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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태양 - 정도전과 이방원 (하)
※ 이성계의 침실, 태조 이성계의 건강 악화와 왕위 계승에 관한 고민
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이성계의 침실. 촛불 몇 개만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침상에 누워 있고, 그의 얼굴은 질병으로 창백하다. 숨소리가 거칠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다. 침상 곁에는 왕비와 의원, 그리고 방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키고 있다. 방석의 눈에는 아버지를 향한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있다.
"아버님, 약을 드셔야 합니다." 방석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성계는 힘겹게 눈을 뜨고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든다. "됐다...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방석이 망설이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물러난다. 왕비와 의원도 따라 나가고, 이성계는 잠시 홀로 남아 천장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깊은 고뇌가 서려 있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이방원이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는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순간 얼굴이 굳어진다. "아버님..." 이성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본다. "방원아... 네가 왔구나." 이방원이 침상 곁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버님, 어서 쾌차하셔야 합니다. 나라가... 저희가 아버님을 필요로 합니다."
이성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이방원의 어깨에 얹는다. "내가 없어도... 나라는 굳건할 것이다. 네가 있으니..." 이방원의 눈이 커진다. "아버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세자님이..." 이성계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방석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구나."
"하지만 정도전이 그를 돕고 있지 않습니까?" 이방원의 목소리에 미묘한 날이 선다. 이성계가 깊은 숨을 내쉰다. "정도전은... 충직한 신하다. 하지만 그의 이상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심한 기침이 이어진다. 이방원이 급히 물을 따라 아버지에게 건넨다. 이성계는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른다.
"방원아... 네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라. 정도전의 충언을 들어라. 하지만..." 이성계의 목소리가 갑자기 선명해진다. "왕권만은 흔들리지 않게 지켜라." 이방원의 눈에 결의가 깃든다.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이성계의 눈이 감기며 그는 다시 잠에 빠져든다. 이방원은 한동안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선다.
침실을 나서는 이방원의 얼굴에 차가운 결의가 서린다. 복도에서 그는 정도전과 마주친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치고,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정도전이 먼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왕자님, 전하의 상태는 어떠십니까?" 이방원의 눈이 차갑게 빛난다. "위중하십니다."
정도전의 얼굴에 진심 어린 걱정이 스친다. "유감입니다. 전하께서는 반드시 쾌차하실 것입니다." 이방원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한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나라를 꿈꾸십니까? 아버님 이후의 조선을..." 정도전이 이방원을 똑바로 바라본다. "백성이 편안하고, 신하들이 충직하며, 왕이 현명한 나라입니다."
"그 현명한 왕이... 방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방원의 질문에 정도전은 대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멀리서 밤 순찰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온다. 각자의 생각에 잠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복도의 벽에 길게 드리워진다.
※ 정도전의 서재, 정도전의 개혁안 구상과 방석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계획
촛불이 밝게 타오르는 정도전의 서재. 벽면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고, 책상 위에는 펼쳐진 두루마리와 붓, 먹이 놓여 있다. 창밖으로는 가을의 차가운 달빛이 비치고, 간간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정도전은 깊은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깊고 무거워 보인다.
"정승님, 조정 대신들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젊은 관리의 목소리에 정도전이 고개를 돌린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곧 여러 명의 대신들이 서재로 들어온다. 그들의 표정은 무겁고 긴장감이 감돈다.
"정승님, 전하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한 대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정도전이 깊은 숨을 내쉰다. "그래, 나도 알고 있네. 이제는 세자의 즉위를 준비해야 할 때가 왔어." 방의 분위기가 더욱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정승님, 이방원 왕자와 그의 형제들이..." 다른 대신이 말을 꺼내자 정도전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는다. "방원이는 현명하고 용맹한 왕자지. 하지만 그의 성격은 너무 강하고 독단적이야. 조선은 아직 연약하네.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좀 더 유연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진 군주가 필요하지."
"세자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합니다." 한 대신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정도전의 눈빛이 강해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있는 이유일세. 우리가 그를 도와 현명한 군주로 키워나갈 것이야." 정도전이 책상에서 하나의 두루마리를 집어 든다. "내가 준비한 개혁안이네. 세자가 즉위하면 바로 시행할 것이야."
대신들이 그 문서를 받아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정승님, 이것은... 너무 급진적이지 않습니까? 왕권을 제한하고 의정부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것은..." 정도전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네. 조선은 더 이상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닌, 백성들의 나라가 되어야 해. 왕이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아니라, 법과 질서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네."
한 대신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핀다. "정승님, 이방원 왕자는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원하고..." 정도전의 눈에 깊은 고뇌가 스친다. "나도 안다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의 야망보다는 천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네."
갑자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한다. 한 젊은 관리가 급히 들어와 무릎을 꿇는다. "정승님, 이방원 왕자가 오고 계십니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정도전은 빠르게 두루마리를 거두어들이고 대신들에게 눈짓한다. 대신들은 급히 다른 주제로 대화를 바꾸고, 정도전은 평온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한다.
문이 열리고 이방원이 들어선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방 안을 훑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많은 대신들이 모여 계시는군요. 무슨 중요한 논의라도 있으셨습니까?" 정도전이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왕자님, 단지 전하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조정의 일상적인 업무를 논의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방원의 눈이 의심스럽게 빛난다. 그는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반쯤 가려진 두루마리에 시선을 멈춘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 두루마리는 무엇입니까?" 정도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대답한다. "새로운 세금 제도에 관한 제안입니다.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요."
이방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에는 믿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제가 한번 보아도 되겠습니까?" 정도전과 이방원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닿는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른다. 밖에서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창문을 흔들고, 촛불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춤을 춘다.
※ 궁중 연회장, 왕자들 간의 긴장감과 정도전과 이방원의 표면적 화해 시도
화려한 등불과 장식으로 빛나는 궁중 연회장. 태조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리고 있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대신들과 왕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궁녀들이 우아한 춤을 추고 있다. 연회의 표면적 화려함 아래로는 무거운 긴장감이 흐른다. 태조의 빈 자리가 모든 이의 시선을 끌고 있다. 병환으로 참석하지 못한 왕의 부재는 다가올 변화의 전조처럼 느껴진다.
정도전이 대신들과 함께 한쪽에 앉아 있고, 이방원은 형제들과 다른 쪽에 자리하고 있다. 두 세력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젊은 세자 방석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그의 눈빛에는 불안과 부담이 어려 있다.
"오늘 연회는 평소보다 조용하군요." 한 대신이 정도전에게 속삭인다. 정도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폭풍 전의 고요와 같지." 그의 시선이 이방원에게 향한다. 이방원도 그를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눈빛이 공중에서 마주친다.
갑자기 연회장이 조용해지고, 세자 방석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한다. "아버님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빌며, 이 나라가 더욱 번영하기를 기원합니다." 방석의 목소리는 떨리지만, 그 안에는 결의가 담겨 있다.
이방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석에게 다가간다. 연회장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정도전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이방원이 방석 앞에 서서 깊이 고개를 숙인다. "세자님, 아버님의 건강이 회복되시길 저 역시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세자님께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길 기대합니다."
방석이 안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형님의 조언을 항상 귀담아 듣겠습니다." 이방원이 미소를 지으며 방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차갑다. 연회장의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진다.
이방원이 정도전에게 다가간다.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향한다. "정승님, 한 잔 하시지요." 이방원이 술잔을 권한다. 정도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잔을 받는다. "왕자님의 건강을 위해." 두 사람은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그들의 눈빛은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정승님, 저는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일하고 계신 것입니까, 아니면..." 이방원의 말에 정도전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왕자님, 제 모든 행동은 오직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방원이 술잔을 천천히 돌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이겠군요. 단지 그 방법이 다를 뿐." 정도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방원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날이 서 있다. "두 개의 태양은 하늘에 공존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정도전의 표정이 굳어진다. 두 사람의 대화는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갈등과 위협이 담겨 있다.
연회는 계속되고, 음악과 춤이 이어지지만,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다가올 폭풍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정도전과 이방원, 두 태양의 충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 한양 민가, 민중들 사이에서 퍼지는 불안과 소문, 변화의 조짐
가을비가 내리는 한양의 민가 거리. 처마 밑으로 빗물이 떨어지고, 좁은 골목길은 진흙탕이 되어 있다. 초라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작은 주점에 모여 있다. 낮은 천장 아래, 희미한 등불이 어둠을 밀어낸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하다.
"태조 폐하의 병세가 위중하다더군." 한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세자가 왕위를 이을 테지만, 과연 정도전과 이방원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될지..."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쉰다.
"난 정도전 대감이 백성을 위한다고 믿네. 그의 개혁은 우리 같은 천민들에게도 희망을 주지 않았는가." 한 젊은이가 말한다. 다른 이가 반박한다. "하지만 너무 급진적이야. 이방원 왕자는 적어도 안정을 가져올 거야. 변화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
그때 문이 열리고 비에 젖은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 술을 주문한다. 사람들이 그를 주의 깊게 살핀다. "저기, 당신은 어디서 왔소?" 노인이 묻는다. 남자가 천천히 대답한다. "개성에서 왔습니다. 소식을 전하러 왔지요."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둘러싼다. "무슨 소식이오?" 남자가 주변을 살핀 후 목소리를 낮춘다. "이방원 왕자가 병사들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형제들과 함께..." 주점 안이 순간 조용해진다. 사람들의 얼굴에 충격과 두려움이 스친다.
"그럼... 정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한 사내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조짐이 보입니다. 정도전 대감과 그의 지지자들을 제거하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본다.
문이 열리고 관복을 입은 관리 몇 명이 들어온다.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살핀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가?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있다면 당장 체포하겠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고개를 숙인다. 소식을 전하던 남자는 이미 뒷문으로 사라진 후다.
관리들이 나간 후, 주점은 무거운 침묵에 잠긴다. 한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또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 우리 같은 백성들만 고통받게 되겠지." 다른 이가 위로하듯 말한다. "어쩌면 평화롭게 해결될지도 모르잖아."
그때 한 소년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다.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다. "큰일 났어요! 경복궁 근처에서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왕자의 난이 시작된대요!" 주점 안의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어선다. 불안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퍼져나간다.
한 노인이 천천히 일어나 밖을 바라본다. 빗줄기 너머로 궁궐 방향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하늘이여,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소서." 그의 기도는 빗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한양의 밤은 깊어가고, 역사의 물줄기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 이방원의 저택, 이방원과 지지 세력의 비밀 회합과 정변 계획
깊은 밤, 이방원의 저택. 넓은 대청마루에는 등불이 희미하게 빛나고,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방원이 중앙에 앉아 있고, 그의 형제들인 이방과, 이방덕, 이방번과 몇몇 충신들이 둘러앉아 있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엄숙하고 결연하다. 밖에서는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형님,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이방덕의 목소리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울린다. "정도전과 그 일당이 세자를 내세워 우리를 제거하려 합니다. 이미 명단까지 작성했다고 합니다." 이방원의 눈빛이 차갑게 빛난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내가 정도전을 존경했다는 것을 그대들도 알 것이다. 그의 지혜와 비전, 그리고 백성을 향한 마음까지..." 이방원의 목소리에 순간 감정이 스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갔다. 그가 꿈꾸는 나라는 우리 이씨 왕가가 허수아비처럼 전락하는 나라다."
충신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선다. "왕자님,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정도전이 이미 군사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세자가 즉위하는 즉시 실행될 예정입니다." 방안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진다. 이방과가 주먹을 쥐며 분노를 표출한다. "먼저 행동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먼저 치기 전에!"
이방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본다. 달빛이 그의 결연한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명심하라. 우리의 목표는 정도전과 그 일당이다. 불필요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라. 특히 아버님과 세자에게는 절대 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방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언제 행동합니까?" 이방원의 눈에 결의가 깃든다. "내일 밤, 월식이 시작될 때다. 하늘이 우리의 행동을 가려줄 것이다." 방안의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여 동의를 표한다. 이방원이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순간 슬픔이 스치지만, 곧 단호함으로 바뀐다.
"정도전... 그대와 나,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구나."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사라진다. 방 안의 모든 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모두 알고 있다.
한 충신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왕자님, 성공한다면 그 다음은..." 이방원이 천천히 그를 바라본다. "아버님께서 원하셨던 대로, 세자는 그대로 세자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실권은 우리가 잡아야 한다. 이것이 왕가와 나라를 위한 길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다.
등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들의 그림자가 벽에 춤을 춘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침묵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 이방원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충신들의 눈빛에는 역사를 바꿀 결의가 담겨 있다. 밤은 깊어가고, 한양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 경복궁 회랑, 폭풍 전야, 정도전의 마지막 고뇌와 결단
어스름한 새벽, 경복궁의 긴 회랑. 빗방울이 처마를 두드리고, 안개가 궁궐 정원을 감싸고 있다. 정도전이 홀로 회랑을 천천히 걷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 어깨는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 처져 있다. 얼굴에는 깊은 고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정원을 바라본다. 안개 속에서 꽃들이 빗물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마치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는 듯한 풍경. 정도전의 눈에 깊은 슬픔이 어린다. 그가 한숨을 깊게 내쉰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구나..."
"대감님." 젊은 관리의 목소리에 정도전이 고개를 돌린다. "무슨 일인가?" 관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방원 왕자가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밤에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 합니다." 정도전의 눈이 순간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는다.
"그렇군. 예상했던 일이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우리도 준비는 해 두었다. 세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도록 하게." 관리가 급히 고개를 숙이고 떠난다. 정도전은 다시 한번 정원을 바라본다. 비가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그때, 멀리서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정도전이 돌아보니 하윤이 다가오고 있다. 그의 오른팔과도 같은 동지다. "정승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방원에 맞설 병력도 배치했습니다." 하윤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있다.
정도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윤아, 네 생각에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 하윤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이 일이 필요합니다." 정도전의 눈에 잠시 의심의 그림자가 스친다. "때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할 때도 있지..."
정도전이 회랑 기둥에 기대어 선다. 그의 눈은 먼 과거를 바라보는 듯하다. "내가 처음 이성계를 만났을 때, 나는 그저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꿨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권력에 집착하는 자가 되었구나." 하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정승님, 후회하십니까?" 정도전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번진다. "후회? 아니다. 다만 이 길이 얼마나 많은 피를 부를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구나." 그가 하윤의 어깨를 잡는다. "이제 가자. 마지막 준비를 해야겠다."
두 사람이 회랑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린다. 마치 하늘도 이들의 운명을 슬퍼하는 듯하다. 정도전의 발걸음은 무겁지만 결연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방원과의 마지막 대화가 울려 퍼진다. "두 개의 태양은 하늘에 공존할 수 없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창덕궁 돌담길, 왕자의 난과 두 태양의 최후 대결
새벽의 어스름이 걷히기 시작하는 창덕궁 돌담길. 비는 그쳤지만 땅은 여전히 젖어있고, 안개가 돌담 주변을 감싸고 있다. 말발굽 소리와 무장한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깨뜨린다. 정도전이 몇몇 관리들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긴장으로 굳어 있다.
"정승님, 이미 이방원의 병사들이 궁 주변을 포위했습니다. 세자님의 안전이 우려됩니다." 하윤의 목소리가 떨린다. 정도전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핀다. 멀리서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외침이 들려온다. "서둘러야 한다. 세자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해."
그때 돌담 너머에서 수십 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선두에 이방원이 서 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단호하다. 두 세력이 마주 서고,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흐른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친다.
"정도전." 이방원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린다. "그대의 반역이 이제 끝났소." 정도전이 고개를 들어 이방원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닌 결연함이 담겨 있다. "반역이라... 왕자님, 저는 단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방원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더 나은 나라? 이씨 왕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세자를 허수아비로 만들려 했소. 그것이 당신의 더 나은 나라요?" 정도전의 얼굴에 슬픔이 스친다. "왕자님, 권력은 한 가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이방원의 눈이 차갑게 빛난다. "그 고귀한 말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생각이었소? 내 형제들, 그리고 내 가족을 제거하려 했던 것도 모든 백성을 위해서였소?" 정도전이 잠시 침묵한다. 그의 눈에 깊은 회한이 어린다.
"그것은... 내가 짊어질 업보입니다. 하지만 왕자님, 이 길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이 시작될 것입니다. 당신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권력은 백성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정도전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확신이 담겨 있다.
이방원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칼을 뽑아든다. "이제 마지막 기회요. 항복하고 세자를 보호하던 병사들을 물리치시오." 정도전이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왕자님, 저는 제가 믿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 운명이라면..."
순간 화살 하나가 정도전의 가슴을 관통한다. 그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진다. 하윤과 다른 관리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달려간다. 이방원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치지만, 이내 냉정함을 되찾는다. "모든 반역자를 체포하라!"
정도전이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새벽의 푸른 하늘에 마지막 별이 사라지고 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결국... 두 개의 태양은 공존할 수 없었구나..." 그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이방원이 다가와 그를 내려다본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지막으로 마주친다.
"당신의 꿈이 옳았는지, 내 꿈이 옳았는지... 역사가 판단할 것이오." 이방원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린다. 정도전의 눈이 천천히 감기고, 한 시대의 꿈이 그와 함께 잠들어간다. 아침 햇살이 돌담길을 비추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대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지금까지 '두개의 태양 - 정도전과 이방원' 하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던 두 위대한 인물의 비극적 대결이 막을 내렸습니다.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꿨던 정도전과 왕가의 권위를 지키려 했던 이방원, 두 사람의 이상은 달랐지만 그들이 조선의 미래를 위해 바친 열정은 오늘날까지 역사의 물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은 결국 태종으로 즉위하여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통치 방식에는 정도전의 영향이 남아있었습니다. 때로는 적대적이었지만 서로를 존중했던 두 사람의 이상이 조선 500년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두 태양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각과 느낌을 댓글로 나눠주세요. 다음 역사 드라마에서 또 만나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