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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과부들의 피눈물을 닦아준 대동법, 양반들의 창고를 털다 『효종실록』
부제
특산물을 바치느라 고리대금업자에게 집과 자식을 빼앗기던 가난한 백성들. 이를 구하기 위해 김육이 양반들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땅이 있는 자만 세금을 내는 대동법을 밀어붙입니다. 악덕 지주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백성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르는 조선판 조세 정의 실현기입니다.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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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조선의 세금은 이름만 세금이 아니었습니다. 산골 백성에게 바다에서 나는 전복을 바치라 하고, 논 한 마지기 없는 과부에게 비단과 종이를 마련하라 했습니다. 못 구하면 대신 사다 주겠다는 상인이 나타났고, 그 값은 열 배 스무 배로 불어났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집문서를 내놓고, 자식까지 남의 집 종으로 보내야 했지요.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세금판을 뒤집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육입니다. 그는 백성 머릿수에 매기던 억울한 공납을 없애고, 땅 가진 자가 땅의 크기만큼 내는 대동법을 밀어붙였습니다. 양반 지주들은 나라가 망한다며 길길이 뛰었지만, 굶주린 백성들은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습니다. 과연 김육은 양반들의 반대를 뚫고 백성들의 피눈물을 닦아낼 수 있었을까요.
※ 1: 특산물 공납에 시달리는 과부와 백성들의 참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충청도의 한 작은 고을,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들판에는 마른 바람만 굴러다녔다. 논두렁은 갈라져 있었고, 초가집 지붕에는 묵은 볏짚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관아 앞마당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남루한 한복을 입은 백성들이 보따리를 품에 안고 줄을 서 있었다. 어떤 이는 꿩 깃을 들고 왔고, 어떤 이는 말린 버섯을, 또 어떤 이는 낡은 종이 꾸러미를 안고 있었다.
그 줄 맨 끝에 과부 연심이 서 있었다. 남편은 몇 해 전 역병으로 죽었고,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품팔이로 겨우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머리는 단정히 쪽졌지만 얼굴은 오래 굶은 사람처럼 누렇게 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빈 보자기뿐이었다.
관아 마당에서 아전이 장부를 넘기며 목청을 높였다.
"아랫마을 연심이, 올해 공물은 세목 한 필, 참기름 두 되, 좋은 종이 스무 장이다."
연심은 그 자리에서 무릎이 꺾일 뻔했다.
"나리, 저는 논도 밭도 없습니다. 참기름은커녕 들깨 한 줌도 없고, 종이는 구경조차 어렵습니다. 어찌 그런 것을 바치라 하십니까."
아전은 붓끝으로 장부를 툭툭 두드렸다.
"장부에 적힌 것이니 내야 한다. 네 사정이 딱하다고 나라 법이 바뀌느냐."
"나리, 작년에는 닭 두 마리라 하셨습니다. 그마저도 이웃에게 빌려 겨우 냈습니다. 올해는 어찌 세목과 종이입니까."
"위에서 내려온 배정이다. 싫으면 직접 한양 가서 따져 보든가."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흘렀다. 산골 고을에 바다 물건을 내라 하고, 가난한 집에 비단을 내라 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조선의 공납은 본래 각 고을 특산물을 나라에 바치는 제도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백성의 형편과 상관없이 물목이 내려왔다. 없는 물건은 사서라도 바쳐야 했다.
연심은 떨리는 손으로 아전의 발치에 엎드렸다.
"사흘만 말미를 주십시오.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사흘? 닷새 주겠다. 그 뒤에도 못 내면 벌을 받을 줄 알아라."
마당 한쪽에서 누군가 비웃듯 말했다.
"못 구하면 박 객주에게 가 보시오. 그 사람은 없는 물건도 귀신같이 구해 주더이다."
그 말에 연심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박 객주는 고을에서 이름난 공물 장사꾼이었다. 백성들이 구하지 못하는 공물을 대신 마련해 주고, 그 값으로 본전의 몇 배를 받아내는 자였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웃지만, 갚을 때가 되면 집문서와 밭문서를 들이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관아를 나온 연심은 마른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여덟 살 난 아들이 부엌 앞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 오늘은 밥 먹어요?"
연심은 아이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어미가 죽이라도 끓여 주마."
쌀독을 열자 바닥에 쌀겨만 붙어 있었다. 연심은 손끝으로 쌀겨를 긁어 모으며 속으로 삼켰다.
'나라에 바칠 것은 이리 많은데, 내 자식 입에 넣을 한 숟가락은 없구나.'
그날 밤, 연심은 아들이 잠든 뒤 오래도록 문밖에 앉아 있었다. 달빛 아래 초가 지붕이 서럽게 보였다. 멀리 양반 지주의 기와집에서는 곡식 창고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쇠빗장이 걸리는 그 소리는 가난한 백성들의 숨통을 조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 2: 고리대금업자와 악덕 지주들이 공납을 빌미로 백성의 집과 자식까지 빼앗는다.
연심은 결국 박 객주를 찾아갔다. 박 객주의 집은 장터 끝에 있었다. 겉으로는 물건을 사고파는 평범한 객주였지만, 속으로는 공납에 쫓기는 백성들의 피를 빨아 재산을 불린 집이었다. 마당에는 짐꾼들이 오가고, 창고에는 세목, 종이, 꿀, 기름, 말린 해산물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박 객주는 연심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아이고, 연심댁 아니오. 올해도 관아에서 어려운 물목을 받았나 보오."
연심은 고개를 숙였다.
"세목 한 필과 참기름 두 되, 종이 스무 장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갚을 길이 없으나, 품을 팔아서라도 갚겠습니다."
박 객주는 손가락으로 주판알을 튕겼다.
"품을 팔아 갚는다라. 말은 좋소. 하지만 세목이 요즘 귀하고, 종이는 한양에서도 값이 올랐소. 기름도 흉년이라 비싸졌고."
"얼마나 됩니까."
박 객주는 장부에 숫자를 적어 보였다. 연심은 그 숫자를 보고 숨이 막혔다. 그녀가 일 년 내내 품을 팔아도 갚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이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어찌……."
"그럼 관아에 못 내겠다고 하시오. 곤장을 맞든, 옥에 갇히든, 그것은 내 알 바 아니오."
연심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끝내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었다. 박 객주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세상은 서로 도우며 사는 것 아니겠소."
하지만 그 친절은 독 묻은 꿀이었다. 한 달 뒤 이자는 붙었고, 석 달 뒤에는 원금보다 이자가 더 커졌다. 박 객주는 사람을 보내 연심의 초가집 문턱을 밟았다.
"돈을 못 갚으면 집문서를 내놓으시오. 아니면 아이를 우리 집 심부름꾼으로 보내든가."
연심은 아들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아이는 안 됩니다. 제발 아이만은 데려가지 마십시오."
"그럼 돈을 내시오. 나라 공물은 대신 내고, 내 돈은 못 갚겠다는 것이오?"
이웃들이 몰려왔지만 누구도 큰소리치지 못했다. 그들 또한 박 객주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어떤 집은 밭을 빼앗겼고, 어떤 집은 딸을 남의 집 종으로 보냈다. 공납은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객주와 악덕 지주의 배를 불리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고을 큰 지주 조 참판댁 사랑채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오갔다. 비단 한복을 입은 양반들이 화로를 끼고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의 창고에는 소작인들이 바친 쌀이 가득했고, 공납 장사를 통해 들어온 이익도 적지 않았다.
"올해도 백성들이 공물 마련하느라 난리라지요."
"난리면 어떻소. 못 구하면 우리에게 빌리러 올 것이고, 빌리면 문서가 생길 것이오. 문서가 생기면 땅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법이지."
조 참판이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백성은 늘 울고, 땅은 늘 주인을 찾아오는 법이오.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소."
그 말에 좌중이 웃었다. 사랑채 밖에서는 하인이 창고 문을 열고 새로 들어온 쌀가마를 쌓고 있었다. 쌀가마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누군가의 초가집은 무너지고 있었다.
며칠 뒤, 연심의 아들은 결국 박 객주 집으로 끌려갔다. 아이는 울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어머니, 나 안 갈래요. 나 집에 있을래요."
연심은 아이 손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박 객주의 하인이 거칠게 아이를 떼어냈다. 연심은 흙바닥에 엎어져 통곡했다.
"이게 나라입니까. 세금 한 번 못 냈다고 어미와 자식을 갈라놓는 게 나라입니까."
그 울음은 마을 골목을 지나 들판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관아도, 양반집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겨울 바람만 낡은 초가 지붕을 흔들었다.
그때 한양에서는 한 늙은 대신이 이 같은 백성들의 사정을 듣고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육이었다. 그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병도 있었으나, 백성들의 피눈물 앞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
'백성의 집을 털어 나라를 세우면, 그 나라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세금을 고쳐야 한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 3: 김육이 백성의 참상을 보고 대동법 확대를 결심하며 조정에 상소를 올린다.
김육은 젊은 시절부터 백성의 살림을 살피는 데 마음을 두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나라의 곳간이 비는 것도 걱정했지만, 그보다 백성의 밥그릇이 먼저 비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조정 대신들이 글과 명분을 앞세워 논쟁할 때, 김육은 장터의 쌀값과 농가의 빚문서를 먼저 물었다.
어느 날, 충청도에서 올라온 관리가 김육에게 조심스레 보고했다.
"대감, 공납 폐단이 심합니다. 백성들이 본래 내야 할 값보다 열 배 스무 배를 물고 있습니다. 없는 물건을 구하려다 객주에게 빚을 지고, 빚을 갚지 못해 집과 자식을 잃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육은 눈을 감았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
"땅 한 마지기 없는 과부에게도 같은 공물을 매기느냐."
"그렇습니다. 호마다, 사람마다 부담이 돌아가니 가난한 자가 더 먼저 쓰러집니다."
"그러니 공납을 쌀로 바꾸고, 그 쌀은 땅 있는 자에게 거두어야 한다. 먹을 땅도 없는 사람이 어찌 나라에 바칠 물건을 마련한단 말이냐."
옆에 있던 젊은 관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감, 그 말씀은 옳으나 반대가 클 것입니다. 지주들과 양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김육은 조용히 웃었다.
"반대가 크다는 것은 그동안 누가 이익을 보았는지 드러나는 증거다."
그가 주장한 것은 대동법이었다. 각 집에 특산물을 바치라 하던 공납을 없애고, 토지 결수에 따라 쌀이나 베, 돈으로 내게 하는 제도였다. 땅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땅이 없는 사람은 억울하게 공물을 떠안지 않게 하자는 뜻이었다. 또한 나라가 필요한 물품은 공인을 통해 사들이게 하여, 중간에서 백성을 등치는 방납의 폐단을 막으려 했다.
김육은 붓을 들었다. 흰 종이 위에 굵은 글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는 효종에게 올릴 상소를 썼다. 백성들이 공물 때문에 도망치고, 아이가 종이 되고, 과부가 집을 잃는 현실을 낱낱이 적었다.
"전하, 백성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근본이 마르면 가지와 잎이 어찌 푸르겠습니까. 공납의 폐단은 오래되어 백성의 골수에 병이 되었습니다. 대동법을 시행하지 않으면 백성은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붓끝이 멈췄다. 김육은 창밖을 보았다. 한양의 하늘은 흐렸고, 궁궐 너머로 찬 바람이 불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았고, 정적들은 많았다. 그러나 마음은 오히려 더 단단했다.
'내가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저 과부들의 울음은 또 다음 해 장부에 묻히고 말 것이다.'
그 무렵 연심은 박 객주 집 담장 밖에 서 있었다. 아들은 안에서 물동이를 나르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보자 달려오려 했지만, 하인이 막아섰다.
"일하는 아이가 왜 밖을 보느냐. 어서 들어가라."
연심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아이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장면을 우연히 지나가던 한 암행 관리가 보았다. 그는 사연을 듣고 한양에 보고를 올렸다. 그 보고 역시 김육의 손에 들어갔다. 김육은 연심의 이름을 상소 한 귀퉁이에 적어 두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었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백성들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
며칠 뒤 조정에 김육의 상소가 올라갔다. 궁궐 안에는 곧 술렁임이 퍼졌다. 백성을 구하자는 말은 아름다웠으나, 땅 많은 양반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지금까지 가난한 백성의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세금 짐이 자신들의 논밭 위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조정에서 큰 논쟁이 벌어질 날이 밝았다.
※ 4: 양반 사대부들이 대동법을 격렬히 반대하고, 김육은 효종 앞에서 조세 정의를 주장한다.
편전 안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효종은 어좌에 앉아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한쪽에는 김육이 늙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서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대동법을 반대하는 대신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라기보다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먼저 한 대신이 앞으로 나섰다.
"전하, 대동법은 겉으로는 백성을 위한다 하나 실제로는 조종조의 법을 가볍게 바꾸는 일입니다. 각 고을이 특산물을 바치는 것은 오래된 제도입니다. 이를 하루아침에 쌀로 통일하면 나라의 쓰임이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다른 대신도 거들었다.
"또한 토지에 따라 세를 거두면 사족과 지주들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양반이 흔들리면 나라의 기강도 흔들립니다."
김육은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라의 기강이 양반 창고에 있습니까, 백성의 밥그릇에 있습니까."
편전이 순간 조용해졌다. 반대파 대신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대감,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지나친 것은 제 말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입니다. 산골 과부에게 세목을 내라 하고, 바다를 보지도 못한 백성에게 해산물을 바치라 합니다. 못 구하면 객주에게 빚지고, 빚을 갚지 못하면 아이가 종이 됩니다. 이것이 정녕 조종조의 아름다운 법입니까."
반대파 대신이 목소리를 높였다.
"폐단이 있다면 아전을 다스리면 될 일입니다. 법을 뒤집을 필요는 없습니다."
김육은 고개를 저었다.
"썩은 들보에 종이만 바른다고 집이 바로 서지 않습니다. 공납은 이미 방납배와 아전, 탐욕스러운 지주들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백성에게 없는 물건을 바치라 하니 반드시 중간 장사꾼이 생깁니다. 그들이 값을 부풀리고, 백성은 피를 토합니다."
효종은 깊은 눈으로 김육을 바라보았다.
"대동법을 시행하면 과연 백성이 편안해지겠는가."
김육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전하, 대동법은 세금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금을 제자리로 돌려놓자는 것입니다. 땅 있는 자가 땅에 따라 내게 하고, 나라가 필요한 물건은 정해진 값으로 사들이게 하면 백성은 억울한 공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수입도 오히려 분명해질 것입니다."
한 대신이 비웃듯 말했다.
"그러면 큰 땅을 가진 집안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갑자기 세 부담이 늘면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김육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동안 가난한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지 않았습니까. 양반의 원성만 원성이고, 과부의 통곡은 바람 소리입니까."
효종의 손이 어좌 팔걸이를 조용히 두드렸다. 편전 안에는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김육은 품에서 작은 문서를 꺼냈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백성들의 사례였다. 그 안에는 연심의 사연도 적혀 있었다.
"전하, 이 과부는 공물을 마련하지 못해 아들을 빼앗겼습니다. 이 아이가 나라에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땅 한 평 없는 집에 공물을 매긴 법이 죄입니까, 아니면 그 법을 고치자는 신하가 죄입니까."
효종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문서를 받아 읽었다. 한참 뒤 낮은 목소리가 편전 안을 울렸다.
"백성이 자식을 잃고도 나라를 원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임금의 도리가 아니다."
반대파 대신들이 당황해 엎드렸다.
"전하, 신중히 살피소서."
효종은 김육을 바라보았다.
"김육, 그대는 늙고 병들었어도 이 일을 물러서지 않는구나."
김육은 깊이 절했다.
"신의 몸은 늙었으나 백성의 울음은 늙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결단하셔야 합니다."
그날 조정의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반대는 거셌고, 말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이미 물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성의 눈물 위에 세워진 낡은 세금 제도에 처음으로 큰 균열이 생긴 것이다.
※ 5: 대동법이 시행되자 지주들의 창고가 열리고, 백성들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대동법 시행 소식이 충청도 고을에 내려온 날, 관아 앞마당은 다시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공물을 들고 떨며 선 줄이 아니었다. 아전이 새 장부를 펼치고 외쳤다.
"이제부터 각 집마다 제멋대로 공물을 바치던 일을 줄이고, 토지 결수에 따라 대동미를 거둔다. 땅 없는 집은 전처럼 없는 물건을 마련하느라 빚질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백성들이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연심도 마당 한쪽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되찾기 위해 박 객주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빚을 갚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관아에서 세목도, 종이도, 참기름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올해 우리 집은 무엇을 내야 합니까. 밭도 논도 없는데."
아전이 장부를 살피더니 말했다.
"낼 것이 없다."
노인은 귀를 의심했다.
"없다니요?"
"땅이 없으니 대동미도 없다. 다만 역과 다른 법은 따로 살핀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주변 사람들도 술렁였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백성들은 처음으로 세금 장부가 자신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을 양반 지주들의 집은 달랐다. 조 참판댁 창고 앞에서는 소란이 벌어졌다. 관아에서 나온 관리들이 토지 결수에 따른 대동미를 계산해 고지하자, 조 참판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 많은 쌀을 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우리 집이 무슨 나라 곳간인가."
관리가 담담히 대답했다.
"대감 댁 논밭이 고을에서 가장 넓습니다. 땅에 따라 거두는 법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백성들이 각자 공물을 냈다. 왜 이제 와 우리 창고를 열라 하는가."
"예전에는 땅 없는 백성도 공물 때문에 빚을 졌습니다. 이제는 땅 있는 집이 땅의 몫을 내는 것입니다."
조 참판은 분을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내리쳤다.
"김육이 나라를 뒤집는구나. 양반을 털어 상놈 배를 채우자는 것이냐."
그 소리가 창고 안까지 울렸다. 그러나 관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조 참판댁 창고 문이 열렸다. 쌀가마가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그 쌀은 더 이상 지주의 체면만을 지키는 벽이 아니었다. 나라의 정해진 세금으로 옮겨지는 곡식이었다.
박 객주의 집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공납 물목을 대신 마련해 주며 폭리를 취하던 장사가 막히자, 창고에 쌓아 둔 세목과 종이, 기름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았다. 빚문서를 들고 사람들을 겁주던 그의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았다.
연심은 관아의 도움과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 부당하게 불어난 빚 일부를 탕감받았다.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을 데려올 길이 열렸다. 박 객주 집 마당에서 아들이 뛰어나오자 연심은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 이제 집에 가요?"
"그래, 집에 가자. 우리 집으로 가자."
아이의 손은 거칠어져 있었고, 얼굴은 말랐지만 살아 있었다. 연심은 아이의 손을 잡고 관아 앞을 지나며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는 새 법을 알리는 방이 붙어 있었다. 글을 모르는 연심은 내용을 다 읽지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들은 이름 하나는 분명히 기억했다.
"김육 대감이라 하셨지. 그 어른이 우리 같은 사람 사정을 임금께 아뢰었다지."
마을 사람들은 그날 저녁 장터에 모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꽹과리를 두드렸고, 아이들은 뛰어다녔다. 어떤 노인은 막걸리 한 사발을 들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이제 없는 물건 바치느라 자식 파는 일은 줄겠구나. 만세다, 만세!"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웃다가, 이내 크게 웃었다. 오랜 세월 공납 장부 앞에서 움츠렸던 허리가 조금씩 펴졌다. 대동법은 하루아침에 모든 고통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
'나라 법도 우리를 죽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고치면 살 수도 있구나.'
※ 6: 백성들은 김육의 은혜를 기억하고, 조선의 세금이 백성의 눈물 위에 서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남는다.
대동법이 시행된 뒤에도 세상은 단번에 낙원이 되지 않았다. 아전 중에는 여전히 틈을 노리는 자가 있었고, 지주들은 다른 명목으로 소작인을 괴롭히려 했다. 그러나 큰 물길은 바뀌었다. 백성들은 해마다 알 수 없는 공물 목록 앞에서 떨지 않아도 되었고, 방납배의 터무니없는 값에 끌려다니는 일도 줄었다.
연심의 집에도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찾아왔다. 초가 지붕은 여전히 낮았고 쌀독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다시 집에 있었다. 아이는 아침이면 마당을 쓸고, 낮에는 이웃 서당 문밖에서 글 읽는 소리를 따라 했다. 연심은 품을 팔아 얻은 보리쌀로 죽을 끓이면서도 예전처럼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다.
"어머니, 이제 나는 다시 잡혀가지 않아요?"
연심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어미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로 서는 한, 너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김육 대감은 우리를 알아요?"
연심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우리 이름은 모르실 게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의 눈물은 아셨겠지."
한양의 김육은 여전히 병든 몸으로 정사를 돌보고 있었다. 대동법을 둘러싼 반대는 끝나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를 두고 양반의 근본을 흔드는 사람이라 했고, 어떤 이는 나라 재정을 어지럽히는 늙은 고집쟁이라 했다. 그러나 김육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효종에게 다시 아뢰었다.
"전하, 대동법은 한 고을의 일이 아니라 팔도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백성이 사는 곳마다 같은 폐단이 있으니, 구제도 넓어야 합니다."
효종은 김육의 늙은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대가 이 일을 끝까지 보려 하나, 몸이 견디겠는가."
김육은 잔잔히 대답했다.
"신의 몸은 언젠가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 바로 서면 백성은 그 뒤에도 살아갈 것입니다. 신하가 늙음을 핑계로 백성의 고통을 미루면, 그것이야말로 죄입니다."
궁궐 밖에서는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봄비가 들판을 적셨고, 농부들은 논에 물을 댔다. 지주들의 창고에서는 대동미가 나가고, 장터에서는 공인들이 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정해진 값으로 사들였다. 이전처럼 중간에서 값을 부풀려 백성을 짓누르던 자들은 예전의 배를 불리기 어려워졌다.
조 참판은 여전히 사랑채에서 불평을 했다.
"세상이 거꾸로 간다. 양반 창고를 열어 백성 입에 넣다니."
그러나 그의 집 담장 밖을 지나던 늙은 농부가 그 말을 듣고 중얼거렸다.
"거꾸로 가던 세상이 이제야 조금 바로 선 것이지."
그 말은 바람을 타고 들판으로 흘러갔다.
세월이 지나 사람들은 대동법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나라 재정을 안정시킨 법이라 했고, 누군가는 공납의 폐단을 줄인 법이라 했다. 그러나 연심 같은 백성들에게 대동법은 어려운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빚문서에 빼앗긴 아이를 다시 품에 안게 해준 법이었고, 없는 물건을 구하느라 밤새 울지 않아도 되게 해준 법이었다.
김육이 세상을 떠난 뒤, 어느 고을 장터에 작은 이야기가 돌았다. 과부 하나가 아들과 함께 장터를 지나가다 쌀 한 되를 사 들고 관아 담벼락 앞에 멈췄다. 그녀는 한양 쪽을 향해 조용히 절했다.
"대감, 저는 글도 모르고 법도 모릅니다. 다만 제 아이가 제 곁에 있습니다. 그 은혜는 압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장터의 사람들도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는 모자를 벗고, 누군가는 지팡이를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절한 것은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었다. 백성의 눈물을 세금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늦게나마 찾아온 작은 정의에 대한 절이었다.
조선의 역사는 왕과 전쟁과 당파의 기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름 없는 과부의 눈물, 빼앗긴 아이의 울음, 공물 장부 앞에서 떨던 농부의 한숨도 역사였다. 그리고 그 눈물을 닦기 위해 낡은 법과 맞선 늙은 신하의 고집 역시 역사였다.
대동법은 양반들의 창고를 하루아침에 비운 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물었다. 땅을 가진 자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나라가 백성을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세금이 약한 자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이야기는 『효종실록』에 전하는 김육의 대동법 추진을 바탕으로 꾸민 역사 야사극입니다. 세금이 가난한 백성의 목을 조를 때, 법을 고쳐 백성을 살리려 한 개혁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