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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왕의 시대" - 동생들 싸움에 낀 2년의 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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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형님, 제가 왕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1398년, 피로 얼룩진 1차 왕자의 난 후 억지로 왕이 된 남자. 조선 제2대 임금 정종. 그는 왕좌에 앉았지만 실권은 동생 이방원에게, 또 다른 동생 이방간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2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동생들의 권력 싸움 한가운데서 허수아비처럼 서 있어야 했던 비운의 왕, 정종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파란만장한 2년 재위 기간을 다룬 역사 드라마입니다. 1차 왕자의 난으로 형제들이 죽어나가는 비극을 목격한 후 원치 않게 왕위에 오른 정종. 실권은 동생 이방원에게 넘어가고, 또 다른 동생 이방간의 반란(2차 왕자의 난)까지 일어나면서 그는 왕이면서도 왕이 아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결국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기까지, 정종의 숨겨진 고뇌와 선택을 시니어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 피로 물든 즉위식
1398년 8월 26일 밤, 개경 궁궐은 지옥이었습니다. 정종, 아니 그때는 아직 이방과였던 그는 자신의 처소 문을 걸어 잠근 채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동생 이방원이 일으킨 쿠데타, 바로 1차 왕자의 난이 한창이었던 것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린 방석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열다섯 살 소년의 목소리였습니다. 이어서 칼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끔찍한 침묵. 정종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형제가 죽어가는 소리는 영혼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새벽이 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형님, 형님! 저 방원입니다. 문을 여십시오." 정종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방원의 옷에는 아직 피가 채 마르지 않았습니다. 동생의 피였습니다.
"형님, 끝났습니다. 정도전과 그 일당은 모두 제거했습니다. 방번과 방석도... 이제 조선은 안전합니다." 이방원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방금 형제를 죽였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미쳤구나, 방원아. 네가 미쳤어!" 정종이 소리쳤습니다. "그들이 우리 형제였다는 걸 잊었느냐!" "형님." 이방원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형제? 정도전과 저 어린것들이 우리를 모두 죽이려 했습니다. 먼저 치지 않았으면 죽은 건 우리였습니다."
사흘 후, 이방원은 신하들을 이끌고 정종을 찾아왔습니다. 아니, 찾아온 것이 아니라 포위했습니다. "형님, 형님께서 왕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아버님은 너무 상심하셔서 정신을 잃으셨고, 대신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나라가 지금 주인이 없습니다."
"안 돼! 나는 왕이 될 수 없어!" 정종은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원의 계략임을. 형제를 죽인 자가 바로 왕위에 오를 수는 없으니, 형인 자신을 내세워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형님, 이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이방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습니다. "형님께서 거부하시면 조선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잠시 멈춘 이방원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혼란이 오면 또 피를 봐야 합니다. 형님은 또 형제가 죽는 것을 보고 싶으십니까?"
협박이었습니다. 거부하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다는 암시였습니다. 정종은 무릎이 꺾였습니다. "알았다... 알았으니... 제발..." 그의 목소리는 거의 흐느낌에 가까웠습니다.
1398년 9월 5일, 즉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궁궐 곳곳에는 아직 피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급히 치워지긴 했지만 돌 틈새에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들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정종은 그 위를 밟으며 옥좌로 걸어갔습니다. 형제들의 피를 밟으며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곤룡포가 몸을 짓눌렀습니다. 머리 위의 왕관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신하들의 외침이 들렸지만 정종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며칠 전 들었던 방석의 비명만이 계속 메아리쳤습니다.
즉위식이 끝나고 정종은 옥좌에 혼자 남았습니다. 신하들은 모두 물러갔고, 이방원도 "형님, 푹 쉬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습니다. 휴식? 쉬라고? 정종은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그날 밤, 정종은 악몽을 꾸었습니다. 죽은 방번과 방석이 나타나 "형님, 왜 우리를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왜 그냥 보고만 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정종은 꿈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형이 무능해서... 형이 비겁해서..."
비명을 지르며 깬 정종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왕이 된 첫날 밤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밤을 이렇게 보내야 할까요. 정종은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었습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 실권 없는 나날들
왕이 된 지 석 달, 정종은 매일 아침 조회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의 눈은 정종이 아니라 옆에 서 있는 이방원을 향했습니다. 정안군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방원, 그가 진짜 권력자였습니다.
"전하, 북방의 여진족이 다시 변방을 침범했습니다. 어찌 대응하시겠습니까?" 병조판서가 물었습니다. 정종이 입을 열려는 순간, 이방원이 먼저 나섰습니다. "5천의 군사를 보내 토벌하도록 하십시오. 제가 친히 작전을 지휘하겠습니다."
"그, 그리하라..." 정종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병조판서는 정종이 아니라 이방원에게 절을 했습니다. "정안군 마마, 명을 받들겠습니다." 정종은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더 참담한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조판서가 인사 문제로 정종을 찾아왔습니다. "전하, 새로운 관리 임명 건으로 재가를 받고자 합니다." 정종이 문서를 살펴보는데, 이조판서가 슬쩍 말을 꺼냈습니다. "아, 전하. 이미 정안군께서 결재하신 내용입니다. 전하께서는 그냥 도장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뭐, 뭐라고?" 정종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정안군이 먼저 결재했다고? 내가 왕인데!" "송구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이것이 요즘의... 관례이옵니다." 이조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미안해하는 기색은 없었습니다.
정종은 분노로 떨렸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뭐라고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조판서가 나간 후, 정종은 책상을 쾅 내리쳤습니다. "이게 무슨 왕이냐! 차라리 도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느냐!"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아버지 태조와의 관계였습니다. 1차 왕자의 난 후 태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계비 강씨와 그녀의 아들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태조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준 후 함흥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정종은 여러 번 사신을 보내 아버지를 모셔오려 했습니다. "아버님,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십시오. 아들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태조는 사신들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사신은 아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수군거렸습니다. "함흥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다지 뭐요."
정종은 밤마다 술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왕비도 걱정했습니다. "마마, 건강을 해치십니다. 술을 줄이십시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내가 어찌 이 생활을 견디겠소?"
어느 날, 정종은 이방원과 단둘이 마주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종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방원아, 내가... 내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냐? 차라리 네가 왕이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
이방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습니다. "형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기억 속에 아직 1차 왕자의 난이 생생합니다. 제가 지금 왕위에 오르면 반발이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조금만 더?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느냐!" 정종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나는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신하들에게 무시당하고, 아버지는 나를 외면하고... 이게 왕의 삶이냐!"
"형님..." 이방원이 형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정종은 뿌리쳤습니다. "가거라! 네가 왕이든 내가 왕이든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꼭두각시인데!"
하지만 정종도 알고 있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는 그저 분노를 토해낼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방원이 나간 후, 정종은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습니다. "왕이란 이름이 이렇게 무겁구나... 차라리 명이 없는 게 나았을 것을..."
※ 이방간의 반란
1400년 1월 28일 새벽, 정종은 급보를 받고 잠에서 깼습니다. "전하! 큰일이옵니다! 회안군께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회안군, 바로 이방간이었습니다. 정종의 이복동생이자, 이방원과 권력을 다투던 또 다른 야심가였습니다.
"뭐, 뭐라고? 방간이가?" 정종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안 돼, 또? 또 형제끼리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2년 전 그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방간은 박포라는 맹장을 앞세워 군사 1,000여 명을 이끌고 궁궐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외침은 명확했습니다. "정안군 이방원을 제거하고 왕권을 바로 세우자!" 명목상으로는 이방원을 제거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소집된 조정에서 신하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전하, 어찌 하시겠습니까?" "군사를 보내 진압해야 합니다!" "아니, 협상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제각각 다른 소리를 냈습니다.
그때 이방원이 나섰습니다. "전하, 제가 직접 나가 진압하겠습니다. 이것은 반란이옵니다. 반란은 피로 막아야 합니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습니다. 2년 전 방번과 방석을 죽일 때와 똑같은 눈빛이었습니다.
"안 돼!" 정종이 소리쳤습니다. "또 형제가 죽어야 하느냐! 방간이는 네 친형제다!" "형님." 이방원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지금은 형제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이기면 형님도, 저도 모두 죽습니다."
정종은 머리를 감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방간을 막지 않으면 쿠데타가 성공합니다. 막으려면 또 형제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내가 직접 가서 말리겠다. 방간이를 설득하겠다."
"형님!" 이방원이 정종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안 됩니다! 전하께서 위험하십니다!" 하지만 정종은 뿌리쳤습니다. "놔라! 내가 왕이다! 적어도 이번 한 번은 내 뜻대로 하겠다!"
하지만 정종이 나가기도 전에 전투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방원의 군대와 이방간의 군대가 개경 동대문 밖에서 격돌한 것입니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 비명 소리가 궁궐까지 들려왔습니다.
정종은 궁궐 성벽 위로 올라갔습니다. 멀리서 두 군대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들이... 저들이 모두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냐... 왜 서로 죽여야 하는가..." 정종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전투는 이방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방원의 군대가 더 많았고, 더 잘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박포는 칼을 휘두르다 화살을 맞고 쓰러졌고, 이방간은 도주했습니다. 하지만 곧 붙잡혔습니다.
이방원이 이방간을 끌고 정종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방간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형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단지..." "입 닥쳐!" 이방원이 이방간을 발로 차버렸습니다. "전하, 이자를 어찌 처리하시겠습니까?"
정종은 땅에 엎드린 이방간을 바라봤습니다. 어릴 적 함께 놀던 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도와 조선을 세울 때 함께 싸웠던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역자로 자신 앞에 꿇어앉아 있습니다.
"방원아..." 정종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살려주자..." "형님!" 이방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자는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나는... 나는 더 이상 형제가 죽는 것을 볼 수 없다!" 정종이 소리쳤습니다. "이미 방번과 방석을 잃었다! 더 이상은 안 돼! 유배를 보내라! 목숨만은 살려라! 이것은... 이것은 명이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방원과 정종이 서로를 노려봤습니다. 처음으로 정종이 왕으로서 명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방원이 한 발 물러섰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방간은 토산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권력은 영영 잃었습니다. 정종은 그날 밤 홀로 술을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 도망치듯 떠나는 수도
2차 왕자의 난이 끝난 지 한 달 후, 조정에서는 놀라운 제안이 나왔습니다. "전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방원의 제안이었습니다.
"한양으로?" 정종이 되물었습니다. "갑자기 왜?" "개경은 너무 많은 피를 머금었습니다. 백성들도 불안해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새로운 땅이 필요합니다." 이방원의 논리는 그럴듯했습니다.
하지만 정종은 알았습니다. 진짜 이유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개경은 고려 500년의 수도였고, 고려를 그리워하는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이방원은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피로 얼룩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좋다." 정종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나도 이곳을 떠나고 싶구나." 사실 정종도 개경이 싫었습니다. 이곳 구석구석이 악몽의 현장이었습니다. 방번과 방석이 죽은 곳, 이방간이 반란을 일으킨 곳, 신하들에게 무시당한 조정...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1400년 11월, 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종은 마지막으로 개경 궁궐을 둘러봤습니다. 자신이 억지로 왕이 되었던 그곳, 2년 동안 허수아비로 살았던 그곳. "안녕히... 다시는 오고 싶지 않구나..." 그는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행렬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왕과 왕실 식구들, 신하들, 군사들,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개경을 떠나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마치 엑소더스 같았습니다. 도망치듯 떠나는 행렬이었습니다.
길을 가던 중, 한 백성이 정종에게 다가왔습니다. "전하, 한양으로 가면 모든 게 나아질까요?" 정종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사흘을 걸어 한양에 도착했습니다. 경복궁, 태조 이성계가 지었던 궁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습니다.
"전하, 이곳이 새로운 조선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방원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정종은 궁궐을 둘러봤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북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하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장소를 바꾼다고 내 신세가 바뀌는 건 아니구나.' 정종은 쓸쓸히 생각했습니다. 개경에서든 한양에서든, 자신은 여전히 꼭두각시 왕이었습니다. 이방원의 그림자 속에 가려진 존재였습니다.
그날 밤, 정종은 새 침소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새로운 곳이니 악몽도 안 꾸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잠이 들자마자 또 그 꿈이 나타났습니다. 죽은 방번과 방석이 피를 흘리며 다가왔습니다. "형님,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우리를 잊으셨나요?"
정종은 비명을 지르며 깼습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도망칠 수 없구나... 기억은 나를 따라오는구나...' 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음 날, 이방원이 찾아왔습니다. "형님, 어떠십니까? 새 궁궐은 마음에 드십니까?" "방원아..." 정종이 동생을 바라봤습니다. "나는... 나는 이제 그만두고 싶다." "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왕을 말이다. 왕 노릇을 그만두고 싶다." 정종의 말에 이방원이 놀랐습니다. "형님, 갑자기 무슨 말씀을..." "갑자기가 아니다. 오래 생각해왔다." 정종이 일어섰습니다. "한양에 온 것을 계기로, 나는 결심했다. 이제 왕관을 벗겠다."
이방원은 당황했습니다. "형님, 아직은... 아직은 이릅니다." "아직? 언제까지 아직이냐?" 정종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2년을 참았다. 이제 충분하지 않느냐?" "하지만 백성들이..." "백성들은 이미 안다. 진짜 왕이 누구인지."
긴 대화 끝에 이방원이 물러났습니다. "형님...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때가 되면... 제가 준비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종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기다리마.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는 않겠다."
※ 마지막 담판
1400년 11월 어느 날 밤, 정종은 이방원을 은밀히 불렀습니다. "신하들 없이 단둘이 이야기하자." 촛불만이 흔들리는 방 안, 두 형제가 마주 앉았습니다. 밖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방원아, 오늘은 형과 동생으로 이야기하자. 왕과 신하가 아니라." 정종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술잔이 들려 있었습니다. "형님..." 이방원도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너는 언제부터 왕이 되고 싶었느냐?" 정종의 질문은 직설적이었습니다. 이방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정도전이 우리를 제거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죽였구나. 방번과 방석을.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정종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섞여 있었습니다. "형님... 저도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먼저 우리를 죽이려 했습니다."
"알고 있다." 정종이 술잔을 비웠습니다. "너의 논리를 이해한다. 하지만 내 가슴은 이해하지 못한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밤마다 그들의 비명이 들린다."
이방원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송구합니다, 형님." "미안해하지 마라. 이미 지나간 일이다." 정종이 다시 술을 따랐습니다. "대신 오늘 결정을 하자. 언제까지 이 연극을 계속할 것이냐?"
"연극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연극이다. 나는 왕인 척하고, 너는 신하인 척하는 연극 말이다." 정종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모두가 안다. 진짜 권력자가 누구인지."
이방원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형님께서 덕이 있으셔서..." "그만!" 정종이 소리를 높였습니다. "오늘은 거짓말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 서로에게 솔직해지자."
한참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촛불이 깜박거렸습니다. 마침내 이방원이 입을 열었습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저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아니, 왕이 되어야 합니다. 조선을 제대로 세우려면 강력한 왕권이 필요합니다."
"좋다. 솔직해서 고맙다." 정종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하마. 나는 왕위를 내놓고 싶다. 지금 당장 말이다." "형님!" 이방원이 놀라 일어섰습니다.
"앉아라." 정종이 손짓했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다. 오래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안다."
"하지만 명분이..." "명분?" 정종이 피식 웃었습니다. "2년이면 충분한 명분 아니냐? 형제를 죽인 사람이 바로 왕위에 오르는 것은 문제지만, 2년 후에 형으로부터 선양 받는 것은 명분이 선다. 그것이 네 계획 아니었느냐?"
이방원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형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형님... 저는 형님께 고통을 드리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다." 정종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습니다.
"방원아, 나는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조선을 위해 가혹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 무게를 네가 혼자 짊어진 것도 안다." 정종이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무게를 견딜 사람이 아니다. 너와 나는 다르다."
"형님..." 이방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강철 같던 이방원이 형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정말 송구합니다. 형님께 너무 큰 짐을 지웠습니다."
"용서한다." 정종이 말했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라. 좋은 왕이 되어라. 조선을 위해,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왕이 되어라. 그것이 형제들의 희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길이다."
"약속드립니다, 형님." 이방원이 깊이 절을 했습니다. "형님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왕이 되겠습니다." "그럼 됐다." 정종이 일어섰습니다. "내일 조정에 선언하자. 내가 왕위를 너에게 선양한다고."
그날 밤, 두 형제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아버지를 도와 조선을 세우던 시절 이야기... 권력과 정치를 떠나, 그저 형과 동생으로 돌아간 시간이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이방원이 물었습니다. "형님,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왕위를 포기하는 것을." 정종은 창밖의 새벽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오히려 후회하는 것은 2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것이다. 진작 내려놓았어야 했다."
※ 진짜 왕이 된 날
1400년 11월 13일, 선양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정종은 공식적으로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짐은 이제 상왕이 되어 물러나고, 정안군 이방원에게 왕위를 선양하노라." 조정의 신하들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정종은 곤룡포를 벗으며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이 무거운 옷을 벗는구나.' 화려했지만 무거웠던 왕의 옷. 그것을 벗으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선양식이 끝나고 정종은 상왕의 처소로 갔습니다. 왕이 머무는 곳보다 훨씬 작고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종은 만족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이것이 더 좋다." 처음으로 편안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정종은 오랜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아무도 깨우지 않았습니다. 조회에 나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눈을 떴습니다. "아, 이렇게 자본 게 얼마 만인가..." 그는 기지개를 켜며 웃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작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정종은 혼자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신하들의 호위도, 격식도 없이 그저 혼자 걸었습니다. "이것이 자유로구나... 이것이 진짜 삶이구나..." 2년 만에 느끼는 평온함이었습니다.
며칠 후, 태종이 된 이방원이 형을 찾아왔습니다. "형님, 불편하신 것은 없으신지요?" "전혀 없다." 정종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오히려 왕일 때보다 훨씬 편하구나. 너야말로 괜찮으냐? 왕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느냐?"
"무겁습니다." 이방원이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잘 해내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정종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힘들 때는 찾아와라. 이제 나는 형으로만 있을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 정종은 상왕으로서의 삶을 즐겼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지만 왕이 되고는 할 수 없었던 취미였습니다. 매화를 그리고, 대나무를 그리고, 산수화를 그렸습니다.
손자들이 찾아오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아버지, 또 이야기 해주세요!" 아이들이 졸라댔습니다. 정종은 웃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선을 세울 때의 이야기, 아버지 태조의 용맹한 이야기... 물론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손자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왕이셨는데, 왜 그만두셨어요?" 정종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왕보다 더 중요한 것을 찾았단다." "그게 뭔데요?" "평화와 자유란다. 그것이 할아버지에게는 왕관보다 소중했단다."
세월이 흘러 1418년, 태종도 아들 충녕(나중의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습니다. 이제 궁궐에는 왕 한 명에 상왕이 둘이나 되었습니다. 정종과 태종, 두 형제는 가끔 만나 바둑을 두거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형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지." 태종이 말했습니다. "늦게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정종이 웃었습니다. "우리 이제 남은 시간은 편히 살자구나."
1419년 9월 26일, 정종은 병으로 누웠습니다. 63세였습니다. 태종이 매일 문병을 왔습니다. "형님, 힘내십시오." "방원아..." 정종이 동생의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행복했다. 왕을 그만둔 후의 18년이 왕이었던 2년보다 훨씬 행복했다."
"형님..." 태종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결국 좋은 형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니다." 정종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는 조선에 필요한 왕이 되었고, 나는 내게 맞는 삶을 살았다. 우리 둘 다 제 길을 간 것이다."
그날 저녁, 정종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고통도, 두려움도 없는 평화로운 죽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습니다. 마치 "이제야 정말 자유로워지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례식에서 태종은 형의 관 앞에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형님, 편히 쉬십시오. 형님은 누구보다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권력보다 평화를, 왕관보다 자유를 선택하신 용기 있는 분이셨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위 2년, 하지만 상왕으로 산 18년. 정종은 왕일 때보다 왕을 그만둔 후가 더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진짜 자유를 얻었다고 했지요.
혹시 여러분도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가요? 때로는 내려놓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 있습니다. 정종처럼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선의 기틀을 다진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권력을 위해 그가 치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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