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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이 부른 을사늑약, 고종의 절규와 조선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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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249자):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지자 고종황제는 조선의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승리 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1905년 11월,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며 조선의 외교권을 완전히 빼앗았는데요. 고종황제와 대신들의 절망적인 저항, 그리고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비극적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드리겠습니다."
디스크립션(298자):
러일전쟁부터 을사늑약 체결까지,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는 결정적 순간들을 다룬 역사 드라마입니다. 고종황제의 고뇌와 조선 정부의 절망적인 저항, 그리고 일본의 교묘한 외교술을 통해 우리 근대사의 아픈 현실을 조명합니다.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무력한 약소국의 비극을 시니어 시청자분들께서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습니다.
※ 1904년 전쟁 발발과 고종의 중립선언
1904년 2월 8일 밤, 일본 연합함대가 뤼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러일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 소식은 삽시간에 조선 전역에 퍼졌고, 덕수궁에서는 긴급 어전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폐하, 큰일이 났습니다!" 외부대신 이지용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보고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고종황제는 용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동안 조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열강들의 각축전이 드디어 전면전으로 발전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우리 조선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종이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폐하, 일본 공사가 급히 면담을 요청해왔습니다." 궁내부대신 이용익이 보고했습니다. "아마도 전쟁 협력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정부 대신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본과 러시아,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아니면 중립을 지켜야 할지 결정해야 했거든요.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하냐?" 고종이 물었습니다.
참정대신 한규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폐하, 소신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느 한쪽을 지지한다면, 상대편이 이기게 될 경우 큰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아닙니다, 폐하. 일본이 가까이 있고 현재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일본 편에 서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군부대신 이근택은 또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폐하, 러시아가 이기면 만주와 조선에서 일본 세력을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러시아 편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들의 의견이 갈리자 고종은 더욱 고민에 빠졌습니다. 조선이 처한 현실은 참으로 절망적이었지요. 어느 편을 선택해도 위험했고, 중립을 지키기에는 국력이 너무 약했습니다.
이때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덕수궁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고종을 알현하자마자 직설적으로 요구사항을 내놓았습니다.
"폐하, 일본 제국은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조선도 일본과 함께 이 정의로운 전쟁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고종은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일본 공사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선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야시 공사는 예상했던 대답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일본군이 조선 영토를 통과하는 것은 허용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항구와 철도를 일본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고종과 대신들은 당황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다름없었거든요.
"그것은..." 고종이 망설이자, 하야시 공사가 압박을 가했습니다.
"폐하, 일본은 조선의 오랜 친구입니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만약 조선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위협이었습니다. 고종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지요.
"알겠습니다. 조선은 일본과 러시아 양국과 평화를 유지하면서, 일본의 요청에 협력하겠습니다."
하야시 공사가 물러간 후, 고종은 대신들과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조선의 체면을 지킬 방법이 있을까?"
한규설이 제안했습니다.
"폐하,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선언하되, 일본의 요구는 '인도적 차원'에서 들어준다고 발표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것이 좋겠다." 고종이 동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04년 2월 23일, 조선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과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여 일본군의 조선 영토 사용을 허용하게 되었지요.
고종은 그날 밤 홀로 궁궐을 거닐며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중립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일본 편에 선 것이나 다름없구나. 우리 조선이 이렇게 무력할 줄이야..."
멀리서 대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미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조선 영토에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조선의 '중립'은 이미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 뤼순 함락과 일본의 기세등등
1904년 말부터 1905년 초, 전쟁의 양상이 점점 명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지요.
덕수궁에는 매일 전황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일본군이 뤼순을 포위하고,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켰다는 소식이었지요.
"폐하, 뤼순이 함락되었습니다!" 외부대신 이지용이 급히 보고했습니다. "일본군이 뤼순의 러시아군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고종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일본의 승리는 조선에게 더 큰 재앙을 의미했거든요.
"그렇다면 이제 일본이 우리에게 더 큰 요구를 해올 것이 아니냐?"
고종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뤼순 함락 소식이 전해진 지 며칠 후, 일본 공사가 다시 덕수궁을 찾아왔습니다.
"폐하, 일본 제국의 승리에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하야시 공사가 겉으로는 공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오만함이 가득했습니다.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종이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이제 동양에서 일본의 지위가 확고해졌습니다. 조선도 새로운 질서에 맞춰 변화해야 할 때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야시 공사는 준비해온 문서를 꺼냈습니다.
"조선의 내정 개혁을 일본이 지도하겠습니다. 재정, 군사, 경찰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인 고문을 두어야 합니다."
조선 대신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이는 사실상 조선의 내정권을 일본에 넘기라는 요구였거든요.
참정대신 한규설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조선은 독립국입니다!"
하야시 공사가 냉소적으로 웃었습니다.
"독립국이라고 하시는데, 지금 조선이 진정 독립국답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본을 도와주면서도 중립이라고 하시니, 이는 모순입니다."
고종이 억지로 분노를 참으며 말했습니다.
"일본의 요구를 검토해보겠습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하야시 공사가 물러간 후, 궁궐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폐하,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한규설이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면 우리는 완전히 일본의 속국이 됩니다!"
하지만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현실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부할 힘이 있습니까?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 마당에, 우리가 무엇으로 맞설 수 있겠습니까?"
군부대신 이근택도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조선군으로는 일본군 한 개 연대도 막아낼 수 없습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종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조선이 처한 현실은 참으로 절망적이었지요.
한편, 일본은 조선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나갔습니다. 일본인 고문들이 조선 정부 각 부서에 파견되었고, 조선의 모든 정책이 일본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재정 고문으로 온 메가타 다네타로는 조선의 화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조선의 전통 화폐인 엽전을 폐지하고 일본 화폐를 조선에서 통용하게 한 것이지요.
"이제 조선 사람들도 일본 돈을 써야 합니다." 메가타가 고종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는 양국의 경제 통합을 위한 필수 조치입니다."
고종은 치를 떨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1905년 5월, 일본이 러시아 발틱 함대를 쓰시마에서 완전히 격멸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일본의 승리는 확실해졌지요.
"폐하, 이제 러시아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외부대신 이지용이 보고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냐?" 고종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승리에 도취되어 더욱 노골적으로 조선 침탈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외교권까지 빼앗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폐하,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넘기라고 요구할 것 같습니다." 한규설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외교권까지 빼앗긴다면..." 고종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독립국의 마지막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는 이를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는 동아시아의 질서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조선은 그 변화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 이토 히로부미의 압박과 조선 정부의 분열
1905년 11월, 덕수궁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원로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가 특사로 조선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지요.
"폐하, 이토 히로부미가 내일 경성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궁내부대신 이용익이 긴장된 목소리로 보고했습니다.
고종황제는 용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이자, 일본 제국주의 정책의 설계자였습니다. 그가 직접 조선에 온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었지요.
"이토가 무슨 목적으로 오는 것이냐?" 고종이 물었습니다.
외부대신 박제순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외교권 문제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것 같습니다."
순간 대전 안이 시끄러워졌습니다. 대신들이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외교권을 넘긴다고요? 그럼 우리는 완전히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 아닙니까?" 참정대신 한규설이 격분했습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법부대신 이하영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다른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외교를 독자적으로 할 능력이 있습니까? 일본의 보호 하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안전할 수도..."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규설이 민영기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나라를 팔아먹자는 말과 같습니다!"
고종은 손을 들어 대신들을 진정시켰습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이토가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들어본 후에 결정합시다."
다음 날, 이토 히로부미가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경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일본 공사관에서 조선 정부 대신들과의 예비 회담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공사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회담에는 조선 측에서 외부대신 박제순,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위엄 있는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대신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의 다음 말은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었습니다. 이제 조선도 이 새로운 질서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박제순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토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조선의 외교를 일본이 전담하겠습니다. 이는 조선을 위한 것입니다. 일본의 강력한 외교력으로 조선을 보호하겠다는 뜻입니다."
한규설이 즉시 반박했습니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외교권은 독립국의 근본입니다!"
이토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습니다.
"한 대신의 말씀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보십시오. 조선이 지금까지 독자적인 외교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오히려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고통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외교권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한규설이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토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럼 조선이 일본의 선의를 거부한다는 말씀입니까? 일본은 러시아를 물리치고 조선을 구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반항한다는 것입니까?"
회의실의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이토는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민영기가 중재하려고 나섰습니다.
"이토 각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니만큼 폐하께 보고드리고 신중히 검토해야..."
"시간이 없습니다." 이토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내일까지 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조선이 거부한다면, 일본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최후통첩이었습니다.
회담이 끝난 후, 조선 대신들은 급히 덕수궁으로 돌아가 고종께 보고했습니다.
"폐하,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박제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완전히 넘기라고 요구합니다."
고종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나라를 잃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규설이 무릎을 꿇고 호소했습니다.
"폐하, 죽어도 이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일본과 싸워 죽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민영기는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폐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형식적으로라도 왕실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그런 비겁한 생각을 어떻게 하십니까!" 한규설이 분노했습니다.
고종은 밤새 고민했습니다. 조선이 처한 현실은 참으로 절망적이었습니다. 거부하면 무력으로 강제당할 것이고, 수용하면 나라의 자주권을 잃게 되는 것이었지요.
"하늘이여, 우리 조선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고종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습니다.
※ 을사늑약 강제 체결의 비극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운명적인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하야시 공사, 그리고 조선 정부 대신들이 마주 앉았습니다. 고종황제는 용상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지요.
이토 히로부미가 준비해온 조약 문서를 펼쳐놓으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일협상조약'입니다.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이 대행하고, 조선에 일본의 통감을 두어 내정을 지도한다는 내용입니다."
조선 대신들이 조약문을 살펴보자 모두 경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보호조약이 아니라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드는 불평등 조약이었거든요.
외부대신 박제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토 각하, 이 조약은 너무 가혹합니다. 조선이 독립국으로서의 체면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이토가 냉정하게 대답했습니다.
"박 대신, 현실을 보십시오. 조선이 지금까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덕분입니다.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참정대신 한규설이 격분하며 일어섰습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조약이 아니라 항복문서입니다!"
"한 대신!" 이토의 목소리가 차가워졌습니다. "조선이 일본의 선의를 거부한다면, 우리도 더 강경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하야시 공사가 메모를 이토에게 건넸습니다. 일본군이 덕수궁을 포위했다는 내용이었지요.
"폐하, 그리고 대신들께," 이토가 위협적인 톤으로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일본군이 궁궐 주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입니다."
고종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습니다. 이토는 무력으로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탁지부대신 민영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그럼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선택은 있습니다." 이토가 차갑게 웃었습니다. "조약에 서명하느냐, 아니면 더 큰 불행을 당하느냐의 선택 말입니다."
법부대신 이하영이 절규하듯 말했습니다.
"폐하, 차라리 죽음을 택합시다! 이런 굴욕을 당할 바에야!"
하지만 궁내부대신 이용익은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폐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조약을 맺어 왕실을 보호해야 합니다."
대신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끝까지 저항하자고 했고, 어떤 이는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
고종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짐이... 짐이 결정하겠다. 대신들은 각자의 의견을 분명히 밝혀라."
한규설이 먼저 일어나 말했습니다.
"신은 끝까지 반대합니다! 죽어도 이 조약에는 서명할 수 없습니다!"
이하영도 동조했습니다.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의 후손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반면 박제순은 현실론을 내세웠습니다.
"폐하, 저항하더라도 결과는 뻔합니다. 차라리 조약을 맺고 내부적으로 실력을 기르는 것이..."
민영기와 이용익도 박제순의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고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대신들의 의견이 갈리자 더욱 괴로워했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토가 압박했습니다. "지금 당장 결정하십시오."
마침내 고종이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짐은... 짐은 이 조약을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다."
한규설과 이하영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습니다.
"폐하! 안 됩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졌습니다. 박제순이 떨리는 손으로 조약서에 서명했고, 이토도 서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조선의 외교권이 완전히 일본에 넘어간 것이지요.
서명이 끝나자 이토가 만족스럽게 웃었습니다.
"이제 조선과 일본은 진정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종과 조선 대신들의 얼굴에는 절망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날 밤, 덕수궁에는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조선이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의 보호국이 된 것이었지요.
※ 참정대신들의 절망과 민영환의 자결
을사늑약이 체결된 다음 날, 덕수궁은 마치 상가집처럼 조용했습니다. 대신들은 모두 참담한 표정으로 고종을 알현했지요.
"폐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규설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고종은 용상에서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그의 얼굴은 10년은 더 늙어 보였지요.
"짐도 모르겠다... 5백 년 조선왕조가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때 궁내부대신 이용익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습니다.
"폐하, 큰일났습니다! 참정대신 민영환께서..."
"민영환이 어떻게 되었느냐?"
"자결하셨습니다!"
궁궐 안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민영환은 을사늑약 체결에 끝까지 반대했던 충신 중 한 명이었거든요.
"민영환이... 자결했다고?" 고종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용익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어젯밤 자택에서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셨습니다. 유서를 남기셨는데..."
"유서에 뭐라고 써 있더냐?"
"'을사늑약은 무효다. 나는 나라를 잃은 죄인으로서 죽음으로 항의한다'고 하셨습니다."
고종이 용상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민영환... 충신이었는데..."
한규설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폐하, 민영환 대감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습니다.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바로 그때, 일본 공사 하야시가 덕수궁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민영환의 자결 소식을 듣고 온 것이었지요.
"폐하, 민영환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하지만 이미 체결된 조약을 번복할 수는 없습니다."
한규설이 분노하며 소리쳤습니다.
"그 조약은 강압에 의해 맺어진 것입니다! 국제법상 무효입니다!"
하야시가 냉소적으로 웃었습니다.
"강압이라고 하시는데, 조선 정부가 자발적으로 서명하지 않았습니까? 고종 폐하께서도 승인하셨고요."
"그것은..." 고종이 말을 못 이었습니다.
"앞으로 조선의 모든 외교 업무는 통감부에서 담당합니다." 하야시가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각하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실 예정입니다."
통감부! 조선인들에게는 치욕의 상징이 될 이름이었지요.
하야시가 물러간 후, 고종은 비밀리에 신하들을 불렀습니다.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릴 방법은 없겠느냐?"
한규설이 제안했습니다.
"폐하,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이 어떨까요? 헤이그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할까?"
"비밀리에 추진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고종의 눈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낼 것인가?"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사람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좋다. 비밀리에 준비하도록 하라."
한편, 전국 각지에서는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생들과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저항했지요.
"을사늑약 무효!"
"외교권 반환!"
"일본군 철수!"
하지만 일본은 이런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많은 조선인들이 체포되고 고문당했지요.
궁궐 안에서도 저항의 목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한규설을 비롯한 충신들은 고종에게 계속 건의했습니다.
"폐하, 을사늑약을 절대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파기해야 합니다."
"그렇다. 짐도 그 생각이다." 고종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을사늑약은 강압에 의해 맺어진 것이니 무효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조선의 모든 외교 권한을 장악했고, 통감부 설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조선에 부임했습니다. 그는 용산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조선의 모든 정치를 지배하기 시작했지요.
"이제 조선의 진정한 근대화가 시작됩니다." 이토가 취임사에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에게 그것은 굴욕의 시작이었습니다.
고종은 매일 밤 궁궐을 거닐며 한탄했습니다.
"500년 조선왕조가... 짐의 대에서 이렇게 되다니..."
그래도 고종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비밀리에 준비하며, 언젠가 조선의 독립을 되찾을 기회를 기다렸지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 치욕을 씻어내겠다."
※ 통감부 설치와 국권 침탈의 완성
1906년 2월, 용산에 일본 통감부가 정식으로 개청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화려한 개청식을 열며 조선에서의 일본 지배를 기정사실화했지요.
덕수궁에서는 이 소식을 들은 고종이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고종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궁내부대신 이용익이 조심스럽게 보고했습니다.
"폐하, 통감부에서 앞으로 모든 정치적 결정은 통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그럼 짐은 이제 허수아비 황제란 말이냐?"
"폐하..."
고종의 한탄이 깊어갔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대한제국의 황제였지만, 실질적 권력은 모두 일본 통감이 가지고 있었거든요.
통감부는 조선의 모든 분야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는 해산되었고, 경찰권도 일본이 장악했습니다. 재정과 사법권까지 일본의 통제 하에 들어갔지요.
"폐하, 일본이 우리 군대마저 해산시키겠다고 합니다." 군부대신 이근택이 참담한 표정으로 보고했습니다.
"군대까지 해산한다고?" 고종이 격분했습니다.
"대한제국군 13만 명을 모두 해산하고, 일본군이 조선의 방위를 담당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조선이 완전히 무력화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고종은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꼈지요.
한편,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해산된 군인들과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폐하,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규설이 은밀히 보고했습니다.
"정말인가?"
"네, 홍범도, 신돌석 등이 의병부대를 조직해 일본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고종의 얼굴에 잠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우리 백성들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구나."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일본은 의병활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되었지요.
그런 가운데 고종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한규설, 헤이그 특사 파견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폐하,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분이 모두 승낙했습니다. 비밀리에 출국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잘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1907년 4월, 세 명의 특사가 비밀리에 조선을 떠나 헤이그로 향했습니다. 고종은 이들에게 친서를 주며 당부했지요.
"세계 만방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려다오. 조선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다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이 계획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통감부의 정보망은 생각보다 촘촘했거든요.
"폐하, 통감부에서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해 추궁하고 있습니다." 이용익이 긴장된 목소리로 보고했습니다.
"모르는 일이라고 해라."
하지만 증거가 너무 명확했습니다. 일본은 고종이 직접 특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며칠 후, 이토 통감이 직접 덕수궁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폐하,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것이 사실입니까?"
고종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조선의 입장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을사조약에 따르면 조선의 외교권은 일본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조약 위반입니다!"
"그 조약 자체가 강압에 의한 것이니 무효다!"
이토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폐하, 그럼 폐하께서는 일본과 맺은 모든 약속을 파기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불법적인 약속은 지킬 이유가 없다."
이토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몇 주 후, 헤이그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특사들이 만국평화회의 참가를 거부당했다는 것이었지요. 일본의 로비 때문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준이 헤이그에서 분사했다는 비보까지 전해졌습니다.
"이준이... 이준이 죽었다고?" 고종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고종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충신이 또 한 명 희생된 것이었지요.
그리고 1907년 7월, 최악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폐하, 일본이 퇴위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용익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습니다.
고종은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33년간 지켜온 왕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었지요.
"짐이... 짐이 조선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것인가..."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러일전쟁부터 을사늑약까지의 이야기는 우리 근대사의 가장 아픈 순간이었습니다. 고종황제와 조선 정부의 절망적인 저항, 그리고 무력한 약소국의 비극적 현실을 보셨을 것입니다.
특히 민영환의 자결과 이준의 분사는 나라를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줍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한 조선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의지는 결국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헤이그 특사, 마지막 외교적 노력"을 준비했습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분이 목숨을 걸고 떠난 헤이그 여행의 전 과정과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자세히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