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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종과 단의왕후】, 당파 싸움에 휘말린 비극적 사랑

    태그 (20개)

    #경종, #단의왕후, #장희빈, #숙종, #영조, #조선, #역사, #로맨스, #비극, #궁중암투, #야사, #조선왕조실록, #19금, #역사드라마, #오디오드라마, #사랑, #눈물, #정치, #노론, #소론

    후킹멘트 (200자)

    어미(장희빈)의 피 묻은 치마폭을 본 순간, 한 남자의 세상은 무너졌다. 살벌한 궁중 암투 속, 상처 입은 용이 되어버린 왕 경종.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전부였던 비운의 왕세자빈, 단의왕후와의 애절하고 뜨거웠던 밤의 기록.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 20대왕 경종. 그는 어머니 장희빈의 아들이라는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와 아버지 숙종의 냉대 속에서 평생을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본 영상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동궁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겨울을 견뎌야 했던 어린 세자와 세자빈의 비극적인 사랑을 궁중 야사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재구성한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 어머니 장희빈의 참혹한 죽음 이후,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어린 세자(경종).

    동궁의 밤은 살아있는 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자의 원혼과 산 자의 악몽이 뒤엉켜 흐르는, 차갑고도 축축한 시간이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어미 장희빈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그날의 광경을 목도한 이후, 세자 이윤의 세상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을 감으면 사약 그릇을 든 어미의 떨리는 손이 보였고, 귀를 막으면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그 절규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날 이후, 세자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웃음을 잃었고, 감정을 잃었으며, 그저 아버지 숙종의 서늘한 눈초리와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살아있는 송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그의 나이 열여섯이 되었고, 국법에 따라 그의 곁으로 한 여인이 왔다. 그보다 세 살 어린 청송 심씨 가문의 여식, 훗날 단의왕후로 추존될 어린 세자빈이었다. 화려했지만 그 누구도 웃지 않았던 혼례가 끝나고, 마침내 두 사람만이 남겨진 합궁의 밤. 거대한 용과 봉황이 수놓아진 붉은 비단 이불은, 그 무게만큼이나 두 사람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촛불 아래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서로의 그림자만 바라볼 뿐이었다. 세자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고, 어린 세자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세자빈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합환주 잔을 채워 세자에게 공손히 건넸다. "저하… 소첩, 심씨이옵니다. 부디… 부디 이 술잔을 받으시어, 소첩의 미욱한 정성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애써 담아낸 용기가 담겨 있었다. 세자는 기계적으로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흐르자, 억지로 눌러왔던 감정의 둑이 터져 버렸다. 그의 눈에서 예고도 없이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는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평생을 짓눌러왔던 공포와 외로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미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무섭다… 나는… 매일 밤이 지옥과도 같다. 어미가… 피 묻은 소복을 입고 내 머리맡에 앉아 계신다. 왜 자신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왜 이리 나약하냐고 나를 원망하신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괴물 보듯 혀를 차시지. 모두가 나를 비웃고 있어… 모두가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어…!" 세자빈은 당황했지만, 이내 본능적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작은 몸으로 그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마치 폭풍우 속에서 길을 잃은 작은 새를 보듬는 듯한, 따뜻하고도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세자는, 기력이 다했는지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세자빈은 그런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침상에 뉘였다. 그리고는 그의 곁에 조용히 누워, 촛불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창백한 낯빛, 고통으로 일그러진 미간, 눈물로 젖은 긴 속눈썹. 그 어디에도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왕세자의 위엄은 없었다. 그저 어미 잃은 슬픔과 아비의 냉대 속에서 상처 입고 겁에 질린, 한 명의 가여운 소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뺨에 흐른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잠결을 느꼈는지, 세자가 잠꼬대처럼 그녀의 손목을 와락 붙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가지 마라… 제발… 나를 이 지옥 속에 혼자 두지 마라…." 잠에 취한 그의 애원에, 세자빈의 마음이 시큰하게 저려왔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가만히 속삭였다. "예, 저하. 소첩은 어디에도 가지 않사옵니다. 저하의 곁을…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지킬 것이옵니다." 그 맹세가 그의 무의식에 닿았던 것일까. 세자는 안심한 듯,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여린 살결에 닿았다. 그것은 정욕의 숨결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한 인간의 체온을 갈구하는 처절하고도 절박한 숨결이었다. 그는 그녀의 얇은 속적삼 안으로 파고들며, 마치 어미의 젖을 찾는 갓난아기처럼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더듬고 파고들었다. 세자빈은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지만,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의 불안과 악몽을 함께 짊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첫날밤은 그렇게, 뜨거운 열기가 아닌 시리고 애틋한 눈물과,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온기 속에서 깊어가고 있었다.

    ※ 부왕 숙종의 냉대와 노론 세력의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 말라가는 세자.

    세자빈이 동궁의 주인이 된 이후에도, 세자를 둘러싼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왕 숙종의 의심과 냉대는 날이 갈수록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숙종은 장희빈에게서 얻은 아들, 경종에게서 끊임없이 과거의 악몽과 자신의 과오를 보았다. 아들의 병약함과 그늘진 기질을 볼 때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고, 언젠가 어미의 복수를 할 것이라 의심했다. 특히 총명하고 건강한 연잉군(훗날의 영조)이 태어난 이후, 숙종의 편애와 세자를 향한 압박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노론의 신하들은 연잉군을 등에 업고, 시시때때로 세자의 자질을 문제 삼으며 그의 입지를 흔들었다.

    그날도 대전에서 열린 조강(朝講)에서, 세자는 숙종의 서슬 퍼런 질책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세자의 낯빛이 이리도 어둡고 병약하니, 장차 이 나라의 국본(國本)으로서 어찌 만백성을 아우르겠는가! 네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경기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늘, 이는 필시 네 마음에 품은 원망과 불만이 흉몽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더냐! 썩 물러가 심신을 수양하고, 다시는 내 앞에 그 병색 짙은 얼굴을 보이지 말거라!" 아버지의 말은 수백의 신하들 앞에서 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았다.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라는 말만 읊조린 채, 비틀거리며 대전을 물러 나왔다.

    힘없이 동궁으로 돌아온 세자는, 그날따라 유난히 거칠게 술을 마셨다. 그의 곁에는 오직 세자빈만이 그림자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고통과 분노를 알기에, 섣부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의 술잔을 채워주고, 그가 술에 취해 쓰러지면 조용히 부축하여 침상에 눕혀줄 뿐이었다. 그날 밤도, 만취한 세자는 세자빈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분을 토해냈다. "나는… 나는 대체 누구의 아들이란 말이오. 아버지는 나를 믿지 않으시고, 신하들은 내 뒤에서 연잉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하고 있소. 이 동궁은… 나에게는 화려한 감옥과도 같소. 차라리 어머니를 따라가는 편이 나았을 것을…."

    세자빈은 그의 입을 부드럽게 막았다. "저하, 그런 흉한 말씀은 마시옵소서. 저하의 옥체는 저하 한 분의 것이 아니오라, 이 나라의 것이옵니다." 그녀는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와, 술과 눈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저하의 곁에는 소첩이 있사옵니다. 온 세상이 저하를 등진다 하여도, 소첩만은 끝까지 저하의 편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저하를 흔드는 자가 있다면, 소첩이 먼저 나서 그 칼날을 막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부디, 약해지지 마시옵소서." 그녀의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에, 세자의 흐렸던 눈빛이 조금씩 초점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맑고 깊은 눈동자 속에서, 난생처음으로 온전한 믿음과 위로, 그리고 사랑을 발견했다.

    그는 세자빈의 손을 잡고, 그녀를 자신의 위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빈… 나를… 정녕 나를 버리지 않겠소?" "예, 저하. 하늘에 맹세하옵니다." 그 대답에, 세자는 굶주린 짐승처럼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그것은 술기운에 기댄 충동적인 입맞춤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내를 향한 깊은 갈망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여인, 그녀만은 온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절박함. 세자빈은 그의 서툰 입맞춤을 말없이 받아주었다. 그녀의 옷고름이 풀어지고, 두 사람의 몸이 얽혔다. 세자는 그녀의 몸을 안으며,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은 그의 오랜 상처를 감싸는 유일한 명약이었고, 그녀의 따스한 체온은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유일한 불씨였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속삭였다. "너는… 너만은 내 곁에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보듬어주는 처절한 의식과도 같았다. 차가운 궁궐의 밤, 그들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있었다.

    ※ 세자의 병세가 깊어지고, 후사를 보지 못한다는 소문이 궁궐을 뒤덮는다.

    세월이 흘러도 세자를 둘러싼 정치적 폭풍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졌다. 그의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그는 점점 더 쇠약해져 갔다. 급기야 궁궐 안팎에서는 세자가 후사를 이을 수 없는 몸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장희빈의 저주다’, ‘어미의 죄를 아들이 받는 것이다’, ‘석녀(石女)인 세자빈을 들여 대를 끊으려 한다’는 악의적인 말들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두 사람의 가슴에 박혔다. 후사를 보지 못하는 세자는, 발톱 빠진 용과 같았다. 그의 정치적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졌고, 그를 지지하던 소론 세력마저 ‘국본 교체’를 주장하는 노론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자는 극심한 압박감과 남성으로서의 수치심에 시달렸다. 그는 남들 앞에서는 억지로 태연한 척했지만, 밤이 되면 세자빈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무너져 내렸다. "내가… 내가 사내구실도 못하는 고자라 하더이다. 빈에게도 면목이 없소.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당신까지 석녀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만들었으니… 이 나라의 국본이… 대를 잇지 못한다니… 나는 이제 폐위될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소." 그는 자괴감에 몸을 떨며 괴로워했다.

    세자빈은 그런 남편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목소리만은 그 어떤 장수보다 강인했다. "아니옵니다, 저하. 소첩에게 저하는 천하 누구보다 강인하고 뜨거운 사내이십니다. 후사가 무에 그리 대수이옵니까. 소첩이 원하는 것은 늠름한 원자(元子)가 아니라, 오직 저하 한 분의 건강과 안위뿐입니다. 부디 그런 말로 스스로를 탓하지 마시옵소서." 그녀는 남편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옥죄는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그를 원했다. 그녀는 먼저 그의 입술을 찾았고, 그의 단단한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의 옷을 벗겼다. 그녀의 대담하고도 뜨거운 도발에, 세자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휩싸였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단순한 위로를 넘어, 벼랑 끝에 선 자들의 절박한 몸부림이 되었다. 세자는 아내의 몸을 탐하며,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살결 구석구석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아… 빈… 나의 빈… 내가 너를… 너를 가질 것이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모든 불안과 절망, 그리고 굴욕을 쏟아냈다. 세자빈 역시 그의 모든 것을 받아내며, 그가 결코 약한 사내가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해 주었다. "예, 저하… 소첩은 저하의 여인이옵니다… 저하의… 옥체를 온전히 받아낼 것이옵니다…." 그녀의 교성은 그의 귓가에 울리는 저주 같은 소문들을 잠재우는 유일한 주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몇 번이고 서로를 원하고 또 원했다. 그것은 더 이상 쾌락을 위한 정사가 아니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후사라는 거대한 굴레에 맞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처절한 투쟁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 작은 돛단배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밧줄이자 등대였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정치적 폭풍이, 바로 문밖에서 그들의 촛불 같은 사랑이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폭풍이, 가장 먼저 연약한 세자빈을 덮치게 되리라는 것을.

    ※ 세자를 지지하던 소론과 연잉군(영조)을 지지하던 노론의 대립이 극에 달한다.

    정치적 폭풍은 끝내 가장 연약하고 고결한 꽃을 먼저 꺾어버렸다. 세자를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영조)을 등에 업은 노론의 대립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노론의 영수였던 좌의정 이유(李濡)는 마침내 숙종에게 "세자는 병이 깊고 아들이 없으니, 총명한 연잉군을 후사로 삼아 국본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 상소는 세자의 가슴에 박힌 비수이자, 세자빈에게 내려진 무형의 사약과도 같았다. 자신 때문에 지아비가 폐위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죄책감, 그리고 온 궁궐에 파다하게 퍼진 석녀(石女)라는 억울하고도 잔인한 누명은, 그녀의 연약한 심신을 밤낮으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에 띄게 말라갔다. 뽀얗던 뺨은 빛을 잃고 창백해졌고, 밤에는 남편을 위로하느라 뜬눈으로 새우고, 낮에는 시어머니인 인원왕후 김씨의 처소를 찾아가 문안을 드리며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고, 세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들의 공격은 교묘하고도 잔인했다. 그녀가 마시는 탕약에서는 늘 씁쓸한 맛이 맴돌았고, 그녀가 먹는 음식은 모래알처럼 느껴졌으며, 그녀를 둘러싼 모든 궁녀들의 눈빛 속에서 차가운 독기와 동정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녀는 거대한 궁궐 안에 완벽하게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붉은 단풍잎이 바람에 힘없이 흩어지던 스산한 날, 세자빈은 자신의 처소에서 책을 읽다 말고, 갑자기 검붉은 피를 한 사발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마마! 세자빈 마마!" 궁녀들의 비명 소리에 동궁은 발칵 뒤집혔다. 어의들이 총동원되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병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원인 모를 기이한 병증이시옵니다. 심려가 과하시어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지신 탓으로 사료되옵니다"라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세자는 모든 정사를 내팽개치고 아내의 곁을 지켰다. 그는 며칠 밤낮을 한숨도 자지 않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어린아이처럼 애원했다. "빈… 제발… 제발 눈을 뜨시오. 내가 잘못했소. 내가 나약해서, 내가 못나서, 내가 당신을 지키지 못했소. 제발 나를 이 지옥 속에 홀로 버려두고 가지 마시오…." 그의 눈물은 마를 새 없이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며칠간 사경을 헤매던 세자빈은, 마지막 힘을 다해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흐릿했지만, 남편을 향한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만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깃털이 스치는 듯했다. "저하… 우지… 마시옵소서…. 소첩… 이리 먼저 가게 되어… 송구… 하옵니다." 기침이 터져 나와 그녀의 말은 자꾸만 끊겼다. "부디…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어… 이 나라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되셔야 하옵니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부디… 이 좁고 차가운 궁궐이 아닌… 너른 들판의 초가에서… 평범한 사내와 여인으로 만나… 지아비의… 따뜻한 밥 한 끼… 손수 지어드리고 싶사옵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자빈 심씨, 훗날 단의왕후로 추존될 비운의 여인은, 그렇게 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로, 가장 사랑하는 지아비의 품에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자는 아내의 싸늘한 시신을 부둥켜안고,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치 그의 영혼마저 아내를 따라 떠나버린 듯, 그는 텅 빈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그의 울부짖음은 동궁의 담장을 넘어, 한양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의 전부였던 존재를 잃어버린 한 남자의 절규였고,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한 피맺힌 분노의 포효였다.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 내 빈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선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상처 입은 용은, 이제 세상을 향해 복수의 불을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온기를 나누어주던 유일한 존재가 사라진 동궁은, 이제 복수심과 광기만이 가득한,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세자빈을 잃은 슬픔 속에서 경종이 즉위한다.

    아내를 잃은 세자의 슬픔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슬픔은 그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차갑고 단단한 분노로, 독기 서린 증오로 응축되어 갔다. 그는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았다. 웃음도, 눈물도 모두 거두어 버린 그의 얼굴은 살아있는 가면과도 같았다. 그는 매일 밤, 텅 비어버린 세자빈의 처소에서 그녀의 손때 묻은 옷가지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아내를 만나, 피 묻은 복수를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력한 왕권으로 아들을 억눌렀던 숙종이 승하했다. 마침내 이윤은 이 나라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으로 즉위했다. 용상에 오른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에 떨던 나약한 세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오직 복수심에 불타는 군주의 냉혹함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예리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위 초, 그는 자신을 억눌렀던 노론 세력을 끌어안는 듯한 유화책을 펼쳤다. 노론의 영수들을 정승판서의 요직에 앉히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듯 보였다. 노론은 이제 세상이 자신들의 것이 되었다며, 밤마다 연회를 열고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먹잇감을 안심시키고 숨통을 끊기 직전의, 호랑이의 교활한 술책일 뿐이었다.

    경종 즉위 1년, 마침내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는 목호룡(睦虎龍)이라는 인물을 앞세워, 노론의 핵심 세력이 선왕 숙종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시해하고 연잉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끔찍한 역모 사건을 터뜨렸다. 이것이 바로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옥사 중 하나인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시작이었다. 경종은 기다렸다는 듯,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노론의 영수였던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 등 4대신은 물론, 그들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수백의 신하들이 줄줄이 의금부 옥으로 끌려갔다.

    국문장은 매일 밤 비명과 피로 물들었다. 경종은 직접 국문을 주재하며, 죄인들의 살점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한때 그의 스승이었던 노대신이 피를 토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종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네놈들이 내 빈을 죽였다. 너희들의 악독한 혓바닥이, 너희들의 더러운 상소가 내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내 아내가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그날, 너희들의 목숨도 이미 끝난 것이야. 저승에 가서 내 빈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거라."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그 안에는 지옥의 한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광기 어린 복수는 끝이 없었다. 그는 아내의 무덤인 혜릉(惠陵)을 자주 찾았다. 그는 텅 빈 무덤 앞에서 밤새도록 홀로 술을 마시며, 그녀에게 자신의 복수를 고했다. "보고 있소, 빈? 당신을 괴롭히던 자들이, 지금 내 발아래에서 벌레처럼 죽어가고 있소. 당신의 한, 내가 이렇게 풀어주고 있소. 그러니 이제는… 편히 눈을 감으시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 대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깊어지는 광기만이 가득했다. 그는 때때로 궁녀를 침소에 들였다. 아내의 빈자리를, 그녀의 온기를 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른 여인의 몸을 안는 순간, 그는 어김없이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았다. "저하… 소첩을 잊으셨나이까…." 아내의 슬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면, 그는 비명을 지르며 궁녀를 밀쳐내고 밤새도록 오열했다. 아내를 위한 복수는, 결코 그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영혼을 더욱 깊고 어두운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뿐이었다. 그는 왕이 되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행한 왕이었다.

    ※ 경종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피의 숙청으로 정적을 모두 제거했지만, 경종의 시대는 결코 오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더 이상 그를 진심으로 위하는 충신도, 그의 상처를 보듬어줄 아내도 없었다. 그는 텅 빈 대전에서, 죽은 아내의 환영과 대화하며 나날을 보냈다. 그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국정은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졌다. 결국 그는 살아남은 노론 세력과 인원왕후의 거센 압박에 굴복하여, 자신의 유일한 정적이자 평생의 콤플렉스였던 연잉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호랑이에게 자신의 목을 맡긴 것과 같은 어리석고도 비극적인 결정이었다.

    왕세제가 된 연잉군은 노론의 비호 아래, 사실상의 왕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종의 건강을 살핀다는 명목으로, 사사건건 국정에 관여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경종은 살아있었지만, 이미 죽은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밤 술에 의지해, 먼저 떠나버린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경종 재위 4년, 그는 갑작스러운 복통과 설사를 호소하며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어의들이 온갖 처방을 내놓았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그때, 왕세제 연잉군이 형님을 위한다며, 의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극(相克)의 음식으로 알려진 게장과 생감을 직접 진상했다. 경종은 이미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동생이 건네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더욱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너무나도 짧고 비극적인 생이었다. 그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독살설에 휩싸여 있지만, 진실은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그의 영혼은 마침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지긋지긋한 피비린내 나는 궁궐을 떠났다. 끝없는 어둠 속을 헤매던 그의 앞에, 한 줄기 따스한 빛이 비쳤다. 그리고 저 멀리,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십 년 전, 잃어버렸던 자신의 유일한 사랑, 단의왕후 심씨였다. 그녀는 스물다섯의 가장 아름답고 건강했던 모습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하, 이제 오셨습니까. 오래 기다렸사옵니다. 이제는 아프지 마시옵소서." 경종은 아이처럼 달려가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빈… 나의 빈… 이제…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을 자가 아무도 없소."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깊고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첫날밤의 서툰 입맞춤도, 절망 속의 처절한 입맞춤도 아니었다. 모든 고통과 슬픔을 벗어던지고, 오직 사랑만으로 가득 찬, 영원의 입맞춤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 줌의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살아서는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죽어서야 비로소 온전한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이상 정치도, 암투도, 눈물도 없었다. 오직 고요한 평화만이 남아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과 아버지의 냉대 속에서 평생을 고통받았던 왕 경종. 그리고 그런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키다 끝내 희생양이 되어버린 비운의 왕비, 단의왕후. 살벌한 당파 싸움은 결국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마저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을 위해 손을 잡았던 또 다른 부부의 사랑은 어땠을까요?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지만, 결국 그 남편의 칼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야 했던 여인.

    다음 이야기, 【태종과 원경왕후】 권력을 위해 결혼했지만, 진짜 사랑이 된 정략결혼 편에서,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갔던 조선 최고의 정치적 동반자, 그들의 뜨겁고도 치열했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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