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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를 지킨 조선의 어부 안용복, 일본 관백을 무릎 꿇리다」 『숙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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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삼백 년도 더 된 옛날, 한낱 평범한 조선의 어부 한 사람이, 일본 한가운데로 배를 몰고 쳐들어가 그 무서운 막부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것도 단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자기 목숨을 걸고 말이지요. 양반도 아니고, 무관도 아니고, 그저 동래 앞바다에서 고기 잡아먹고 살던 한 어부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오늘 「조선 야사록」이 들춰보는 이야기는, 우리 교과서가 미처 다 말해 주지 않은 한 어부의 놀라운 사연입니다. 그 이름은 안용복. 독도를 지킨 조선의 진짜 영웅이지요.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 1: 어부 안용복, 평범한 사내의 비범한 분노

    조선 숙종 임금이 다스리시던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경상도 동래 땅, 부산포 앞바다 한 귀퉁이에 한 사내가 살고 있었지요. 이름은 안용복. 나이는 그 무렵 서른을 갓 넘은 한창나이였습니다. 양반의 후예도 아니었고, 글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었지요. 그저 동래의 한 어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다만 이 사내에게는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었지요. 그것은 바로, 일본 말을 능숙하게 할 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래는 일찍이 왜관이 자리 잡고 있던 고을이라, 일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지요. 안용복은 어릴 적부터 그 왜관 근처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일본 말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노군이라 하여, 동래부의 수군에 잠시 몸담았다가 다시 어부의 길로 돌아온 사람이었지요.

    그가 살던 동래 어촌의 사람들은, 매년 봄이면 동해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곤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 어장이, 다름 아닌 울릉도와 그 곁의 작은 섬, 우산도였지요. 우산도라 하면 다소 낯설게 들리시겠지만, 우리가 지금 부르는 그 이름, 바로 독도입니다. 옛 조선 시절에는 우산도라 불렀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송도라 하여 자신들의 땅인 양 불러 댔지요.

    울릉도와 독도 일대는 본래 조선의 영토였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분명히 적혀 있었고, 역대 임금들께서도 그곳에 종종 관리를 보내어 살피게 하셨지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 조선 조정에서는 이른바 공도 정책이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즉, 그 먼바다 섬에는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고, 비워 두는 정책이었습니다.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그러나 이 정책이 도리어 화를 부르고 말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 섬에, 일본 어부들이 슬금슬금 들어와 마치 자기 땅인 양 고기를 잡고 나무를 베어 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특히 일본의 돗토리번이라는 곳에 자리 잡은 오야 가문과 무라카와 가문이라는 두 어업 집안이, 막부로부터 이른바 도해 면허라는 것을 받아 매년 울릉도로 건너와 어업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안용복은 동래 어부들 사이에 떠도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분통이 터졌습니다.

    "여보게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분명 우리 조선 땅인데, 어찌 왜인들이 제집 드나들 듯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을 왜 우리 조정에서는 모른 척한단 말인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동료 어부 박어둔이라는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지요.

    "안 형, 그것을 우리 같은 어부들이 어찌하겠는가. 양반들이야 한양 도성에서 글이나 읽고 있고, 동래부사라야 일본인 무서워서 입을 다물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우리는 그저 그자들 눈치 보면서 고기나 잡고 살아야지."

    "눈치를 보다니, 그것이 무슨 말인가. 자네가 일본 땅 가서 고기를 잡으면 그자들이 가만있겠는가? 그 자리에서 잡아 죽이려 들겠지. 헌데 우리 땅에 와서 고기를 잡는데, 우리가 어찌 가만히 두고만 본단 말인가."

    안용복의 그 우렁찬 목소리에 어부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의 말에 동조하지는 못했지요. 평범한 어부의 신세로, 일본 어선들과 다툰다는 것은 곧 자기 목숨을 거는 일이었거든요. 그러나 안용복의 가슴에는, 그날부터 무엇인가가 단단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두고 보거라. 내 언젠가는 그 왜인놈들의 콧대를 꺾어 놓고 말리라. 우리 조선의 바다는, 우리 조선 사람의 것이다. 거기에 어찌 왜인의 깃발이 펄럭이게 둔단 말인가.'

    그날 밤, 안용복은 자신의 작은 초가집 마당에 앉아 동해 쪽 하늘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동해 너머로 별들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지요. 그 별빛 너머 어딘가에, 왜인들이 자기 땅인 양 차지하고 있는 울릉도와 독도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안용복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지요. 그것은 한낱 어부의 분노가 아니라, 한 조선 사내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분노 하나가, 훗날 조선과 일본 사이의 거대한 외교 사건으로 번지게 되리라고는, 그날의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 2: 일본 어선과의 첫 충돌

    숙종 십구 년, 그러니까 서기로는 천육백구십삼 년 봄의 일이었습니다. 동래의 어부들이 모처럼 큰 배를 한 척 마련하여,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떠나기로 하였지요. 그 무리의 우두머리 격이 다름 아닌 안용복이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어부가 모두 마흔 명 남짓이었지요. 그 가운데에는 단짝 친구 박어둔도 끼어 있었습니다.

    배를 띄우던 날, 동래 앞바다는 유난히 푸르고 잔잔했습니다. 안용복은 뱃머리에 서서, 동해 먼바다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지요.

    "자, 형제들아! 우리 이번 길에는 한번 제대로 고기를 잡아 보자꾸나! 울릉도 앞바다에는 전복과 대구가 산더미라 하지 않더냐! 식솔들 먹여 살릴 양식, 이번에 단단히 잡아 오자!"

    어부들이 와아 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닷새를 항해한 끝에, 마침내 울릉도 앞바다에 다다랐지요. 그런데 울릉도가 가까워질수록, 안용복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울릉도의 한 포구에, 여러 척의 큰 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이 보였거든요. 그 배들의 모양이 분명 조선의 어선이 아니었습니다. 뱃머리의 모양도 다르고, 깃발도 달랐지요.

    "저것이… 저것이 왜인들의 배가 아니더냐!"

    안용복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배들은 일본의 오야 가문과 무라카와 가문에서 보낸 어선들이었지요. 무려 일곱 척이나 되는 큰 배들이, 마치 자기네 안마당인 양 울릉도 포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어부들은 해안가에 천막까지 쳐 놓고, 잡은 전복과 대구를 말리고 있었지요.

    조선 어부들이 다가가자, 일본 어부들이 칼을 빼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사내가 일본 말로 호통을 쳤지요.

    "네놈들은 어디서 굴러먹은 자들이냐! 이 섬은 우리 일본의 다케시마이거늘! 어찌 함부로 들어왔느냐! 당장 물러가라!"

    조선 어부들은 일본 말을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해했습니다. 그러나 안용복은 모든 말을 알아들었지요.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는 뱃머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일본 말로 우렁차게 받아쳤지요.

    "네 이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이 섬은 분명 조선의 울릉도이거늘! 다케시마라니, 어디서 왜인놈들이 제멋대로 이름을 붙여 놓고 자기 땅이라 우긴단 말이냐! 네놈들이야말로 당장 이 섬에서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일본 어부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 어부 가운데 일본 말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 사내의 눈빛과 목소리가 어찌나 위풍당당한지, 마치 어느 조선 무관이라도 보는 듯한 기세였습니다. 일본 어부들은 잠시 주춤하였지요. 그러나 그들도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곱 척의 배에 어부가 줄잡아 칠팔십 명은 되었거든요. 조선 어부 마흔 명을 무력으로 누르고도 남을 수였지요.

    일본 어부의 우두머리가 이를 갈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 건방진 조선 놈들을 잡아라! 그 가운데 일본 말 하는 놈은 살려서 끌고 가라! 막부에 끌고 가서 본보기를 보여 주리라!"

    일본 어부들이 우르르 조선 배로 달려들었습니다. 조선 어부들은 손에 쥔 거라곤 작살과 어구뿐이었지요. 안용복은 작살을 들고 맞서 싸웠지만, 워낙 수적으로 열세였습니다. 박어둔과 안용복이 가장 앞장서서 싸웠지만, 결국 두 사람은 일본 어부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지요. 다른 조선 어부들은 혼란을 틈타 작은 배에 나누어 타고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안용복과 박어둔, 두 사람만이 일본인들에게 붙잡힌 채, 일본 배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손발이 묶인 채, 일본 배의 갑판 위에 무릎을 꿇고 앉혀진 안용복은, 그러나 조금도 기죽지 않았지요. 오히려 그의 눈빛은 더욱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놈들아, 너희들이 잘못 데려갔다. 너희가 나를 일본 땅으로 끌고 가는 그 순간이, 바로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내 너희 막부 한가운데로 끌려가, 거기서 너희 임금에게까지 호통을 쳐 주리라.'

    안용복은 일본 배 갑판 위에서, 멀어져 가는 울릉도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그의 곁에서 박어둔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지요.

    "안 형, 이제 우리는 어찌 되는 건가… 일본 땅으로 끌려가면,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

    안용복은 박어둔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습니다.

    "걱정 말게, 어둔이. 자네는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따르게. 내 자네를 살려서 동래로 데리고 돌아갈 것이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는 그냥 돌아가지 않을 걸세. 저 왜놈들의 임금에게서 한 가지를 받아 가지고 돌아갈 것이네."

    "그것이 무엇인가, 안 형?"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공식 문서일세. 그것을 반드시 받아 내고야 돌아가겠네. 두고 보게."

    박어둔은 안용복의 그 단호한 눈빛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낱 동래의 어부가, 일본 막부에서 공식 문서를 받아 내겠다니. 그것은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지요. 그러나 안용복의 그 눈빛에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결의가 서려 있었습니다.

    ※ 3: 일본 땅에 끌려간 조선의 어부

    일본 배는 사흘을 항해한 끝에, 일본의 한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 항구는 다름 아닌, 오늘날의 시마네현에 자리 잡은 돗토리번의 한 포구였지요. 안용복과 박어둔은 손이 묶인 채, 일본 어부들에게 끌려 그 포구의 한 관아 앞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돗토리번의 관리들에게 인계되었지요.

    돗토리번의 관리들은 두 조선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본래 일본 어부들은 조선인을 함부로 잡아 오면 큰일이 날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한 늙은 관리가 일본 어부의 우두머리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네 이놈! 어찌하여 조선인을 잡아 왔느냐! 이는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일이거늘! 어찌 함부로 손을 댔단 말이냐!"

    일본 어부의 우두머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했지요.

    "송구하옵니다, 어르신. 그러나 이놈들이 우리 다케시마에 침범하여, 함부로 행패를 부리기에 어쩔 수 없이…"

    "어허! 다케시마니 뭐니 하는 그 섬이 진짜 우리 일본 땅인지 아닌지부터 분명하지 않거늘, 어찌 그것을 핑계로 조선인을 잡아 왔단 말이냐! 일단 이 두 사람은 잘 모셔 두어라. 막부에 보고하기 전까지는, 절대 함부로 다루지 말거라."

    그렇게 안용복과 박어둔은 일단 돗토리번의 한 관사에 갇히게 되었지요. 그러나 갇혔다고는 하나, 죄인 취급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따뜻한 밥과 깨끗한 잠자리가 주어졌고, 매일같이 관리들이 와서 두 사람의 사정을 캐물었지요. 박어둔은 일본 말을 못해 그저 안용복 뒤에 숨어 있을 뿐이었지만, 안용복은 모든 질문에 또박또박 답했습니다.

    "우리는 조선 동래에서 온 어부들이오. 조선의 영토인 울릉도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너희 일본 어부들에게 강제로 끌려온 것이오.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너희들이 우리에게 죄를 지은 것이오."

    돗토리번의 관리들은 안용복의 그 당당한 말투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보통 외국 땅에 끌려온 평민이라면 벌벌 떨며 살려 달라 빌기 마련이거늘, 이 사내는 오히려 자신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가 일본 말을 너무나 능숙하게 구사하니, 보통 어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돗토리번의 번주, 그러니까 그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가 직접 안용복을 만나 보겠다고 청했습니다. 안용복이 번주의 거처로 인도되었을 때, 그는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지요. 번주가 점잖게 자리에 앉아 안용복을 맞이했습니다.

    "그대가 안용복이라는 자인가? 동래의 어부라 들었네."

    "그렇소. 내가 안용복이오."

    "허허, 그대의 말투가 어찌 그리 당돌한가. 그래도 그대가 우리 일본 땅에 와 있는 처지가 아닌가."

    안용복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답했지요.

    "내가 일본 땅에 와 있는 것은 내 발로 온 것이 아니라, 너희 어부들이 강제로 끌고 온 것이오. 그러니 내가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소.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자는, 남의 나라 땅에 함부로 들어가 어업을 하다 사람까지 잡아 온 너희 일본인들이 아니겠소."

    번주는 안용복의 그 말에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이 사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지요. 번주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가 말하는 그 울릉도가, 정말로 조선의 영토라는 증거가 있는가?"

    "증거가 있고말고. 우리 조선의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분명히 적혀 있고, 일찍이 신라 시대부터 우리 영토였던 곳이오. 일본의 어떤 옛 문서에도, 그 섬이 일본 땅이라는 기록은 없을 것이오. 너희가 이름을 다케시마라 바꿔 부른다 한들, 그 섬은 분명 조선의 울릉도요. 그 곁의 우산도, 그러니까 너희가 송도라 부르는 그 섬도 마찬가지로 조선의 영토요."

    번주는 더욱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실 돗토리번에서도 그동안 막부로부터 도해 면허를 받아 울릉도에서 어업을 해 왔지만, 그것이 진짜 일본 땅이라는 확증은 없었거든요. 그저 막부의 명령이 있었으니 따랐을 뿐이었지요. 번주는 안용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마침내 한 가지 결단을 내렸습니다.

    "좋소. 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막부에 보고하여, 그곳의 판단을 기다려 봅시다. 그동안 그대들은 우리 번에서 손님으로 모시겠소."

    그리하여 안용복과 박어둔은 돗토리번에서 한동안 머물게 되었지요. 그동안 안용복은 한가하게 시간만 보내지 않았습니다. 일본 관리들과 매일같이 만나,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거듭거듭 주장했지요. 또한 일본 측의 옛 문서를 보여 달라 청하기도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를 일일이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무렵, 안용복의 일은 마침내 일본의 최고 권력자, 즉 막부의 관백이라 불리던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지요. 관백은 곧 두 조선인을 자신이 있는 에도, 즉 오늘날의 도쿄로 데려오라 명하였습니다. 안용복은 그 소식을 듣고 오히려 가슴이 뜨거워졌지요.

    '드디어 왔구나.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자리. 일본의 임금이라 불리는 자 앞에서, 내 직접 우리 조선의 영토를 천명할 그 자리가 마침내 왔구나.'

    박어둔이 두려움에 떨며 안용복에게 속삭였습니다.

    "안 형, 우리가 정말 일본 임금 앞에까지 끌려가는 건가… 거기서 우리 목이 달아나지나 않을까…"

    안용복은 박어둔의 손을 꼭 잡으며 웃었지요.

    "어둔이, 걱정 말게. 우리는 죄인이 아닐세. 우리는 조선 사람일세. 조선 사람의 자존심이 일본 임금 앞에서 무너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네. 두고 보게. 내 그 자리에서 우리 조선의 영토를 인정하는 문서를 받아 내고야 말 것이네."

    ※ 4: 막부의 권력자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은 사내

    안용복과 박어둔, 두 사람은 돗토리번의 관리들에 둘러싸여, 머나먼 에도까지 끌려갔습니다. 그 길은 무려 열흘이 넘게 걸리는 험한 여정이었지요. 가는 곳마다 일본의 관리들이 두 조선인을 구경하러 몰려 나왔습니다. 한낱 조선 어부들이, 어찌하여 막부의 관백 앞에까지 불려 가게 되었는지, 모두들 의아해했지요.

    마침내 에도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한 큰 관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안용복은 막부의 한 고위 관리 앞에 불려 가게 되었지요. 그 관리는 다름 아닌, 막부의 외교를 담당하던 노중이라는 직책의 인물이었습니다. 안용복은 그 관리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지요.

    노중은 무거운 목소리로 안용복에게 물었습니다.

    "그대가 안용복이라 하는가? 그대가 우리 일본 땅에 와서, 우리 일본의 영토인 다케시마가 조선의 울릉도라 우긴다 들었네. 그것이 사실인가?"

    안용복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단호하게 답했지요.

    "우긴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오. 그 섬은 분명 조선의 영토인 울릉도요. 그 곁의 작은 섬도 마찬가지로 조선의 영토인 우산도이오. 너희가 다케시마니 송도니 이름을 멋대로 붙였다 한들, 본래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소."

    "허허, 그대의 말투가 매우 당돌하구나.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리 당당하단 말인가."

    안용복은 그 순간,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낱 어부라고 솔직히 답하면, 일본 측에서 자신의 말을 가벼이 여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거짓말을 보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평생 그를 따라다닐 위험한 거짓말이었지만, 조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내가 누구냐고 물으셨소? 좋소, 답해 드리리다. 나는 조선 동래부의 관리이오. 조선 임금의 명을 받들어, 울릉도와 우산도를 살피러 갔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노중과 그 곁의 관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한낱 어부인 줄 알았던 자가, 알고 보니 조선 조정의 관리였다니. 그들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안용복을 다시 보았지요. 안용복은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한층 더 우렁차게 말을 이었습니다.

    "내 그대들에게 한 가지 묻겠소. 너희 일본의 어부들이, 조선의 영토인 울릉도에 함부로 들어와 어업을 한 것이 한두 해의 일이 아니오. 이는 명백히 우리 조선의 주권을 침해한 일이거늘, 어찌 너희 막부에서는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였단 말이오.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직접 그 섬을 살피러 갔거늘, 너희 어부들이 나를 강제로 잡아 왔으니, 이는 곧 조선 조정에 대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오? 내 이 사실을 우리 임금께 그대로 아뢴다면, 두 나라 사이의 큰 외교 문제로 번질 것이오. 그것을 너희 관백은 알고 계신가?"

    노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과의 평화로운 외교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거든요. 임진왜란 이후 어렵게 회복된 조선과의 통신사 관계가 있었고, 매년 부산의 왜관을 통해 활발한 무역도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낱 어부들의 분쟁이 외교 문제로 비화한다면, 그것은 막부로서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중은 즉시 막부의 관백, 도쿠가와 쓰나요시에게 이 사정을 상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보고를 들은 관백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지요.

    "이 일은 외교 문제로 번지면 안 되는 일이다. 즉시 조사를 명하라. 다케시마라 부르는 그 섬이, 정말로 우리 일본의 영토인지, 아니면 본래 조선의 영토였는지. 옛 문서들을 모두 뒤져 확인하라."

    막부의 명에 따라, 즉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측에서 울릉도를 자기 영토라 주장할 만한 옛 문서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이 곧 드러났지요. 반면, 조선 측에서는 『세종실록 지리지』를 비롯하여 여러 문서에서 울릉도가 분명 조선의 영토임을 적어 놓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찍이 조선 태종 임금 시절, 안무사를 보내어 울릉도를 직접 살피게 한 기록도 있었지요. 막부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뒤, 안용복은 다시 노중 앞으로 불려 갔습니다. 노중은 이번에는 매우 정중한 태도로 안용복을 맞이했지요.

    "안용복 공, 그대의 말이 옳소이다. 우리 막부에서 조사한 결과, 다케시마, 그러니까 울릉도와 그 곁의 작은 섬은 분명 조선의 영토임이 확인되었소. 우리 막부에서는 즉시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출어를 금하는 명을 내릴 것이오. 또한 그대들의 무사 귀국을 보장하겠소."

    안용복은 그 자리에서 한 가지를 더 요구했습니다.

    "말로만 하면 무엇하오. 공식 문서로 작성하여 주시오. 울릉도와 우산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 어부들의 출어를 금한다는 막부의 공식 문서를 말이오. 그것을 받아 가지고 돌아가야, 우리 조선 조정에서도 이 일을 분명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아니오."

    노중은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그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막부에서는 안용복에게 한 통의 공식 문서를 작성해 주었지요. 그 문서에는 분명히, 울릉도와 그 곁의 섬이 조선의 영토이며, 앞으로 일본 어부들의 출어를 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안용복은 그 문서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 들었지요.

    '됐다. 마침내 받아 냈다. 이 문서 한 장이, 우리 조선의 동해 바다를 영원히 지켜 줄 것이다.'

    안용복은 그 문서를 품속 깊이 간직하고는, 박어둔과 함께 일본 땅을 떠났습니다. 한낱 동래의 어부 두 사람이, 일본 막부의 한가운데로 끌려갔다가, 도리어 조선 영토를 인정하는 공식 문서를 받아 내고 돌아오는, 일본 사람들도 미처 짐작 못했던 그런 결말이었지요.

    ※ 5: 영웅을 죄인으로 몰아간 조선 조정

    안용복과 박어둔은 일본 막부에서 받은 공식 문서를 품에 안고, 위풍당당하게 조선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에 대마도를 거쳐 동래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지요. 그런데 바로 이 대마도에서, 뜻밖의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대마도의 도주, 즉 그 섬을 다스리던 영주는 본래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를 중계하는 자였지요. 대마도주는 일찍이 조선과의 무역에서 큰 이익을 보고 있었던 자인데, 막부가 직접 안용복에게 공식 문서를 내려 준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신을 거치지 않고 막부와 조선이 직접 외교를 한 셈이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울릉도 어업권을 잃게 된 일본 어부들과 상인들의 손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마도주는 음흉한 계략을 꾸몄지요. 안용복이 가지고 있던 그 공식 문서를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안용복에게 거짓으로 또 다른 문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그 문서에는 마치 울릉도가 일본 땅인 것처럼 애매하게 적어 놓은 것이었지요. 안용복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 간악한 자들이 내 문서를 가로챘구나. 그러나 어찌하랴. 내 이 분을 어찌 풀어야 한단 말인가.'

    안용복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습니다. 결국 그는 빈손으로 동래에 돌아오게 되었지요. 동래로 돌아온 안용복은 즉시 동래부사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자신이 일본 막부에서 받았던 공식 문서가 어떻게 빼앗겼는지, 그리고 일본 어부들이 어떻게 울릉도를 침범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보고했지요.

    그러나 동래부사의 반응은 안용복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동래부사는 안용복을 보자마자 호통을 쳤지요.

    "네 이놈! 일개 어부 주제에 함부로 일본 땅까지 다녀왔단 말이냐! 그것도 모자라, 조선의 관리를 사칭하였다니! 이는 나라의 법을 어긴 큰 죄이거늘! 너 이놈, 즉시 옥에 가두어라!"

    안용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부사 어른,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신이 조선의 영토를 지키고자 한 일이거늘, 어찌 죄가 된단 말입니까! 게다가 신은 막부로부터 공식 문서까지 받았으나, 대마도주가 이를 가로챘으니, 이는 부사 어른께서 즉시 조정에 아뢰어 시정해야 할 일이 아니옵니까!"

    "닥치거라! 어부 따위가 함부로 외교에 끼어드는 것은 큰 죄이니라! 게다가 조선의 관리를 사칭한 것은 더욱 큰 죄이거늘, 어찌 변명을 늘어놓느냐! 형리는 무엇을 하느냐! 즉시 이놈을 잡아 옥에 가두어라!"

    이렇게 안용복은 동래부의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영웅으로 환영받기는커녕, 죄인이 되어 차가운 옥방에서 모진 매를 맞으며 갇혀 있는 신세가 된 것이지요. 그곳에서 그는 무려 두 해 가까이 갇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조정에서도 이 일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요. 일부 신하들은 안용복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낱 어부가 함부로 외교에 끼어든 것은 나라의 체통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또 다른 신하들은 안용복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조선의 영토를 지키고자 한 충정만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특히 영의정이었던 남구만이라는 분이 안용복을 강력하게 두둔하셨다고 합니다. 남구만은 임금께 이렇게 아뢰었지요.

    "전하, 안용복은 비록 한낱 어부이오나, 그가 한 일은 조정의 관리들도 미처 하지 못한 큰 일이옵니다. 일본 막부에서 직접 공식 문서를 받아 냈다면, 이는 보통의 외교관도 해내지 못할 일이오니, 어찌 그자에게 죄를 묻겠나이까. 또한 울릉도 문제는 우리 조정에서 분명히 매듭을 지어야 할 사안이오니, 안용복의 보고를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옵니다."

    숙종 임금께서도 그 말씀에 일리가 있다 여기시어, 안용복에 대한 처분을 일단 보류하셨습니다. 그러나 동래부에서는 이미 안용복을 모진 매로 다스린 후였지요. 안용복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가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옥방에서 매일같이 신음하던 안용복은, 그러나 결코 자신의 결심을 꺾지 않았습니다. 옥에 갇힌 채 그는 늘 한 가지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요.

    '대마도주, 이 간악한 자가 내 문서를 가로챘으니, 그 일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내 어떻게든 다시 한 번 일본으로 건너가, 이 일을 분명하게 매듭짓고 오리라. 우리 조선의 바다를 영원히 지킬 그 문서를, 다시 한 번 받아 내고야 말리라.'

    이 년이 흐른 뒤, 안용복은 마침내 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매에 시달려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요. 그는 동래의 자기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몸을 추슬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다시 한 번 일본으로 건너가야겠다는 결심이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지요. 한 번 실패한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 6: 가짜 관복을 입고 다시 일본으로

    옥에서 풀려난 안용복은, 동래의 자기 집에서 몸을 추스르며 조용히 다음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 때처럼 우연한 사고가 되어서는 안 되었지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은밀히 모았습니다. 박어둔은 물론이고, 동래의 다른 어부들과 또 몇몇 승려들까지, 모두 열한 명이 모였지요.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일본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승려 뇌헌이라는 분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활을 잘 쏘는 사내 유일부였지요. 안용복은 이들을 모아 놓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조선의 영토를 지키는 일은, 조정의 양반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그자들은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백성들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내 이번에 다시 한 번 일본으로 건너가, 막부에서 공식 문서를 받아 내려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낱 어부의 신분으로 가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 가지 계책을 세웠다."

    뇌헌 스님이 물었습니다.

    "안 공, 그 계책이 무엇이오?"

    "내 이번에는 가짜 관복을 입고, 가짜 관리 행세를 하며 일본에 들어갈 것이오. 깃발도 만들어 갈 것이오. '조울양도감세장신안동지기'라는 깃발을 말이오. 즉, 조선의 울릉도와 우산도, 두 섬의 세금을 감독하는 관리라는 뜻이오. 이렇게 하면 일본 측에서 함부로 우리를 다루지 못할 것이오."

    "허허, 그것이 들통나면 큰 죄가 될 텐데요?"

    "이미 첫 번째 때에 관리 사칭으로 옥살이를 한 신세이오. 어차피 죄인 된 몸,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지 않소. 다만 우리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일에, 내 한 목숨을 다시 한 번 걸어 보겠소."

    동지들은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렇게 그들은 은밀히 배를 마련하고, 가짜 관복과 깃발을 준비하였습니다. 숙종 이십이 년, 즉 천육백구십육 년의 어느 봄날, 안용복 일행은 마침내 두 번째 출항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안용복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요. 배에는 조선의 깃발과 가짜 관복,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작성한 여러 문서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일행은 먼저 울릉도로 향했습니다. 울릉도에 도착하자, 역시나 일본 어부들이 그곳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요. 안용복은 즉시 가짜 관복을 갖추어 입고, 깃발을 들고는 일본 어부들 앞에 나섰습니다.

    "네 이놈들! 막부의 명을 어기고, 또다시 우리 조선 영토에 침범하였느냐! 너희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일본 어부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의 관리로 보이는 자가, 그것도 일본 말을 능숙하게 하며 호통을 치니, 모두 사색이 되었지요. 그들은 변명할 말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안용복은 일본 어부들을 추격하여, 그들의 본거지인 일본 돗토리번의 한 항구까지 따라갔지요. 이것이 바로 그의 두 번째 일본 행이었습니다.

    이번에 안용복은 자기 발로, 그것도 가짜 관리 행세를 하며 당당하게 일본 땅에 들어간 것이지요. 일본 측 관리들은 또다시 안용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삼 년 전 그 사건의 주인공이, 이번에는 조선 관리의 행색으로 직접 찾아왔으니 말이지요.

    안용복은 돗토리번의 번주에게 직접 만남을 청했습니다. 번주가 그를 만나자, 안용복은 단도직입적으로 따져 물었지요.

    "내가 삼 년 전, 그대들의 막부로부터 분명한 공식 문서를 받아 갔거늘, 어찌하여 일본 어부들이 또다시 우리 조선의 울릉도와 우산도에 침범하고 있단 말이오! 이는 막부의 명을 어기는 일이거늘, 그대는 어찌 그것을 묵인하고 있는가!"

    번주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지요.

    "안용복 공, 그 일은 우리도 듣고 놀랐소. 그러나 그것은 일부 어부들의 짓이지, 결코 막부의 뜻이 아니오. 그대의 말씀은 즉시 막부에 보고하여, 다시 한 번 명을 분명히 내리도록 하겠소."

    안용복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따져 물었습니다.

    "또한 들은 바에 의하면, 일찍이 내가 받았던 공식 문서를 대마도주가 가로챘다 하더이다! 그것이 어찌 된 일이오! 두 나라 사이의 외교 문서를 한낱 대마도주가 함부로 가로채다니, 이는 막부에 대한 큰 죄가 아니더이까!"

    번주는 이 말에 더욱 놀랐습니다. 대마도주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막부에서도 아직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거든요. 번주는 즉시 이 사실도 막부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안용복의 말은 일본 막부에까지 그대로 전달되었지요. 막부에서는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출어를 엄격히 금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또한 대마도주의 잘못도 추궁하기로 결정하였지요.

    이번에는 일본 측에서도 안용복을 더 이상 잡아 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안용복 일행을 정중하게 대접하고, 일정한 답서까지 들려 보내 주었지요. 그렇게 안용복 일행은 일본 측의 환송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낱 어부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일본 행을 마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누가 보아도 한 사람의 외교관이었지요.

    ※ 7: 한 어부가 남긴 거대한 유산

    안용복 일행이 두 번째로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곧 동래는 물론이고 한양 도성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번에는 동래부사도 안용복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지요. 그러나 조정의 분위기는 여전히 둘로 갈려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안용복을 처형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이 나왔지요. 한낱 어부가 두 번이나 관리를 사칭하고 외교에 끼어든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하, 안용복은 두 번이나 나라의 법을 어겼사옵니다.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관리를 사칭하였으니, 이는 결코 가벼이 다스릴 수 없는 죄이옵니다. 마땅히 사형에 처하여야 하옵니다."

    그러나 다른 신하들은 강력하게 반대하였지요. 그 가운데에서도 영의정 남구만이 가장 앞장서서 안용복을 변호하였습니다.

    "전하, 신하 된 자가 듣기에 부끄러운 말씀을 올리겠나이다. 우리 조정의 관리들이 수백 년을 두고도 매듭짓지 못한 일을, 한낱 어부가 두 번이나 일본 땅에 직접 건너가 매듭지어 왔사옵니다. 게다가 막부의 공식 문서까지 받아 왔으니, 이는 우리 조선의 외교사에 길이 남을 큰 공이옵니다. 어찌 이런 사람을 죽인단 말이옵니까. 그자가 비록 법을 어긴 점은 있으나, 그 충정만은 인정해야 하옵니다. 사형은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전하."

    숙종 임금께서도 한참을 고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결단을 내리셨지요.

    "안용복의 일은 분명 법을 어긴 일이나, 그 충정과 공로 또한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사형은 면하게 하라. 다만 함부로 외교에 끼어든 죄는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멀리 귀양을 보내도록 하라."

    이렇게 하여 안용복은 사형은 면하게 되었지만, 결국 멀리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영웅으로 환영받아도 모자랄 사람이, 결국 죄인의 신분으로 머나먼 변방에 보내지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안용복은 그 결정에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귀양지로 떠났을 뿐이지요.

    귀양지에 도착한 안용복은, 그곳에서 평생을 조용히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세상을 떠났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요. 한 사람의 평민 영웅의 마지막은, 그렇게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안용복의 두 차례 일본 행 이후, 일본 막부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울릉도와 그 곁의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되었지요. 천육백구십육 년, 일본 막부는 정식으로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출어를 금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 역사에서 말하는 '죽도 도해 금지령'이지요. 이 명령은 그 후로 거의 이백 년 가까이 일본 측에서도 분명한 공식 입장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독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안용복 사건입니다. 한낱 어부 한 사람의 분노에서 시작된 일이, 결국 한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거대한 외교적 성과로 이어진 것이지요. 그것은 양반도 아니고, 무관도 아니고, 그저 동래 앞바다에서 고기 잡아먹고 살던 한 평민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후일 어느 학자가 안용복을 두고 이렇게 평하셨다고 합니다.

    "한 시대의 외교를, 한 어부가 짊어졌다. 조정의 관리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그 한 사람만이 자기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동해의 두 섬은 이미 일본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찌 그 한 사람의 공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우리 교과서가 미처 다 말해 주지 않은 그 사람, 안용복. 그는 양반의 후예도 아니었고, 큰 글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는 자기 발로 일본 막부의 한가운데로 두 번이나 들어가, 그곳의 최고 권력자에게 호통을 치고, 조선의 영토를 인정하는 공식 문서를 받아 낸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목숨을 두 번이나 걸고 말이지요.

    세월이 삼백 년이 넘게 흘렀건만, 우리는 여전히 동해 한가운데의 그 작은 섬을 두고 일본과 입씨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안용복일 것입니다. 그가 받아 낸 그 공식 문서 한 장이, 오늘날까지도 우리 동해 바다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으니까요.

    『숙종실록』의 한 페이지에 그저 몇 줄로 적혀 있을 뿐인 그 이름, 안용복. 그러나 그 몇 줄의 무게는, 조선왕조 오백 년을 통틀어 가장 무거운 몇 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사람의 평범한 어부가 지킨 그 바다가,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동쪽 끝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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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조선 야사록」, 독도를 지킨 어부 안용복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양반도 무관도 아닌 한낱 어부 한 사람이, 자기 목숨을 걸고 두 번이나 일본 막부로 쳐들어가 조선의 영토를 지켜 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오늘 우리 가슴에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으신가요.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잊혀진 역사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조선 야사록」이었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문, 16:9, 실사, no text)

    A cinematic, photorealistic 16:9 dramatic scene of a rugged Joseon-era Korean fisherman in his late thirties standing defiantly on the wooden deck of a small traditional Korean fishing boat, his weathered face fierce and resolute, wind whipping through his tied-back hair and worn hemp jeogori. He grips a long bamboo pole, pointing accusingly toward the horizon. Behind him, the rocky volcanic silhouettes of Dokdo islands rise from a stormy East Sea, with crashing waves and dramatic gray storm clouds parting to reveal golden rays of sunlight. In the misty distance, a Japanese vessel retreats. The sea spray glistens, the boat's sail bears traditional Korean character markings (no readable text), and a faded red royal banner flutters at the mast. Cinematic lighting with deep blues, stormy grays, and bursts of warm gold. Ultra-detailed textures of weathered wood, salt-stained fabric, and rough sea waves. Shallow depth of field, hyperrealistic, museum-quality Korean historical drama still. No text, no logo, no watermark. Shot on a medium-format camera, 50mm lens,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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