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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년의 백성을 배불린 고구마 밀반입 대작전 [조선 야사록]

    통신사 조엄, 대마도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백성을 살릴 종자를 품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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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250자 이상)

    여러분이 지금 드시는 군고구마 한 알, 그 달콤한 한입이 어떻게 조선 팔도에 들어왔는지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이백육십여 년 전, 조선 땅에는 풀뿌리조차 다 뽑혀 사라진 지옥 같은 흉년이 닥쳤습니다. 아이가 굶어 죽고, 어미가 자식을 묻고, 마을 전체가 통째로 비어 가던 그 비참한 시절. 한 사내가 일본 대마도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작은 종자 하나를 품속에 숨겨 들여왔습니다. 발각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그 위험천만한 밀반입 작전. 그 사내의 이름은 통신사 조엄, 그가 품에 안고 온 것은 바로 '감저',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고구마였습니다. 교과서가 짧게 한 줄로 지나친 그 이야기, 조엄이 남긴 『해사일기』의 행간에 숨겨진 진짜 드라마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차 한잔 우려 놓으시고 편히 앉으세요.

    ※ 1: 영조 임금의 한숨, 조선 팔도를 휩쓴 굶주림의 그림자

    영조 삼십구년, 서기로는 1763년의 봄이었습니다. 한양 도성 안의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 인정전. 그곳에서 영조 임금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계셨지요.

    임금의 손에는 팔도에서 올라온 장계(狀啓) 두루마리가 한 아름 들려 있었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한 장 한 장 펼쳐 보실 때마다 임금의 미간은 더욱 깊이 패였지요.

    "전라도 흉년이라. 충청도도 흉년이라. 경상도, 강원도, 황해도... 어느 한 도(道) 성한 곳이 없구나."

    옆에 시립한 도승지가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전하, 송구하옵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가뭄에 봄 농사가 또 망쳤다 하옵니다."

    임금이 두루마리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두 눈을 감으셨지요.

    "풀뿌리도 다 뽑혀 없어졌다 하더냐?"

    "네, 전하. 산속의 칡뿌리며 도라지며 다 캐 먹어, 이제는 산이 헐벗었다 하옵니다. 일부 백성들은 흙을 빻아 먹다가 창자가 막혀 죽는다는 보고도 올라왔사옵니다."

    영조 임금의 두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평생 백성을 어버이의 마음으로 보살피셨던 그 어른이었지요. 백성이 굶어 죽는다는 보고만큼 임금의 가슴을 찢는 것이 없었답니다.

    그 무렵 한양 거리의 풍경도 처참했지요. 종로 육의전 근처에는 아침마다 시신 두세 구씩이 거적에 싸여 실려 나갔습니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었지요. 어떤 어미는 죽은 자식을 등에 업고 그대로 길에 쓰러져 있었답니다.

    남대문 밖 칠패시장에서는 쌀 한 되 값이 평년의 다섯 배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섯 배 값을 줘도 쌀이 없었지요. 양반집 곳간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사대부들도 점심을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전하,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영의정 홍봉한이 어전에 들었지요.

    "말씀하시오, 영상."

    "전하, 일본에 다녀온 역관 자제들의 이야기인데. 일본 땅, 특히 대마도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새로운 작물이 있다 하옵니다. 그것이 흉년에 백성을 살리는 구황(救荒) 작물로 쓰인다 하니, 우리 조선에도 들여올 수 있다면 큰 은혜가 될 것이옵니다."

    임금의 두 눈이 번쩍 뜨였지요.

    "그게 정말이오?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작물이라."

    "네, 전하. 일본인들이 그것을 사쓰마이모, 또는 감저(甘藷)라 부른다 하옵니다. 단맛이 나는 뿌리채소라 하더이다."

    임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단호하게 말씀하셨지요.

    "마침 다음 달에 일본으로 통신사를 보내야 하는 일정이 있지 않소. 통신사 정사(正使)에게 그 임무를 맡기시오. 어떻게 해서든 그 종자를 구해 오라 하시오. 백성이 살 길이 거기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와야 하오."

    영의정이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하오면 누구를 통신사 정사로 임명하실는지요?"

    영조 임금이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천천히 입을 여셨지요.

    "조엄(趙曮)이 좋겠소. 그 사람이 강직하고 영민하니, 그 막중한 임무를 능히 해낼 것이오."

    이렇게 한 사내의 운명이, 영조 임금의 한숨 끝에 정해지고 있었습니다. 통신사 정사 조엄. 그의 어깨에는 단순한 외교 임무뿐만 아니라, 굶주린 조선 백성 수백만의 목숨이 함께 얹혀 있었지요. 그러나 그 사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 조엄 본인도 처음에는 다 헤아리지 못했더랍니다.

    ※ 2: 통신사로 임명된 조엄, 한양을 떠나 부산포에 닿다

    조엄. 자(字)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 그때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습니다. 평생을 학문에 매진하며 강직한 성품으로 알려진 양반이었지요.

    통신사 정사 임명을 받은 그날, 조엄은 한양 자택의 서재에 들어 한참을 앉아 있었답니다. 그의 앞에는 임금의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가 놓여 있었지요.

    '반드시 그 감저라는 종자를 구해 오라. 조선 백성의 명운이 그대의 손에 달렸느니라.'

    조엄은 그 어명을 한 자, 한 자 곱씹었습니다. 평생을 외교 임무로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 누구도 종자를 들여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측의 감시가 얼마나 삼엄한지, 도쿠가와 막부가 외부 반출을 얼마나 엄격히 금했는지,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요.

    '반출이 발각되면 통신사 사절단 전체가 외교 문제로 휘말릴 수 있다. 잘못하면 양국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어. 그러나 임금의 어명이 이러하니, 어찌해서든 가져가야 한다.'

    서재 한쪽 벽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습니다. 평생 강직하기로 소문난 그 얼굴이 그날따라 무겁게 굳어 있었지요.

    며칠 뒤, 통신사 사절단 사백칠십칠 명이 한양을 출발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인원이었지요. 정사 조엄, 부사 이인배, 종사관 김상익을 필두로, 역관, 군관, 악공, 화가까지. 조선의 위세를 일본에 보이기 위한 거대한 행렬이었습니다.

    행렬이 한양 도성을 빠져나갈 때, 길가에 굶주린 백성들이 두 줄로 늘어섰지요. 그들은 통신사 행렬에 큰 절을 올리며 외쳤습니다.

    "통신사 영감님,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우리 조선의 위세를 일본에 보여 주시오!"

    그러나 조엄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환호 너머, 흙빛이 된 백성들의 얼굴이었습니다. 두 살배기 아이를 등에 업은 어미가 입가에 흙을 묻힌 채 절을 하고 있었지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노인이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요.

    조엄은 가마 안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백성아, 미안하구나. 내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으마. 반드시 너희를 살릴 무언가를 가져오마.'

    행렬은 한 달이 넘는 여정을 거쳐 마침내 부산포에 닿았습니다. 부산 영가대(永嘉臺) 앞바다. 일본으로 떠나는 통신사가 바닷길의 안전을 빌며 해신제(海神祭)를 지내는 곳이었지요.

    조엄이 영가대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봤을 때, 마침 동래부사 강필리(姜必履)가 그를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강필리는 평소 조엄과 학문적 교류가 있던 사이였지요.

    "영감, 먼 길 오셨소이다."

    "부사, 오랜만이오."

    두 사람은 영가대의 정자에 앉아 차를 한잔 나누었습니다. 강필리가 먼저 입을 열었지요.

    "영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사행(使行) 길에 특별한 임무가 있다 하던데."

    조엄이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답했습니다.

    "부사, 사실은 그렇소. 임금께서 일본의 감저라는 작물 종자를 구해 오라 명하셨소."

    강필리의 두 눈이 번쩍 빛났습니다.

    "감저! 그 이야기 저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며, 한 뿌리에서 수십 알이 열린다 하지요. 영감, 그것만 구해 오신다면 이 부산포의 모래밭에서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사, 내가 어찌해서든 구해 오리다. 그러나 내가 가져온 종자를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시험 재배할 사람은 부사여야 하오. 부사가 부산에서 첫 농사를 성공시켜 주셔야, 이 작물이 조선 팔도로 퍼질 수 있소."

    강필리가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영감. 이 강필리, 목숨을 걸고 첫 농사를 성공시키겠소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조선의 굶주림을 끝낼 위대한 약속 하나가, 영가대의 바닷바람 속에서 굳건히 맺어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엄이 마주해야 할 것은, 일본 대마도의 살벌한 감시망이었습니다.

    ※ 3: 대마도 첫 상륙, 낯선 뿌리채소와의 운명적 만남

    영조 39년 음력 시월, 통신사 사절단이 마침내 부산포에서 배를 띄웠습니다. 거대한 정사선(正使船)을 비롯해 여섯 척의 배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일본으로 향했지요.

    하루 밤낮을 항해한 끝에, 통신사 일행은 마침내 대마도의 사스나우라(佐須奈浦)에 닿았습니다. 대마도. 일본 본토와 조선 사이의 작은 섬. 척박하기로 유명한 그 땅이 바로 조엄의 첫 임지(任地)였지요.

    배에서 내리자마자 조엄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마도의 풍경이 조선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지요.

    '땅이 이렇게 척박한데, 사람들이 어찌 살아간단 말인가.'

    대마도는 산이 많고 평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평지도 흙이 거칠고, 돌이 많아 벼농사가 거의 불가능한 땅이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척박한 산비탈마다 무언가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조엄은 자기도 모르게 그 잎사귀를 가리키며 통역에게 물었습니다.

    "저 잎이 무엇이오?"

    통역이 곁에 있던 대마도 안내인에게 일본어로 묻고는, 잠시 후 답을 전했습니다.

    "영감, 저것이 바로 사쓰마이모, 즉 감저라 하옵니다."

    조엄의 가슴이 한 번 크게 뛰었습니다.

    '바로 저것이로구나. 임금께서 그토록 찾으시던 그 작물이.'

    조엄은 짐짓 무심한 척하며 안내인을 따라 숙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계속해서 그 잎사귀들을 좇고 있었지요.

    대마도주(對馬島主) 소 요시나가가 베푸는 환영 만찬에서, 조엄은 처음으로 그 작물을 입에 넣어 봤습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뿌리채소. 껍질을 벗기자 안에서 노란 속살이 김을 모락모락 풍겼지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조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습니다.

    '이... 이렇게 달다니.'

    부드럽고 달콤한 그 맛. 쌀밥과는 또 다른 깊은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조엄은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대마도의 농가를 방문하기 시작했지요. 외교 임무의 틈을 타서, 그는 안내인과 통역을 데리고 산비탈의 농가들을 일일이 돌아다녔습니다.

    한 늙은 농부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 농부가 자기 밭에서 갓 캐낸 감저 한 다발을 들고 나왔습니다. 흙 묻은 그 뿌리채소를 조엄에게 보여 주며 자랑스럽게 말했지요.

    "통신사 어른, 보십시오. 이 한 포기에서 이렇게나 많은 알이 열립니다. 우리 대마도 사람들은 흉년에도 이것 덕에 굶지 않습니다."

    조엄이 조심스럽게 그 뿌리를 만져 봤습니다. 묵직한 무게감. 한 포기에서 무려 열 알이 넘는 굵은 뿌리가 매달려 있었지요.

    "이것을 어떻게 키우오?"

    농부가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설명했습니다.

    "줄기를 잘라 땅에 꽂으면 거기서 새로 자랍니다. 봄에 심으면 가을에 거둡니다. 가뭄에도 잘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우리 대마도처럼 돌이 많은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조엄은 그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 백성을 살릴 그 기적이다. 어떻게 해서든 가져가야 한다.'

    그는 농부에게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노인장, 이 작물의 종자를 조금 얻을 수 있겠소? 내가 후한 값을 치르겠소."

    그러나 농부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습니다.

    "통신사 어른, 그것은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오?"

    "이것은 우리 대마도의 보배입니다.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은 도주께서 엄히 금하셨습니다. 발각되면 우리 같은 농민은 목이 달아납니다."

    조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반출 금지령이 있구나. 그것도 목이 달아날 만큼 엄한 금지령이.'

    조엄은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한참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외교 사절의 신분으로 외국의 반출 금지 작물을 빼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들키면 통신사 사절단 전체가 외교 문제에 휘말리고, 양국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양을 떠나기 전 보았던 그 굶주린 백성들의 얼굴이 자꾸만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지요. 흙을 빻아 먹다 죽는 백성들. 등에 업힌 자식이 굶어 죽은 줄도 모르고 길을 가는 어미.

    '어찌해서든 가져가야 한다. 내 한 목이 달아나도, 백성 수백만의 목을 살리는 길이라면.'

    조엄은 그날 밤 호롱불 아래에서 결심을 굳혔습니다. 평생 한 번도 어겨 본 적 없던 그 강직한 성품으로, 그는 이제 외국법을 어기는 밀반입자가 될 각오를 하고 있었지요.

    ※ 4: 감저(甘藷)의 비밀,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기적의 작물

    며칠 뒤, 조엄은 통역과 신뢰할 수 있는 군관 한 명을 데리고 대마도의 산골 마을을 또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외교 일정 사이의 빈 시간을 쪼개어, 가능한 한 은밀하게 움직였지요.

    "영감, 너무 자주 농가를 다니시면 도주(島主)가 의심합니다."

    군관이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알고 있네. 그러나 더 자세히 알아두지 않으면 가져가도 키울 수가 없네. 작물의 성질을 정확히 알아야 조선 땅에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어."

    조엄은 매일 밤 숙소로 돌아오면 호롱불 아래에서 그날 보고 들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훗날 『해사일기(海槎日記)』라 불리게 될 그 기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감저에 관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갔지요.

    '감저의 모양은 마(麻)나 토란과 비슷하나 그보다 더 둥글고 길다. 색은 자주색이나 흰색이며, 익히면 노란 속살이 드러난다. 맛은 달고 부드러우며, 한 끼 식사로도 족히 배가 부르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가뭄에도 죽지 않는다. 한 포기에서 열에서 스무 알의 뿌리를 거둘 수 있다. 줄기를 잘라 땅에 꽂으면 새로 자란다.'

    '대마도 사람들은 이를 흉년에 먹는 구황작물로 여기나, 평년에도 즐겨 먹는다. 일본에서는 이미 사쓰마국(薩摩國)을 시작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다.'

    기록을 마칠 때마다 조엄은 호롱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깊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것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조선의 척박한 땅도 농토로 변할 수 있다. 함경도 산골짜기, 강원도 비탈진 밭, 제주 화산토. 어디든 자랄 수 있어. 흉년에 풀뿌리 캐 먹다 죽는 일이 없어진다.'

    가슴이 뜨거워졌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조엄이 매일 농가를 들락거리고 산비탈의 감저 밭을 살피고 다닌다는 소문은, 며칠 만에 대마도주 소 요시나가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오후, 도주의 사자가 조엄의 숙소를 찾아왔지요.

    "통신사 어르신, 도주께서 정중히 모시고자 하십니다."

    조엄은 짐짓 평온한 표정으로 응했습니다.

    "알겠소. 곧 가리다."

    도주의 거처에 도착하자, 소 요시나가가 평소보다 더 정중한 자세로 조엄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날카로운 경계가 서려 있었지요.

    "통신사 어른, 우리 대마도가 마음에 드시는지요?"

    "네, 도주의 환대 덕분에 잘 머물고 있소."

    소 요시나가가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요즘 우리 농가들을 자주 찾으신다 들었습니다."

    조엄의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지만, 그는 평정을 잃지 않고 답했지요.

    "그렇소이다. 우리 조선과 대마도의 농법이 어찌 다른지 살피던 중이오. 학문하는 사람의 호기심이라 여겨 주시오."

    소 요시나가가 가만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미소 안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지요.

    "어르신, 대마도에는 한 가지 엄한 법이 있습니다. 우리 땅의 작물 종자를 외국으로 반출하는 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참수형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농민들도 이를 어기면 즉시 처형됩니다."

    조엄은 침묵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답했지요.

    "도주, 알려 주시어 고맙소. 외교 사절의 몸으로 그런 법을 어찌 어기겠소. 다만 학문적 호기심으로 농가를 둘러봤을 뿐이오."

    "네, 어르신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르신의 수행원들 중 누군가가 실수할까 염려되어 미리 일러두는 것이오니, 부디 단속을 잘 부탁드립니다."

    소 요시나가가 마지막 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도(島) 안에서, 그리고 통신사 일행이 머무는 모든 숙소에, 매일 밤 검문이 있을 것입니다. 짐을 일일이 뒤지지는 않으나,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이면 그 즉시 수색이 들어갑니다. 양해해 주시지요."

    조엄은 정중히 답례하고 도주의 거처를 나섰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의 가슴이 답답하게 막혔지요.

    '매일 밤 검문이라. 게다가 의심 정황이 보이면 짐 수색까지.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도주가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

    그러나 그날 밤 호롱불 아래에서, 조엄은 더욱 굳게 결심을 다졌습니다. 어려울수록, 위험할수록, 임무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한양에서 본 그 굶주린 어미와 아이의 얼굴이, 그의 결심을 흔들리지 않게 받쳐 주고 있었지요.

    ※ 5: 종자 반출 금지령, 대마도주(島主)의 삼엄한 감시망

    다음 날부터 대마도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통신사 일행이 머무는 숙소 주변에 일본 무사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지요. 숙소 출입구에는 도주가 보낸 감시병이 두 명씩 교대로 서 있었습니다.

    조엄은 사절단의 부사 이인배와 종사관 김상익을 조용히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지요.

    "부사, 종사관. 두 분께 비밀스러운 일을 의논드릴 것이 있소이다."

    이인배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영감, 무슨 일이옵니까?"

    조엄은 사방을 한 번 둘러본 뒤, 호롱불을 가까이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요.

    "임금께서 내게 한 가지 막중한 임무를 내리셨소. 그것은 일본의 감저, 곧 그 단 뿌리채소의 종자를 조선으로 가져오는 것이오."

    두 사람의 표정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습니다. 김상익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요.

    "영감, 그것은... 외국 작물 반출이 아니옵니까. 대마도주가 엄히 금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소. 발각되면 우리 사절단 전체가 외교 문제에 휘말리오. 그러나 임금의 어명이 그러하니, 어찌해서든 가져가야 하오."

    이인배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영감, 그 위험을 우리 사절단 전체가 함께 감수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소. 두 분의 의향을 묻고 싶소."

    이인배가 종사관 김상익과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엄을 향해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지요.

    "영감, 한양 떠나실 때 길가에서 절을 올리던 그 백성들의 얼굴이 우리 두 사람도 잊히지 않습니다. 굶어 죽는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면, 어찌 한 목숨이 아깝겠습니까. 함께 가시지요."

    김상익도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영감, 따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조심해 주십시오. 부디 영감의 신변에 위험이 미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시지요."

    조엄의 두 눈에 잠시 물기가 어렸습니다.

    "고맙소, 두 분."

    세 사람은 그날 밤 호롱불 아래에서 구체적인 작전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종자를 어떻게 손에 넣느냐가 첫 번째 과제요."

    조엄이 입을 열었습니다.

    "농가에서 직접 사들이는 건 위험합니다. 도주의 감시가 농가에까지 미치고 있으니, 거래가 발각되면 그 농가도, 우리도 위태롭습니다."

    이인배가 답했지요.

    "그렇다면 시장이오. 대마도 시장에 가면 감저가 식량으로 팔리고 있다 하지 않소. 거기서 사들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니 의심받지 않을 것이오."

    김상익이 무릎을 쳤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감. 다만 시장의 감저는 식용으로 잘라 놓은 것일 텐데, 그것에서 종자를 추리는 것이 가능한지요?"

    조엄이 호롱불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답했습니다.

    "내가 이미 농부에게 들어 알고 있소. 감저는 줄기를 잘라 땅에 꽂으면 거기서 새로 자란다 하오. 또 뿌리에 싹이 난 부분을 심어도 자란다 하오. 그러니 시장에서 멀쩡한 뿌리 몇 알만 사면 되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더 의논했습니다. 종자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어떻게 검문을 통과할 것인가, 만약 발각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종자를 옮기는 일은 절대로 두 분께 맡기지 않겠소. 이 일에 만약 화(禍)가 닥친다면, 그것은 오로지 정사인 내가 책임질 일이오. 두 분은 그저 도주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 주시면 되오."

    조엄의 결연한 한마디에 두 사람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대마도 후츄(府中)의 시장. 통신사 일행 몇 명이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지요. 일본인 상인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습니다. 통신사가 시장 구경을 나오는 일은 흔한 풍경이었으니 의심하지 않았지요.

    조엄은 군관 한 명만 데리고 시장 한쪽의 작은 농산물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가게 한구석에 자루에 담긴 감저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요.

    "이것 한 자루에 얼마요?"

    군관이 일본어로 물었습니다.

    "한 자루에 한 냥입니다요, 어르신."

    조엄은 짐짓 무심한 척하며 자루 안의 감저를 손으로 휘저어 봤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골라내고 있었지요. 싹이 트기 시작한 뿌리. 줄기 끝이 살아 있는 작은 뿌리. 그 어른의 두 눈은 평범한 식료품을 사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천금보다 귀한 보물을 가려내는 농부의 눈이었습니다.

    "이 자루를 사겠소."

    조엄이 한 자루를 골라 들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돈을 받았지요.

    "통신사 어르신, 우리 대마도의 감저가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많이 사 가십시오!"

    조엄은 미소로 답하고는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요. 자루 속에는 단순한 식료품이 아니라, 조선 백성 수백만의 명운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 멀리서 대마도주의 감시병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조엄은 일부러 한가로이 풍경을 감상하는 척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지요. 그러나 자루를 든 그의 손에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떨림이 일고 있었습니다.

    ※ 6: 목숨을 건 밀반입, 품속에 숨긴 작은 종자 한 봉

    숙소로 돌아온 조엄은 곧장 자기 방의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호롱불을 끌어당겨, 사 온 자루를 조심스럽게 풀어헤쳤지요.

    흙 묻은 감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가장 튼실한 것, 싹이 살아 있는 것을 골라내기 시작했지요. 잘 익어 식용으로 적합한 것은 따로 빼 두고, 종자로 쓸 수 있는 것만을 따로 모았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조엄의 손길은 더욱 신중해졌지요. 그가 골라낸 것은 채 한 됫박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 됫박이, 바로 조선 팔도를 살릴 종자였지요.

    조엄은 조심스럽게 종자를 비단 보자기에 싸서, 그 위에 또 한지를 두르고, 마지막으로 짚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꾸러미를 자기 옷장 안쪽 깊숙이 숨겨 두었지요.

    다음 날 아침, 도주의 감시병이 어김없이 숙소를 살피고 갔습니다. 그러나 짐을 뒤지지는 않았지요. 외교 사절의 짐을 함부로 뒤지는 것은 양국 관계에 큰 결례였기 때문입니다. 그 점이 조엄에게는 다행이었지요.

    그러나 진짜 위험한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통신사 일행이 다음 일정인 일본 본토 에도(江戶)로 향할 때, 그리고 이후 다시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갈 때. 그때마다 짐 수색이 있을 가능성이 컸지요.

    조엄은 사절단의 일정을 따라 에도까지 다녀왔습니다.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을 알현하고 외교 문서를 교환하는 정식 일정이었지요. 그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대마도로 돌아왔을 때, 어느덧 해를 넘겨 1764년의 봄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부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항해뿐이었지요. 그러나 도주 소 요시나가는 마지막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통신사 일행이 배에 오르기 전, 그는 친히 항구로 나와 송별의 자리를 마련했지요.

    "통신사 어른,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빕니다. 우리 대마도가 어른께 베풀지 못한 것이 많아 송구할 따름입니다."

    소 요시나가의 정중한 인사 뒤로, 그러나 그의 무사들이 일행의 짐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형식적인 점검이라고는 했지만, 짐 무게를 가늠해 보고, 의심스러운 꾸러미는 직접 풀어 보기까지 했지요.

    조엄은 침착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가슴 한복판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요. 종자를 어디에 숨겼느냐 하면, 그것은 짐 속이 아니었습니다. 짐 속은 검문에 걸릴 위험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지요.

    조엄은 종자 가운데 절반은 정사선의 짐칸 깊숙한 곳, 식료품 자루 사이에 묻어 두었습니다. 검문하는 무사들이 식량 자루를 일일이 풀어 보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지요.

    그리고 나머지 절반. 가장 튼실하고 싹이 살아 있는 그 종자는, 조엄이 자기 품속에 직접 품고 있었습니다. 도포 안쪽에 두른 비단 띠 안에, 작은 천 주머니에 넣은 종자를 단단히 묶어 두었지요.

    '설마 외교 사절의 몸수색까지야 하겠는가.'

    조엄은 그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습니다.

    소 요시나가의 무사 한 명이 조엄의 가까이로 다가왔지요. 그러더니 정중하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통신사 어르신, 마지막 인사를 위해 잠시 도주께 가까이 오시지요."

    조엄의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습니다. 만약 도주가 자기를 의심하여 가까이서 몸을 살핀다면. 만약 무사들이 자기 도포 안을 살피기라도 한다면.

    그러나 외교 사절의 정사로서, 도주의 마지막 송별 인사를 거절할 수는 없었지요. 조엄은 평정을 잃지 않고 도주에게 다가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정중히 절을 올렸지요.

    "도주, 그동안 환대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리오."

    "통신사 어른의 무사 항해를 기원합니다."

    소 요시나가가 조엄의 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더니 한참을 그의 두 눈을 응시했지요. 마치 그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이었습니다.

    조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지요. 평생을 강직하게 살아온 그 양반의 눈빛에는, 그 어떤 거짓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지요.

    소 요시나가가 마침내 그의 손을 놓았습니다.

    "무사히 가시지요, 통신사 어른."

    조엄이 정중히 답례하고 천천히 배에 올랐습니다. 정사선이 천천히 부두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 조엄은 의연한 표정을 잃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의 도포 안쪽, 비단 띠 속에 숨겨진 작은 종자 주머니는, 그의 심장 박동에 맞춰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대마도 항구를 빠져나와 망망대해로 들어선 그 순간에야, 조엄은 비로소 자기 방에 들어 깊은 숨을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도포 안의 종자 주머니를 꺼내, 두 손에 가만히 받들었지요.

    "백성을 살릴 보배가, 마침내 내 손에 들어왔구나."

    뱃전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 너머로, 조엄의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 7: 부산포 동래부사 강필리, 시험 재배에 성공하다

    영조 사십년 음력 유월, 통신사 일행을 실은 정사선이 마침내 부산포에 닿았습니다. 한양을 떠난 지 일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지요.

    배가 영가대 앞 포구에 닿자, 약속대로 동래부사 강필리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영가대 정자 안에서 비밀스럽게 마주 앉았지요.

    "부사, 약속을 지켰소."

    조엄이 도포 안에서 그 작은 종자 꾸러미를 꺼냈습니다. 강필리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지요.

    "영감... 정녕 가져오셨군요."

    "또 정사선의 짐칸에도 따로 묻어 두었소. 모두 합치면 한 됫박은 족히 되리이다. 부사, 이것을 부산포 인근에서 시험 재배하시오. 그리고 만약 농사가 성공하면, 그 종자를 또 늘려 조선 팔도로 보내 주시오."

    강필리가 그 종자 꾸러미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들었습니다. 그 무게가 어찌나 무겁던지요. 한 됫박이 채 안 되는 작은 꾸러미였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조선 백성 수백만의 명운이었습니다.

    "영감, 이 강필리 평생을 걸고 첫 농사를 성공시키겠나이다."

    그날부터 강필리의 손에 의해, 조선 땅 최초의 고구마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포의 절영도(絶影島), 지금의 영도라는 작은 섬. 그곳의 모래밭에서 강필리는 직접 호미를 들고 종자를 심었지요.

    처음 며칠은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종자가 잘못되어 싹이 트지 않으면, 조엄 영감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그 모든 노고가 헛수고가 될 것이었지요. 강필리는 매일 밭에 나가 흙을 만져 보고, 잎이 나오는지 살피고, 직접 물을 길어 부었습니다.

    "부사 영감, 종일 이 밭에 매여 사시는구먼요."

    함께 일하던 농부가 흐뭇하게 말했지요. 강필리는 빙긋 웃으며 답했습니다.

    "이 작물 한 포기에 조선 백성의 목숨이 달려 있네. 어찌 마음을 놓겠는가."

    마침내 보름이 지났을 무렵, 모래밭 위로 푸른 잎이 한 장씩 솟아오르기 시작했지요. 강필리가 그 모습을 보고 마당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을 흐느꼈답니다.

    "영감, 종자가 살았습니다. 살았습니다!"

    강필리는 그 길로 한양에 있는 조엄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짧고 간결한 한 줄이었지요.

    '영감, 감저(甘藷)가 절영도에서 살았소이다. 부디 안심하시오.'

    조엄은 그 서신을 받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지요.

    "하늘이 도왔구나. 백성이 살 길이 열렸구나."

    가을이 되자 절영도의 모래밭에서는 풍성한 수확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포기에서 무려 열다섯 알이 넘는 굵직굵직한 감저가 나왔지요. 척박한 모래밭에서, 그 어떤 거름도 제대로 주지 못한 그 밭에서 말입니다.

    강필리는 그해 수확한 감저 가운데 일부는 직접 시식해 보고, 일부는 종자로 보관하고, 일부는 인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듬해부터 부산 일대의 농민들이 너나없이 감저를 심기 시작했지요.

    "부사 영감 덕분에 우리 마을이 살았소!"
    "이놈을 키우니까 흉년에도 굶지 않게 되었수!"

    농민들의 칭송이 부산 곳곳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강필리는 그 칭송을 한사코 사양했지요.

    "내 공이 아니라, 통신사 조엄 영감의 공이오. 영감께서 목숨을 걸고 종자를 가져오신 덕분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오."

    강필리는 또 자기 손으로 농서(農書)를 한 권 지었습니다. 감저를 어떻게 심고, 어떻게 키우며, 어떻게 보관하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적은 책이었지요. 그 책이 조선 팔도의 지방 수령들에게 두루 보내졌습니다.

    영조 임금께서도 그 소식을 들으시고 환한 미소를 지으셨지요.

    "조엄과 강필리, 두 신하가 백성을 살렸도다. 그 공이 일등공신에 못지않다."

    임금은 친히 조엄을 불러 그의 두 손을 잡으셨습니다.

    "경(卿)이 백성의 굶주림을 달래었소. 짐(朕)이 그 공을 잊지 않으리다."

    조엄이 깊이 머리를 숙였지요.

    "전하, 신은 그저 어명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진정한 공은 앞으로 이 작물을 키울 조선의 백성들에게 있나이다."

    임금의 두 눈에 잠시 물기가 어렸습니다.

    "경의 그 마음이 더욱 가상하구나."

    이렇게 한 알의 종자가, 한 사내의 강직함과 한 부사의 정성을 통해, 조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8: 구황의 신으로 불린 사내, 조선 팔도에 퍼진 달콤한 기적

    세월이 흐르면서, 감저는 부산을 시작으로 천천히 조선 팔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경상도 남부에서, 다음에는 전라도와 충청도로, 그리고 마침내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까지.

    조엄이 가져온 그 한 됫박의 종자가, 어느덧 조선 전체의 농토를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지요.

    흉년이 들 때마다 감저는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벼농사가 망친 해, 보리농사가 망친 해. 그러나 감저만은 척박한 비탈진 밭에서 굳건히 자라났지요. 한 마지기 밭에서 쌀의 두 배, 세 배에 달하는 식량이 거두어졌습니다.

    함경도 산골의 한 노파는 감저 한 광주리를 등에 지고 마을 어귀의 사당에 절을 올리며 외쳤지요.

    "고맙소이다, 통신사 영감님. 영감님이 이걸 가져다주셨다 하니 어찌 안 절을 올릴 수 있겠수."

    전라도 어느 농부는 새로 거둔 감저를 가마니에 담아 두며 자식들에게 들려주었답니다.

    "얘들아, 너희가 굶지 않고 자란 것은 다 그 통신사 영감 덕이다. 그 영감 함자(銜字)가 조엄이라 하셨다. 절대로 잊지 말거라."

    그렇게 조선 팔도 곳곳에서 조엄의 이름이 칭송되기 시작했지요. 어떤 마을에서는 그를 두고 '구황(救荒)의 신(神)'이라 부르기까지 했답니다. 굶주림에서 백성을 구한 살아있는 신령이라는 뜻이었지요.

    조엄 본인은 그러나 그 칭송을 한사코 사양했습니다. 그는 후에 이조판서와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여러 공직을 거쳤지만, 자기 입으로 감저 이야기를 자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요. 다만 그가 남긴 『해사일기』에 그 모든 여정이 빼곡히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훗날 조엄이 모함을 받아 유배 길에 오르고, 그 유배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부산의 강필리가 그 소식을 듣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답니다.

    "영감, 영감의 공을 백성은 알고 있소. 천 년이 흐르고 만 년이 흘러도, 영감의 이름은 잊히지 않을 것이오."

    강필리는 그 말을 가만히 되뇌며 한참을 흐느꼈지요.

    조엄이 세상을 떠난 뒤로도, 그가 가져온 감저는 조선 땅에서 끊임없이 자라났습니다. 정조 시대를 지나,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시대까지. 흉년이 닥칠 때마다 감저는 묵묵히 백성의 곁에 서 있었지요.

    수많은 어머니들이 감저 한 알을 삶아 자식의 입에 넣어 주며 한숨을 돌렸고, 수많은 아버지들이 감저 가마니를 등에 지고 시장에 팔러 나가며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감저 한 알이 살린 목숨이, 조선 후기 백 년 동안 수백만이 넘었다는 기록도 있지요.

    그러나 그 모든 백성들 가운데, 자기 입에 들어가는 그 단 뿌리채소가 어떻게 조선 땅에 들어왔는지를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내가 일본 대마도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자기 도포 안에 작은 종자 주머니를 품고 와서, 부산포의 모래밭에 그것을 심었다는 이야기. 그 사내의 함자가 조엄이었다는 사실. 그 한 사내의 강직한 결단이 없었다면 자기들이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조엄 본인도 그 칭송을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그가 바란 것은 오직 한 가지. 한양 도성을 떠나던 그날, 길가에서 자기를 향해 절을 올리던 그 굶주린 어미와 아이들이, 다음에는 굶지 않는 것. 오직 그 한 가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군고구마 한 알을 입에 넣을 때, 그 달콤한 한입이 어떻게 우리 입까지 왔는지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십시오. 통신사 조엄, 동래부사 강필리. 그리고 이름 없이 절영도 모래밭에서 호미를 들었던 부산의 농민들. 그 모든 이들의 숨결이 그 한 알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요.

    교과서가 짧게 한 줄로 지나친 그 이야기. 『해사일기』의 행간 속에 숨겨진 그 위대한 밀반입 작전. 그것이 바로 영조 시대의 어느 강직한 사내가, 굶주린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해낸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200자 내외)

    지금까지 통신사 조엄의 고구마 밀반입 대작전,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사내의 강직한 결단이 굶주린 백성 수백만을 살렸다는 그 이야기, 가슴 뜨거우셨는지요. 오늘 저녁 군고구마 한 알 드시면서, 조엄이라는 이름 한 번만 떠올려 주시면 그 어른께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고, 다음에도 교과서 밖 진짜 우리 역사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강녕하세요.

    썸네일 프롬프트 (영어, 16:9, 실사, no text)

    Cinematic ultra-realistic 16:9 photograph in dramatic Joseon dynasty atmosphere, a dignified middle-aged Korean noble scholar in dark blue official hanbok robe with traditional black gat hat, standing on the wooden deck of an ancient Joseon era diplomatic ship at dawn, secretly holding a small fabric pouch of sweet potato seeds close to his chest with both hands, expression of solemn determination mixed with relief, behind him the silhouette of Tsushima Island fading into morning mist across the dark ocean, Japanese samurai guards visible in distant background, golden sunrise breaking through cloudy sky, traditional ship sails and ropes, dramatic chiaroscuro cinematic lighting, photorealistic historical drama style, deep blues and warm golden tones, no text, no letters, no log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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