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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21편 "사육신, 죽음으로 충절을 지키다" - 단종 복위 운동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집현전 학자들의 저항
세조의 회유에도 꺾이지 않은 굳은 절개
참혹한 고문과 죽음으로 지킨 충의
태그(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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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이상)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까. 피바람이 불던 조선의 그 날로 오늘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호랑이 같던 수양대군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용상에 올랐을 때, 모두가 권력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나의 임금은 오직 한 분뿐이다'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간 바보 같은 사내들이 있었습니다. 불타는 인두로 맨살을 지지고, 사지가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던 집현전의 학자들. 세종대왕의 깊은 은혜를 죽음으로 갚은 '사육신'의 피 끓는 진짜 이야기, 지금부터 두 귀 활짝 열고 들어보시지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그 충절의 역사 속으로 출발합니다."
※ 1: 피바람이 휩쓴 조선, 수양대군의 찬탈과 어린 단종의 눈물
어르신들, 역사는 참으로 비정하고도 무섭습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던 성군, 하늘이 내린 임금 세종대왕께서 승하하셨을 때, 온 백성은 하늘이 무너진 듯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 큰 비극이 조선 왕실을 덮쳐왔습니다. 세종의 뒤를 이은 맏아들 문종마저 옥좌에 오른 지 불과 2년 3개월 만에 깊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만 것입니다. 문종이 숨을 거두기 전, 파리한 손으로 신하들의 손을 부여잡고 남긴 유일한 핏줄, 그가 바로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입니다.
단종이 용포를 입고 옥좌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두 살이었습니다. 어르신들, 열두 살이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아닙니까. 어머니(현덕왕후)는 자신을 낳자마자 돌아가셨고, 아버지(문종)마저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이 어린 소년 왕의 곁에는 피붙이 하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크고 넓은 궁궐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어린 왕의 어깨가 얼마나 무겁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리고 그 곁에는 권력의 화신이자 야심으로 똘똘 뭉친 호랑이, 숙부 수양대군이 시퍼런 이빨을 드러낸 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예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수양대군은 한명회, 권람 등 모사꾼들을 규합하여 칠흑같이 어두운 밤,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기록된 '계유정난'입니다. 수양대군은 단종을 목숨 걸고 지키려던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의 집을 기습하여 쇠몽둥이로 무참히 때려죽이고, 영의정 황보인을 비롯한 수많은 충신을 궁궐 문 앞에서 도륙했습니다. 핏물이 경복궁 댓돌을 붉게 적시던 그 끔찍한 밤, 열두 살의 어린 단종은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이제 노골적으로 조카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측근들을 시켜 매일같이 단종을 협박하고, 단종의 수족 같은 신하들을 하나둘씩 귀양 보내거나 사약을 내려 죽였습니다. 밤마다 궁궐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피맺힌 비명에 단종은 피가 마르고 뼈가 깎이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어린 조카는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옥새를 내어주며 왕위에서 물러나고 맙니다. 조카를 쫓아내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임금의 자리, 용상에 앉은 수양대군. 그가 바로 조선 제7대 왕 '세조'입니다.
세조가 즉위하던 그해 윤6월의 어느 날,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는 옥새를 전달하는 공식적인 의식이 열렸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 그 많던 문무백관들은 누구 하나 입도 뻥긋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천세, 천세, 천천세"를 외치며 새로운 권력자에게 꼬리를 흔들었지요.
그런데 어르신들, 바로 그 숨 막히는 침묵과 굴종의 자리에, 차마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우는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바로 집현전 학사이자 세종대왕이 그토록 아꼈던 충신, 성삼문이었습니다. 어린 단종의 손에서 수양대군의 손으로 조선의 국새가 넘어가는 그 비극적인 순간, 성삼문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하늘을 우러러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처절하고 원통했던지, 곁에 엎드려 있던 정난공신들조차 등골이 서늘해져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고 실록은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수양대군을 모시는 대신들이 "저놈을 당장 끌어내라!"고 호통을 치고 눈을 부라렸지만, 성삼문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통곡하면서도, 속으로는 피눈물을 삼키며 시퍼런 맹세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아아, 선왕이신 세종대왕께서 깊은 밤 우리 집현전 학사들을 부르시어 어린 원손을 잘 부탁한다며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거늘! 내 어찌 짐승만도 못한 저 난신적자를 임금으로 섬기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로는 세조의 조정에 출사하여 신하 노릇을 해야 했지만, 성삼문의 가슴 속에는 이미 세조를 향한 복수의 칼날이, 죽음을 각오한 시퍼런 칼날이 매일 밤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습니다. 찬탈자의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치욕과 분노, 그것은 곧 조선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폭풍의 전조였습니다.
※ 2: 깊은 밤, 집현전 학자들의 피 끓는 은밀한 결의
달빛조차 짙은 구름에 숨어버린, 숨 막히도록 깊고 어두운 한양 도성의 밤. 인적이 끊긴 도성 구석의 아주 외진 사랑방에 검은 삿갓을 깊게 눌러쓴 사내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나둘씩 은밀하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옷깃 스치는 소리,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방 안. 마주 앉은 이들은 다름 아닌 당대 조선 최고의 수재들이자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그리고 무장 출신인 유응부 장군까지. 이들은 모두 세종대왕 시절 훈민정음 창제를 돕고 밤낮으로 학문을 연구하며, 세종의 크나큰 총애를 온몸에 받았던 집현전 출신의 충신들이었지요.
사랑방의 흔들리는 등잔불 밑에서, 성삼문이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쇳물처럼 끓어오르는 단단한 결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여러분, 선왕 전하(세종)께서 승하하시기 전, 늦은 밤 우리 집현전 학사들을 침전으로 부르시어 어린 단종 전하를 지켜달라며 눈물로 신신당부하시던 그 밤을 잊으셨습니까? 우리가 그날의 은혜를 입고 자란 선비들인데, 어찌 조카의 옥좌를 찬탈하고 피 묻은 용상에 앉은 저 역적 수양대군의 밑에서 구차하게 개돼지처럼 숨을 쉴 수 있단 말입니까!"
성삼문의 피 끓는 호소에, 평소 강직하기로 소문난 박팽년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먹을 꽉 쥐고 화답했습니다. "내 어찌 그날의 맹세를 잊겠소! 나는 역적 수양대군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날부터, 그자가 내려주는 녹봉(월급)은 단 한 톨도 내 입에 넣지 않았소이다. 받은 쌀은 모두 창고 한구석에 고스란히 쌓아두고, 오직 상왕 전하(단종)를 다시 모실 그날만을 기다리며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소." 어르신들, 박팽년의 이 말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세조가 주는 곡식에 손을 대는 것을 수치로 여겨, 굶주리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주인은 오직 단종뿐임을 스스로 혹독하게 다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곁에 앉아 있던 하위지 역시 비장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붓을 꺾어 방바닥에 내던지며 말했습니다. "예로부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두지 않는다고 하였소. 하늘 아래 태양이 어찌 두 개일 수 있단 말이오. 내 비록 힘없는 문신이나,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서라도 상왕 전하를 반드시 옥좌에 다시 모십시다!"
분노에 찬 학자들의 결의가 이어지자, 방 한구석에 팔짱을 끼고 묵묵히 듣고 있던 덩치 큰 사내가 짐승처럼 일어났습니다. 당대 최고의 무장, 유응부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솥뚜껑만 한 커다란 주먹으로 사랑방 바닥을 '쾅' 하고 내리치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성 대감, 박 대감! 당신네 문관 샌님들은 뒤에서 치밀하게 계획만 세우시오. 저 역적 수양의 숨통을 끊는 것은 나 유응부가 하겠소! 내 이 거친 두 손으로 역적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그 수하 놈들의 뼈와 살을 발라내어 한강 물에 던져버리겠소이다!"
이들의 눈빛은 이미 죽음을 초월해 있었습니다.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고, 세조와 그 측근인 한명회, 권람 등을 모조리 척살하겠다는 피 끓는 거사를 모의하는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베일 듯이 날카로웠습니다. 이른바 조선 역사를 뒤흔든 '단종 복위 운동'의 위대한 첫발이 내디뎌진 것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가문에 속한 사병들을 은밀히 규합하고, 조정 내에 뜻을 같이할 숨은 충신들을 점조직처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와 아내, 자식들에게조차 절대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역모. 만약 단 한 명의 입이라도 잘못 놀려 발각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집안의 늙은 노모부터 갓 태어난 어린 핏덩이까지 삼족이 멸해지는 참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을 향한 굳은 의리, 어린 단종을 향한 흔들림 없는 충성심은 죽음의 공포마저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 3: 운명의 명나라 사신 환송연, 거사의 날을 잡다
거사를 치밀하게 준비하며 칼을 갈던 그들에게 드디어 하늘이 내린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세조 2년인 1456년 6월 1일, 조선에 와 있던 대국 명나라의 사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념하여 창덕궁에서 아주 성대한 환송 연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어르신들, 궁중 연회가 왜 중요하겠습니까? 이런 큰 잔치에는 세조는 물론이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는 단종, 그리고 세조를 왕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 내로라하는 정난공신들이 모조리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역적의 무리를 한 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기회였던 셈입니다.
성삼문 일파는 이 날을 역사를 뒤집을 '거사일'로 못 박았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이랬습니다. 본래 왕과 명나라 사신이 참석하는 연회장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가장 신임받는 무장들이 곁에서 큰 칼을 차고 호위(운검)를 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막중한 호위 무사 중 한 명으로 성삼문의 아버지인 무장 '성승'과, 거사에 동참한 조선 최고의 괴력 무사 '유응부' 장군이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하늘이 그들을 돕는 듯했습니다.
거사 전날 밤, 성삼문은 동지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다짐했습니다.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가 무르익고, 세조와 역적 놈들이 술에 취해 방심할 때가 우리의 기회요. 유응부 장군과 내 아버지가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 동시에 칼을 뽑아 세조의 목을 칠 것이오! 세조가 쓰러지는 즉시 밖에 대기하던 우리의 군사들이 궁문을 걸어 잠그고 한명회 등 역적의 무리를 베어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시 상왕 전하의 복위를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이오!" 계획은 그물망처럼 촘촘했고, 유응부의 괴력과 결단력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세조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거라 모두가 굳게 믿었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 6월 1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무장 유응부는 이른 새벽부터 서슬 퍼런 큰 칼을 숫돌에 갈며 가슴에 품고 창덕궁으로 향했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 등 문관들 역시 겉으로는 평온한 척 관복을 입었으나, 가슴 속에는 터질 듯한 긴장감을 감춘 채 연회장으로 속속 모여들었지요. 모두의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커져가던 바로 그 순간!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예상치 못한 엄청난 변수가 발생합니다.
연회가 시작되기 직전, 세조의 최측근이자 지략이 귀신같았던 책사 한명회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입니다. 좁은 연회장에 무장들이 시퍼런 칼을 차고 있는 모습, 그리고 묘하게 날이 서 있는 유응부의 눈빛에서 본능적인 살기를 느낀 한명회는 즉시 세조의 앞으로 나아가 긴급히 건의를 올립니다. "전하! 오늘 연회장이 너무 비좁고 여름날의 열기가 무더워 숨이 막힐 지경이옵니다. 하오니, 전하의 곁을 지키는 호위 무사들의 칼을 거두게 하시고, 그들을 연회장 밖으로 물리심이 안전하고 쾌적할 것이옵니다."
귀신같은 한명회의 이 한마디에, 세조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즉시 "호위 무사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밖으로 물러나게 하라!"는 어명을 내리고 맙니다. 순식간에 금부도사들이 달려와 칼을 빼앗고, 유응부와 성승은 꼼짝없이 연회장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준비한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서 허무하게 날아가는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연회장 밖으로 밀려난 유응부는 피가 거꾸로 솟는 분통을 터뜨리며 성삼문에게 달려가 멱살을 쥐듯 말했습니다. "성 대감! 비록 내 손에 칼은 빼앗겼으나, 내 맨주먹으로라도 저 수양 놈을 때려죽이겠소! 당장 밖의 군사들을 동원해 들이쳐서 거사를 실행합시다!" 하지만 두뇌가 차가웠던 성삼문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오, 장군. 오늘 한명회가 칼을 거두라 한 것은 이미 낌새를 채고 방비를 단단히 한 것일 수 있소. 세조 주변에 호위가 겹겹이 쌓여있으니 오늘은 눈물을 머금고 참고, 다음 왕의 행차 때를 노립시다." 완벽했던 거사 계획은 그렇게 허탈하게 뒤로 미뤄지게 되었고, 살기 위해 선택했던 이 한 번의 망설임과 늦춤은, 훗날 사육신 모두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 4: 김질의 배신과 밀고, 허망하게 무너진 복위의 꿈
어르신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간사하고 연약합니다. 당장 오늘 목숨을 걸고 끝을 보려 했던 거사가 기약 없이 연기되자, 모의에 참여했던 자들의 가슴속에 검은 불안감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이 거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세조와 한명회가 벌써 눈치챈 것은 아닐까?', '만약 이 역모가 들통나면 늙으신 내 부모와 어린 내 자식들은 능지처참을 당할 텐데, 내 가족은 어찌 되는가?' 하는 극도의 두려움이 매일 밤 그들의 숨통을 조여왔지요.
그 팽팽한 고무줄 같은 긴장감을 끝내 견디지 못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성삼문과 함께 뜻을 모아 거사에 깊이 가담했던 '김질'이라는 자였습니다. 김질은 명문가 출신의 재원이었지만, 그의 장인은 다름 아닌 세조의 최측근이자 조정의 실세였던 우의정 정창손이었습니다. 거사가 연기된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김질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습니다. 거사가 실패할 경우 자신은 물론이고 처가인 정창손의 집안까지 모조리 박살 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려움이 신념을 집어삼켰습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깊은 밤, 김질은 시퍼런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살길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미친 듯이 빗속을 뚫고 장인 정창손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김질은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대성통곡하며, 가슴속에 품었던 모든 거사 계획을 낱낱이 불어버리고 맙니다. "장인어른,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성삼문과 박팽년, 유응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상왕을 복위시키려 끔찍한 역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명나라 사신 연회에서 거사하려다 실패하여 다음을 노리고 있사옵니다. 제발 저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사색이 된 정창손은 사위의 고변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그는 즉시 덜덜 떠는 김질의 목덜미를 끌고 그 길로 궐문으로 달려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세조를 깨워 이 엄청난 역모 사실을 밀고합니다. 심야에 급보를 전해 들은 세조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짐승처럼 포효했습니다. "뭐라? 내가 그토록 아끼고 높은 벼슬까지 내려준 집현전 놈들이, 감히 내 등 뒤에서 칼을 갈고 나를 죽이려 해? 당장 금부도사들을 풀어라! 성삼문, 박팽년 등 역모에 가담한 자들을 쥐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고 모조리 잡아들여라!"
어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밤중에 수백 명의 의금부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한양 도성을 짓밟았습니다. 쾅쾅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현전 학자들의 대문이 도끼로 박살 났고, 무장한 군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거사일을 기다리던 선비들은 그 자리에서 포승줄에 묶이고 발길질을 당하며 압송되었습니다.
거사가 실패하고 밀고자가 나왔다는 급보를 전해 들은 유성원은, 도망치거나 변명하는 대신 조용히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아내와 마지막 이별의 술을 한잔 나눈 뒤, 가문의 사당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그리고 역적의 누명을 쓰고 짐승처럼 국문을 당하느니 선비로서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스스로 날카로운 칼을 들어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슬프고도 장엄한 최후였습니다.
나머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등은 줄줄이 굵은 밧줄에 묶인 채 진흙탕을 질질 끌려 궁궐 앞뜰로 끌려왔습니다. 서슬 퍼런 횃불 수백 개가 어둠을 대낮처럼 밝히는 가운데, 높디높은 옥좌에 앉은 세조가 핏발 선 눈빛으로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조선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혹하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숭고한 국문(임금이 직접 죄인을 심문함)이 시작될 참이었습니다. 벼랑 끝에 선 사육신과 권력의 정점에 선 세조, 그 피 말리는 대결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 5: 불타는 인두 앞에서도 당당한 성삼문의 사자후
어르신들, 상왕 단종을 지키려다 붙잡힌 집현전 학사들과 옥좌를 찬탈한 세조의 숨 막히는 대결. 그 끔찍했던 국문장의 묘사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글로만 읽어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고도 장엄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타오르는 횃불 아래로 끌려온 성삼문의 몰골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자비한 곤장과 압슬(무릎 위에 무거운 널빤지를 올리고 짓밟는 형벌)을 당해 두 다리의 뼈가 하얗게 으스러져 있었고, 온몸은 붉은 피로 물들어 바닥을 적시고 있었지요.
하지만 무릎이 꺾여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성삼문의 고개만큼은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불타는 눈빛을 마주한 세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직접 옥좌에서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습니다. 세조가 성삼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네 이놈, 성삼문! 내가 너희들을 집현전 학사라 특별히 대우하고, 내 곁에 두어 높은 벼슬과 두둑한 녹봉까지 내려주었거늘! 어찌하여 감히 짐을 배신하고 이토록 끔찍한 역모를 꾸몄단 말이냐!"
그러자 숨을 헐떡이던 성삼문이 피 묻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비릿한 냉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역모라니! 천지신명 앞에 부끄럽지도 않소? 조선의 참된 신하가 선왕의 핏줄인 본래의 임금(단종)을 다시 옥좌에 모시려 하는 것이 어찌 역모란 말이오! 진짜 역모를 꾸민 것은, 틈을 타서 어린 조카의 자리를 힘으로 빼앗고 충신들을 무참히 도륙한 바로 당신, 수양대군 아니오!"
어르신들, 이 얼마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엄청난 발언입니까. 성삼문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세조를 향해 감히 '전하'라 부르지 않고, 왕족을 낮춰 부르는 '나리' 혹은 '수양'이라 부르며 끝끝내 그를 조선의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삼문의 시퍼런 기개에 찔린 세조는 이성을 잃고 격노하여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네놈이 진정 제정신이 아니구나! 당장 저놈의 살을 갈기갈기 찢고, 시뻘겋게 달군 쇠 인두로 저놈의 온몸을 지져라! 살 타는 냄새가 한양 도성을 덮게 하라!"
어명이 떨어지자 망나니들이 화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무쇠 인두를 꺼내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지지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인두가 성삼문의 맨 다리와 가슴, 등짝을 사정없이 짓이겼습니다. 사람의 생살이 타들어 가는 누런 연기가 피어오르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여 곁에 섰던 무관들조차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뼈가 드러나고 살이 타들어 가는 그 극심한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성삼문은 비명은커녕 신음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세조를 똑바로 노려보며 조롱했습니다.
"나으리의 형벌이 참으로 지독하고 가혹하구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란 말이오? 인두가 벌써 다 식어버렸으니, 어서 불에 다시 뜨겁게 달구어 오너라!"
이 초인적인 인내와 충절 앞에 세조조차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습니다. 세조가 기가 차서 물었습니다. "독한 놈... 네놈이 정녕 나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내가 주는 녹봉(월급)은 꼬박꼬박 받아먹었느냐? 내 밥을 먹었으니 너는 내 신하가 아니더냐!" 그러자 성삼문이 당당히 답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이 임금 자리를 찬탈한 해부터 지금까지 받은 쌀과 곡식은, 단 한 톨도 내 입에 넣지 않고 내 집 창고에 그대로 쌓아두었소. 나는 오직 상왕 전하의 백성이자 신하일 뿐이오!" 실제로 훗날 성삼문의 집을 샅샅이 수색해보니, 세조 즉위 이후 그가 받았던 모든 월급이 고스란히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의리를 굽히지 않는 성삼문의 고결한 모습은, 권력의 칼날로도 결코 베어낼 수 없는 조선 선비의 꼿꼿한 혼,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 6: "나는 조선의 신하요" 박팽년과 하위지의 처절한 최후
성삼문의 옆에는 평생의 절친한 벗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박팽년이 참혹하게 살이 찢긴 채 묶여 있었습니다. 어르신들, 박팽년이 누구입니까. 세종대왕 시절부터 그 뛰어난 문장력과 천재적인 두뇌로 이름이 높았던 대학자였습니다. 세조 역시 그 옛날부터 박팽년의 비상한 재주를 몹시 아꼈기에, 이토록 끔찍한 국문장에서도 내심 그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세조는 고문을 멈추게 하고 은밀히 사람을 보내 박팽년을 회유했습니다. "네가 지금이라도 뜻을 굽히고 나에게 신하라고 자처한다면, 지난 역모는 덮어두고 목숨만은 특별히 살려주마. 내 곁에서 함께 조선을 이끌어가자."
그러나 핏발이 선 박팽년의 두 눈에는 오직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뿐이었습니다. 그는 일언지하에 세조의 제안을 거절하며 피 섞인 침을 뱉었습니다. "내 눈에 임금은 오직 한 분뿐이오. 나는 상왕 전하(단종)의 신하이지, 나으리(세조)의 신하가 결코 아니오. 나를 감히 당신의 신(臣)이라 부르지 마시오."
세조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습니다. "네놈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구나. 네가 나에게 올렸던 수많은 장계와 상소문들에 분명히 '신(臣) 박팽년'이라고 엎드려 적지 않았느냐!" 그러자 박팽년이 껄껄 웃었습니다. 세조가 미심쩍어 신하들을 시켜 박팽년이 그동안 올렸던 문서들을 몽땅 창고에서 가져와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놀랍게도 박팽년은 세조 즉위 이후 올린 수백 통의 모든 공문서에, 자신을 낮추는 신하 '신(臣)' 자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대신 모양이 아주 교묘하게 비슷한 클 '거(巨)' 자를 써서 감쪽같이 눈속임을 해왔던 것입니다. 즉, 세조 밑에서 일하는 척하면서도 문서에는 '거 박팽년'이라 적어, 단 한순간도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극도의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끼며 박팽년을 더욱 잔혹하게 고문했습니다. 결국 뼈가 부서지는 형벌을 견디다 못한 박팽년은, 옥중에서 그 극심한 고문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피를 토하며 장렬히 숨을 거두고 맙니다.
하위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조가 평소 그의 고매한 인품과 학식을 흠모하여 특별히 국문을 가볍게 하고 살려줄 궁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위지는 스스로 관복을 벗어 던지고 맨살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국문장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수양! 가식적인 자비는 집어치우시오. 내 몸의 피와 살에는 선왕이신 세종께서 주신 크나큰 은혜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소이다. 두 임금을 섬겨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어서 나를 찢어 죽여주시오!"
한편, 그 옆에서 피투성이가 된 무장 유응부는 그 끔찍한 고문 속에서도 오히려 문신들을 나무라며 호통을 치고 있었습니다. 솥뚜껑 같은 손이 짓이겨지고 살이 터지는 매질 속에서도 유응부는 고통의 신음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삼문과 박팽년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소리쳤습니다. "아아, 원통하다! 당신네 샌님들이 그깟 핑계로 명나라 사신 연회 때 거사를 미루지만 않았어도, 내 손으로 저 수양 놈의 목을 단숨에 비틀어 버렸을 것을! 책상물림들과 대사를 도모한 내 죄가 크구나!" 유응부 역시 살이 발라지는 고문 끝에 숨을 거둘 때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는 무인의 진정한 강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침내 국문이 끝나고, 성삼문을 비롯한 충신들을 처형장인 새남터로 끌고 가는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이 찢긴 성삼문이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향할 때, 길가에 모인 백성들은 통곡하며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성삼문의 이웃에 살던 어린 꼬마 아이가 수레를 따라오며 엉엉 울자, 성삼문은 묶인 손으로 겨우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아이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물어가는 한양의 붉은 노을을 우러러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절명시(絶命詩)를 한 수 읊조렸습니다.
"둥둥둥, 저 북소리는 내 목숨을 재촉하는데 / 고개를 돌려보니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기우는구나. / 황천길, 저승에는 묵어갈 주막조차 없을 터인데 / 아아,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쉬어갈꼬..."
이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시를 끝으로, 세종대왕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선 최고의 수재들은 망나니의 차가운 칼날 아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시신은 거열형(소나 말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해져 조선 팔도에 효수되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충신의 붉은 피가 조선의 대지를 적시던 비통한 날이었습니다.
※ 7: 죽음으로 피워낸 충의꽃, 사육신이 역사에 남긴 의미
어르신들, 단종을 지키려던 사육신의 장렬한 죽음, 비극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에 눈이 먼 세조는 후환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이들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멸문지화(가문을 완전히 멸망시킴)'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의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 즉 나이 든 할아버지부터 이제 막 태어나 강보에 싸인 젖먹이 핏덩이들까지 씨를 말려 모조리 교살해 버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목숨을 부지한 아내와 딸, 어린 여동생들은 하루아침에 양반의 신분에서 관비(노비)로 전락하여 끔찍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세조는 이 여인들을 자신을 도운 정난공신들의 집으로 보내어 개돼지처럼 부리게 하는 치욕을 안겼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선 제일의 명문가 마님으로 대접받던 이들이, 남편을 죽인 원수의 집 마당에서 평생 물을 긷고 빨래를 하며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권력의 비정함이 이토록 참혹하게 조선의 하늘을 덮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이들을 끝까지 믿고 의지했던 영월에 유배된 어린 단종마저,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차가운 방구석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하지만 어르신들, 진실의 빛은 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서도 결국은 제힘으로 빛을 내는 법입니다. 그들이 역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구천을 떠돈 지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숙종 임금의 치세가 도래하자, 역사는 이들의 피눈물과 억울함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세조 때 역적으로 낙인찍혀 감히 이름조차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성삼문과 사육신들은 마침내 그들의 숭고한 충절을 널리 인정받아 완벽하게 복권되었습니다.
조정에서는 그들이 처형당했던 척박한 땅에 번듯하게 사당을 세워주고 무덤을 단장하여, 후대 사람들이 이들의 위대한 정신을 기리며 영원히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서울 한강 변을 지날 때 노량진 언덕 위로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사육신 공원', 바로 그곳이 이 여섯 명의 위대한 충신들의 혼이 고이 잠들어 있는 거룩한 성지입니다.
세상사를 얕게 보는 사람들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쯧쯧, 어차피 수양대군이 왕이 되어 세상이 바뀌었는데, 그냥 눈 딱 감고 고개 한 번 숙이고 살았으면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을. 뭐 하러 그 험한 고문을 당하고 일가친척이 다 죽는 바보 같은 짓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목숨을 보전하는 것만 따지자면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바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바보 같은 선비들이 피를 흘리며 버텨주었기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도덕과 기강이 올바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충의(忠義)'와 '절개(節槪)'라는 숭고한 정신, 불의 앞에서는 절대 무릎 꿇지 않는다는 조선 선비의 그 매서운 자존심이 오늘날 우리 민족의 핏속에 도도히 흐르게 된 것은 온전히 이들의 몫입니다. 세상에는 내 한 목숨보다, 얄팍한 벼슬과 돈 몇 푼보다 더 귀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들은 참혹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온몸을 던져 증명해 냈습니다.
세종대왕의 깊은 은혜를 평생 가슴에 품고, 차가운 형장에서 한 송이 붉은 불꽃처럼 장렬하게 산화한 사육신. 비록 당대의 권력 싸움에서는 패배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역사라는 이름의 가장 공정한 재판관은 결국 영원토록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세조의 이름 뒤에는 '찬탈자'라는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니지만, 사육신의 이름 앞에는 '만고의 충신'이라는 찬사가 황금처럼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흘린 붉은 피는 수백 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어르신들, 불타는 인두 앞에서도 의리를 꺾지 않은 사육신의 처절한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가슴이 뭉클해지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립니다. 어르신들의 응원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을 발칵 뒤집어놓은 희대의 스캔들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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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inematic, wide-angle 16:9 shot of a gloomy, rain-drenched Joseon Dynasty execution ground at night, illuminated by flickering torchlight. In the center, a noble Korean scholar in torn, blood-stained white hanbok kneels proudly with his head held high, staring fiercely at an imposing, shadowy figure in royal robes seated on a throne in the background. Dense fog,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highly detailed, photorealistic, historical accuracy, solemn and tragic atmosphere,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