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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 전통 장 담그는 법 함께 배워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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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30대 며느리와 전통을 중시하는 60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장 담그기를 통해 풀어가는 감성 이야기.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던 두 여성이 전통 장 담그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메주를 씻고 장독에 담그는 과정부터 숙성을 지켜보며, 서로의 상처와 아픔, 사랑과 희생을 이해하게 되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여정. 음식에 담긴 세대 간 지혜의 전수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

    ※ 며느리의 고민과 장 담그기를 배우기로 한 결심

    "지난번에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된장, 다 떨어졌네."

    나는 냉장고 구석에 있던 마지막 된장 한 숟가락을 국에 풀면서 한숨을 쉬었다. 결혼한 지 3년, 시어머니와 나는 여전히 어색한 관계였다. 남편은 그런 우리 사이를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마트에서 사면 되지, 뭐." 남편 현우가 아침 신문을 넘기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게... 사 먹으면 맛이 다르잖아. 어머님 된장은..." 내 말끝이 흐려졌다.

    사실 시어머니의 된장은 정말 맛있었다. 깊고 구수한 맛이 나를 어릴 적 외할머니 집으로 데려다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결혼 후 처음으로 시어머니께 진심으로 감탄했던 것이 바로 그 된장 맛이었다.

    "그러게, 우리 어머니 장맛은 정말 대단해. 외할머니께 배우셨대. 3대째 내려오는 비법이라나."

    현우의 말에 나는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것이 시어머니와 가까워질 기회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다니며 바쁘다는 핑계로, 도시에서 자라 전통을 모른다는 변명으로 항상 시어머니와 거리를 두어왔다. 시어머니는 내가 집안일에 서툴고, 시부모님께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은근히 불만을 표현하셨다.

    "여보, 어머님께서 올해 장 담그실 때쯤 됐지?"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응, 이맘때쯤 하실 거야. 왜?"

    "나... 이번에 어머님께 장 담그는 법 배워볼까 해."

    현우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갑자기 왜?"

    "그냥... 어머님과 가까워지고 싶기도 하고. 또 네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내 손으로 제대로 해주고 싶기도 하고."

    사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지난 명절, 시어머니께서 살짝 흘리신 말이 가슴에 걸렸다. "요즘 젊은 며느리들은 시집살이고 뭐고 다 편하게 살지... 우리 때는 상상도 못했어." 그 말에 내심 상처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시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수고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머니 메주는 이미 다 만들어 놓으셨을 거야. 이제 곧 장 담그실 때가 됐나 보네."

    "정말? 그럼 타이밍이 딱 좋겠다. 어머님께 전화해서 여쭤볼게."

    전화기를 들고 망설이다 결국 시어머니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후,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예요, 미정이에요."

    "왜 그러니, 무슨 일 있어?"

    항상 그렇듯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다소 냉랭했다. 마치 며느리와의 대화가 의무처럼 느껴지는 그런 톤이었다.

    "저기... 어머님, 혹시... 장 담그실 때 제가 가서 배워도 될까요?"

    잠시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긴장된 마음에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장 담그는 법? 네가? 갑자기 왜?"

    의심이 섞인 시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 어머님이 담그신 된장 맛이 너무 좋아서요. 현우도 항상 어머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고... 저도 그런 맛있는 음식을 가족에게 해주고 싶어서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래... 마침 내일모레 메주 씻어서 장 담글 참이었는데. 오고 싶으면 와라."

    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없었지만, 적어도 거절하지는 않으셨다. 이미 한 걸음 내디딘 셈이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내일모레 아침 일찍 찾아뵐게요."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몰려왔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시어머니는 완벽주의자에, 전통을 중시하시는 분인데, 내가 실수하면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미 결심했다. 이것이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볼 생각이었다.

    "어머님, 저 정말 열심히 배울게요. 이번에는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작은 다짐을 해본다. 모레, 시어머니와 함께할 시간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웠다.

    ※ 어색한 첫 만남과 메주 씻기 시작

    약속한 날, 아침 일찍 시댁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시골길을 걸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시댁은 도시 외곽 작은 마을에 있었다. 아직 전통 가옥의 모습을 간직한 집이었고, 넓은 마당에는 항상 정갈하게 정리된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어머니가 마당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다듬고 계셨다. 나를 보자 천천히 일어나셨다.

    "왔구나."

    "안녕하세요, 어머님. 일찍 와서 도와드릴게요."

    짧은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시어머니는 내게 아무런 말씀도 없이 장독대 쪽으로 향하셨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장독대 앞에는 이미 큰 대야와 깨끗한 물, 그리고 수개월 동안 말려둔 메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메주에는 하얀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일단 메주를 깨끗이 씻어야 해. 곰팡이는 좋은 곰팡이니까 너무 세게 씻지 마."

    시어머니의 설명은 간결했고,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내게 가르치기보다는 혼잣말처럼 들렸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머님."

    시어머니는 내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메주 하나를 들어 보여주셨다.

    "이렇게 물에 살짝 담갔다가 조심스럽게 손으로 훑어. 너무 세게 하면 메주가 부서져."

    나는 조심스럽게 메주를 받아들고 시어머니가 보여주신 대로 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몇 개 씻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어머님, 메주는 언제 만드셨어요?"

    "겨울에. 콩 삶아서 메주 만들고 처마 밑에 매달아 말렸지."

    "혼자 다 하셨어요? 힘드셨겠어요."

    시어머니는 잠시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셨다.

    "옛날부터 해온 일인데 뭐. 너희 세대는 이런 거 안 하고 자랐으니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시어머니의 말에는 약간의 비난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참자, 오늘은 배우러 온 거야.'

    "어머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렇게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그시다니... 요즘은 이런 걸 할 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잖아요."

    내 말에 시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 어머니한테 배웠어. 어머니는 또 할머니한테 배우셨고."

    "3대째 내려오는 비법이네요. 정말 소중한 전통이에요."

    메주를 씻으며 대화가 조금씩 이어졌다. 어색함은 여전했지만, 조금씩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메주를 다 씻고 나니, 시어머니는 커다란 항아리들을 준비하셨다.

    "이제 소금물을 만들어야 해. 소금물 농도가 아주 중요해."

    시어머니는 큰 양동이에 물을 담고 소금을 넣으셨다. 그리고 생달걀을 띄워 소금물의 농도를 확인하셨다.

    "달걀이 살짝 떠야 돼. 너무 많이 뜨면 짜고, 안 뜨면 싱거워."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과학적 정확성이 아닌, 경험과 감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 신기했다.

    "어머님, 정말 놀라워요. 이렇게 정확하게 아시다니."

    "다 경험이야. 너무 짜면 된장이 쓰고, 싱거우면 맛이 없어."

    시어머니의 손길은 정확하고 능숙했다. 수십 년간 해온 일이라 그런지 모든 동작이 정확하고 낭비가 없었다.

    "이제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나는 조심스럽게 항아리에 메주를 배열했다. 그런데 내가 메주를 너무 촘촘히 넣자 시어머니가 한숨을 쉬셨다.

    "아이고, 그렇게 꽉 채우면 안 돼. 메주 사이에 물이 잘 통해야 돼."

    시어머니는 내가 넣은 메주를 다시 꺼내 간격을 조정하셨다. 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미안해요, 어머님. 제가 처음이라..."

    "됐어. 가만히 봐."

    다시 구경꾼 신세가 되었다. 나는 조용히 시어머니의 동작을 관찰하며 마음속으로 따라했다. 시어머니의 손길, 메주를 놓는 간격, 소금물을 붓는 방법을 눈에 담았다.

    모든 항아리에 메주와 소금물을 채우고 나서, 시어머니는 깨끗한 천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으셨다.

    "이제 40일 정도 기다려야 해. 그동안 맑은 날이면 뚜껑을 열어줘서 햇볕을 쬐게 해야 돼."

    "40일이요? 그럼 다음 달 중순이네요."

    "그래. 그때 다시 와. 간장 떠내고 된장 만들 거니까."

    시어머니의 말에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다시 오길 원하신다니! 작은 희망이 생겼다.

    "꼭 올게요,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오늘의 경험을 곱씹었다. 시어머니와의 벽은 여전히 높고 단단했지만, 그 벽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 같았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긴 여정의 첫걸음.

    "어머님, 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어머님과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요."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 간장 담그기 과정에서의 충돌과 갈등 심화

    약속한 40일이 지나고, 나는 다시 시댁을 찾았다. 그 사이 서너 번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지만, 시어머니는 여전히 차분하고 짧게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간 것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마당에 들어서자 장독대에서 시어머니가 항아리 뚜껑을 열고 계셨다.

    "어머님, 왔어요."

    "그래, 왔구나. 이제 간장 떠낼 때가 됐어."

    시어머니는 내게 다가와 항아리를 보여주셨다. 40일 전과는 달리, 소금물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메주에서 우러난 감칠맛이 액체에 스며든 것이다.

    "어머, 색깔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이게 바로 간장이 된 거야. 이제 이걸 떠내서 끓여야 해."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나는 조심스럽게 국자로 간장을 떠서 준비된 큰 솥에 부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고, 향기가 진했다.

    "어머님, 냄새가 정말 좋아요. 이게 정말 자연의 힘이네요."

    "그래,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지."

    간장을 다 떠낸 후, 시어머니는 불을 지피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내가 현대식 가스레인지에 익숙해 장작불 지피는 법을 몰라 어설프게 도우려다가 실수로 불씨를 꺼뜨리고 말았다.

    "아이고, 이걸 어쩐다. 불 한번 제대로 못 피우나!"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질책에 나는 움찔했다. 그동안 쌓아온 작은 신뢰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어머님. 제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러니까 내가 너네 세대는 다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고 했잖니. 옛날에는 여자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었어."

    시어머니의 말에 내 마음에 서운함이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님,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배우려고 하는데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처받아요."

    순간 시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감히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에 놀라신 듯했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한테 말대꾸까지 하는구나."

    "말대꾸가 아니라 대화를 하려는 거예요, 어머님. 저도 존중받고 싶어요."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불을 지피셨고, 나는 쓸쓸히 한쪽에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 속에 일했다.

    간장이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 시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거품 걷어내는 것 좀 도와주겠니?"

    그 말은 마치 화해의 제스처 같았다. 나는 얼른 다가가 국자로 조심스럽게 거품을 걷어냈다.

    "어머님, 간장이 언제까지 끓여야 하나요?"

    "거품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때까지. 보통 한 시간 정도 걸려."

    다시 조금씩 대화가 이어졌지만, 아까의 충돌로 어색함이 남아있었다. 간장이 다 끓고 식힌 후, 시어머니는 작은 항아리에 담아 장독대에 올려놓으셨다.

    "이제 메주 건더기로 된장을 만들 차례인데... 오늘은 그만하자. 다음에 오렴."

    시어머니의 말씀은 분명한 거리두기였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네, 어머님. 다음에 또 올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왜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걸까? 단순히 장 담그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의 가치관과 생각이 부딪히는 거였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있을 테니까.

    ※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시어머니의 사연

    간장을 만든 지 일주일 후, 남편 현우가 갑자기 말했다.

    "미정아, 이번 주말에 어머니 댁에 같이 갈래? 아버님 제삿날이거든."

    나는 지난번 충돌 이후 시어머니를 뵙는 게 조금 두려웠지만, 시아버님 제사는 중요한 가족 행사였다.

    "그래, 같이 가자."

    시댁에 도착하니 시어머니는 이미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를 보자 짧게 인사하셨다.

    "왔구나. 현우야, 네 아버지 좋아하시던 탕국 좀 봐줘."

    시어머니는 여전히 나보다 아들에게만 말을 거셨다. 나는 조용히 앞치마를 두르고 도울 일을 찾았다.

    "어머님,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저기 나물 좀 무쳐줘."

    우리는 말없이 각자 맡은 일을 했다. 그런데 문득 시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시며 중얼거리셨다.

    "오늘따라 더 보고 싶구나..."

    나는 고개를 들어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강인한 모습과 달리,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어머님..."

    "아, 미안하다. 괜히 혼잣말을..."

    시어머니는 얼른 눈물을 훔치셨지만, 그 순간 나는 그분의 마음속 깊은 그리움을 엿보았다.

    "어머님, 시아버님 많이 생각나세요?"

    시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늘이 그이 돌아가신 지 3주기야. 내가 장 담그는 법도 다 그이 덕분에 배웠어."

    "시아버님이요?"

    "그래, 네 시아버지는 외아들이었어. 어머니가 병약하셔서 어릴 때부터 부엌일을 많이 도우셨대. 그래서 음식 만드는 걸 참 좋아하셨지."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이가 내게 장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셨어. '우리 집 장맛은 3대째 내려온 거니까 네가 잘 배워둬야 한다'고..."

    시어머니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늘 엄격하고 완벽을 요구하던 시어머니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다니.

    "그분이 갑자기 떠나시고... 내가 혼자 현우를 키웠어. 그때 내게 남은 건 이 장맛뿐이었어. 그이의 맛을 지키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지."

    그제야 시어머니의 장 담그기에 대한 집착이 이해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돌아가신 남편과의 추억이자 약속이었던 것이다.

    "어머님... 정말 몰랐어요. 제가 함부로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시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냐, 내가 너무 완고했어. 옛날 생각만 하고...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그때 내 눈에 부엌 창가에 놓인 작은 사진 한 장이 들어왔다. 젊은 시절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님, 이 사진..."

    "첫 번째로 장을 함께 담근 날 찍은 거야. 그이가 내게 '이제 네가 우리 집 장맛의 주인이다'라고 말해주던 날."

    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났다. 내 마음에 갑자기 큰 깨달음이 왔다. 시어머니께 장 담그기는 단순한 가사일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어머님,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저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요. 진심으로요."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내가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시어머니의 눈에 조금씩 따뜻함이 번져갔다.

    "내일... 된장 만들러 올래? 이번엔 제대로 가르쳐줄게."

    "네, 어머님. 꼭 올게요."

    ※ 된장 담그기를 통한 화해와 이해

    다음 날 아침, 나는 설렘과 긴장을 안고 시댁을 찾았다. 어제의 대화 이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시어머니는 이미 장독대 앞에서 항아리를 준비하고 계셨다.

    "어서 와라. 오늘은 된장 만들 거다."

    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어제와 다른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반갑게 다가갔다.

    "어머님,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먼저 항아리 속 메주를 꺼내야 해. 간장을 뺀 메주 건더기로 된장을 만드는 거야."

    시어머니와 나는 커다란 대야에 항아리 속 메주를 모두 꺼냈다. 간장을 빼고 남은 메주는 부드럽게 물러져 있었다.

    "이제 이걸 손으로 잘 으깨야 해. 옛날에는 절구에 찧었는데, 요즘은 그냥 손으로 해도 돼."

    시어머니와 나는 나란히 앉아 메주를 으깨기 시작했다. 손에 닿는 메주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발효된 콩의 구수한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퍼졌다.

    "어머님, 어제 말씀하신 시아버님 생각나시죠?"

    시어머니는 잠시 손을 멈추고 미소지으셨다.

    "그래, 매년 이맘때면 더 생각나. 그이는 손맛이 특별했어. 내가 아무리 똑같이 해도 그이만큼은 안 되더라고."

    "정말요? 시아버님께서 요리도 잘하셨나 봐요."

    "음식은 마음이야. 그이는 마음이 따뜻했거든."

    시어머니의 말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는 문득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에는 수십 년의 세월과 사랑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님, 손이 정말 예쁘세요."

    "에이, 이 늙은 손이 뭐가 예쁘다고."

    "아니에요. 정말 아름다워요.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만들고 보살피셨는지... 현우도, 이 된장도..."

    시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아이를 낳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다 보면, 그 안에 네 마음이 담겨."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최근 임신 가능성을 검사하고 있었지만, 아직 시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메주를 모두 으깬 후, 시어머니는 소금과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맛을 봤다.

    "간은 이 정도면 되겠다. 이제 이걸 항아리에 담고 꾹꾹 눌러 담아야 해."

    우리는 함께 으깬 메주를 항아리에 담았다. 시어머니는 내게 항아리를 맡기셨다.

    "네가 해봐. 손으로 꾹꾹 눌러 공기를 빼는 거야."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내게 중요한 일을 완전히 맡기셨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된장을 눌러 담았다.

    "그래, 잘하고 있어. 너무 세게도 말고, 약하게도 말고... 그렇지."

    시어머니의 격려에 자신감이 생겼다. 된장을 모두 항아리에 담은 후, 우리는 표면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소금을 얇게 뿌렸다.

    "이제 이걸 장독대에 두고 볕이 잘 들게 하면 돼. 두 달쯤 지나면 먹을 수 있어."

    "어머님, 두 달 후에 제가 첫 된장찌개 끓여드릴게요."

    시어머니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네가... 장 담그는 법을 배우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게 참 고맙구나."

    나는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가 내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다니.

    "어머님..."

    "처음엔 네가 그냥 현우 입맛 맞추려고 하는 줄 알았어. 근데 네 진심이 느껴지더라. 내가 너무 고집부렸나 봐."

    마당에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에도 따스한 봄이 찾아왔다.

    ※ 첫 장맛을 보며 맺어진 진정한 고부 관계

    두 달 후, 된장이 잘 숙성되었다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시댁으로 향했다. 이번엔 남편 현우도 함께였다. 그동안 나는 주말마다 시댁에 들러 장 상태를 살피며 시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장독대에 도착하니 시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왔구나. 된장이 정말 잘 숙성됐어. 오늘은 네가 직접 된장찌개를 끓여보는 게 어떻겠니?"

    "정말요? 제가요?"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직접 항아리에서 된장을 퍼서 작은 그릇에 담아주셨다.

    "여기, 네가 만든 첫 된장이다."

    그릇을 받아드는 순간,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두 달 전 메주를 씻던 날부터, 간장을 떠내고, 된장을 만들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변했는지.

    "고맙습니다, 어머님."

    부엌에서 나는 시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먼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두부와 애호박, 양파를 썰었다. 시어머니는 내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셨다.

    "양파는 좀 더 얇게 썰면 좋아. 그래야 시원한 맛이 나."

    "네, 어머님."

    현우는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부엌으로 들어와 우리를 바라보았다.

    "와, 보기 좋네. 우리 어머니랑 아내가 이렇게 사이좋게 요리하고."

    시어머니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된장을 풀고, 준비한 재료를 넣었다. 부엌에 구수한 향이 가득 퍼졌다.

    "어머, 냄새가 정말 좋네요!"

    "그래, 잘 하고 있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을 때, 나는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봤다.

    "어머님, 맛 좀 보세요."

    시어머니도 한 숟가락 맛을 보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집 맛이 났구나."

    그 한마디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집 맛' - 시어머니가 내게 해준 가장 큰 인정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된장찌개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현우는 첫 숟가락을 뜨고 감탄했다.

    "와, 이거 정말 어머니 맛이네! 미정이가 만들었다고?"

    "그래, 네 아내가 만들었어. 이제 우리 집 장맛을 이어받았어."

    시어머니의 말에 나는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단순히 요리 솜씨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시어머니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 작은 항아리 하나를 건네주셨다.

    "이건 네가 만든 된장이야. 너희 집에 가져가서 써라."

    "어머님..."

    "앞으로도 종종 와서 같이 장도 담그고... 다른 것도 배워가렴."

    나는 항아리를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어머님, 사실... 저희 곧 아기가 생길 것 같아요."

    시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정말? 확실한 거니?"

    "아직 초기라 조심스러워요. 그런데... 앞으로 육아에 대해서도 어머님의 조언을 많이 듣고 싶어요."

    시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럼. 내가 다 알려줄게. 우리 손주를 위해서라면..."

    장 담그기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생명을 함께 맞이하는 진정한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은 '어머님, 전통 장 담그는 법 함께 배워볼 수 있을까요?'라는 주제로 고부간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전통과 현대, 서로 다른 세대와 가치관을 가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장 담그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수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 음식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의 역사이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성이며, 세대를 이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입니다. 장을 담그는 과정처럼, 관계도 천천히 발효되고 숙성되어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저희 아이 육아에 대해 어머님의 조언을 듣고 싶어요"라는 주제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통해 더욱 깊어지는 고부관계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전통적인 육아방식과 현대적 육아 철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가족 관계에 관한 여러분의 경험이나 사연, 또는 듣고 싶은 주제가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이야기가 다음 콘텐츠에 반영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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