실에서 벌어진 또 다른 비극과 음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종은 왜 그토록 짧은 재위 기간을 가졌으며, 그의 죽음 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까요? 또한 그의 죽음과 단종의 비극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 다음 편에서도 계속됩니다. 더 많은 조선시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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